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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86화 (28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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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러운 어둠은 없다(4)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던 두 사람은 깜짝 놀라며 마령인에게로 달려갔다.

“대법이 끝났다고? 어서 깨워라!”

“네.”

연구원들이 약을 사용해서 마령인을 깨웠다. 원래라면 충분히 잠을 재운 후에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강제로 눈을 뜬 마령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령인의 눈과 몸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대법을 막 끝낸 그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인이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나가! 너희는 나가서 놈을 막아!”

연구원들의 무공이라 해봤자 보잘 것 없었다. 다시 말해서 나가 죽으라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감히 그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대로 있다간 여기서 맞아 죽을 테니까. 연구원들이 우르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여인이 마령인 앞에서 주문을 외웠다. 깨어나자마자 주인이 누군지를 각인시켜야만 명령을 듣는 것이다.

주문이 끝나자 주위를 흐르던 검은 기운이 모두 마령인과 그녀의 몸속으로 나눠져 흡수되었다.

그때였다.

꽈앙!

그들이 채 탈출구로 가기도 전에 문이 부서지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는 연구원들을 그냥 보내고 곧장 방으로 들어선 사람은 바로 벽리단이었다.

정말이지 첫 번째 진법에 들어선 순간부터 지금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빨리 이곳에 도착한 그였다.

벽리단의 시선이 여인에게서 암흑대상에게로, 끝으로 마령인을 향했다. 깨어난 마령인을 보자 대법이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벽리단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어떤 대법인지 모르겠지만 깨자마자 나를 상대할 수 있겠나?”

과연 마령인은 멍한 표정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머릿속에는 마령인도 있었고, 알 수 없는 무엇인가도 있었다.

여인이 명령을 내렸다.

“저놈을 죽여라!”

그러자 복잡하던 마령인의 머릿속이 한순간에 정리되었다. 오직 눈앞의 적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마령인이 살기를 뿜어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쿠르르릉!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평상에서 술을 마시던 노인과 구총관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한바탕 쏟아지겠군.”

“내리치기 전에 어서 들어가시죠.”

“천천히 가세. 오랜만에 비를 맞아도 좋겠지.”

“네, 그러시지요.”

구총관이 빈 술병과 안주를 주섬주섬 쟁반 위로 옮겨 담으며 말했다.

“지금쯤 싸움이 시작되었겠군.”

노인의 말에 구총관이 깜짝 놀랐다.

“오늘인가요?”

“그렇다네.”

“만약 암흑신이나 혈신이 이기면 이 강호는 어떻게 됩니까?”

“밤이 계속되고 피 냄새가 진동하는 강호가 되겠지.”

“그래도 괜찮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텐데요.”

“막을 수 없다면 어쩌겠나?”

마치 노인은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구총관은 알고 있었다. 노인이야말로 생명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임을. 발아래 벌레 한 마리까지 죽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반대로 악이 세상을 지배한다 하더라도 전혀 개입하지 않을 사람임을 안다.

“그 사람이 이기기는 힘들겠지요?”

“글쎄.”

“아니라고 하시지 않으시는군요.”

“사람 일에 어디 쉽게 확정 지을 수 있는 일이 있던가?”

“하지만 사람이 신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지 않습니까?”

“애초에 악신을 만든 것은 인간이었다네.”

“인간이었다고요?”

“그래. 인간이 배출한 악이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이다가 종국에는 생명을 갖게 된 것이지. 결국 그 악을 따르는 무리들까지 생겨났고.”

구총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들이란 게 참…….”

그는 뒷말을 잇지 않고 들고 있던 술잔을 비웠다. 할 말이 많았지만, 그랬기에 할 말이 없기도 했다.

쿠르르르릉.

멀리서 벼락이 쳤고 천둥소리는 한층 가까워졌다.

“이번 싸움에서 벽리단이 죽으면 우린 마신을 잃게 되는 것이겠군요.”

