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265화 (26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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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난투(4)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천왕군의 입가에서 비웃음이 사라졌다.

“그래, 오늘 넌 내 손에 죽는다.”

천왕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내가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다.

“어디 한번 죽여 봐라.”

“따라와.”

내가 아래로 몸을 던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두 손을 양 허벅지에 붙인 채 빠른 속도로 아래로 내려갔다. 땅보다 하늘에서의 움직임이 더 자유로운 요즘이다.

천왕군이 나를 뒤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이미 일각이 지났으니 천소선은 임무를 완수했을 것이다.

내가 내려가는 이유는 마검혈우를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하늘 위에서 사용해도 검기의 비는 땅까지 내려간다. 아래에 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 죽게 되는 것이다.

놈을 죽이기 위해 꼭 마검혈우를 사용해야 하는가?

대안으로 마신결의 어검술인 광속비검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광속비검으로 그가 죽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앞서 어깨를 베었을 때 확인한 놈의 재생능력은 어마어마했다. 아마 목을 잘라내지 않으면 놈은 죽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서 싸우느라 상당한 내력을 소모한 지금, 쓸데없이 내공소모 하지 말고 단번에 없애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내가 바닥에 내려섰다. 곧이어 천왕군이 나를 따라 바닥에 내려섰다.

쿠웅! 쩌어어어억!

사뿐하게 내려선 나에 비해 놈은 의도적으로 진각을 내리밟으며 소리를 크게 냈다.

맹주전 주위에는 무림맹의 무인들이 가득 모여 있다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맹호단 무인들과 맹의 수비를 맡고 있는 백호단 무인들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자 그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멀리 원을 그리고 포위망을 형성했다.

그들은 천왕군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원의 무인들은 천왕군이 마철군을 제압하고 무림맹을 차지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단주들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천왕군의 무력이 무지막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 멀리 물러나시오!”

그러자 천왕군이 소리쳤다.

“움직이는 놈은 죽는다!”

살기에 찬 명령에 감히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내가 천왕군을 비웃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주객이 전도되었군. 주인은 수하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객은 주인집 사람들을 보호해주려고 하니.”

지금 상황을 정확히 전하려고 일부러 모두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저들이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내전 무인쯤 되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들이었다. 우리의 대화만 들어도 그들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이해했을 것이다.

과연 나를 향한 눈빛은 부드러웠고 천왕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전혀 걱정이 깃들지 않았다.

물론 천왕군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에게 무림맹의 무인들은 사물과 다를 바 없었다.

어쨌든 모두에게 상황은 전달했지만 여전히 상황은 좋지 못했다. 마검혈우의 범위가 워낙 넓어서 이곳에서 사용했다간 그들 모두가 죽게 될 것이다.

“저 위에서는 큰소리 치시던데? 자, 어디 한번 죽여보시지?”

“죽이기 전에 하나만 묻자.”

“뭐지?”

“암흑천병기는 왜 만든 거지?”

생각지 못한 물음이었는지 천왕군이 깜짝 놀랐다.

“암흑천병기의 존재를 어떻게 안 거지?”

“질문이 아니라 대답을 하라고 했다.”

“그렇군. 내부에 쥐새끼가 있었군.”

“마지막으로 묻는다. 왜냐? 그것을 대량생산해서 하려는 일이 무엇이냐?”

“후후, 배신자는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

천왕군은 계속 말을 돌렸다.

“나는 네가 왜 대답을 못 하는지 알고 있지.”

이번에는 내 말에 반응했다.

흠칫한 그의 두 눈을 응시하며 내가 나직이 말했다.

“모르니까.”

“뭐?”

“넌 아무것도 모르니까. 병신처럼 태어나기만 한 거지. 거창한 척, 대단한 척 굴고 있지만 넌 아무것도 아냐. 그저 누군가의 하수인에 불과해. 암흑천병기를 이끌 수장으로 탄생된 것이지.”

천왕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의 동요를 느끼며 나는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아니라면 대답해 봐. 넌 천소선의 조부가 아니야. 그렇다면 대체 넌 누구지?”

천왕군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놈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내가 알려주지. 넌 강호 역사상 최고의 실력을 지닌 살인병기다.”

후아아아아앙!

만난 이후 가장 강력한 검은 기운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천란에서 몸을 일으킨 사람은 사내였다.

