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282화 (28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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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란비화(3)

“천란은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내려 온 신물입니다.”

구총관의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천란이란 것이 천보명이 훔친 비급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무림맹에 보관된 괴도 천보명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천보명이 훔친 비서를 바탕으로 천란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었다.

한데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신물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던 내용과 다른 숨겨진 진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천왕군은 천란을 여러 개 만들어서 암흑천병기를 대량생산하려고 했소. 실제 천란을 제작하기도 했었소.”

“진짜 천란의 몇 가지 기능만 흉내 낸 가짜 천란을 제작한 것이지요. 물론 그는 그것이 가짜란 사실을 몰랐을 겁니다. 진짜 천란은 그저 상처나 치료하고 암흑천병기나 생산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디에 사용하는 신물이오?”

“여기를 보십시오.”

그가 다시 삼신불망기를 넘겼다. 어느 장에 이르자 천란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나와 있었다.

“삼신불망기에 따르면 천란을 열쇠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열쇠라고요?”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천란은 사람이 누워서 잠드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열쇠라니? 과연 그것은 보통 열쇠가 아니었다.

“네, 바로 선악의 기준을 뒤바꿀 수 있는 열쇠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선악의 기준을 뒤바꾼다?”

“모든 것이 뒤바뀌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선이라 여기는 것이 악이 되고, 그 악을 선이라 믿는 것입니다.”

“살인이 선행이 되는 세상인 것이오?”

“그렇지요. 인간은 본래 악하다고 믿는 것이지요. 본래 악한 인간이 선이라는 허울에 갇혀 본연의 모습을 잃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악이 곧 인간의 본성, 상대를 속이고 거짓말을 해서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세상,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죽이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그대가 모시는 마신 역시 그런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이오?”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삼신이 서로 싸움을 벌인 것이 바로 마신이 그런 이념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마신이 추구한 것은 절대악이 아닌 강자존(强者存)이었습니다. 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강함을 추구했지요.”

설명을 하면서 구총관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마신성의 총관인 구총관은 그 강자존의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후의 마신을 숭배해온 마교들은 태초의 마신이 추구했던 본연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어둡고 혼탁한 사마외도(邪魔外道)를 걸어왔지요.”

결국 이런 시점에서 마신이 된다는 것은 그 본연의 정신을 되찾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천란을 열쇠라고 칭했다면 어딘가 선악을 뒤바꿀 문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 문이 어디에 있는지도 아시오?”

“거기까진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록에 삼신이 천란을 두고 싸웠다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천란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만은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이로써 어느 정도 천란의 비밀이 밝혀졌다.

“고맙소.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소.”

“별말씀을요.”

“난 이곳에 잠시 있다가 가겠소.”

“언제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혼자 서재에 남아서 삼신불망기를 차분히 읽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그들의 싸움에 대해서였다.

악신에서 삼신으로 분열된 후, 당시 가장 강했던 마신이 천란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후 천란을 빼앗기 위해 혈신과 암흑신이 손을 잡고 합공을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싸움의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되었고, 천란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이런 신화나 역사의 기록이 그렇듯,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장과 곡해인지 알 수 없었다.

삼신불망기를 다 읽고 나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천마와 친해지면서 마교에 대한 미움보다는 친근함이 생겼던 요즘이었다. 그래서 마신이 태생적으로 악신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거부감이 든 만큼 마신의 시험에 응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상대가 혈신이나 암흑신이 되어 등장한다면?

상대가 신인데 인간인 자신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천소선과 함께 천란이 사라진 상황이었다.

만약 그가 천란이 선악의 기준을 뒤바꿀 열쇠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래서 그 문을 열게 된다면? 이 강호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수천 명 죽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강호라는 거대한 운명과 내 운명이 겹쳐져 있음을 느낀다.

일단 무림맹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신이 되는 시험과 관련해서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니까.

* * *

양사휘가 모는 마차가 질주하고 있었다.

다른 때보다 그의 마음은 급했다. 조금 전 마을 하나를 전멸시켰다.

평소처럼 십여 명만 납치해서 처리하고 있었는데, 천소선이 참지 못하고 마을로 난입해 들어갔다. 미처 말릴 사이도 없었다.

이후 상황은 그야말로 참상이란 말로도 부족했다. 천소선은 치밀어 오르는 혈기를 참지 못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죽이고 피를 흡수했다. 공포에 질려 죽어가는 이들을 보며 그녀는 분명 즐기고 있었다.

이전에도 사람의 피를 흡수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즐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죽여 피를 빨아들이면서 그녀는 분명 웃었다.

양사휘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뒤쪽 객실로 연결된 작은 창으로 천란의 모습이 보였다. 피를 흡수한 뒤에는 천란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뭔가 달라졌어.’

혈신을 만난 이후의 변화였다.

이것을 좋게 봐야 할지, 나쁘게 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혈신을 만난 자부심과 뿌듯함으로 분발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그것이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녀의 심정이 무엇인지 알아낼 여유가 없었다. 한 마을이 사라진 사건이었다. 최대한 잘 처리한다고는 했지만 모든 시체를 완벽하게 처리했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이번 일로 무림맹 놈들에게 꼬리를 밟힐 수도 있었다.

채찍질을 가하는 양사휘의 마음이 급해졌다.

* * *

무림맹으로 돌아온 후, 나는 다가오는 큰 싸움을 예감했다.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몰라도 슬슬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곧바로 백표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자네에게 줄 것이 있어서네.”

“무엇입니까?”

