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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73화 (27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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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탄생, 밤의 죽음(1)

맹주 자리에 오른 후 나는 파격적이고 전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우선 총군사의 자리에 갈사량을 앉혔다.

그는 무림맹 내부는 물론이고 강호인들에게까지 큰 신뢰를 받고 있었기에, 아무런 잡음이 없었다.

이제 갈사량은 무림맹의 정의각과 내가 만든 삼안각을 동시에 관리하면서 강호 전역의 정보를 마음껏 주무를 것이다.

백표는 천소선에게 단주가 죽은 이후, 공석으로 있던 멸마단주의 자리에 앉혔다.

중원 각지에서 모여든 고수들로 이뤄진 멸마대는 현재 무림맹 내부의 조직들 중 가장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백표가 이끌던 흑표대는 외부에 따로 두었다. 무림맹 내부로 끌어들여 내 직속조직으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세상에 흑표대의 존재가 알려지게 될 것이다.

흑표대는 비밀조직으로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물론 백표가 맹호단주였다는 것을 문제로 삼는 이들이 있었다. 아무리 단주였다 해도 호위무인 출신인데 공격적인 멸마대를 운영하는 것이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려에서 비롯된 반대였다.

하지만 그 문제는 백표가 멸마대를 모아두고 실력발휘를 하는 것으로 한방에 해결되었다.

멸마대에서 가장 고수라 알려진 광서제일검(廣西第一劍)을 단 일곱 수 만에 꺾어버린 것이다.

광두를 맹호단주에, 재당주에 공수찬을 임명했다. 원래라면 이 두 인사에 말들이 많았을 것이다. 한데 백표가 강서제일검을 일곱 수 만에 꺾어버리자, 나의 인사에 신뢰가 더해졌다.

두 사람의 파격적인 인사 역시 그들의 실력이 대단하기 때문에 임명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나는 이후 일은 걱정하지 않았다. 광두와 공수찬의 실력은 넘치고도 남았고 인품 역시 존경받을 만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것이다. 그 누구보다 제대로 뽑았다는 것을.

정의각, 멸마단, 맹호단, 그리고 재당.

무림맹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네 조직이다. 나는 그 조직의 수장들에 내가 가장 믿는 이들을 임명한 것이다.

그렇게 중심을 잡은 후, 이후의 인사는 인정사정 보지 않았다.

예전부터 충성을 다해온 천궁단주 종천락과 집법당주 가경만을 그대로 두고, 나머지 십대 조직의 수장들을 즉각 해임하고 새로운 인물들로 채웠다.

광월단과 철기단, 적룡단과 백호단주를 모조리 갈아치운 것이다.

새로운 수장들은 모두 갈사량이 오랫동안 눈여겨봐 온 사람들이었다. 능력 있고 충성심이 깊은 믿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여러 말들이 나올 것이다. 기존의 무인들과의 마찰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나서서 조율하면 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로 원로원부터 때려잡았다.

내가 직접 방문해서 그들의 기세를 완전히 눌러두었다. 누구보다 원로원 늙은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까.

눈치가 워낙 빠른 그들이었기에 이미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방문한 다음 날 원로원은 새 맹주를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을 강호에 발표했다.

기득 권력층의 눈치 보지 않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키자 모두들 환호했다.

특히 내가 너무 젊어서 그 경험부족이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걱정했던 이들이 모두 안도했다.

내가 죽은 이후 무림맹은 온갖 부패와 무능으로 강호인들의 원성을 샀는데, 이번에 새로이 단호하고 호쾌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무엇보다 내 무공에 대한 믿음이 컸다.

* * *

장원 마당에 눈이 많이 쌓였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으며 양사휘가 후원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가 창문으로 안을 쳐다보았다.

석상이 즐비한 그곳 중앙에 천소선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배우는 무공은 혈락여제의 혈종비연공이었다. 극양과 극음을 오가야만 대성을 이룰 수 있는 무공이지만, 그 기본은 극음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천소선은 본격적인 무공수련을 시작한 이후, 거의 대부분을 여인의 모습으로 생활했다.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전에 그녀가 보였던 기도와는 전혀 달랐다. 새로운 무공을 익히고 있었지만 그 성취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천소선 역시 거의 천하제일에 육박하는 무공실력을 지녔기에,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았던 것이다.

