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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러운 어둠은 없다(2)
정의각이 바쁘게 움직였다.
마령인이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갈사량은 정의각에 비상을 걸었다.
정의각 내의 모든 군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각기 맡은 바를 해냈다.
하나의 군사 아래에 수십 명의 정의각 무인들이 있었고, 다시 그들 각각은 수십 명의 일반 세작들을 관리했다. 하루에도 수백 마리의 전서응이 날아들었고, 또 중원 곳곳으로 날아갔다.
갈사량은 이번 납치가 단순히 강호의 은원에 따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분명 암흑신이나 혈신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맹주님에게 전서 보냈지?”
“네, 지금쯤이면 본각의 감숙지부를 통해 받아보셨을 겁니다.”
“알았다.”
갈사량은 중원 각지의 정의각 연락망을 통해 벽리단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이번에 마령인의 납치와 관련해서 맹으로 돌아와 달라는 전서를 보낸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잘 지냈나?”
갈사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들어선 사람을 바라보았다.
“맹주님?”
* * *
내가 사전예고 없이 정의각 작전지휘소로 들어서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갈사량이 반갑게 웃으며 내게로 걸어왔다.
“그렇잖아도 맹으로 와 주십사 하는 전서를 보냈었습니다. 전서가 엇갈렸는데도 다행히 이쪽으로 오셨군요.”
“엇갈리지 않았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군사께서 보낸 전서는 오늘 아침에 받았네.”
내가 품에서 전서를 꺼내 갈사량에게 내밀었다. 갈사량이 그것이 자신이 보낸 것임을 확인했다.
“이 전서는 제가 감숙으로 보냈습니다만.”
“그래, 감숙에서 받았지.”
“네? 오늘 아침에 받으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갈사량은 물론이고 정의각 군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갈사량이 한 가지 생각에 이르러 화들짝 놀랐다.
“설마? 감숙에서 무한까지 한나절 만에 오신 겁니까?”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중간에 잠시 들를 곳이 있어서 좀 늦었네.”
정의각 군사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내 무공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갈사량이 수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바로 우리 맹주님이시다.”
그러자 군사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하하하.”
내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 사람들아, 그만 놀리고 일들 하세.”
“네!”
군사들이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갈사량이 내 앞에 앉았다.
“잘 오셨습니다.”
“마령인이 실종되었다고?”
“네, 정체불명의 고수에게 납치되었다고 합니다.”
“자작극은 아니고?”
“본각의 판단으로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내가 추격하던 놈들의 짓은 아니네.”
나는 갈사량에게 앞서 내가 조사했던 한 마을 주민 전체가 실종되는 사건의 흉수가 내가 꿈에서 보았던 배후 사내와 천소선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주었다.
“필사적으로 도피 중인 그들이 이번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희박하네.”
“그렇다면 암흑신을 섬기는 자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그렇겠지.”
“놈들은 왜 마령인을 납치해간 것일까요?”
“암흑신을 부활시키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네.”
한쪽에서 혈신을 강림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니, 암흑신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신을 강림시키려 들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하필 이 시대에 악신들이 강림하려는지. 나 때문일까?”
마신과 암흑신, 그리고 혈신. 이 모든 운명은 하나의 실타래로 얽혀 있었고 분명 내 운명도 함께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수십 년이나 이 강호를 다스렸네. 어쩌면 내 통치가 잘못되었던 것일 수도 있지.”
“저는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라고?”
“네. 맹주님이 너무나 바르게 강호를 다스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만났다던 그 노인이 세상의 균형을 중요시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랬네.”
“맹주님이 세상을 비췄던 빛이 너무 밝아서,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짙은 어둠이 내리는 것이겠지요.”
내가 갈사량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네 말이 위안이 되는군.”
“저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진짜로 그렇게 믿든, 나를 위해 해주는 말이든 정말 고마운 말이었다.
“우린 결국 양쪽을 다 놓쳤군.”
그러자 갈사량이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뭔가 복안이 있었군.”
“그렇지 않다면 맹주님께 돌아와 달라고 전서를 보내지 않았겠지요.”
“뭔가?”
