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267화 (266/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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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세신화(2)

천왕군이 죽었다는 소식에 마철군은 맹주전으로 달려왔다.

맹주전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러자 그곳에 경계를 서고 있던 맹호단의 무인이 와서 보고했다.

“천왕군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에게 당했습니다.”

“대체 누구와 싸웠단 말인가?”

“젊은 사내였는데 누군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사실 벽리단은 예전에 무림맹 정의각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맹호단 무인들이 그를 기억하는 것은 무리였다.

혹여 아는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하늘에서 싸운 데다가 워낙 멀리서 보았기에 벽리단인 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가까이서 봤다 하더라도 닮은 사람이라 여겼을 것이다. 신입군사가 그런 신위를 발휘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정말 확실히 죽었나?”

“네, 저희들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시체는?”

“온몸이 산산조각 나서 수습할 수가 없습니다.”

“……믿을 수가 없군.”

그 무서운 천왕군을 산산조각 낸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마철군은 천왕군에게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에 사로잡혔다.

“으하하하하.”

얼마나 죽이고 싶었던가?

‘그래, 그럼 그렇지.’

하늘은 자신을 무림맹주의 자리까지 올려주었다. 천왕군과 같은 괴물에게 맹주자리를 빼앗길 운명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왔던 여인은? 설마 그녀도 죽은 것은 아니겠지?”

“네, 아닙니다. 사건이 터진 이후 여인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그녀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마철군이 안도했다. 하지만 이내 불안함을 느꼈다. 한동안 그녀를 보지 못했던 것처럼, 또다시 그녀를 보지 못하게 될까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걱정은 또 있었다.

현재 자신을 비롯한 무림맹의 수뇌부들은 단전이 제압당해 있었다. 문제는 단전을 제압한 사람은 바로 천왕군이란 점이었다. 그가 고유의 수법으로 제압했기에 다른 사람은 풀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경우 고유의 방법을 모를 때에는 제압한 사람보다 더 고수가 풀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천왕군보다 더 고수가 존재할까?

아, 물론 한 사람 있었다. 천왕군을 죽인 정체불명의 사내. 과연 그를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가 수하에게 명령했다.

“단주들 모두 들어오라고 해라.”

그때 수하가 말했다.

“어디로 말입니까?

마철군이 아차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폐허가 되어버린 맹주전을 바라보며 그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어디든 모이라고 해!”

* * *

천왕군이 죽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되어도 천소선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천소선은 아무래도 호북을 빠져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갈사량의 보고에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지하 밀실의 미심쩍은 상황으로 볼 때,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현재 무림맹 사정은 어떤가?”

“마철군이 다시 무림맹을 장악하려고 노력 중입니다만, 그리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맹 내부에서 마철군이 맹주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불가항력이라고 해도 무림맹을 빼앗겼던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 과정이 너무나 무기력하고 실망스러웠다. 제대로 항거하기는커녕, 모두들 천왕군에게 찍소리도 못 하고 굴복했다.

“게다가 마철군을 비롯해서 주요 수장들은 내공을 제압당한 상황입니다. 그 사실이 반발을 더욱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무림맹 상황을 잘 주시하시오. 궁지에 몰린 놈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일이오.”

“알겠습니다.”

갈사량이 돌아서 나가려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맹 내부의 여러 이야기들 중에 그런 주장이 있습니다. 천왕군을 죽인 사람을 맹주에 앉혀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말이군.”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갈사량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의 의도를 짐작한 내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벽리단은 아직 이십대네.”

“예전에 맹주를 하셨을 때도 최연소 맹주셨지요.”

“지금은 그보다도 훨씬 젊네.”

“사실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문득 무림맹과 이 강호를 위해서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도 아니고.”

예전에 마철군이 맹주취임식을 할 때, 송화린, 광두와 참석했었다.

그때 송화린이 내게 물었다.

“맹주가 되고 싶은 야망은 없어?”

그때 있다고 대답을 해서 송화린과 광두를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라 적들을 없애기 위해 무림맹의 힘까지 필요하다면, 맹주자리에 앉아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무림맹주 자리를 두고 휘몰아칠 한바탕 폭풍이었다.

* * *

“당신은 겁나지 않소?”

