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271화 (27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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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주 벽리단(4)

강호에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객잔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네들, 그 소문 들었나?”

“들었네. 그간 천왕군이란 자가 무림맹을 차지하고 있었다면서? 무림맹에서는 그 사실을 외부에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었고?”

물론 이 소문은 갈사량이 퍼뜨린 것이었다. 무림맹 내부에서만 돌던 소문을 강호 전역에 퍼뜨린 것이다.

벽리단 무림맹주 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갈사량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강호의 여론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이쪽은 실력과 돈, 조직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이십 대 나이의 벽리단이 무림맹주 자리에 앉았을 때의 위화감과 반발이었다. 젊기 때문에 일을 그르칠 것이라는 불안감을 최소화하는 것, 거기에 이번 계획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문을 퍼뜨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삼안각이라는 잘 조직된 정보조직과 전 중원에 지부를 갖춘 태성상단, 거기에 막강한 자금동원력까지. 소문은 순식간에 중원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미친놈들! 숨길 것이 따로 있지?”

“젠장! 우릴 속였군.”

한 명의 고수에게 농락당한 무림맹의 무기력함에도 화가 났지만, 그 사실을 철저히 속인 것에 더 화가 났다.

“지금 마맹주를 비롯한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단전이 제압당해 내공을 사용할 수 없다는군.”

“망할! 영원히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으면 좋겠군.”

갈사량은 거기에 한 가지 소문을 더했다. 이 소문이 가장 중요했다.

“다행히 젊은 고수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천왕군을 해치웠다고 하는군. 그 청년은 지난날의 천맹주를 연상시켰다고 하네.”

“절세고수의 탄생이로군.”

“강호가 위기에 빠지면 반드시 영웅이 탄생하는 법이지.”

“그 고수가 새 맹주가 되면 좋겠군.”

“아직 새파랗게 젊은 고수라던데?”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천하진도 젊은 나이에 맹주가 되어 누구보다 무림맹을 잘 이끌지 않았나?”

“하긴, 그랬지.”

몰락과 탄생을 예견하는 이 뜨거운 소문은 바람을 맞은 불길처럼 전 중원으로 번져나갔다.

* * *

집법당주 가경이 임시 맹주전에 들어섰을 때, 그곳에는 못 보던 인물들이 서 있었다.

‘천도문에서 고수들이 왔다더니 저들인가 보군.’

한눈에 봐도 기도가 날카롭고 대단했는데, 자신과 비교해서 거의 비슷한 실력처럼 보였다. 상황이 상황이니만치 천도문에서도 가려 뽑은 최고수들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가경은 마철군이 그들을 부른 것이 못마땅했다.

무림맹주라면 마땅히 무림맹 무인들을 이용해서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자신의 집안 무인을 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르셨습니까?”

“가당주! 소문 들으셨소?”

“네, 들었습니다.”

모른다고 딱 잡아떼기에는 소문이 너무 파다했다.

“대체 누가 소문을 퍼뜨린 것이오?”

“지금 알아내고 있는 중입니다. 체포한 자들 중에서 말을 퍼뜨린 자가 있는지, 혹은 외부에 또 다른 자가 있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당장 찾아내시오! 그놈 모가지를 잘라서 내 앞으로 가져오시오!”

내공이 없는데도 이 정도 살기를 내뿜는다는 것은 마철군이 소문을 낸 사람을 진정으로 죽이고 싶다는 뜻이리라.

“알겠습니다.”

가경이 고개를 숙인 후 돌아서 나왔다.

등 뒤의 마철군은 알지 못했다.

소문을 낸 사람들을 체포할 때와, 지금 물러나는 가경의 표정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물론 변화의 기점은 갈사량의 방문이었다.

* * *

소문을 낸 범인을 잡기는커녕 또 다른 소문에 휩싸였다.

마철군과 수뇌부의 퇴진을 주장하던 무림맹 무인들이 집법당 무인들에게 체포되었다는 소문이었다.

그것은 군웅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체포당한 이유가 자신들도 객잔이나 주점에서 한 번쯤은 떠들었던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런 말을 했다고 잡혀갔다고 하니, 모두들 공포를 느꼈다. 공포는 분노로 이어졌다.

“이런 썅! 나도 잡아가라고 해! 나도!”

술에 취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이들이 있었다.

모두들 말은 안 했지만 비슷한 심정이었다. 지금까지는 술자리에서 맹주 욕도 하고, 무림맹 욕도 하고 그랬다.

천하진도 욕했고, 마봉기도 욕했다.

한데 이제 그것까지 못하게 하나 싶었고, 그것은 무인들의 근원적인 자존심을 건드렸다.

