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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77화 (276/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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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되 함께 걷고(1)

맹주의 공식 일과를 마치고 나는 광두를 불렀다.

“광단주. 긴히 할 이야기 있으니 잠시 나오시게. 수하들은 모두 물리고.”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둥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네, 맹주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빠르고 절도 있게 맹호단 무인들이 맹주전 내부에서 모두 물러났다.

그러고 나서야 광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 맹호단주가 되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 맹호단의 무복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무복만큼이나 맹호단의 임무에도 완전히 적응한 그였다. 불과 오 개월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오 년은 근무한 사람처럼 보였다.

맹호단의 수하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광두의 인간관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태성상단을 이끌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까지 배웠으니까.

오늘따라 녀석의 표정이 피곤해보였다. 하긴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고,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니까.

“이리 와라.”

태사의에서 내려와 한옆에 마련된 접대용 자리에 앉았다.

“앉지 않고 뭐해?”

“서 있는 것이 편합니다.”

“출세했다고 변했군. 어찌 사람 마음이 이리 쉽게 변하냐? 그렇게 내가 좋다고 해놓고선.”

그러자 광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의 그였다면 이렇게 소리쳤겠지.

아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저도 다리 아파 죽겠다고요! 하루 종일 서 있었다고요!

하지만 광두는 재빨리 표정을 정리하고 말했다.

“오해십니다, 맹주님.”

하하. 이제 제법 맹호단주 같은 광두다.

“앉기나 해.”

“네.”

“긴장 풀고. 자, 어서 맹호단주에서 광두로 돌아와라.”

“그게 잘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놈아, 맹호단주는 몇 달이고, 광두는 수십 년이다.”

“수십 년까진 아니고요. 삼십 년 좀 넘었네요.”

“그게 그거지. 자, 한잔 받아라.”

“제가 먼저 드리겠습니다.”

“오냐.”

광두가 술을 따라주었다. 내가 광두의 잔을 채웠다. 오랜만의 술이었다. 맹으로 들어와서 갈사량과의 술자리가 뜸했던 것이 순수하게 그의 건강을 염려한 것이라면, 광두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내게 의지하지 않고 그가 홀로 자신의 운명을 헤쳐 나가기를 바랐다. 내 바람대로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마시자.”

“네, 맹주님!”

“둘이 있을 때는 도련님이라고 해.”

잠시 망설이던 광두가 이내 싱긋 웃으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네, 도련님.”

“힘들지?”

“괜찮습니다.”

힘들겠지. 게다가 맹호단주는 다른 단주들과는 달리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맹주를 호위해야 했다.

“미안하다. 내 욕심 때문에 너를 힘들게 하는구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렇게 맹주님과…….”

“도련님!”

“이렇게 도련님과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앞으론 이렇게 안 지켜줘도 된다.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다. 넌 가서 무공수련이나 하고, 네 일이나 해.”

“조직을 위해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루하루의 임무들이 모여 맹호단의 역사가 되고, 그것이 맹호단 후배들에게 내려갈 테니까요.”

“다 컸구나.”

“훗! 나이는 제가 도련님보다 많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지.”

광두의 너스레에 기분 좋게 웃었다.

“도련님은 어떠십니까?”

“뭐가?”

“도련님이야말로 그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시고 정신없이 달려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래보였나?”

“네. 제가 본 도련님의 모습은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혼신을 다하시는 모습뿐이었습니다. 정작 도련님은 행복하다고 느끼고 계신지…… 조금 걱정됩니다.”

“난 행복하다. 더 바라면 욕심이 될 만큼.”

“정말이시죠?”

“아무렴.”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우린 힘차게 건배한 후 술잔을 비웠다.

“이런 시간들이 쉬는 시간이지.”

“저도 좋습니다. 이렇게 도련님과 앉아 있으니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습니다.”

“호위임무는 다른 조직의 일에 비해 장기적인 임무다. 한꺼번에 다 쏟아부으면 안 된다. 천천히 오랫동안 견뎌나가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경직되지 말고 유연하게 일해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일이 경직되면 결국 삶까지 굳어버리기 마련이다. 삶을 떠받치는 것이 일이 되어야 하는데, 삶이 일에 끌려가게 된다. 다시 말해 일하기 위해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경직을 풀어야 한다. 조금씩, 조금씩 풀다보면 일에도, 삶에도 숨구멍이 생기며 부드러워지겠지.

“광두야.”

“네.”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 혼자 다녀올 거다.”

광두가 잠시 나를 응시하다가 대답했다.

“네, 다녀오십시오.”

“걱정 안 하네?”