“마신을 잃는 것이 아니라, 마신이 될 도전자를 잃게 되는 것이지. 그가 마신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어르신이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사람은 충분히 마신이 될 만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그랬지. 하나 마신이 되는 일은 조건만 갖춘다고 되는 일은 아니라네. 자네도 알다시피 그 시험은 굉장히 어려우니까. 더구나 스스로가 싫다면 더욱 할 수 없는 일이지.”

툭, 툭.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노인은 비를 맞으며 먹구름이 잔뜩 낀 시커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오랫동안 그를 봐온 구총관조차 알 수 없었다.

* * *

마령인이 내뿜는 기도는 어마어마했다.

막 깨어나자 이 정도라면, 만약 시간을 준다면 정말 엄청난 실력을 발휘할 것 같았다.

쉬이이익.

꽝!

나를 밀어붙이며 달려들었다.

뒤쪽 벽이 부서지며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못한 것은 그가 쇄도하던 그 순간, 암흑대상과 여인에게 장력을 날렸던 것이다.

퍽! 퍼억!

두 사람은 내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그들은 상당한 고수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내 한 수를 피할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그들을 제압한 것은 마령인은 놓쳐도 두 사람은 절대 놓쳐선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꽝!

덕분에 마령인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놈이 내 몸을 부딪쳐왔다.

충돌할 때 터져 나온 폭음만큼이나 놈의 공격은 강력했다. 이전에 천왕군과 상대할 때만큼이나 강했다. 만약 마령인이 이제 막 깨어난 것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강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깨어난 마령인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자신의 이성조차 찾지 못한 상태였다. 아마 마령인의 무의식만 남아 있을 것이다. 더구나 마령인은 자신의 병기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

내게는 행운이었다.

마령인의 공격이 연속해서 날아들었다.

놈의 주먹을 피하며 그의 가슴에 내 주먹을 박아 넣었다.

퍼억!

그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곧장 뒤따라 날아 들어가며 무릎으로 그의 턱을 강타했다.

퍼어억!

머리통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세차게 고개가 젖혀졌지만, 마령인은 금방 반격을 개시했다.

쇄애애액! 쇄애액!

두 손을 휘저으며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흥분한 상태였음에도 빠르고 정확한 공격이었다.

공격을 피하면서 주먹과 발길질을 날렸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학비술로만 놈을 상대했다.

속도와 경험, 강함, 이 모든 것이 내가 그를 압도하고 있었다.

퍽! 퍼억!

연속해서 공격이 들어갔지만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내 실력과 놈의 상태등을 고려했을 때, 놈은 정말 강했다. 이만큼 공을 들여서 대법을 진행할 만했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 정도였으니까.

옆구리에 팔을 집어넣은 후 엎어 쳤다.

꽝!

제대로 한 방이 들어갔지만 놈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큰 타격을 입은 듯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래, 이제 끝내주마.

계속 두들기면 선학비술로도 끝장을 볼 수 있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놈은 껍데기만 마령인이었다. 굳이 고통을 주면서 싸움을 길게 끌 이유가 없었다.

마무리를 짓기 위해 검을 뽑아들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내가 발휘한 한 수는 마신암영이었다.

시야에서 사라진 후, 마령인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쉬이익! 푸아아악!

그의 등이 베어졌다. 내공을 잔뜩 머금은 수라명왕검에 호신강기가 갈라지며 마령인의 등이 크게 갈라졌다.

부웅!

마령인이 주먹을 휘두르며 돌아섰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마신암영을 발휘한 상태였다.

푸아아아아악!

다시 그의 등이 더욱 깊게 베어졌다.

내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막을 수도 없었고, 등 뒤를 공격하니까 한 발 먼저 돌아서서 공격해야지란 수를 쓸 수도 없었다.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확실한 실력차이였다.

쉬이이익! 푸아아아악! 쉬이익! 푸아아악!

연속된 마신암영으로 마령인의 등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털썩.

결국 계속된 치명상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마령인이 무릎을 꿇었다.

생기가 사라지고 있는 그의 눈빛에는 증오와 독기만이 가득했다.