평생을 정보를 다루며 소문을 수집하던 갈사량이었다. 어떻게 하면 소문이 빨리 퍼지는지, 또 어떤 내용에 강호인들이 분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게다가 무림맹에 천도문 무인들을 끌어들였다더군.”

“정말인가? 그래도 되는 건가?”

“당연히 안 되지. 무림맹이 장난이냐고?”

“젠장! 완전 엉망진창이군.”

“말조심해. 그러다 붙잡혀 간다.”

“망할!”

다들 마철군이 물러나야 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고, 다시 그 분노는 소문에 날개를 달았다.

* * *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중원을 굴러다녔다.

모이는 사람마다 마철군을 욕했고, 쉬쉬하며 조롱했다.

마철군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내가 그를 방문했다.

임시 맹주전으로 걸어서 들어서는 나를 보며 마철군은 잔뜩 긴장했다.

맹주전 내부에 있던 다섯 명의 고수들이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막상 나를 직접 보자, 그들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 천왕군을 죽인 고수란 것을.

“잘 지냈나?”

“덕분에 잘 지냈소. 어떻게 내 제안을 생각해 보셨소?”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다짜고짜 그 이야기부터 꺼내는 건가?”

“아, 아니오. 내가 실수했소.”

“거기다 저 꼬맹이들까지 세워두고.”

“자네들은 어서 물러가게.”

꼬맹이란 말에 다섯 무인 중 하나가 발끈하며 인상을 썼다. 그렇다고 감히 공격을 하거나 욕설을 내뱉지는 못했다.

휭! 퍽!

사내가 그대로 나가떨어져 기절했다. 어떤 수법으로 당했는지 그곳에 있던 누구도 알지 못했다.

“나는 누가 인상 한번 썼다고 죽여 버리는 살인마는 아니다. 한데 내 경고를 무시하는 놈을 용서하는 무른 사람도 아니지.”

놀라고 당황한 남은 네 무인을 향한 경고였다.

마철군이 재빨리 말했다.

“어서 데리고 나가! 난 괜찮으니까 멀리 물러나 있도록!”

“네!”

사내들이 기절한 사내를 데리고 그곳을 나갔다.

“숨소리라도 들리면 다 죽는다!”

내 말에 모두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렇게 과격하게 군것은 비단 마철군의 기를 꺾기 위한 의도만은 아니었다. 아까 그놈들을 이 방에서 멀리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정말 대단하신 무공이시오.”

마철군의 감탄에 내가 한옆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술 있나?”

“물론이오.”

마철군이 태사의에서 벌떡 일어나서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렇잖아도 자신 혼자 태사의에 앉아 있는 것이 못내 마음이 불편했던 그였다.

마철군이 한옆 탁자에 놓여있던 술을 내게 가져왔다.

“잠시 기다리시면 안주가 될 만한 것을 준비해 오라 하겠소.”

“안주는 됐고. 그냥 술이나 한잔하지. 이런 날 한잔 마셔야지.”

“이런 날이라면? 설마?”

“그래, 자네 제안을 받아들일까 하네.”

“정말 내공을 풀어주실 생각이시오?”

마철군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번져 나왔다.

“그렇다네. 그 전에 하나만 묻지.”

“네, 말씀하시오.”

“자넨 정말 내가 무엇을 원하든 들어줄 것인가?”

“물론이오.”

“무림맹의 이익에 반대되는 요구를 해도?”

“예를 든다면?”

“무림맹에 모아둔 돈을 내게 다 달라면?”

“그건 어렵지 않소. 한데 당신쯤 되면 돈은 필요하지 않을 텐데?”

“후후, 자넨 아직 돈에 대해서 잘 모르는군. 돈은 한계가 없는 것이라네.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은 더 모을 자신이 없을 때 던지는 항복선언이지.”

“당신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의외구려.”

“그래서 못 주겠다는 뜻인가?”

“아니오. 남아 있는 무림맹의 자금을 모두 드리겠소.”

“맹주라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될 텐데?”

“괜찮소. 내가 곧 무림맹이오.”

“좋아. 두 번째로 다른 놈들은 모두 물러나게 해.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 단주는 무슨 단주인가? 그놈들까지는 치료해줄 생각은 전혀 없다.”

냉정히 따지면 그 쓸모없는 것에 자신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철군은 짐짓 모른 척했다.

“이해하오.”

“이해는 누구나 하지. 거래를 할 때 필요한 것은 이행이지.”

“좋소. 그들을 모두 쫓아내 버리겠소.”

“두 가지를 지금 즉시 시행하도록. 그럼 나 역시 곧장 이 자리에서 단전을 원래대로 해주지.”

