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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귀환(3)
계속된 몰살에 강호의 인심을 흉흉해졌고 무림맹의 무능력에 대한 비판이 커져갔다.
갈사량은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무림맹 일을 해냈다. 원로원을 힘으로 제압했고, 내부의 불만을 특유의 정치력으로 이겨냈다. 힘으로 눌러야 할 부분은 철저히 힘으로 눌렀다.
실종된 지 사십 일이 지났을 때 무림맹에서는 실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어차피 외부까지 소문이 퍼져나간 상태라 더 이상 감추는 것이 무의미했던 것이다.
강호는 발칵 뒤집어졌다. 천하진이 죽은 후, 벌써 두 명의 맹주가 바뀌었고 벽리단이 세 번째 맹주였다. 한데 그 맹주조차 실종된 것이다.
지금 객잔의 술꾼들 사이에서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무림맹은 저주받았어.”
“그런 소리 말게.”
“그렇지 않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가 없지.”
“이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두렵네.”
“이미 몰살당한 문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라더군.”
“강호에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어.”
온갖 이야기들이 나왔다. 사내들의 대화는 강호의 여러 어두운 사건들을 항해하다가, 술과 돈, 여자 이야기 사이를 표류했고 결국 음담패설로 정박했다.
그들의 옆자리에 홀로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은 마철군의 몸을 하고 있는 천마였다.
벌써 여러 병의 술을 마신 상태였다. 예전의 그라면 참지 못할 이야기들이 여러 번 오갔지만, 그는 조용히 술만 마시고 있었다.
근래 오직 무공수련에만 몰두해서 예전의 무공을 상당히 회복한 그였다.
벽리단이 실종된 이후, 그는 미친 듯이 수련을 했다. 과거 마교주가 되려고 할 때는 물론이고 마신결의 시험을 준비할 때도 이렇게 노력한 적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예전의 실력을 다 찾은 것은 아니었다. 아직 내공도 부족하고, 마공 역시 예전처럼 완벽하게 발휘할 수는 없었지만, 실력은 비슷하게 발휘할 수 있었다.
벽리단과 함께 여러 적들을 상대하면서 천마 역시 무학의 경지가 크게 상승한 것이다.
그곳 객잔으로 죽립을 푹 눌러쓴 사람이 들어섰다. 안을 돌아보던 사내가 천마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로 걸어와서 마주 앉았다. 그는 바로 갈사량이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어찌 알았나?”
“그게 제 일이지 않습니까?”
“자, 한잔 받게.”
“감사합니다.”
갈사량은 천마에 대한 예를 갖췄다. 예전의 천마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이제 천하진과 깊은 친분을 맺은 그였다. 두 사람의 사이를 인정한 것이다.
말없이 술잔을 내려다보던 갈사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맹주님이 어디 계신지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십니까?”
사실 그것이 오늘 천마를 찾아온 목적이었다.
천마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네. 대신 이것은 말해줄 수 있지.”
“무엇입니까?”
“그가 스스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라면, 그의 행방을 알아도 소용없다는 말이네. 내가 가도, 자네의 모든 무림맹 무인들이 다 가도 소용이 없을 것이네. 아, 오해는 말게. 자네들을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라도 행방을 알게 되더라도 절대 찾으러 가지 말게. 그가 스스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에선 오히려 짐이 될 것이네.”
“명심하겠습니다.”
갈사량은 그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받아들였다.
“근래 무공수련에 열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유사시에 자네들을 거들 손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지 않겠나?”
“아! 감사합니다.”
“고마워할 필요 없네. 솔직히 자네가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니까. 내 친구가 가장 아끼는 이들이니까. 내가 대신 지켜 줘야지 싶은 마음에서라네.”
갈사량은 천마의 입에서 친구란 말이 나오는 것에 놀랐고, 대신 지켜준다는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갈사량이 천마가 준 술잔을 다 비우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원래도 술을 즐기기 않았지만, 최근에는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술을 마시지 않았다.
“많이 변하셨군요.
“우리 모두가 많이 변했지. 그이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천마는 ‘변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정체되고 무기력한 삶을, 혹은 반대로 극으로 치닫는 삶을, 그래서 다 포기하고 그냥 살아가려는 삶을, 그것을 바꿔줄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임을 벽리단을 통해 깨달았다고.
