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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62화 (26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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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난투(1)

침상에서 눈을 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침이었다. 꿈속에서 느꼈던 벽리단에 대한 아련하고 애틋한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이제 그의 죽음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었다. 천왕군 외에 또 다른 악인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그는 조용히 있었다. 대체 왜?

또한 사내가 천왕군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 알 수 없었다.

나는 곧장 갈사량에게 이 모든 일을 그대로 전했다.

이번 내용은 더욱 그를 놀라게 했다. 특히 한 가지 사실에 그는 주목했다.

“과연 당시 현현교의 배후에 누군가 있었군요.”

“군사의 예감이 맞았네.”

“죄송합니다. 그때 더 확실히 조사했어야 했는데.”

“아니네. 나는 이 모든 것이 어떤 운명의 고리들로 엮여 있다고 생각하네.”

만약 그때 갈사량이 배후를 조사해서 사내의 존재를 알아냈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었고.

“그리고 한 가지, 그는 벽리단이 선택 받았다고 표현했네. 다시 말해 그들이 천혈악종으로 하려던 대법의 조건에 벽리단이 맞아떨어졌던 것이지.”

“그와 관련한 부분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수고해주시게.”

“참, 그리고 여기 천소선에게 줄 삼천만 냥입니다.”

그가 가져온 혁낭을 내게 주었다.

“추적이 불가능한 돈이니 그에게 줘도 우릴 역추적하지 못할 겁니다.”

“고맙네.”

“한데 만약 그가 지하로 내려갈 방법을 찾아오면 내려가실 겁니까?”

“가야지.”

“함정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천소선 역시 보통 놈이 아닙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이번에는 배신하지 않을 거야.”

배신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천왕군의 신임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것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자 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갈사량이었다.

“걱정 말게. 항시 놈의 배신을 염두에 두고 있겠네. 이제 됐나?”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죄송합니다. 나이가 드니 이렇게 걱정이 느는군요.”

“자넨 아직 젊어. 나이에 밀리지 말게.”

“네!”

이보게, 사량. 젊게 살게.

서로 좋아하는 여인도 있지 않나?

* * *

“빌어먹을! 그 무슨 거지같은 핑계지?”

마철군이 화를 불같이 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우리의 돈줄을 막고 있다니까.”

마령인의 대답이 변명처럼 들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요즘 같은 때 감히 누가 천도문에 대적할 수 있다고?”

“오히려 요즘 같은 때라서 대적하는 것 아닐까?”

“뭐라고?”

“천도문 출신의 무림맹주는 병신처럼 당하고만 있고…….”

마철군이 달려들어 마령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말 함부로 하지 말랬지?”

마령인이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바로 이래서야. 이렇게 한심하게 구니까. 우린 지금 무시받아 마땅하다는 말이지.”

마철군이 이를 갈며 무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속에 떠오른 자책감을 감추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래, 이놈 말이 맞다.’

자신은 지금 엉망진창이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강력하니 어떻게 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천소선은 자신의 도피처였다. 그 아름다움으로 푹 빠져서 도망치고 싶었다.

마철군이 멱살을 풀고는 다시 제자리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한심하게 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아니, 더 절박했다. 이 한심한 상황에서 그 유일한 도피처까지 잃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 쓸모없는 몸을 팔아서라도 당장 돈을 구해와!”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증오하는 악인이 내뱉은 말을 자신이 똑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 * *

몽련비술을 펼치자 지금까지와 다른 장소에서 깨어났다. 내 예상대로 벽리단의 꿈이 아니라 이제 내 꿈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한데 깨어난 곳이 뜻밖의 장소였다.

바로 천마와 마지막 싸움을 벌였던 그곳이었다.

[맙소사. 여긴?]

[꿈에서라도 나를 또 죽이고 싶었군.]

[오해하지 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오해를 안 하나?]

[아! 여기도 정말 오랜만이구나.]

[어설프게 말 돌리지 말라고!]

[하하하. 나도 왜 이곳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꿈이 무의식의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추측해보자면, 근래 천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서일 것이다. 그의 생사에 대해 많이 걱정했으니까. 여전히 고민하고 있고.