갈사량이 내게만 들리게끔 목소리를 낮췄다.
“현재 마령인을 추적 중에 있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나 역시 목소리를 낮췄다.
“어떻게 말인가?”
“이번에 마령인에게 최고 실력을 지닌 감시자를 붙여두었습니다. 현재도 마령인을 뒤쫓고 있습니다. 이 작전은 본각 내에서도 비밀리에 진행 중이지요.”
“한데 왜 놈을 감시하고 있었나?”
“마령인뿐만 아닙니다. 근래 돌아가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여겨서 요주의 인물들의 행적을 감시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특히 마령인은 중요 인물로 분류해서 본 각에서도 최고 실력의 감시자를 붙여두었습니다.”
“아! 잘하셨네.”
갈사량이라는 걸출한 군사가 내 운명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마령인을 뒤쫓던 감시자의 전서가 날아든 것은 이틀 후였다.
중경을 지나 계속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놈은 광서로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광서라. 혹 우리 감시자에게 연락이 가능한가?”
“불가능합니다.”
중요한 미행을 할 때에는 일체의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중단하고, 감시자의 연락만을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전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조심해서 추격하라는 말 이외에 달리 무슨 말이 있겠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는 최대한 조심해서 움직일 겁니다.”
마신비행으로 광서까지는 하루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따라서 무작정 그곳으로 내려가는 것보단 이곳 정의각 지휘소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듣고 움직이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후에 한 번의 전서가 더 오고 나서 감시자에게 연락이 끊어졌다.
“아마 당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상대는 천도문에 잠입해 문주를 납치해갈 정도의 실력자였다. 결국 미행당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그래도 그가 보낸 마지막 보고에 몇 가지 중요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납치자의 인상파기는 물론이고, 행동방식과 습관 등등 여러 정보가 이동 방향과 함께 날아들었던 것이다.
“정의각과 삼안각, 천망회, 태성상단까지 모두 동원해서 놈을 찾아내게. 희생당한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찾아내게.”
이번에 기회가 왔을 때 놈을 잡아야 했다. 앞으로의 큰 희생을 줄일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
갈사량이 의지 가득한 눈빛을 빛냈다.
“네, 저희가 지닌 모든 힘을 다 동원하겠습니다.”
* * *
노인이 마신성 뒷마당에 평상을 깔고 누웠다.
“오랜만에 한가해 보이십니다.”
구총관이 차가운 술을 가져오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할 일은 대충 다 끝이 났다네.”
“아직 벽리단 그 사람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같더군요.”
“그래, 그 일만 남았지. 뭐, 아무래도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니까. 자, 자네도 한잔하게.”
“네, 감사합니다.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어르신과 술을 마시는 것도.”
“그렇군.”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다.
“혈신도 강림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천소선 역시 운명의 씨앗을 가진 자니까.”
“그럼 이번 싸움에선 암흑신만 빠지겠군요.”
그러자 노인이 묘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혹시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입니까?”
“왜 빠진다고 생각하는가?”
“네? 암흑신이 될 후예가 없지 않습니까?”
노인은 뜻 모를 말을 던졌다.
“암흑의 근본에는 혼돈이 있지.”
구총관이 여전히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흠칫 놀랐다. 혼돈이라면 마신이나 혈신의 경우와는 다른 방식으로 암흑신이 현신(現身)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설마 이번에 암흑신도 강림하는 것입니까?”
노인이 술잔을 들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디 이 세상에 어둠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 * *
마령인은 벌거벗은 채 딱딱한 침상에 누워 있었다.
죽은 듯 잠이 든 그의 몸에는 이미 여러 개의 침이 꽂혀 있었고, 곳곳에 얇은 관들이 꽂혀서 알 수 없는 액체를 몸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오가며 바쁘게 대법을 진행하고 있었다.
암흑대상과 여인이 한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마워요.”
“뭐가?”
“마령인을 알려줘서요. 대법을 진행하는 이들이 말하기를 마령인의 몸은 암전수혼대법을 치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더군요.”
“다행이군.”