하지만 천마는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느꼈다면 갈사량 역시 느꼈을 테니까. 벽리단이 된 천하진이 보여준 그 변화의 의지와 노력을 그 역시 옆에서 봐왔을 테니까.
다만 이 이야기는 해주고 싶었다.
“너무 걱정하진 말자고. 그이가 해온 그 변화의 노력을 믿는다면 너무 큰 걱정은 그를 무시하는 일이 될 테니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갈사량이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한 잔 더 주십시오.”
* * *
입신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노인이 열어준 문으로 들어왔을 때 놀란 것처럼, 다시 놀라운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적들이 서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큰 길이 쭉 나 있었는데, 이십여 명의 사내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 막고 있었다. 흑마군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눈에서는 밤의 야수들처럼 강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싸우자는 것을 보니 마신의 시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투지가 치솟는 나다.
“그래, 한번 해보자!”
기세 좋게 소리치며 수라명왕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놈들이 달려들었다. 확실히 인간들과는 달랐다. 보통 사람 고수들 같으면 최선의 상황을 만들어서 공격했을 것이다. 포위를 해서 앞뒤로,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 초식을 사용하면서.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그냥 무작스럽게 이십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나 정도 되니 의외란 생각으로 끝이 났지,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그 기세에 눌려 자신의 실력을 반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쉭쉭!
가장 앞서 달려든 두 마군을 베어버린 후, 다음 쇄도한 마군의 턱을 주먹으로 갈겼다.
목이 베어진 마군들은 일어나지 못했고, 턱을 얻어맞은 마군이 다시 일어서려다 허물어졌다.
놈들을 한 방에 눕힐 수 있는 힘을 알아내려는 것이다.
정말 다행한 점 하나는 마군들의 급소가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무공실력은 무림맹 정예 조직의 조장들 수준이었는데 그들보다 기도와 맷집이 더 강했다.
첫 상대이니만치 마군들 중 가장 약한 이들이라고 가정한다면, 앞으로 등장할 놈들의 실력이 상당하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이십 명의 마군들을 가볍게 처리했다.
“좋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소생연이 있다는 것은 이 시험이 한 번에 통과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침착하게 상대해야 한다.
첫 번째 관문은 아주 간단했다. 커다란 길에서 계속 마군들이 등장했다. 처음에 이십 명, 다음에는 삼십 명, 그다음에는 사십 명. 나타날 때마다 숫자가 열 명씩 늘어났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였다. 게다가 내공조절 역시 경험이 많았다.
하지만 무림맹 정예조직의 조장급 실력자들이 이렇게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니 절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십 명을 없앴을 때 나는 이동하지 않았다.
신중해야 한다. 여기서 죽으면 진짜 죽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잠시 서서 작전을 세우던 나는 이 시험에 여러 가지 규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능과 투지로 강행돌파하기에는 이 시험은 너무 위험천만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내공이 절반이 남으면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분명 안내인이 이렇게 말했다.
“무리해서 함부로 돌아와선 안 됩니다. 괜히 돌아오려다가 더 위험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 말인 즉, 돌아올 때 다시 새로운 적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일단 오늘은 절반의 내공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자.
이곳의 지형과 놈들의 싸움 방식, 적들의 성향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대로에서 나오는 적은 육십 명까지였다. 이십 명부터 열 명씩 늘어났으니, 총 이백 명의 마군을 이곳 대로에서 상대한 것이다. 말 그대로 무림맹 정예조직의 조장 이백 명을 상대한 것이다.
놈들을 죽이고 나서 운기조식을 하려고 앉았다.
하지만 곧바로 운기를 멈추고 다시 눈을 떴다.
“역시 그렇군.”
운기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이 가진 내공만으로 시험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두 번째 관문은 숲이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서 마군들이 숨어서 암기를 쏘았다. 입으로 쏘는 침부터 시작해서 활과 비수까지. 갖가지 암기들이 날아들었다. 그 실력이 보통 매서운 것이 아니었다.
창창창창창!
날아드는 암기를 피하거나 검으로 튕겨내며 하나씩 마군들을 해치웠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아주 귀찮고 신경이 쓰였다.
그래, 어차피 오늘은 돌아갈 테니까.
과감하게 내공을 아끼지 않고 마신결의 무공을 사용했다.
내가 선택한 초식은 사초식 진검무성이었다.
