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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귀환(1)
주먹이 날아들었다.
암흑신의 주먹은 정확히 내 몸 구석구석을 강타했다.
퍽, 퍽!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반격을 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내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 그래. 마음에서 놈을 형상화해서 베어야 해.
해결책이 생각났다.
의도적으로 온갖 악한 생각을 다 떠올렸다. 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 패배감에서 오는 절망스러운 생각만 떠올랐다.
암흑신이 사악하게 웃으며 마지막 일격을 내리치는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낯선 천장.
나는 깨끗하고 정갈하게 꾸며진 방의 침상에 누워 있었다.
차라리 지난 싸움이 꿈만 같았다.
내가 정말 암흑신을 이긴 것일까? 아니면 꿈속에서처럼 진 것은 아닐까? 하긴. 졌다면 이렇게 살아 있을 리가 없겠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놀랍게도 몸의 상처는 다 나아 있었다.
어떻게?
그냥 부상이라면 모를까, 온몸의 뼈가 다 부서진 치명적인 상처였다. 그 상처가 말끔하게 다 나은 것이다.
게다가 단전의 십일 갑자 내공 역시 원래대로 가득 차 있었다.
싸우러 가기 전의 몸 상태 그대로였다.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과연 그 당사자는 내가 깨어난 이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깼나? 자, 물 한 잔 마시게.”
바로 마신성의 노인이었다. 그의 손에 대접이 들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천천히 물을 마셨다. 갈증이 해소되며 살 것 같았다.
“암흑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소멸되었네.”
“소멸되었다는 것은?”
“암흑신이 죽었다는 뜻이지. 물론 영원히 죽은 것은 아니네. 다른 시대에 그가 부활할 조건이 완성되면 다시 태어날 것이네.”
“혹시 당대의 조건은 저 때문이었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왜? 자네 탓일까 봐 걱정되나?”
“조금은요.”
“걱정하지 말게. 자네 때문이 아니네. 각각의 운명이 작용했을 뿐이네.”
그렇다면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아무튼 면목 없습니다.”
“왜 면목이 없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험을 선택했으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때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을 피한 것은 당연히 현명한 선택이었지. 운명적인 선택이기도 했고.”
“과연 제가 마신이 될 운명일까요?”
“그건 나도 모르겠네.”
“암흑신을 보았을 때, 그는 암흑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저도 마신이 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나? 만약 그렇다면 내가 몸만 빼앗기는 시험을 자네에게 권할 리가 없지?
“하면?”
“삼신이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때마다 다르다네. 이번 암흑신의 경우처럼 직접 자신이 대상을 선택해서 부활하는 경우도 있고, 혈신의 경우처럼 후계자가 조건을 갖춰서 강림시킬 수도 있고, 자네처럼 시험을 치를 수도 있지.”
“혈신은 계속 조건을 갖춰가고 있는 겁니까?”
“그 부분은 말해줄 수 없다네.”
“시험은 언제부터입니까?”
“오늘 내로 시작해야 하네.”
“그럼 당장 시작하죠.”
“그래도 되겠나?”
“네.”
나는 굳이 미루지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
시험의 내용이 무엇인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며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 묻지 않았다. 말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노인이 말해주었을 것이다.
어차피 듣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만약 시험이 십 년간 해야 한다면? 그래도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 한다고 했으니까. 나쁜 내용은 알아봤자 괜히 걱정만 하게 될 뿐이다.
노인이 손을 내밀자 어른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문이 하나 생겼다.
문틀에는 무시무시한 악귀가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 사이로 적록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면 자네 앞에 이 문이 다시 생길 것이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부디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네.”
안으로 들어가려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시험에 통과하면 무조건 마신이 되는 겁니까?”
노인은 미소를 지을 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시험의 내용도, 결과도 알려주지 않았다.
“행운을 비네.”
나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것이다.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적록색의 빛이 나를 감싸는 순간 나는 그곳에서 사라졌다.
* * *
갈사량과 백표가 나란히 서서 맹주전의 비어 있는 태사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열흘이 지났음에도 벽리단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맹주님은 괜찮으실 겁니다.”