한차례 운기조식을 마쳤을 때, 밖에서 지켜보던 양사휘가 안으로 들어왔다.

“수련은 어떤가?”

“잘되고 있어요.”

여인이 되었을 때는 자연스럽게 여인의 말투를 사용했다. 본격적으로 무공수련에 들어가자, 천소선은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직 무공에 도움이 되는 생각만 했다. 그래야만 하루라도 빨리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한 가지 전해줄 소식이 있네.”

“뭐죠?”

“천하진이 무림맹주가 되었네.”

그 말에 천소선이 깜짝 놀랐다.

“자신이 천하진임을 밝혔나요?”

“아니.”

“그런데 어떻게? 벽리단은 새파랗게 젊잖아요?”

“강호란 곳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 곳이지 않나?”

“하긴. 놈이라면 충분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도 남겠죠. 이해할 수 없는 일 아니에요.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런가?”

“왜요? 당신은 정말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네. 우리가 이 눈 덮인 북쪽 지역에 숨어 지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놈은 정말 굉장한 놈이지. 미친놈! 다시 무림맹주가 되다니.”

“한데 왜 그런 식으로 말했죠?”

“자네가 겁을 먹을까봐.”

그러자 천소선이 피식 웃었다.

“전 그런 일로 겁먹지 않아요.”

“자넨 겁먹지 않겠지만 무의식이 기억하겠지. 놈이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자네가 위축될까봐 걱정되어서네.”

심각한 양사휘에 비해 천소선은 무덤덤했다.

“오히려 기억해야죠. 놈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공포심 위에 또 공포를 덮어 나중에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로 만들어야죠.”

뜻밖의 말이 와 닿았기에 양사휘는 순순히 인정했다.

“내가 자넬 과소평가했군. 미안하네.”

“놈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하나예요.”

“그게 뭔가?”

천소선이 다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내가 그보다 더 무서워지는 것이죠.”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지켜보고 있던 양사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천소선이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무공실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천소선은 본격적인 수련을 하면서 몰랐던 본성을 되찾고 있었다. 마치 물 만난 고기 같았다.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물에서 자신에게 아가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은.

그것은 단순한 악심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깊고 어두운 어떤 힘, 어쩌면 극양과 극음의 체질을 요구하는 혈종비연공과 천소선의 음양상변지체의 만남이 만들어 낸 운명의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중요 무력조직은 내가 직접 나서서 챙겼다.

기본적으로 명령체계가 잘 서 있는 정예조직이지만, 그 하나하나의 본질은 아주 거친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 거친 속성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충성심의 성격이 정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오늘 찾은 사람은 새 광월단주 주승탁(周承卓)이었다. 전형적인 무골인 그는 인품이 곧고 무림맹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다.

하나 실력에 비해 정치력이 약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대주에 머무르던 인물이었다.

일반 군사로 절치부심할 때 갈사량이 눈여겨보았던 인물 중 하나였다.

나와는 전생에도 인연이 없었던 인물이라, 그나 나나 서로 생소한 관계였다.

어색한 인사가 끝나고 내가 광월단 일에 대해 물었다.

“일은 어떻소?”

“아직 이런 큰 조직을 이끌어 본 적이 없어서 불안합니다.”

그는 솔직했다. 아마 이런 솔직함이 갈사량이 이 사람을 선택한 이유기도 할 것이다.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오.”

“왜 제게 이런 중책을 맡기신 겁니까?”

그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갈사량답다. 이 사람과 따로 이야기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스로의 능력이 의심된다면 왜 맡으셨소?”

“네? 그건…….”

생각지 못한 내 물음에 그가 당황했다. 물론 그를 몰아붙이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니었다.

“아마 주단주가 받아들인 이유는 광월단을 이끌 자신이 있어서였을 거요.”

잠시 나를 응시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자신이 있었습니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정도면 왜 그대를 뽑았느냐는 물음에 대답은 충분할 것 같고. 그대의 이 자신감을 알아본 사람은 내가 아니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주단주에 관해 잘 모르오.”

“하면 어떻게 제가?”

“갈군사가 그대를 적극 추천했소.”