천소선은 처음 본 사내였다. 삼십 대인지 사십 대인지 모호한 나이에 아주 호감형의 사내였다. 친근하고 믿음직한 인상을 지닌 그는 놀랍게도 벽리단이 꿈속에서 만났던 바로 그 사내였다.

천소선이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나직이 물었다.

“어떻게 나를 아시오?”

천소선은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맞게 될 줄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 검부터 내려놓지.”

잠시 사내를 노려보던 천소선이 순순히 검을 내려놓았다. 상대는 자신이 상대했던 기존의 암흑천병기가 아니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검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독문무공인 광살풍이 더욱 강력했다. 내려놓지 말라고 해도 검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당신은 누구요?”

“내가 누굴 것 같나?”

“말장난할 시간 없소.”

“내 말이 장난처럼 들리나?”

순간 천소선이 흠칫했다. 사내가 스윽 쳐다보는 그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던 것이다.

천왕군이 주는 공포와는 달랐다. 천왕군이 주는 공포가 강함에서 오는 거친 공포였다면, 사내가 주는 공포는 좀 더 근원적인 것이었다.

천왕군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서 두려웠다. 갑자기 자신을 죽이려 든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내는 달랐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한 자의 공포였다. 그래서 어떤 수작을 부려도 다 막힐 것 같은 그런 완벽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저 서글서글하고 인상 좋은 외모가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했다. 만만하게 보고 건드렸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은 공포심을 주었다.

“천왕군의 사람이오? 당신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난 천왕군의 사람이 아니다.”

“한데 왜 이곳에 있었던 것이오?”

“조금 전에 자네가 다 모가지를 잘라낸 것들은 천왕군의 사람이라 이곳에 있었던가?”

사내를 따라 천소선의 시선이 바닥에 널린 암흑천병기를 향했다.

“저것들은 인간들이 아니오.”

“아니. 저들은 인간들이지. 자네와 천왕군이 이렇게 만든 것이지.”

“나는…… 아니오.”

“그런가?”

천소선은 사내에게 말려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천하제일이라 할 만한 살인무공을 지녔음에도, 게다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이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다니?

기도에서 눌리면서 공격할 기회를 놓쳤다.

한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심상치 않은 사람이 천왕군의 숨겨둔 수족이었다면, 오늘 자신이 저지른 일이 모두 천왕군에게 보고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오. 어서 나갑시다. 조금 있으면 천왕군이 내려올 거요. 그땐 나도, 당신도 모두 죽게 될 거요.”

그러자 사내가 천란에서 나오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해일이 왜 무서운지 아나?”

질문의 의도를 알지 못해 천소선이 당황했다.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서 있자 사내가 스스로 답했다.

“해일이 밀려오면 다 물에 빠져 죽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네. 해일보다 무서운 것은 물과 함께 휩쓸려서 오는 물건들이지. 익사보다 그것에 부딪쳐서 죽는 것이 더 위험하다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자네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네. 지금 자네를 위험에 빠뜨릴 사람은 천왕군이라는 해일이 아니라네.”

천소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한 가지 결과를 떠올렸다.

“당신 말은 설마?”

“그래, 천왕군은 오늘 저 위에서 죽을 거다.”

진지한 사내의 표정을 바라보며 천소선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우린 시간이 많네. 또 다른 자네와 운우지정을 나누고도 남을 시간이 있으니, 그리 서둘지 말게.”

천소선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상대는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자네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사내가 사람 좋게 웃으며 덧붙였다.

“자네의 주인이 될 수도, 혹은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 아니라면…… 자넬 죽인 살인자가 될 수도 있겠지.”

* * *

지켜보던 무인들이 멀찌감치 물러났다.

천왕군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너무 강력해서 그곳에 있다가는 모두 죽게 될 상황이었다.

검은 기운이 극에 달한 천왕군은 넘쳐나는 힘만큼이나 자신감에 넘쳤다.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어디 한번 죽여 봐라!”

이미 답을 찾아낸 나 역시 거침이 없었다.

“그러지.”

스르륵.

수라명왕검이 빠져나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천왕군이 잔뜩 긴장했지만 검 끝은 놈을 향하지 않았다.

사아아아악.

수라명왕검이 바닥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그냥 꼬마아이들이 골목에 선을 긋는 것처럼 가볍게 선을 그었다.

수라명왕검이 우리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우릴 사이에 두고 땅바닥에 둥근 표시를 낸 것이다. 제법 커다란 원이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 원 안에서만 싸우려고.”