“그렇겠지.”
“대법이 이뤄졌던 곳 어디에서도 맹주님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갈사량은 마령인이 납치되어 간 곳의 위치를 알아냈고, 벽리단이 그곳으로 날아갔다.
이후 벽리단에게서 소식이 끊어지자 백표가 멸마단을 이끌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부서진 진법과 기관, 그리고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멸마단 무인들은 그곳의 광경에 경악했다. 혼자서 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지하에서 마령인과 암흑대상, 그리고 여인의 시체를 발견했다.
모두가 죽었는데, 벽리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수하를 시켜 그곳을 정밀하게 조사했다. 이상한 점은 벽리단이 이곳을 들어온 흔적은 있었는데 나간 흔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맹주님의 무공은 이미 천외천의 경지에 달했습니다. 그 누구도 맹주님의 목숨을 위협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 알고 있네.”
사실 그래서 걱정이었다. 이렇게나 강한 벽리단에게서 소식이 끊어졌으니까.
“군사님.”
“왜 그러나?”
“예전이라면 저도 걱정을 많이 했을 겁니다.”
백표는 생각이 났다. 천하진이 죽었을 때, 이 텅 빈 맹주전에서 눈물을 흘렸던 그때가.
“맹주님께 무공을 배우면서 확실히 느꼈습니다. 맹주님은 강한 분입니다. 거기에 하늘이 내린 숙명을 타고나신 분입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그러지.”
백표가 기둥 뒤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광단주도 걱정하지 말게.”
그러자 기둥 뒤에서 광두의 대답이 들려왔다.
“네,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했지만 걱정까지 감추진 못했다.
모두가 바랐다. 곧 소식이 날아오기를. 저 커다란 맹주전의 창문으로 번쩍하면서 날아들기만을.
* * *
다시 그로부터 열흘이 더 지났다.
벽리단이 돌아오지 않은 지 이십 일이 되었다. 이제 무림맹 내부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벽리단이 죽었다는 소문이었다.
갈사량은 소문을 퍼지는 것을 막아보려 했지만, 한번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막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맹주의 안위와 관련된 소문이었다.
무인들이 둘 이상 모이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소문 들었나? 맹주께서 이번 싸움에서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있네.”
“나도 들었네. 설마 돌아가셨겠나?”
“그렇지 않다면 이십 일이나 소식이 끊어지실 리가 있나?”
“하긴.”
“정의각에 걸린 비상이 풀리지 않고 있어.”
“맙소사. 이러다 또 맹주가 바뀌는 건가?”
그때였다. 그들 뒤에서 누군가 버럭 소리쳤다.
“이놈들! 그 무슨 헛소리들이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마철군이 화난 얼굴로 서 있었다.
“한 번만 더 그딴 소리를 지껄였다간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마철군의 호통에 두 사람이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다신 헛소리를 하지 않겠습니다.”
마철군이 그들을 노려보며 가던 길을 걸어갔다.
그가 멀리 사라지자 무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맹주가 자신을 쫓아냈는데 뭐가 좋아서 저러는 걸까?”
“살려줘서 고마운 것이겠지.”
“이번에 그곳에서 마령인의 시체도 찾아냈다면서? 한데도 맹주 편을 들어준다는 거야?”
“콩가루 집안이지.”
“돈 많고 권력 많으면 뭐하나? 참 기구하고 기구하다.”
이미 두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졌지만 천마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무공을 회복하고 있는 그였다.
성질 같아선 뛰어가서 뒤통수라도 한 대 때려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실 걱정이 가장 많은 사람은 자신이었다. 적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적들이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 놈들인지도 잘 알았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녀석의 몸에서 나오지 않는 건데.”
그럼 적어도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놈아!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애타는 천마의 목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 * *
스스스스스슷.
선천진기가 흡수되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은 대롱이 있는 것처럼, 노인의 진기가 허공을 쭉 날아가서 천소선의 입으로 들어갔다.