[저기 나무 옆이다. 내가 죽은 곳이.]

[미안하게 왜 그래?]

[미안할 건 없지. 내가 안 죽었으면 네가 죽은 자리가 되었을 테니까.]

[하긴. 당신이 낫다. 난 태사의에 앉아서 원인도 모르고 죽었으니까.]

[놈의 짓일까?]

[그렇지는 않겠지. 당신도 보았다시피 붉은 기운이 벽리단의 몸을 차지한 직후, 내가 그것을 밀어내며 다시 벽리단을 차지했어. 오히려 놈의 계획을 막은 셈이지.]

[뭔가 복잡하군.]

사실 복잡할 것은 없다.

현재 드러난 적으로 천왕군과 암흑대상이 있다. 암흑대상은 이미 내 수중에 들어와 있는 상태니 제외하고.

그럼 드러난 적은 천왕군 하나.

숨은 적으로는 꿈속의 그 사내놈이 있다.

그리고 나를 벽리단에 넣은 또 다른 어떤 존재는 적인지 아군인지 모호하다.

[어쨌든 또 다른 놈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천왕군을 제거하는 일을 무작정 미룰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 꿈속의 그놈이 어떤 면에선 천왕군보다 더 위험한 놈이다.]

천마는 나와 함께 모든 것을 보았기에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놈의 무공이 강해서가 아니다. 그가 어느 정도의 실력에 어떤 힘을 가졌는지 몰라도, 천왕군의 무공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놈이 풍겨낸 사악함은 천왕군 못지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놈이다.

[지금 내가 천왕군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내가 너를 잘 아니까. 그깟 놈에게 질 리 없지.]

천마의 믿음을 지켜주려면 열심히 수련하는 것이 답이리라.

오랜만의 수련이었다. 벽리단의 꿈인 것을 인식한 후에는 수련을 못 했으니까.

추혼수라검술이나 선학비술은 가볍게 한 번 정도 펼치는 것으로 수련을 대신했다.

그리고 반은 마신결의 검술을, 나머지 반은 마신영풍보를 수련했다. 이미 마신결은 구 성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 보법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두 개의 성취를 비슷하게 맞출 필요가 있었다.

한바탕 수련을 마쳤을 때, 과거 대멸겁으로 소멸되었던 이곳이 이번에는 마검혈우로 사라졌다.

[꿈에서는 당신을 못 만나니 그게 좀 아쉽군.]

[보면 되지.]

[어떻게?]

[여기서 천기심환공을 발휘하면 되잖아?]

[꿈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위험해.]

두 개의 상급 마공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어차피…….]

[어차피 뭐?]

내 신경질적인 반문에 천마가 한발 물러났다.

[그래, 위험해 보이는군.]

사실 나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꿈속인데 또 다른 마공을 사용한다고 무슨 큰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 두 개의 마공이 뒤엉켰을 때, 천마가 무사할 수 있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쪼로롱.

꿈에서 깨어나기 직전 천마가 말했다.

[자기애(自己愛)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통찰이 더 중요하겠지.]

그 말을 듣자 죽음을 떠올렸다. 여러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 말이지만, 적어도 지금 천마가 말한 뜻은 이것이었다.

이제 그만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귀천하련다.

천마가 죽음을, 혹은 소멸을 바라고 있음이 확실해졌다.

이봐, 친구. 그러지 마.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 * *

천소선과 숲에서 단둘이 만났다.

“여기 호젓하니 분위기 아주 좋네.”

그녀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나를 유혹했다.

“누가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군.”

내가 은근한 도발에 찬물을 끼얹자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정말 아름답기는 했다. 남자인 줄 알고 있는데도 이렇게 눈길을 잡아끄는 것을 보면. 마철군이 푹 빠져버린 것이 이해가 된다.

내가 그녀에게 가져온 혁낭을 내밀었다.

“여기 삼천만 냥이다.”

천소선이 깜짝 놀랐다.

“정말 삼천만 냥이라고?”

“그래.”