“흥! 저 밖에 있는 쓰레기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냐?”

떨어진 곳에서 포위하고 있던 무인들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지금 자신들이 이곳에서 포위망을 펼치고 있는 것은 내키지 않더라도 천왕군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천왕군은 저런 만정이 떨어지는 말이나 내뱉고 있는 것이다.

“어림없다. 내가 네 뜻대로 움직여줄 것이라 생각했느냐? 이 싸움이 벌어지면 저 버러지 같은 것들은 모두 죽게 될 거다.”

“저들은 지금도 너 같은 버러지를 지켜주려고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웃기는군. 놈들은 죽기 싫은 것일 뿐이다.”

지켜보던 무인들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자존심이 얼마나 상할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바였다.

“이 밝은 달빛은 네겐 과분하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주위가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마신결 제육초식 마검혈우가 발출된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 주위만 어두워졌다. 정확히는 수라명왕검이 선을 그은 바로 그 원 안만 어두워진 것이다.

놈과 싸우는 내내 나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마검혈우를 발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찾아낸 방법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마검혈우의 구결을 바꿔야 하는 위험천만한 시도였다.

하지만 해볼 만한 시도였다. 초식의 성격상 이것을 더욱 넓은 곳으로 확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딱 정해진 곳에만 검기를 내리게 하는 것은,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천왕군이 어두워진 주위를 돌아보며 다소 두려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뭐지?”

“지옥이다.”

“뭐?”

“잘 가라!”

쏴아아아아아아!

내 작별인사와 더불어 검기의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원 안만 어두워졌고, 비 역시 정확히 그곳에만 내렸다. 마검혈우의 초식을 축소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파파파파파팍!

비처럼 쏟아지는 검기가 천왕군의 몸에 내리박혔다.

고작 검기냐?

이런 마음을 드러내며 코웃음을 치던 천왕군의 표정이 급변했다.

한 줄기 한 줄기의 위력은 엄청났던 것이다. 게다가 쏟아지는 빗줄기가 아주 거셌다.

몸을 날려 피하려 했다. 하지만 경공을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윽! 윽! 으윽!”

짤막한 비명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구 성의 마검혈우는 그냥 비가 아니라 한바탕 쏟아지는 장대비였다. 거기에 반드시 죽이겠다는 내 의지가 담겨 있었다.

쏴아아아아아아아!

파파파파파파파팍!

천왕군은 몸을 날리지 못했다. 반격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가 원 밖으로 나가려고 걸음을 옮겼다. 굽혀지는 무릎에 검기가 쏟아졌다.

나는 어마어마한 내공이 소모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큰 물통에서 구멍이 나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과 비슷했다.

천왕군의 몸이 찢겨 나갔다가 다시 재생되었다. 그 위를 다시 검기가 찢었고, 또다시 재생되었다.

쏴아아아아아아!

만약 이번 공격의 실패를 생각한다면 내가 달아날 내공은 남겨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확신했다. 놈을 반드시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구 성에 도달한 마신결이라면 반드시 놈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놈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재생력을 발휘했다. 잘린 곳이 다시 재생되었고, 다시 잘렸다.

그래, 얼마든지 재생해봐라.

파파파파파파파파팍!

끝도 없을 것 같은 팽팽함이 천왕군의 비명으로 무너졌다.

“으아아아아아악!”

내 공격이 놈의 재생력을 이겨낸 것이다. 그의 몸이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푸아악! 파악! 서걱! 서거걱! 푹! 푸욱!

“살, 살……려…….”

마지막 말은 하지 못했다.

쏴아아아아아!

마지막 순간까지 검기는 계속 쏟아졌고, 그의 온몸은 산산조각 나며 허물어졌다.

비가 그치고 주위가 밝아졌을 때, 원 안에는 나 혼자 서 있었다.

내 앞으로 천왕군이라 여겨지는 흥건한 핏물이 바닥을 흐르고 있었다.

모두들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그들에게 담담히 말했다.

“맹주며, 윗선들이 아무리 개판을 쳐대도, 그대들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부디 무림맹의 뿌리만큼은 썩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을 의지하고 있는 모든 강호인들을 위해서.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들이 조용히 그곳에서 물러났다. 그들의 표정은 결코 어둡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내가 천왕군이라는 대악을 대체할 또 다른 악이 아니란 것을.

홀로 남은 내가 천소선이 들어간 뻥 뚫린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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