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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74화 (27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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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탄생, 밤의 죽음(2)

“정말 이대로 계실 겁니까?”

암흑이상의 재촉에도 암흑대상은 눈을 지그시 감고만 있었다.

“놈이 무림맹주가 되었습니다. 맹주가 되기가 무섭게 나머지 여덟 명의 십상들을 어디론가 끌고 가 버렸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꼴을 당하고 있을 겁니다. 고문을 당하면서 남은 재산을 다 토해내고 있을 거라고요!”

“그렇겠지.”

“호랑이가 날개를 달았으니, 늑대의 도움 따윈 필요치 않다는 뜻입니다.”

“그럴지도.”

암흑대상은 담담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다.

“다 포기하신 겁니까? 그런 겁니까?”

그러자 암흑대상이 감았던 눈을 떴다.

“포기한 것 같으냐?”

“네!”

암흑이상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조절하지 못했다. 이렇게 무기력한 암흑대상의 모습도 처음이었고, 벽리단의 신출귀몰한 행보는 짜증 날 정도로 예측불허였다.

무림맹주라니?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무림맹이라는 막강한 힘을 업었으니, 그를 상대하는 것은 두 배는 더 힘들 것이다. 그 말은 곧 자신의 재산을 되찾는 일도 어려워졌다는 뜻.

마봉기나 마철군과 같은 인간들이 운영하면 별것 아닌 조직이 될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맹주가 서면 마교도 박살 내는 무림맹이다.

암흑대상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래, 나는 많은 것을 포기했지. 자존심도 버렸고, 지하상계와 암흑십상의 수하들도 버렸지. 하나 한 가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다.”

“뭡니까, 그게?”

“내 돈.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황금이란 내 신념.”

암흑대상의 여전한 눈빛에서 암흑이상은 알 수 있었다. 그가 건재하다는 것을. 암흑대상이 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놈은 대상의 남은 절반의 재산마저 빼앗으려 들 겁니다.”

“기꺼이 내줄 생각이다.”

“진심이십니까?”

“그렇다.”

“조금 전에는 돈을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암흑대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암흑이상에게 차분히 말했다.

“다 되찾기 위해 버리는 것이다. 다 내주고 목숨을 부지하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

“어떻게 말입니까?”

“이미 그곳에 도움을 청했다.”

암흑이상은 알 수 있었다. 그곳은 예전에 들었던 마지막 도움을 청할 곳임을.

“어딥니까? 거기가?”

“흑지(黑地)다. 바로 암흑대신을 모시는 곳이지.”

“아! 그곳이 우리의 본류군요.”

“본류가 아니다. 암흑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우리 지하상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다.”

“네?”

“내 개인과 관련이 있는 곳이지.”

“왜 지금까지 도움을 청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암흑대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곳을 이끄는 사람이 바로…… 내 마누라다.”

“맙소사! 흑지의 주인이 대상의 부인이시라고요?”

“그렇다.”

“한데 왜?”

“그년은 미친년이다. 아주 제대로 미친년이지.”

바로 그때였다.

구우웅.

방바닥에서 동그란 그림자가 생기더니 그곳에서 한 사람이 쑥 올라왔다. 마치 그림자가 사람을 만들어내는 그럼 모습이었다.

나온 사람은 검은 궁장을 차려입은 중년미부였는데, 풍겨내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오십 대가 훌쩍 넘는 나이였음에도 보기에는 삼십 대 여인처럼 보였다.

“암흑대신을 부활시키려고 평생을 바치고 있는 나에게 미친년이라? 이거 대단한 평가군요.”

암흑이상은 화들짝 놀랐다. 등장한 여인은 암흑대상의 부인이자 흑지의 주인인 것이다.

그녀를 향한 암흑대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내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왔나? 생각보다 일찍 왔군.”

“고작 이런 꼴 보이려고 나를 떠난 건가요?”

암흑대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으시다? 아무리 말하기 싫어도 이 미친년에게 할 말이 있을 텐데요?”

암흑대상이 힘없이 말했다.

“나를 구해줘.”

여인이 경멸의 눈빛을 보냈고 암흑대상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려버렸다.

