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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76화 (27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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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탄생, 밤의 죽음(4)

갈사량과 반서정의 혼례가 치러졌다.

갈사량은 끝까지 망설이고 갈등했지만, 나와 백표는 계속 설득했다. 결정적으로 갈사량이 결심한 것은 반서정 때문이었다.

한번 마음을 세운 그녀는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갈군사님이 거절하신다면 전 평생 혼자 살 거예요.”

“다른 좋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닐 수도 있겠죠. 사람은 항상 그때그때의 행복을 찾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나는 반회주에 비해 나이가 너무 많소.”

“그때 말씀하셨죠.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그건 다른 의미에서 했던 말이지요.”

“갈군사님의 마음은 누구보다 젊잖아요?”

“후회하실 수도 있소.”

“후회하게 되면 후회할게요. 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이라 생각지 않아요. 그건 오만이잖아요? 모두들 후회하며 산다고 생각해요.”

“반회주!”

“우린 지금 손가락을 꼽으며 나이를 셀 때도, 오지도 않은 미래의 불행을 미리 걱정할 때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예요. 우리 감정을 지켜낼 지금 이 순간의 용기죠.”

그 마지막 말에 갈사량이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갈사량이 내게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냈다고. 천마를 상대하며 작전을 짤 때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다고.

혼례는 아주 간소하게 치러졌다. 갈사량의 마음을 짐작한 반서정이 먼저 나서서 간소하게 치르자고 했던 것이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만 불렀다. 정식으로 초대했다면 수천 명이 모였겠지만, 이날의 하객은 채 이십 명이 되지 않았다.

천망회와 관련한 몇몇 귀빈들과 무림맹에서는 단주급의 인사들만 불렀다.

혼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의 혼례는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만큼 어울리는 이들도 없었다. 오랫동안 같은 분야의 일을 해왔던 두 사람이었으니까.

함께 혼례식을 지켜보던 송화린이 내게 말했다.

“두 분 참 행복해 보인다.”

“그러네.”

“정말 잘됐어.”

나는 정말 두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확실히 알았다.

행복해지려면 용감해져야 한다는 것을.

* * *

“또 술이군요.”

뒤에서 들려온 여인의 말소리에도 암흑대상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남아 있던 술을 마저 비우고 다시 술을 따랐다.

“마실래?”

“전 상황이 어렵다고 술에 의지하지 않아요.”

자신을 꼬집는 한마디 말에 암흑대상이 피식 웃으며 술을 비웠다.

여인이 암흑대상의 앞까지 걸어왔다.

“대법 연구에 진척이 있었어요. 이대로라면 천왕군보다 더 강한 놈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여인의 말에 암흑대상이 말했다.

“소용없어. 아무리 발악해봤자 놈을 못 이길 테니까. 우리가 두 배 더 강해지면 놈은 열 배 더 강해질 테니까.”

“당신은 여전히 패배주의에 젖어 있군요.”

“내가 패배주의자이든 아니든 이미 진 싸움이란 것은 변하지 않겠지. 그냥 조용히 지내면서 후대를 기약해.”

여인의 기도가 싸늘해졌다. 암흑대상이 아차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는데, 여인은 언제나 그 일을 아쉬워했다. 방금 전 후대란 말이 그녀를 자극한 것이다.

암흑대상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하늘이 내린 놈이다. 우리가 이길 수 없다.”

“그래요, 하늘은 언제나 저들 편이었죠.”

“당신이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놈을 영원히 이길 수 없다.”

“그런 생각이라니요?”

“난 하늘이 누구의 편을 든 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만약 하늘이 저들의 편이었다면, 당신이나 나나 지금까지 살아 있지 못했겠지. 우리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악인들이 수도 없이 설쳐대잖아? 우린 선악의 싸움에 진 것이 아니라, 그저 약해서 진 거야. 지금 어디선가는 더 강한 악이 선을 짓밟고 있겠지.”

여인이 화난 표정을 지었지만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그래봤자 당신이 믿는 것이 돈이잖아요?”

“그래. 선과 악이니 빛과 어둠이니, 그런 고리타분한 이분법적인 싸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돈이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돈이란 신념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거야.”