그를 처음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 누구보다 똑똑한 악인이었다. 가장 위협적인 악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더 강한 악에 잡아 먹혀 대법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먹고 먹히는, 이용하고 또 이용하는 악인들의 세상에서 오히려 마령인과 같은 튀어나온 송곳은 더욱 매력적인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진짜 악당들은 튀지 않는다. 마치 보호색을 띤 채 숲에 숨어 있는 풀벌레처럼, 생각지도 못한 곳에 숨어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쉬이이이익.

촤아아아악.

내 마지막 일검에 몸에서 분리된 마령인의 머리통이 바닥을 뒹굴었다.

“안 돼!”

바닥에 쓰러진 채 싸움을 지켜보던 여인이 탄식을 내뱉었다. 오직 믿을 것은 마령인이었는데, 이제 유일하게 살아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내가 여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머저리 같은 새끼! 사내새끼가 쓰러진 여자나 죽이고! 병신 같은 놈!”

그녀는 앙칼지고 독했다. 이 와중에도 나를 자극해서 살아날 방법을 찾고 있었지만, 어림없는 수작이었다.

오히려 간절하게 그녀의 목숨을 구걸한 사람은 조금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던 암흑대상이었다.

“……살려줄 수 없겠지?”

내가 곧바로 대답했다.

“없지.”

쉬이이익. 파아아악!

수라명왕검이 그녀의 목을 그어버렸다. 깊게 목이 베인 채 여인의 목숨이 끊어졌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다.”

“당신에게는 그랬겠지. 다른 이들에게는 죽어 마땅했다.”

암흑대상이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이 깊은 남녀의 정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검을 늘어뜨린 채 그에게로 걸어가며 말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해 주면 세상에 악인이 어디 있겠는가?”

* * *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벽리단을 쳐다보며 암흑대상이 미친놈처럼 웃었다.

“크하하하. 결국 이렇게 끝장이 나는군.”

여인의 죽음에 암흑대상은 마음이 아팠다.

언제나 후회는 늦은 법이다.

벽리단이 검을 치켜들었다.

그를 올려다보며 암흑대상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돈 많이 버니까 좋지?”

쉬이익.

벽리단이 대답 대신 심장에 검을 내리꽂았다.

푸우욱!

암흑대상이 한옆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굳어져가던 그의 두 눈에 벽에 세워져 있던 암흑신의 석상이 보였다.

석상에는 마령인의 피인지, 여인의 피인지 알 수 없는 피가 튀어 있었다. 그렇잖아도 무서운 석상이 더욱 무서워보였다.

‘그렇게 무섭게 눈을 치켜 떠 봤자 이젠 다 끝났소.’

마지막 의식이 사라지던 바로 그때였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사라져가던 그 공간에 뭔가가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다.

-어? 이게 뭐지?

암흑대상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몸에 들어오기 시작한 존재가 바로 암흑신이라는 것을.

어둠의 신이 자신을 선택한 것이다.

-왜 나지?

그러자 마음에서 생겨난 그것이 대답했다.

-네 선택이 옳았으니까.

처음에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 선택? 대체 무슨 선택?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것.

그 순간 암흑대상은 깨달았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돈이었다. 자신의 선택 역시 돈이었다.

-돈이야 말로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가장 강한 것이다.

암흑대상 역시 그렇게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암흑신의 입에서 저 말을 듣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더럽고 추악하고 악한 것이 아니고?

그래서 암흑신이 자신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암흑신의 강림에 가장 어울리는 상대이기에. 돈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자신이야말로 암흑신이 부활하기에 최고의 몸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몸에 암흑신이 깃들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오래전 암흑대상이 된 그 순간부터 이렇게 암흑신이 되는 운명과 닿아 있었음을. 당대의 암흑신은 이미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강림할지를 결정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마령인과 여인은 한마디로 제물이었다.

부활을 위한 피의 제물.

자신의 영혼이 무엇인가가 밀려나 소멸되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암흑대상의 시선이 죽어 있는 여인을 향했다.

‘아, 이렇게 병신처럼 죽어선 당신을 볼 낯이 없는데.’

그의 영혼은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몸은 서서히 바닥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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