“누가 누굴 걱정합니까?”

“하하하.”

광두다운 말이다. 그래, 원래 네 모습도 이렇게 잊지 말고 살고.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맹은 제가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고맙다.”

창밖으로 보이는 강호의 밤경치에 취하며 늦게까지 광두와 술을 마셨다.

해가 뜨기 전에 나는 조용히 무림맹을 떠났다.

[어디 가는 거야?]

[강호시찰.]

[시찰?]

[맹주가 되었으니 한번 둘러보는 거지.]

하지만 말과는 달리 나는 한 가지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쉬이이이익.

대성에 이른 마신영풍보로 순식간에 무한을 벗어났다.

* * *

한 달 후. 사천성, 서창(西昌).

소도장(小刀莊)에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소도장주와 그 일가족은 혈도가 제압당한 채 창고 안에 묶여 있었다.

그 앞에 한 털보사내가 정신없이 닭을 먹고 있었다.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손이며 입술이며 기름을 번들거리며 고기를 뜯었다.

“볼썽사나워도 이해해 줘. 빌어먹을 무림맹 새끼들 때문에 사흘이나 제대로 밥을 못 먹었거든. 벽리단인지 뭔지 좆같은 새끼가 맹주가 되고 난 후부터 우릴 잡겠다고 생난리를 떨고 있어서. 협의구현? 지랄 말라고 해!”

사내가 옆에 놓인 술병을 들고 벌컥벌컥 술을 들이켠 후, 다시 고기를 뜯었다.

“나뿐만 아니라 현상수배에 오른 자들이 모두 비슷한 신세라고 하더군. 무림맹 개새끼들! 지들은 뭐가 그리 깨끗해서! 콱 찢어발겨 버릴까보다.”

소도장주와 아내, 그리고 그들의 어린 딸들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소도장주를 비롯한 무인들은 얼굴과 몸을 두들겨 맞은 상태였다.

겉으로는 어디 덜떨어진 산도적처럼 보였지만 털보사내는 굉장한 고수였던 것이다.

배를 채운 털보사내가 기름 묻은 손과 입을 옷에다 슥슥 닦았다.

실컷 배를 채운 사내의 시선이 소도장주를 향했다가 그 옆에 있는 아내와 딸을 향했다.

“안 되오! 제발 그러지 마시오.”

깜짝 놀란 소도장주의 외침에 털보사내가 씩 웃었다.

“걱정 마라. 나 그런 더러운 놈 아니니까.”

“안방에 돈이 있소. 몽땅 다 챙겨서 떠나주시오.”

“가야지. 그런 말 안 해도 갈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고를 나갔다.

소도장주가 내심 안도했다. 적어도 아내와 딸을 겁탈할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가 애써 태연하게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아무 일도 없을 테니 너무 걱정 마라.”

“네, 아버지.”

사람만 무사하면 그깟 재물을 잃는 것은 아깝지 않았다. 제발 이대로 그냥 떠나주기를.

바로 그때 창고 문이 열리며 사내가 다시 들어왔다. 사내가 짚더미를 가져와서 주위에 뿌렸다. 그리고 그 위에 기름을 뿌리기 시작했다.

소도장주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지, 지금 뭐하시려는 거요?”

털보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금방 끝날 테니까.”

“금방 끝나다니?”

소도장주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러지 마시오! 애들이 있소. 이제 겨우 열두 살, 아홉 살 아이들이오.”

“그래. 예쁘게 잘 키웠네.”

사내가 품에서 화섭자를 꺼냈다.

소도장주가 소리쳤다.

“안 돼! 차라리 검으로 우릴 다 죽이시오!”

소도장주는 불에 타죽는 고통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았다. 모두들 공포에 떨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털보사내가 고개를 내저으며 사악하게 말했다.

“그럼 재미가 없잖아?”

“뭐?”

“계속 쫓겨 다녔더니 요즘 너무 예민해. 나도 재미 좀 봐야지?”

“제발! 아이들만이라도 살려주시오! 부탁이오!”

사내가 화섭자에 불을 붙였다.

“이 미친 새끼야! 그냥 칼로 죽이라고! 이 새끼야!”

“흐흐흐, 따뜻하니 좋을 거다.”

“으아아악!”

화섭자를 짚단에 던지려던 바로 그때였다.

픽.

화섭자의 불이 꺼졌다.

털보사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옆에 서 있었는데, 그가 손으로 불을 꺼버린 것이다.

쉬이익.

털보사내가 화섭자를 내던지며 빠르게 주먹을 날렸다.

퍽!