“아, 그랬었군요.”

갈사량에게 공을 돌렸다. 동시에 나는 솔직한 사람이란 인상과 수하를 위하는 마음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줬다. 조직을 다스리고 이끌려면 이런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광월단은 대대로 무림맹 제일의 무력조직이었소. 그 명성을 지켜내는 것은 주단주에게 달렸소. 힘들겠지만 앞으로 애써주시오.”

“혼신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모든 조직들의 수장을 직접 만나서 그들을 격려하고 다독였다.

내가 무림맹주가 된 이유는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들에게 잘해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무림맹을 강하게 만들어서 적들과 싸우기 위해서다.

광월단주 이외에도 철기단주, 적룡단주와 백호단주까지 모두 만났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을 격려했고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압박했다.

무림맹을 정비하면서 매일 무공수련을 빠뜨리지 않았다.

맹주 일만큼이나 내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했다. 뭔가 강력한 깨달음을 얻어서 단번에 대성을 이룰 생각은 버렸다. 그냥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물통을 채워갔다.

* * *

내가 맹주가 되었다는 소식에 부모님과 송우경은 정말 크게 기뻐했다. 미리 말씀드린 덕분에, 충격보다는 기쁨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어머니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 맹주님, 정말 장하십니다.”

“하하하. 그러지 마십시오, 어머니.”

“정말 네가 자랑스럽다.”

말씀은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다고 하셨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없었다. 섬에 머물러야 했으니까.

“우린 당분간 섬에 있도록 하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송우경은 섬의 안가에 머무르기로 했다.

천소선을 아직 잡지 못한 상태였기에 산동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많이 답답하실 텐데 맹으로 함께 가셔도 됩니다.”

“강호의 공무를 보는 곳에 우리가 들어가면 안 되지.”

아버지는 한마디로 거절하셨다.

답답하고 비밀스러운 섬과 안가 생활에 많이 지쳤을 텐데, 세 분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진심으로 나를 자랑스러워했고, 동시에 걱정하셨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부디 조심해라.”

“네, 어머니.”

나를 업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어머니를 보자 나도 기뻤다.

돌아오기 전에 임연정을 따로 만났다.

그녀와 둘만 있는 자리였지만 나는 전음을 보냈다.

-부탁이 하나 있소.

-우리 둘만 있는데 왜 전음을 보내죠?

지금 우리 둘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 다른 사람에게는 이 대화를 알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혹시 이혼대법을 진행할 수 있겠소?

-이혼대법을요?

-그렇소.

-누구의 몸에서요?

-그건 나중에 말해주겠소. 한 사람의 몸에서 영혼을 빼내서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하는 것이오.

-음.

잠시 숙고하던 임연정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아시다시피 전 이혼대법을 진행해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 혼자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연구하고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요.

-시간은 충분히 드리겠소. 그 외 필요한 모든 지원도 다하겠소.

-그렇다면 해볼게요.

-이 내용은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주시오. 앞으로 이 내용과 관련해서는 전음으로만 이야기합시다.

-알겠어요.

임연정이 나를 돕기 위해 섬을 나왔다.

아들은 우리 부모님께 맡겼다. 두 분이야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또한 백표의 부인과 아들까지 함께 있었으니 걱정할 일은 없었다.

백련이 그녀를 돕기 위해 함께 섬을 나왔다.

나는 무림맹 내부에 내 직속기관으로 하나의 조직을 만들었다.

공식적으로 마공과 사공에 대비하는 기관이었고, 내부적으로는 진법과 대법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그곳 책임자로 임연정을 앉혔다.

그녀를 호위하고 보호하는 책임무인으로 백련을 임명했다.

그 아래로 십여 명의 연구원들을 뽑았다.

“이제 무림맹의 진법과 대법은 임부인에게 달려 있소.”

“최선을 다하겠어요. 이렇게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오. 여기까지 오는 데 두 분의 도움이 컸소. 고마워할 사람은 나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임연정과 백련이 무림맹 소속의 무인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변하고 있었다.

백련이 기뻐하며 따로 내게 고마움을 전했다.

“제가 이렇게 평범한 무인이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무림맹 무인이 된다는 것은 곧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평범한 행복까지 차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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