암흑이상은 그저 놀란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구우웅.

암흑대상의 발아래에 검은 그림자가 생겨났다.

암흑이상이 소리쳤다.

“나도 구해주시오!”

여인이 암흑대상만 구해가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암흑대상이 여인을 쳐다보자 하나의 선택이 돌아왔다.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예요. 당신이 선택해요. 당신인가요? 아님 저자인가요?”

암흑대상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지.”

여인이 당신이 그럼 그렇지 하면서 비웃었다.

구우웅.

암흑대상과 여인만 함께 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암흑이상이 소리쳤다.

“안 돼! 나도 데려가!”

하지만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사라져버린 후였다.

“이런 더러운 개새끼야! 네가 미친놈이다!”

소리를 들은 흑표대의 무인들이 뛰어 들어왔다.

곧이어 암흑대상이 사라진 것을 알리는 비상종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 * *

그 소식은 곧장 내게 전해졌다.

나와 갈사량이 안가에 도착했다.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

“우리 쪽 피해는?”

“다행히 아무 피해는 없습니다. 침입한 여인이 놈만 데리고 빠져나갔습니다.”

“여인?”

“함께 있던 암흑이상의 진술입니다. 처음에는 입을 열지 않았는데, 거칠게 취조를 하니 다 불었다고 합니다. 구해 간 사람이 암흑대상의 부인이라고 합니다.”

“그를 두고 갔나?”

“네.”

“단단히 열 받았겠군.”

“한 번 입을 열자 모든 상황을 술술 다 불었습니다.”

흑표대들이 철통처럼 지키고 있는 방에서 암흑이상을 만났다.

흑표대 무인들에게 취조를 받고 기가 꺾인 그는 있었던 일을 다시 한 번 내게 말했다.

흑지, 암흑대신을 부활시키려는 자들.

검은 기운을 내뿜는 자들의 정체가 뚜렷하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 수장이 암흑대상의 아내라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흑표대의 새 대주 이범(李帆)이 내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추격대를 보내겠습니다.”

“그러지 말게.”

흑지의 주인답게 상대는 아무 기척도 없이 진법까지 뚫고 들어와서 놈만 데리고 사라질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곧바로 추격했다 하더라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하루 종일 놈만 지키고 있을 수 없었으니, 미리 죽이지 않았다면 어차피 빠져나갈 운명이었던 것이다.

“이자는 어떻게 할까요?”

이범의 질문에 암흑이상이 내게 매달렸다.

“살려주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충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전 이미 배신당한 몸입니다. 저를 거둬주십시오!”

“그럼 증명해 봐라.”

“어떻게 말입니까?”

“나머지 여덟 사람을 설득해서 모든 재산을 다 토해내게 만들면 살려주지.”

암흑십상들에게서 돈을 빼내기 시작했지만, 이미 반을 빼앗긴 자들이었기에 쉽지 않았다. 나머지를 모두 내놓을 바에야 죽음을 택하겠다고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암흑이상이 나선다면 어떤 식으로든 설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해낸다면 너를 받아들일지 고민해 보도록 하지.”

일부러 받아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머리가 좋은 놈이니 쉽게 응하면 오히려 의심할 것이다.

“알겠소.”

체념하듯 고개를 숙였지만 나는 그가 앙심을 품는 것을 느꼈다. 놈은 복수심에 들끓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잃은 그였다.

이놈은 위험하다.

흑표대 무인들이 들어와서 암흑이상을 데리고 나갔다.

그들이 떠난 후, 갈사량에게 말했다.

“놈들에게서 재산을 모두 회수하면 모두 죽이게.”

“암흑이상도 말입니까?”

“그래, 저자도 포함해서 모두 제거하게.”

“알겠습니다.”

대답이 곧장 나왔지만 노파심이 생겨 갈사량에게 물었다.

“혹시 내게 실망했나? 놈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아닙니다. 다만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셨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아, 물론 좋은 쪽으로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쪽인지는 모르겠네. 예전의 나는 징벌의 맹주라 불렸지. 한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진정한 징벌이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네.”

“무슨 뜻입니까?”