“흥! 놈에게 돈까지 빼앗겨 버렸으니, 그렇잖아도 강한 놈이 더욱 강해졌겠군요.”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래서 포기하란 말이지. 이대로 숨죽이고 힘을 키워 가다보면, 언젠가 흑지에서도 세상을 차지할 만한 인재가 나오겠지. 물론 벽리단이 늙어 죽은 다음에 말이지.”

“미안하지만 전 포기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하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점을 생각해 봐야지.”

“뭐죠?”

“왜 하늘이 놈에게 이렇게까지 힘을 실어주는 것일까?”

여인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암흑대상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강호 역사상 저런 대단한 인물이 탄생할 때는 그에 반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 대부분은 강호를 멸망시킬 대단한 악인이었지. 그게 당신일까? 나일까?”

질문을 던지고 있었지만 이미 자조적인 어조에는 자신들은 아니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대답 대신 여인이 물었다.

“그래서 당신 생각은 뭐죠?”

돈만 밝히는 남자지만 누구보다 총명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그와 혼인하게 된 계기도 그러했고.

“지난 몇 달간 여기서 술을 마시며 생각해봤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리고 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른 것일까?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놈이 탄생한 것일까? 대체 무엇을 막기 위해서?”

“당신이 내린 답은 뭐죠?”

빈 술잔을 채우며 암흑대상이 차분히 대답했다.

“천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여인이 흠칫 놀랐다.

“천란이라고요?”

“뭔지 알지?”

“알아요.”

“아니, 우린 아무것도 몰라.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고작 천왕군의 부친 천보명이 훔친 비급으로 만든 신묘한 기물이란 것뿐이니까. 심지어 지금 천란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

암흑대상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대체 누구의 비급이지? 그렇게 중요하고 대단한 것을 도둑맞았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여인이 떨리는 얼굴로 말했다.

“설마 이 모든 것이 예정된 것이라는 말인가요?”

암흑대상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몰라. 그냥 술 먹다 생각해본 것이니까. 내가 아는 것은 어차피 우린 다 죽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가 술잔을 잡으려고 할 때, 여인이 한발 먼저 술잔을 잡아서 마셨다.

탁.

술잔을 내려놓고 여인이 밖으로 나갔다.

암흑대상이 술을 부으려고 술병을 들었을 때, 술은 비어 있었다. 막잔이었던 것이다.

암흑대상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도 죽기 전에 당신에게 술 한 잔은 줬군.”

* * *

콸콸콸.

사람들은 지금 보이는 광경을 보고 이런 생각들을 할 것이다.

‘사람의 몸에서 이렇게 많은 피가 나와도 되는 것일까?’

‘왜 이렇게 잔혹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일까?’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사방에 시체들이 널려 있었고 그들이 흘린 피가 발목까지 차올랐다.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혹한 상황이었다.

그 한가운데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바로 천소선이었다.

쿵.

심장을 찔려 피를 쏟아내던 사내가 앞으로 쓰러지며 바닥의 피를 더했다.

천소선이 가슴을 활짝 펴며 양손을 좌우로 쭉 뻗었다. 마치 대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려는 그런 자세였다.

그러자 바닥에 고인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수증기처럼 피어올랐다.

솨아아아아아아악.

바닥에서 피어오른 피가 천소선의 온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고여 있던 피가 모두 흡수된 후에는, 그곳에 있던 시체의 몸에서 남은 피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몸 안의 모든 피를 다 빨린 시체들은 목내이(木乃伊)가 된 채 말라비틀어졌다.

모든 피를 다 흡수한 그녀의 눈이 시뻘겋게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양사휘였다.

지난 오 개월 동안 천소선은 혈종비연공이 팔 성에 도달했다. 지난날 혈락여제가 도달했던 바로 그 성취도에 이른 것이다.

막강한 내공과 무공실력, 거기에 음양상변지체라는 조건을 지닌 그녀였기에 가능한 기적 같은 성취였다.

하지만 문제도 발생했다. 속성으로 익힌 부작용으로 천소선이 피를 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며칠에 한두 사람을 죽여서 그 피를 흡수했는데, 이제 한번 흡수하면 수십 명을 죽여야 했다. 피를 흡수하지 못하면 점점 예민해져서 미쳐 날뛰었다.