“이렇게 큰돈을 그냥 주는 거야?”

“그냥은 아니지. 천왕군을 죽이기 위한 투자니까.”

“더 줄 수 있나?”

“왜? 돈을 보니까 욕심이 나나?”

“오해 마. 당신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일 뿐이니까.”

“당신이 이런 곳에서 내 돈을 받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질문의 대답으론 충분하겠지.”

그녀가 ‘쳇’ 하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어 혁낭을 잡으려고 할 때, 내가 다시 혁낭을 내 쪽으로 당겼다.

“지하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천소선이 고개를 내저었다.

“해결해야 할 큰 문제가 두 가지나 있어.”

“뭐지?”

“첫째는 지하로 내려가는 기관이야. 정확한 숫자를 입력하는 방식인데, 오직 천왕군만이 알고 있지.”

나는 그것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곳에 숫자를 넣어야 하는 기관장치가 붙어 있었다.

“두 번째 난관은?”

“진짜 문제는 바로 이것이지. 바로 천왕군이 한시도 맹주전을 떠나지 않는다는 점이야.”

“그래도 잠시라도 자리를 뜰 때가 있겠지. 밥을 먹거나 뒷간을 가거나.”

“아니. 뒷간도 맹주전 내부에 새로 만들었고, 밥도 그곳에서 먹는다. 물론 잠도 앉은 채로 자지. 그는 홀로 망부석처럼 맹주전을 지키고 있다.”

나의 뇌리에 박히는 한마디 단어.

“홀로?”

“그래, 그는 혼자야. 맹주전을 지키던 이들은 그가 내뿜는 검은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두 죽었어. 그 일 이후 맹호단 무인들은 아무도 맹주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어.”

“그럼 놈이 맹주전에 혼자 있단 말이지?”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만약 놈이 혼자 있다면?

“그래. 한데 왜 그러지?”

그가 맹주전에 혼자 있다는 말에 한 가지 계획이 떠올랐던 것이다.

내가 천소선에게 물었다.

“천장이 무너지거나 하는 정도로 천란이나 암흑천병기가 부서지진 않겠지?”

“당연하지. 지진 따위에 부서질 리가 있나? 암흑천병기는 물론이고 천란 역시 누군가 직접 파괴해야 해. 검강으로 잘라내야겠지.”

“당신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하겠지?”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지하로 내려가는 기관의 암호를 모르는 데다가 놈이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니까.”

“내가 두 가지 모두를 해결해주지. 대신 지하의 그것들은 네가 처리해야 해. 암흑천병기까진 다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천란은 무조건 파괴해야 해.”

천소선이 깜짝 놀랐다.

“뭐?”

“대신 당신이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을 거야. 대략 일각 내외? 어때? 할 수 있겠나?”

“둘 모두가 해결된다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천소선이 쉽게 확답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천란과 함께 있는 암흑천병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줬을 때가 일곱 기였으니, 지금은 열 기가 넘었을 것이다.

“가능할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내야 해.”

천소선이 잠시 나를 응시했다.

“이 일을 해내면 나는 몇 걸음이나 생(生)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지?”

지난번에 내가 그녀에게 한 말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방법을 찾으라고, 그러면 생으로 한 걸음 걸어가게 될 것이라고.

“적어도 세 걸음은 되겠지.”

“생은 몇 걸음 밖에 있는데?”

“세 걸음 밖에 있을 수도 있고, 백 걸음 떨어져 있을 수도 있겠지.”

“젠장!”

나를 바라보는 천소선의 표정이 복잡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차피 이렇게 된 것, 하겠어. 작전은 언제지?”

“오늘 밤.”

천소선이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빨리 움직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내가 혁낭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 돈 가져가. 만에 하나라도 네가 한 짓이라고 의심할 수 있을 테니까. 이 돈이라면 그 의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거다.”

이렇게 거금을 구해오면서 그런 짓을 저지를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을 테니까.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조용히 있어. 당분간 찾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돌아서는데 그녀가 물었다.

“오늘 밤 언제?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지.”

난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걸어가며 대답했다.

“기다리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당신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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