내공이 깃든 주먹이 정통으로 사내의 옆구리에 박혔다.

꽈득.

“으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른 것은 털보사내였다.

털보의 손목이 부러져서 너덜거렸다. 상대가 반격을 하지 않고 맞아주었음에도, 호신강기가 만들어 낸 자연스러운 반탄강기에 손목이 부러진 것이다.

사내가 시끄럽다는 듯, 부러진 손목을 잡고 비명을 질러대던 털보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딱.

털보가 붕 날아가서 바닥을 뒹굴었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이마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아파.”

고통으로 바닥을 뒹굴며 털보가 사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넌 누구냐?”

사내가 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더니 털보에게 던졌다. 그것은 무림맹의 수배전단이었는데, 털보의 용모파기와 수배내용이 적혀 있었다.

“개새끼! 현상금 사냥꾼이냐?”

그러자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 사냥꾼들에게 돈 내주는 사람.”

사내는 바로 벽리단이었다.

* * *

나는 곧바로 소도장주와 그 가족들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죽다 살아난 그들이 내게 인사했다.

내가 그의 두 딸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너희를 지켜주기 위해 대신 죽으려고 하셨다. 그 일만 잊지 않으면 된다.”

“네, 은공.”

겁에 질려 있던 아이들의 눈동자에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이 두려움 대신 차올랐다.

“자, 다들 나가시오. 참, 그리고 미안하지만 이 창고는 다시 지어야겠소.”

내 말뜻을 알아듣고 소도장주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잖아도 낡아서 새로 지으려 했습니다.”

그가 가족들과 갇혀 있던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화섭자를 주워서 다시 불을 붙였다. 그러자 털보가 소스라쳤다.

“뭐, 뭐하려는 거냐?”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날 무림맹에 데려가! 날 데려가면 현상금을 내줄 거다!”

“내 돈 나가는 것이라니까.”

“뭐?”

하긴 놈이 내 농담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치이이이익.

화섭자에 불이 붙자 놈이 소리쳤다.

“제발! 날 그냥 죽여라! 제발! 그냥 검으로 죽여줘.”

“싫다. 나도 요즘 예민해서.”

화르르르륵.

놈의 몸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사내가 미친 듯이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놈이 고통스럽게 타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장원을 나섰을 때, 천마가 말했다.

[저놈까지 열여섯 명째다.]

무림맹을 나선 후 열여섯 명의 악인들을 처단한 것이다. 워낙 빨리 움직였으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무림맹에 현상금 걸린 놈들을 잡아 죽였다.

[다들 왜 이리 쓰레기 같지?]

[그야 쓰레기들이니까.]

[혹시 내가 죽였던 놈들 중에 마음에 들었던 놈 있었어?]

[무슨 헛소리냐?]

[아냐. 그냥 해본 소리다.]

[한데 무림맹주가 왜 이 난리냐? 고상하지 못하게.]

[좋은 일도 하고 무림맹 예산도 아끼고. 좋잖아?]

[이런 미친!]

사실 나는 천마의 몸이 될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어차피 영혼은 천마가 들어갈 테니, 몸만 괜찮은 놈이면 된다.

하지만 무공이 높은 놈은 대부분 나이가 너무 많았다. 생김새가 괜찮은 놈은 무공도 몸도 너무 약했다. 그럭저럭 괜찮은 놈이 있었지만 정말 나를 열 받게 해서 그 자리서 죽여 버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젊고 잘생기고 무공도 강한 악당 놈은 정말 귀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몸을 구하는 일은 훨씬 어려웠다.

좀 더 미뤄둘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나서면서까지 서두르는 이유는 이 일만큼은 내 의지대로 처리하고 싶어서다.

운명이 떠밀어서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엎어지기 전에, 내 의지로 천마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서다.

[너, 대체 무슨 속셈이냐? 이상해, 요즘!]

[충분히 바람도 쐬었으니 이만 돌아갈까?]

나는 마신부운으로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올라서 호북을 향해 날아갔다.

마음속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 천마의 몸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기도 했다.

마철군.

그는 무림맹을 혼란에 빠뜨리고 천왕군과 손잡고 강호인들을 끌어들여 암흑천병기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암흑천병기가 된 이들은 모두 죽었으니, 이것만 해도 마철군은 죽을죄를 지은 것이다.

아직 젊었으며 강한 무공을 지녔던 육체다. 게다가 잘생겼다.

그럼에도 내가 망설이는 이유는 너무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천도문의 후계자인 데다가 전대 맹주였으니까.

과연 그를 선택해도 될까?

이제 비로소 천마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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