“알겠소.”

마철군이 곧장 수하를 시켜서 재당주에게 돈을 가져오게 했다.

또한 단주들을 모두 해임한다는 명령서를 적어서 수하에게 전하게 했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모두 했소. 자, 이제 봉인을 풀어주시오.”

“아직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네.”

“잠시만 기다리시면 될 거요.”

바로 그때였다.

한쪽 벽에 있는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집법당주 가경이었다.

마철군이 깜짝 놀라 물었다.

“집법당주께서 왜 거기서 나오시오?”

가경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줄줄이 걸어나왔다. 그들은 바로 이번에 천왕군에게 내력이 봉쇄당한 무림맹 중요조직의 수장들이었다. 그들의 굳은 표정들이 말했다. 방금 전 대화를 모두 들었다고.

마철군은 자신이 생각지 못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오?”

그러자 집법당주 가경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모두 조금 전 맹주께서 하신 말씀을 다 들었소.”

임시맹주전은 보완이 철저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내공까지 제압당한 상태였기에 다른 이들이 그 방에 숨어 있었던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앞서 천도문의 다섯 무인들을 이곳에서 멀리 쫓아버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들이라면 저 방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눈치챘을 테니까.

그리고 이들을 이곳에 불러 모은 것은 갈사량의 계획이었다.

집법당주 가경이 맹주에게 말했다.

“재당의 돈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맹의 중요 인사권을 남용한 것은 매우 큰 중죄라고 할 수 있소.”

“중죄?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그딴 말을 하시는 겐가? 내게 그딴 협박이 통할 것이라 여기는가?”

마철군은 강하게 나왔다. 하지만 가경은 물론이고 그곳에 있는 누구도 겁을 먹지 않았다.

이미 마철군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막연히 예견하고 있던 그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을 일말의 고민도 없이 버리는 모습을 보니, 그나마 있던 정과 충성심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마철군은 돌아가는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함을 깨닫고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이 모든 것이 강호를 위한 결정이었소! 무림맹주인 내가 무공을 회복해야 강호의 평화를 지켜나갈 수 있지 않겠소?”

“그렇다고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면서까지 그래선 안 될 일이지요.”

이미 갈사량의 명령을 받은 가경은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보시게! 오해는 그만하시게!”

“마맹주를 맹칙에 의거, 즉각 체포하겠소.”

그곳으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집법당 무인들이 들어왔다.

“이런 미친! 세상에 무림맹 무인들이 무림맹주를 체포하는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그러자 함께 있던 이들 중 누군가 소리쳤다.

“세상에 어떤 무림맹주가 자신의 심복을 이렇게 쉽게 버린단 말이오?”

그 말에 마철군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마철군이 다급하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이분이 이번에 천왕군을 해치운 영웅이시다! 모두 무례를 범하지 말고 물러나라.”

그러자 다가서던 무인들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 틈을 타서 마철군이 다급하게 말했다.

“뭐라 말씀을 좀 해보시오.”

“무슨 말을?”

내가 차가운 기운을 흘렸다. 더는 나와 관련해서 쓸데없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맹을 전혀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군. 고작 이런 주제에 나와 거래를 하려 들다니?”

그 말을 남기고 나는 그곳을 걸어 나왔다.

뒤에서 마철군이 괴성을 질러댔다.

“대협! 멈추시오! 제발 나를 도와주시오. 다 주겠소! 이놈들 목숨도 주고, 무림맹의 모든 돈도 다 주겠소. 천도문의 돈까지 다 주겠소. 그러니 제발 살려주시오!”

나는 못 들은 척 묵묵히 그곳을 나왔다.

잠시 입구에 서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정상에 오르는 일은 어렵고 힘들지만 추락은 한순간이다.

만약 마철군에게 우리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결과는 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항상 겸손하라고 가르치는 분이셨으니.

하지만 그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리라. 그의 아버지는 마봉기였으니까. 결국 핏줄은 속이지 못하고 이렇게 흘러내려가는 것이다.

저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천도문의 무인들이 뭔가 심상찮은 것을 느끼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휭! 휭! 휘잉! 휭!

네 사내가 동시에 몸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이렇게 간단히 마혈을 제압당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쓰러져서 말을 못했고, 놀란 사람은 그들을 제압하려고 달려 나온 집법당의 무인들이었다.

기왕 신위를 보여줬으니 이런 모습도 괜찮겠지.

파악.

마신부운으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점이 된 나는 번쩍하는 순간 그곳에서 사라졌다.

내일이면 나의 이 신위는 멋과 과장이 덧붙여져 온 강호에 소문이 날 것이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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