천소선의 물음에 사내가 젓가락질을 멈췄다.

“무슨 말인가?”

“내가 당신을 죽이면 어쩌려고? 밤에 잠도 잘 자더군요. 코까지 골면서.”

사내와 함께 길을 떠난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다. 그들은 계속 북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천소선은 이제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는 동기가 있어야 하지 않나? 자네에겐 나를 죽이고 싶어 할 만한 동기가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나를 잘 지켜줘야지.”

“지켜줘야 하다니?”

“자넨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나?”

“당신이 안 알려줬으니 모르지. 하지만 왔던 길을 돌아가면 그만이지 않소?”

“내가 묻는 것은 그 길이 아니네.”

순간 천소선이 움찔했다. 물리적인 길이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천왕군은 죽었고, 벽리단에 대해서는 사내를 통해 들었다. 사내에게 듣지 않았다면 암흑대신이나 혈신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천소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모르겠소. 어디로 가야 할지.”

사내가 다시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그럼 여전히 나를 죽일 이유는 없는 것이지.”

그로부터 다시 열흘 후, 두 사람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산(雪山)에 도착했다.

“아, 춥다.”

“여긴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 곳이지.”

“난 여기선 죽어도 못 살겠소.”

“살아야 하면 다 살게 된다네.”

“그래도 싫은 것은 싫은 거지.”

마차가 도착한 곳은 한적한 곳에 위치한 산장이었다.

백화장(白花壯).

장원의 이름에 어울리게 하얀 옷을 입은 사내가 나와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덕분에 잘 다녀왔네. 별일 없지?”

“물론입니다.”

뒤에 서 있던 천소선이 깜짝 놀랐다.

“어? 이자는?”

자신들을 맞이하러 나온 사내가 낯이 익었던 것이다.

“저를 기억하시는군요. 오랜만입니다, 공자님.”

“어떻게 네가 이곳에?”

예전에 흰 옷을 입은 시비들이 자신들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숨었을 때,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뒤에 듣자니 암흑대상에게 모두 갔다고 들었다.

천소선이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은 원래 이곳 출신이네.”

“아!”

과연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오가는 시비들이 모두 백의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예전에 자신들이 데리고 있던 이들이었다.

이젠 그들이 자신을 손님으로 대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들이 백의를 맞춰 입고 있었던 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젠장. 난 대체 뭘 보고 살았던 것이지?”

“하하하.”

천소선의 자책에 사내는 웃음을 터뜨렸다.

종복의 안내를 받으며 두 사람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겉으로 봐서 평범한 장원이었는데, 내부는 잘 꾸며져 있었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사내가 상석에 앉았다.

“왜 그런 눈빛으로 보나?”

“그게…….”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왜 아무도 없느냐고?”

“네.”

“여긴 나 혼자네.”

천소선이 사내를 쳐다보았다. 사내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봐온 사내는 외로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일 것이다.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가서 쉬게.”

“피곤하지 않소.”

“내가 피곤해서 그래.”

“알겠소.”

방에서 나온 천소선이 시비를 따라 객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쉬세요.”

“잠깐.”

천소선이 돌아서 나가려는 시비를 불렀다.

“필요한 것이라도 있으신가요?”

“술 있나?”

“네. 혹시 드시고 싶은 술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무거나 독한 걸로.”

“네.”

잠시 후 시비가 술을 가져왔다. 술은 훌륭했고 함께 나온 정갈한 요리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맛이 좋았다. 이 하나만 봐도 이곳 장원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천소선이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술을 마셨다.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이 무엇일지 조금은 두려웠다.

* * *

다음 날 천소선은 사내를 따라 장원 후원에 있는 큰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은 하나의 큰 대청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여러 석상들이 즐비했다.

가운데 가장 큰 석상을 보는 순간, 천소선은 그것이 혈신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했다.

혈신상 옆으로 벽을 따라 작은 석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혈신을 숭배하며 따랐던 인물들이었다. 사내와 천소선의 발걸음이 한 석상 앞에 멈춰 섰다.

그 석상은 바로 혈락여제 주희소였다.

과거 매혈상인이 모셨던 석상의 인물이 바로 이 혈락여제였다.

잠시 석상을 바라보던 사내가 이윽고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말을 꺼냈다.