“당시의 징벌은 어쩌면 누군가에게 나란 사람을 보여주기 위한 의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세간의 평판에 신경을 썼다네. 일례로 예전이라면 암흑이상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네. 약속을 어기는 나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했을 테니까.”

“감히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는 당시의 맹주님을 이해합니다.”

“고맙네. 어쨌든 이제는 상대와 현실에만 집중하려고 하네. 죽어 마땅한 놈에게는 죽음을 내릴 뿐, 그 과정에서 약속을 지키니 마니 하는 그런 심력소모는 하지 않으려고 하네.”

“무슨 마음이신지 알겠습니다.”

“알아줘서 고맙네. 만약 그 여인이 마음을 먹는다면 암흑이상을 비롯한 다른 이들을 구해갈 수도 있다는 뜻, 그런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일을 마무리 짓게.”

“네.”

갈사량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어차피 벌어진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갈팡질팡 고민할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강한 적을 상대할 때, 상황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리라.

* * *

암흑대상과 여인이 꺼져가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었다.

오랜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여인이었다.

“이제 증명이 되었네요. 돈이 최고가 아님이.”

“돈은 여전히 최고야. 내가 최고가 아니라서 이런 꼴을 당한 것이지.”

“당신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요.”

“난 많이 변했어. 변하지 않은 것은 당신이지.”

“또 내 탓을 하는군요. 언제까지 남 탓만 할 생각이죠?”

“내가 대체 언제 남 탓을 했다고?”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암흑대상이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당신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혀.”

“나는 아닌 것 같아요?”

“왜 나를 구했지? 그곳에서 콱 죽어버리게 놔두지.”

“그러면 왜 구해달라고 소식을 보낸 거죠? 혼자 콱 뒈져버리지.”

“빌어먹을!”

그들은 화난 얼굴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우린 영원히 이 평행선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예요.”

여인의 말에 암흑대상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암흑대상이 마음속에 떠오른 말은 내뱉지 않았다. 이제는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처음에는 좋았었는데.’

* * *

송화린과 사랑을 나눴다.

물론 그 전에 천마에게 잠시 잠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천마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광두와 맹호단 역시 산 아래에 기다리게 하고, 우린 산 정상에서 사랑을 나눴다.

오랜만이서였을까? 우린 열정적으로 서로를 탐닉했다. 탄력 있는 그녀의 몸이 잠들어 있던 내 욕정을 일깨웠다. 대체 그동안 어떻게 참고 있었지란 생각이 들 정도로 격정적인 사랑을 나눴다.

한바탕 격전을 치른 것처럼, 꿈만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우린 나란히 누워서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나 지금 무림맹주와 사랑을 나눈 거네?”

“그렇지.”

“그래서 더 흥분되고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 나 속물인가?”

“하하.”

심각한 표정을 짓는 그녀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안고 있을 때야말로 강호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녀와 함께 조용히 강호를 유람하며 유유자적 살고 싶은 생각.

“이제 바빠지겠다.”

“그렇겠지?”

그녀는 이런저런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그냥 한마디만 했다.

“힘내.”

“고맙다.”

송화린을 꼭 안아주었다.

그녀와는 좋지 못한 첫인상으로 시작했다. 이번 생에서도 사랑 같은 것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녀를 여자로 여기지 않았었는데. 그저 그녀의 청춘을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심지어 비무를 하면서 두들겨 패기까지 했다. 물론 당시에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였지만.

그냥 물처럼 흘러지나갈 수도 있었을 관계였는데, 우린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듯 인생은 예측 불가한 것이다. 그 최전방에 사랑이란 놈이 있다.

무림맹주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벽리단의 몸에서 깨어난 후 운명이란 놈에게 떠밀리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이젠 굳이 부정하지 않을 생각이다. 얼마든지 밀어봐라.

종국에 도달하는 곳은 네가 민 곳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곳이 될 테니까. 운명이 그조차 의도였다며 웃는다면, 뭐 그건 인정해 주마.

그녀가 물었다.

“우리도 나중에 막 싸우게 되는 날이 올까? 그래서 서로를 미워하게 될까?”

“글쎄.”

“어? 아닐 거라고는 안 하네?”

“앞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내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내 시선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떠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도 저 구름처럼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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