이제 천소선은 단지 피만 흡수하는 것이 아니었다. 피와 함께 상대의 내공도 함께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피를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나 죽였지만, 이제 고수만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대성을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천소선은 그날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고 했지만, 그것이 내일이 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예전과 다른 느낌과 기도였다.
“배고파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천소선이 시체가 널린 그곳에 서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어서 밥 먹으러 가지.”
“다음은 어디지?”
“칠검문, 동쪽으로 백여 리 떨어진 곳에 있다.”
“밥 먹고 곧장 가죠.”
양사휘는 이제 시체를 치우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다른 먹잇감을 구했다.
자신들을 추적하던 벽리단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오히려 벽리단이 죽었다는 소문이 강호에 파다했다.
“놈이 죽었을까요?”
“어쩌면. 아니면 속임수일 수도 있지.”
양사휘의 말에 천소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벽리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사람이었다.
“만약 죽었다면 누가 그를 죽인 것이지요?”
“암흑신.”
“암흑신이 강림했을 수도 있겠군요.”
그러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암흑신은 부활하지 않았다. 만약 암흑신이 부활했다면 강호가 이렇게 조용하진 않았을 테니까.”
양사휘는 암흑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았다. 누구보다 파괴적이고 강력한 존재였다. 그 본성상 자신을 숨기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둘이 양패구상한 것이라면?”
양사휘의 얼굴에 기쁨이 스친 반면 천소선의 얼굴에는 실망이 스쳤다.
“왜 그러나?”
“강적이 사라진다면 무슨 재미가…….”
짝!
양사휘가 사정없이 천소선의 뺨을 때렸다. 천소선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신!”
“정신 똑바로 차려! 강적이 없어 아쉽다는 둥 하는 소리는 천지분간 못하는 철부지들이나 하는 소리다. 벽리단이나 암흑신이 없다면, 우리에겐 하늘이 기회를 준 것이다. 건방 떨지 마라!”
그녀는 내심 분노가 치밀었다.
‘혈신이 될 몸에 감히 손을 대다니!’
하지만 그녀는 분노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정중히 사과했다.
“미안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양사휘 역시 한결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대성까지 얼마나 남은 것 같나?”
“멀지 않았어요.”
역시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래, 그날은 멀지 않았으니까.
* * *
벽리단이 사라진지 한 달이 되던 날, 갈사량은 섬의 안가로 송화린을 찾아갔다.
“맹주께서 한 달째 소식이 없으시네.”
“아, 그렇군요.”
그녀의 담담한 반응에 갈사량이 물었다.
“혹시 소문을 들었나?”
“아뇨. 지금 처음 들었어요.”
섬은 외부의 소식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었다. 갈사량이 일부러 섬에 알리지 않았다. 벽리단의 부모와 송화린이 괜히 걱정을 할 것 같아서였다.
“제가 너무 침착했나요?”
“아니네.”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조금 의외긴 했다.
송화린이 차분히 말했다.
“그와 만나서 여러 가지를 많이 배웠답니다. 그중에 하나는 쓸데없이 걱정하는 시간에 뭐든 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요. 상황이 힘들수록 필요한 것은 노력이지 걱정이 아니라고요.”
갈사량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백표도 그렇고, 송화린도 그렇고. 자신보다 더 굳건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나이를 헛먹었군.’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더 현명해지고 침착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자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만 약해지고 있었다.
“벽문주에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
“제가 말씀드리지요.”
“그래주시겠나?”
“네, 걱정하지 마세요.”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곧바로 연락 주겠네.”
“네.”
갈사량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비로소 송화린이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달이나 소식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놀람을 표현하면 벽리단의 부재가,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사실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더 울면 눈이 부을 테니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세안을 하고 새로 화장을 했다.
동경 앞에 선 그녀가 심호흡을 했다. 자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벽도준과 임예화가 더 크게 놀라고 걱정할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소식을 전하는 거다. 지금 이 섬에 두 분을 위로하고 지탱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으니까.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그녀가 동경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런 일 떨려서 잘 못해. 그러니 어서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