그에게 내가 차고 있던 한 쌍의 팔보호구를 주었다. 흔한 문양 하나 없는 그것은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최고급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죽 안에 있었다. 바로 만년한철이 압축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튼튼한 보호구였다.

예전에 천마가 소개해줬던 두정이 만들어 준 바로 그것이었다.

안에 든 것이 만년한철이란 것을 말해주자 백표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귀한 것을!”

하지만 놀랄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비수를 뽑아보게.”

백표가 팔보호구에 꽂혀있던 것을 뽑았다. 아주 얇게 만들어진 비수는 정말 예리했는데, 그 역시 만년한철로 만든 것이었다. 강호에서 가장 강하고 날카로운 비수였다.

꽂혀 있는 비수의 숫자는 여섯, 보호구가 두 개니 모두 열두 개의 비수가 꽂혀 있었다.

그 자체로 팔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기에 팔은 이중으로 보호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귀한 것은 받을 수 없습니다.”

“이젠 내게 필요가 없는 물건이네.”

이제 외부의 기물이 내 강함에 영향을 미칠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내게 있어 그것은 만년한철로 된 보호구가 아니라, 그냥 장신구에 불과했다.

“맹주님!”

“이건 선물이 아니라네. 앞으로 더 고생시키려고 주는 아주 고약한 덫이라네.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받게.”

“아, 맹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백표는 크게 기뻐했다. 이것으로 그는 더 강해질 것이고, 운이 좋다면 언젠가 그의 목숨을 구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 두정이 함께 만들어준 스물여섯 자루의 예비용 비수도 함께 주었다. 백표가 더욱 감동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광두를 불렀다.

그에게 준 것은 한 벌의 권투갑이었다. 역시 두정이 만든 것이었다.

얇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손바닥과 손등이 만년한철로 되어 있었다. 병장기는 물론이고, 검기나 검강까지 맨손으로 막아낼 수 있는 희대의 병기였다.

아주 얇고 정교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손의 움직임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정권의 끝에 날카롭게 붙은 만년한철의 칼날들은 상대방의 호신강기를 찢기 위한 것이었다. 손목에는 남해어옹의 낚싯줄까지 감겨 있는 그야말로 강호에서 가장 완벽한 권투갑이었다.

광두의 감격이야 두말할 것이 없었다. 안 받겠다는 것, 정말 필요 없다는 것을 몇 번이나 확인시킨 후에야 줄 수 있었다.

“맹호단주 맡아서 고생 많다고 주는 거다.”

“어흐흐흑. 맹주님!”

결국 녀석은 감격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끝으로 갈사량을 불렀다.

그에게는 입고 있던 흑룡신갑을 주었다. 흑시에서 거의 천만 냥에 달하는 돈을 주고 산 강호제일의 호신갑.

“맹주님이 착용하십시오.”

“내겐 필요 없는 물건이네.”

앞서 두 사람에게 했던 설명을 반복했고.

“그렇다면 백단주에게 주십시오.”

“이미 그에게 준 것이 있네. 그대가 받아야 백단주도 편하게 받을 것이네.”

“이제 다 늙은 제게 너무 과분한 물건입니다.”

“그렇지 않네. 그대에게는 부양해야 할 사람이 있지 않나? 자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제수씨를 위해 주는 것이라네.”

“맹주님!”

“부디 건강을 잘 챙기게.”

“감사합니다.”

예전의 나라면 필요 없어진 이것들을 무림맹 창고에 던져두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물건으로 사는 것 같아서, 이것을 하사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을 테니까. 누구에게 무엇을 줄까 고민하는 것이 귀찮았을 테고, 서로 받은 것을 비교하며 섭섭해하는 꼴을 보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런 기물을 줄 정도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냥 변명이다. 그냥 진심으로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기에 주지 않았을 뿐이다.

“참, 그리고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뭔가?”

“북쪽 변방 쪽에서 실종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실종 사건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주목할 정도가 아니었는데, 엊그제 보고된 바로는 한 마을 주민 전체가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심상치 않은 일이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내가 직접 가겠네.”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러지.”

돌아서 나가려던 갈사량이 나를 보며 말했다.

“맹주님.”

“왜 그러나?”

“흑룡신갑을 받은 이때, 드리기는 적절치 않은 말씀입니다만…….”

과연 그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는 그가 하려는 말을 짐작했다.

“예전보다 내 상태가 더 나아졌다고?”

그러자 갈사량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예전에도 멋진 분이셨습니다만, 네.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내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대가 솔직히 말하니, 나도 솔직히 말하겠네. 예전의 나는 나만 위해 살았다네.”

“아닙니다, 맹주님. 맹주님만큼 강호를 위하신 분도 없으십니다.”

“강호를 위하는 그 마음도 나를 위한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었지.”

한 번쯤은 갈사량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나는 자기애가 너무 강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네. 천하제일을 꿈꾸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

“그렇지 않습니다, 맹주님!”

당황해하는 갈사량을 보며 내가 미소를 지었다.

“갈군사.”

“네, 맹주님.”

이미 무학으로는 심검을 발휘할 수 있지만, 마음의 수양은 끝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 하는 이 말도 그 노력의 결과이자, 여전한 과정일 것이다.

“이제 나는 자네를 보고 있네.”

갈사량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총명한 사람이니 내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한 것이다.

“다녀와서 술 한잔하세.”

“네, 좋은 술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내가 맹주전 창문을 활짝 열었다.

마신지로를 발휘해서 번쩍하는 순간 나는 맹주전에서 저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까지 날아갔다.

갈사량이 창가로 걸어와서 내 뒷모습이라도 보려했을 때에는 나는 이미 무한을 벗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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