양사휘는 죽일 자들을 물색해서 납치했고, 나중에 시체처리까지 직접 했다.

‘이렇게 가다간 나중에는 마을 하나를 몰살시켜야 할 때도 오겠군.’

그래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혈종비연공의 대성을 이뤄야 했다.

양사휘가 방 안을 휘저으며 집 안의 목내이들을 모두 짓밟아서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그사이 천소선은 마당의 마차에 걸터앉아서 양사휘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체를 모두 처리하고 양사휘가 나오자, 천소선이 담담히 말했다.

“……피가 더 필요해요.”

이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한 말이 아니었다. 천소선은 정신이 멀쩡한 상태였고, 그래서 이 말은 섬뜩하게 들렸다.

양사휘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래, 더 구해주겠네.”

“고마워요.”

천소선이 마차에 탔다. 안에는 천란이 놓여 있었다.

그녀가 눕자 양사휘가 천란을 닫으며 말했다.

“강호인을 다 몰살시키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대성을 이뤄라.”

천란이 닫혔고, 안에 든 천소선은 잠이 든 것처럼 조용해졌다.

양사휘가 마차를 몰고 그곳을 떠나갔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는 한 줄기 바람이 이젠 누군지조차 알 수 없는 뼛가루를 이리저리 날릴 뿐이었다.

* * *

갈사량은 떠나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나는 기어코 신행을 보냈다. 행선지는 극비였고, 호위는 백표와 흑표대가 맡았다.

그를 좀 쉬게 해줄 필요가 있었고,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신행을 즐길 자격은 충분했다.

오후에 임연정을 찾았을 때, 그녀는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연구소는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굳이 이런 물음이 필요치 않을 정도였다.

-연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녀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처음보다 많은 성과가 있었음을.

-얼마나 걸리겠소?

-대법 자체는 내일이라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혼대법은 워낙 변수가 많은 일이에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괜히 나 때문에 수고가 많소.

-아니에요. 덕분에 제 실력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지요. 자, 이제 말해주세요. 누구의 혼을 누구에게 옮길 것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번 이혼대법이 내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란 것을. 그래서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것이고.

이제 그녀에게 알려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요.

-뭐라고요?

-정확히는 내 몸에 한 사람의 영혼이 함께 들어 있소. 그 영혼을 다른 사람의 몸에 넣을 것이오.

-맙소사!

그녀가 깜짝 놀랐다.

나는 천마를 죽이지 않고 내 몸에서 빼내줄 생각이다.

이미 결심한 내용이고, 그 결과에 대해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천마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결정이었지만, 이제는 그를 얼마나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조차 떠났다. 나는 반드시 그를 꺼내줄 것이다.

-그래서 전음으로만 대화를 했군요.

-맞소. 아직은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요.

만약 천마가 거절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설득할 것이다.

-그럼 그 영혼을 어느 몸에 옮길 생각이세요?

-아직 정하지 못했소.

이혼대법으로 영혼을 이식하면 원래 몸의 영혼은 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해 죽여야 할 몸에다 이식해야 한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옮겨질 몸에 관해 어떤 조건이 있소?

-건강한 몸일수록 좋겠지요. 맹주님 몸에 있는 영혼이 살아 있었을 때 무공이 강했다면 이식할 몸 역시 무공이 강한 육체면 더 좋아요. 육체 간의 능력 차이가 너무 나면 이식된 영혼이 큰 괴리감을 느끼게 되죠.

-무슨 말인지 잘 알겠소. 그럼 잘 부탁드리오.

-네, 걱정 마세요.

임연정의 연구소를 나오는데 천마가 내게 말했다.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이냐?]

[무슨 말이야?]

[왜 자꾸 그녀와 전음으로 대화를 하는 거지? 안 하는 척하면서 전음으로 대화를 하는 것 모를 줄 알고? 너 혹시…….]

잠시 천마와 나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 생각을 눈치챈 것일까?

천마가 의심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바람 피냐?]

[하하.]

[웃음으로 무마하는 것이 수상한데? 이 자식아, 너 그러면 안 돼!]

[하하하하.]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지, 혹은 정말 의심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천마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였다.

천마의 새 몸을 구하는 것.

과연 누구의 몸에 이식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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