내 눈에 띄는 순간, 진검무성을 사용했다. 누군가 제삼자가 보았을 때는 이렇게 보였을 것이다. 나무 뒤에서 암기를 쏘려고 고개를 내미는 순간 푹. 몸이 드러나면 서걱, 눈에만 띄어도 어디선가 소리 없는 검기가 날아들었다.
이곳의 마군을 상대하기에 어울리는 초식이었다.
그렇게 숲을 빠져나왔다.
내공소모를 확인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숲에서 매복하고 있던 적들의 숫자는 오십 명이었다. 오십여 번의 진검무성은 아무래도 내공을 과하게 소모하는 일이었다.
다시 이곳을 통과할 때는 귀찮고 힘들더라도 하나씩 찾아내서 제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세 번째 관문은 늪지였다. 상당히 넓었는데 굳이 머리를 넣어보지 않더라도, 저 늪 아래에 마군들이 우글우글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경공을 사용할 수 없으니 넘어갈 수 없었다.
다시 숲으로 돌아가서 통나무를 하나 가져왔다.
늪으로 통나무를 던져 넣은 후, 통나무 위로 올라탔다.
촤아아아악.
내력으로 통나무를 움직여서 늪을 가로질러 갔다.
푸웅! 풍! 푸우우우웅!
늪에서 마군들이 튀어 올랐다.
쉬이이익!
촤아아악!
수라명왕검이 정확히 달려드는 놈들을 갈랐다. 차라리 상대하기 쉬웠다. 내가 놈들이라면 일단 통나무부터 잘라버렸을 것 같은데, 나만 노리고 달려들었다.
늪의 끝까지 그렇게 돌파를 했다.
마신결의 대성을 이루고 내공이 정말 효율적으로 소모되었다. 그럼에도 벌써 내공의 삼분지 일을 소모한 상태였다. 이제 겨우 세 번째 관문을 통과했는데 말이다.
더구나 늪의 마군들은 실력이 앞의 마군들보다 한 수 위였다. 첫 번째 두 번째 관문의 마군들이 조장급 실력이었다면, 세 번째 늪부터는 대주급 실력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삼십여 명 정도라는 점이었지만, 앞으로 돌파할 관문이 아주 많이 남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황은 아주 좋지 못했다.
아직 성은 까마득히 멀리 있었다. 저 성까지 과연 몇 개의 관문이 더 남았을지는 계산조차 되지 않았다.
더구나 성에 들어선 이후부터 훨씬 어려울 수 있었다. 저 성의 꼭대기 마지막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네 번째 관문은 들판이었다. 그리고 이번 적은 앞서와 달랐다.
마물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괴물이 된 야수라고 보면 되었다. 늑대인데 늑대가 아닌, 호랑이인데 호랑이가 아닌 마물들이었다.
수십 마리도 아닌 수백 마리의 마물들이 사방에서 모습을 보였다.
“아, 이건 그냥 상대할 수가 없다.”
사방이 어두워지며 검기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아악.
* * *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소생연에 잠겨 있는 나를 보며 안내인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소.”
마물들을 제거한 후, 곧바로 돌아왔다. 마신혈우를 사용하고 났을 때는 거의 내공이 반이 사라진 상태였다.
돌아오면서 놀라운 것을 경험했다. 세 번째, 두 번째 관문은 비어 있었는데, 첫 번째 대로의 마군들이 다시 생겨나 있었다. 이백 명의 마군들이 다시 상대해야 했던 것이다.
다섯 번째 관문에서 바로 돌아왔기에 망정이지, 조금 더 지났다가 돌아왔으면 두 번째, 세 번째에도 마물이 다시 생겨나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돌아오지 말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곳이다.
“어떠셨습니까?”
내가 그를 보며 말했다.
“이 관문…… 대체 어떤 놈이 만든 거요?”
“하하하.”
차가 자기 입으로는 말을 못한다는 듯 안내인이 난감하게 웃었다.
한바탕 웃고 난 후 그가 말했다.
“식사 준비해 오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시지요.”
“술 있소?”
“물론입니다.”
“독한 놈으로 부탁하오.”
“알겠습니다.”
안내인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풍덩.
나는 소생연에 머리까지 깊숙이 담갔다. 아른거리는 수면 위로 동굴의 천장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