“대법만 성공하면 마령인이 벽리단을 죽일 수 있을 거예요. 이전의 천왕군보다 훨씬 더 강하게 탄생할 테니까요.”
암흑대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
“왜 그러시죠?”
“오는 도중에 무림맹의 추적을 받았다고 들었다.”
“다행히 추격자는 없앴어요.”
“하지만 우리가 광서에 있다는 것은 들켰지. 대법은 얼마나 걸릴까?”
“이틀 정도 걸릴 거예요. 걱정 마세요. 광서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으니까요. 이틀 사이에 우릴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해요.”
하지만 암흑대상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놈을 과소평가하지 마.”
그의 시선이 다시 대법이 진행되는 곳을 바라보았다.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거야.”
* * *
이틀 후, 대법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대법을 진행하는 무인들은 잠도 자지 않은 채 강행군을 하고 있었다.
암흑대상과 여인 역시 한숨도 자지 않은 채 대법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법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이었다.
수하 하나가 다급히 들어와서 보고했다.
“침입자입니다.”
“뭐라고?”
“우리 위치를 들킨 것 같습니다.”
“진법을 가동해라.”
“이미 삼대절진을 모두 가동했습니다.”
“잘했다.”
암흑대상이 끼어들며 수하에게 물었다.
“적은 몇이냐?”
“단신입니다.”
혼자라는 말에 오히려 암흑대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젠장! 놈이 직접 왔군.”
암흑대상이 여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놈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했지?”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틀 만에 이곳을 발견하다니!”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배신자가 있지 않다면 이곳을 들킬 리가 없었다.
‘혹시 이 사람이?’
암흑대상은 그녀의 의심을 대번에 읽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입꼬리가 비웃음을 만들어냈다.
“내가 왜 당신을 떠났는지 모르지?”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라는 의미임을 알고는 여인이 흥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고 가르친 사람은 당신이었죠.”
“그래. 옆에서 모든 것을 바쳐서 돕고 있는 남편 말고, 남들 말이야. 당신에게 아부하는 자들, 당신을 유혹하는 자들. 그런 자들을 의심해야 한다고 했지.”
“알았어요. 당신을 의심한 것은 미안해요.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어차피 저자를 두고는 달아나지도 못하잖아?”
암흑대상이 다시 대법이 진행되고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얼마나 남았나?”
여인의 물음에 연구원 하나가 대답했다.
“서두르면 반각이면 끝이 날 겁니다.”
“더 서둘러라!”
“네.”
여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은 충분해요.”
진법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정예무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어떤 진법이지?”
암흑대상의 물음에 여인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역변오행진(逆變五行陣), 수라기문진(修羅奇門陣), 그리고 암류영환진(暗流靈還陣)이에요. 당신도 알겠지만 흑지 최강의 진법들이죠.”
그녀의 말처럼 하나같이 대단한 진법이었지만, 암흑대상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여인이 빠르게 말했다. 암흑대상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자신을 안심시키는 말이기도 했다.
“생문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한 최고실력의 진법전문가가 파훼한다 하더라도 족히 하루는 걸릴 거예요. 그사이에 우린 탈출로로 빠져나가면 그만이죠.”
“그러면 다행이지만…….”
“당신은 뭐가 그렇게 불안하죠?”
바로 그때였다. 앞서 보고를 하고 갔던 수하가 다시 달려 들어왔다.
“침입자가 역변오행진을 돌파했습니다.”
“뭐라고?”
여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침입자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 아직 향 하나 탈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암흑대상이 그녀에게 말했다.
“뭐가 불안하냐고? 바로 이거지. 놈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여인이 연구원들을 재촉했다.
“서둘러라! 놈이 들어오기 전에 끝내지 못하면…….”
정말이지 이런 말은 그녀 입으로 내뱉고 싶지 않았지만.
“우린 다 죽는다.”
대법을 진행하는 손놀림이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암흑대상이 힐끗 한옆에 세워진 암흑신의 석상을 쳐다보았다. 마주보는 것도 섬뜩한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이보시오, 당신. 정말 이대로 끝낼 작정이오? 그러기에는 암흑신이란 당신 이름이 너무 아깝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