“혈락여제에게 딸이 하나 있었지. 그녀가 바로 내 할머니시다. 혈락여제는 내 증조모가 되는 셈이지.”

놀라운 사실이었다. 사내는 바로 혈락여제의 핏줄이었던 것이다. 비로소 사내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내 이름은 양사휘(梁社輝)다.”

천소선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가 왜 혈신을 강림시키려 했는지. 혈신을 숭배하는 혈락여제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다.

“자네들과 손잡은 암흑대상들 중에서 우리 쪽 사람이 있었지.”

“누구였소?”

“매혈상인. 어차피 신경 쓸 필요 없네. 이미 그녀도 벽리단에게 죽었으니까.”

천소선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나?”

“알면 알수록 벽리단이, 아니 천하진이 두렵소.”

“그래, 그는 무서운 자지. 하지만 매혈상인이 혈락여제의 무공을 제대로 전수받았다면 절대 지지 않았을 것이네.”

“다 전수받지 못했소?”

“그녀는 혈락여제가 키운 제자의 후손이다.”

“혈락여제에게 제자가 있었군요.”

“당연히. 하지만 혈락여제는 딸에게는 모든 무공을 다 전수해줬지만, 제자에게는 모두 다 전수하지 않았다.”

“제자조차 다 믿지 않았군요.”

“그렇지. 자, 이제 자네를 왜 데려왔는지 말해 줄 때가 되었군.”

천소선이 바짝 긴장했다.

양사휘의 입에서 놀랄 만한 말이 흘러나왔다.

“자네에게 혈락여제의 무공을 전수하려 하네.”

천소선이 깜짝 놀랐다.

“혈락여제의 무공은 여인이 사용하는…….”

천소선이 흠칫 말을 멈췄다가 이내 버럭 소리쳤다.

“젠장! 내가 아니라…… 여인인 나에게 전수하겠다는 뜻이군.”

“그녀 역시 자네지. 자네도 인정하지 않나?”

양사휘는 천소선의 마음까지 다 알고 있었다. 천소선이 여인인 자신의 모습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왜 하필 나요? 다른 여인들도 많이 있었을 텐데. 더 재능이 있고, 고분고분 말을 들을.”

양사휘가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혈락여제는 당시 마교에게 도전을 할 정도로 대단한 무공을 지녔지만 그녀의 무공은 완성된 것이 아니었네.”

“완성되지 않은 무공인데도 그 정도였단 말이오?”

“그렇다네. 그녀가 익힌 혈종비연공의 대성하려면 극양과 극음을 오가는 내력운용을 해내야 한다네. 그 일은 아무리 무공의 천재였던 혈락여제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지. 결국 그녀가 도달한 경지는 혈종비연공의 팔 성이었다네.”

팔 성에 불과했는데도 그런 신위를 발휘했다는 것은 혈종비연공이란 무공 자체가 그만큼 대단한 무공이란 뜻을 의미했다.

“하지만 양성을 모두 지닌 자네의 음양상변지체(陰陽相變之體)라면, 능히 혈종비연공을 대성할 수 있을 것이네. 그야말로 자네는 혈종비연공을 위해 태어난 몸이지. 자네가 천형이라 여겼던 그것은 혈종비연공을 익히는 데에는 축복이라네.”

천소선의 마음이 격동했다. 이런 이유로 자신을 데려온 것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양사휘가 말했다.

“자네가 혈종비연공을 대성한다면 암흑대신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물론이고 벽리단까지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네.”

잠시 사이를 두고 천소선이 차가운 눈빛을 발했다.

“내가 당신까지 쓸어버리려 한다면?”

무서운 가정에 양사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 걱정은 내가 해야 할 걱정이니, 내게 맡겨두게.”

아직 의문은 남아 있었다. 천란과 관련해서도, 그 암흑대신을 추종하는 무리들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천소선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것이다.

있는 무공을 뺏어가도 빼앗길 판국인데, 반대로 천하제일의 무공을 준다는데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격류에 휘말린 상태다. 이 운명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거다.

천소선이 손을 내밀었다.

“좋소, 해봅시다.”

양사휘가 그 손을 굳게 맞잡았다.

“자넨 드디어 길을 찾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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