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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52화 (25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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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제일부자(1)

섬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송화린은 홀로 장원의 마당을 걷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강가를 걷고 싶었지만 진법 밖으로 나가는 것은 절대 금지되어 있었다.

밤하늘의 별이 오늘따라 총총했다.

어디선가 벽리단도 저 별을 보고 있겠지란 생각에 공연히 마음이 설레었다.

남녀관계란 것이 참 이상했다. 잠자리를 하기 전과는 또 다른 뭔가가 있었다. 이러면 왠지 속물처럼 보일까봐 조심스러웠지만…… 솔직히 이전보다 마음이 더 갔다. 한 번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쑥스러움이 뒤따르며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반대편에서 백련이 걸어오다가 그녀를 보고 흠칫 놀랐다.

송화린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밤바람이 참 좋네요.”

“그러네요.”

어색하게 스쳐 지나가려는 그녀를 송화린이 불렀다.

“저기…… 우리 같이 좀 걸을래요?”

백련이 다시 돌아섰다.

“네, 그래요.”

언젠가 한번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없이 어색할 것 같았는데 막상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니 그렇지도 않았다.

공통화제가 있어서였다. 그녀들은 주로 벽리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백련은 자신이 두 사람 사이에 방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애써 벽리단과의 지난 일이 별것 아니라는 듯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벽리단이 지어줬다는 이야기는 뺐다.

만약 송화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혹은 겉과 속이 다른 여자였다면 벽리단을 뺏으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벽리단은 평생을 잊지 못할 사람이었으니까. 그만큼 그녀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니까.

하지만 송화린은 여자인 자신이 봐도 너무나 아름다웠고 똑똑했으며 좋은 사람이었다. 벽리단을 위해서라도 송화린과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저도요.”

건물로 들어가려던 백련이 돌아서며 말했다.

“송소저, 외람되지만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오해하지 않고 들어주세요. 순수한 마음으로 송소저를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니까요.”

“네. 그럴게요.”

“긴장하세요.”

“네?”

생각지 못한 말이었기에 송화린이 깜짝 놀랐다.

“앞으로 벽공자를 좋아할 여자가 많을 거예요. 그리고 그 여자들이 다 저처럼 쉽게 포기하진 않겠지요.”

‘저처럼’이란 말을 할 때,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큰 용기를 내서 해준 말임을 알 수 있었다.

송화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긴장할게요.”

“그럼 쉬세요.”

백련이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송화린이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래, 긴장해야지. 하지만 그 긴장은 다른 여자에게 하는 것이 아니리라.

긴장은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 서로에게 익숙해졌다고 무감각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처음의 그 순간처럼 긴장하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 *

“그래서 정말 재산의 반을 내놓으실 생각이십니까?”

암흑이상의 물음에 암흑대상이 대답했다.

“아니면 우린 다 죽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자넬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구하러 온 것이니까 신경 쓰지 말게.”

차라리 생색내지 않고 이렇게 말해주니까 암흑이상의 마음이 편했다.

아무리 고문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고는 하지만 원래 똑똑하고 냉철한 그였다.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암흑대상의 말처럼 궁극적으로는 스스로를 구하러 온 것일지 모르지만, 분명 그 시발점을 제공한 것은 자신이었다. 미안해야 할 일이다.

“내 재산부터 처분하기 시작했네.”

암흑대상의 말에 암흑이상이 깜짝 놀랐다. 분명 암흑대상의 재산이 자신보다 확실히 많았다. 그 반만 해도 어마어마한 액수일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빼앗긴 구억 냥만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결심이 아니었을 텐데.’

그에 반해 암흑대상은 담담했다.

“처분하기 쉬운 것부터 처분하라고 명령을 내렸네. 흑검이 그 일을 처리하고 있네. 물론 산동에 보냈던 수하들은 모두 불러들였다네.”

“정말 재산을 내놓으실 작정이시군요.”

“다 거머쥔 채 죽는 것보단 반이라도 건져서 사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렇긴 합니다만.”

그 반만 해도 중원의 거부라 불리는 이들의 재산보다 훨씬 더 많았으니까. 당연히 그래야 할 선택이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긴 암흑이상이 이를 갈았다.

“저는 너무 억울해서 잠도 오지 않습니다.”

“자네 심정 아네. 하지만 참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아직 끝나지 않았네.”

“대상!”

암흑이상이 울컥 감격했다. 빈털터리인 자신을 내치지 않고 구해주려는 그였다. 버리려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을 버리진 않았다.

“놈은 정말 영리하네. 내 날개를 다 잘라내면서 왜 흑검을 살려줬는지 아는가? 재산을 처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을 계산해서라네. 그가 없다면 다른 암흑십상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설마 거기까지 생각했겠습니까?”

“왜 재산의 반을 달라고 한 줄 아는가?”

“왜입니까?”

“내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네.”

“희망이라고요?”

“반이라는 말이 가지는 묘한 희망이 있지 않나? 반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그래도 절반이나 남는데? 사람의 의지를 꺾기에 딱 좋은 유혹의 단어지. 놈은 여우라네. 무공만 센 무식한 곰이 결코 아니지.”

“아!”

이미 벽리단을 겪어보았기에 암흑이상은 그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문제는 나머지 십상들입니다. 그들은 절대 재산의 절반을 내놓지 않을 겁니다. 아시잖습니까? 그들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그렇겠지.”

암흑대상의 명령이 절대적이지 않았다. 십상 중에서 투표를 해서 뽑히는 자리였다. 다시 말해 나머지 아홉 명도 언젠가는 강호대상의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강호대상이 재산의 반을 내놓으라고 한다고, 선뜻 내놓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이 시점에서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어떻게든 암흑십상에게서 돈을 받아내느냐? 아니면 암흑십상의 힘을 빌려서 역으로 벽리단을 치느냐.

암흑이상은 알 수 있었다. 암흑대상이 이미 돈을 바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돈을 받아내고, 벽리단과 손을 잡고 천왕군부터 죽일 작정이네. 이놈이라면 천왕군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다음은요? 강력한 경쟁자까지 사라진 벽리단은 어떻게 상대하시려고요?”

그러자 암흑대상이 목소리를 낮췄다.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생각해둔 복안이 있네.”

암흑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흑대상의 복안이라면 분명 한 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은 답이 없는 상태였으니까.

“그가 기한을 얼마나 줬습니까?”

“두 달. 그 안에 절반의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나와 자넬 죽이겠다고 하더군.”

“너무 짧지 않습니까?”

“당장 파산선고부터 풀 생각이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어도, 파산선고를 풀 수는 있었다.

정해진 곳에 연락을 해두면 알 수 있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특정 지역에 특정 깃발을 꽂아둔다든지, 특정 건물을 특정한 색으로 칠해둔다든지 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빨리 파산선고를 풀면 모두가 의심할 겁니다.”

“하겠지. 적당한 핑계를 대어야지. 자네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네.”

“물론 저도 도와야지요.”

“우리가 벽리단에게 당한 것은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되네.”

암흑이상은 알 수 있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암흑대상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우리 둘이라도 살아남으세.’

나머지 여덟을 다 희생시키더라도 다시 채우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암흑이상은 그 나머지가 ‘아홉’이 아니라 ‘여덟’이기를 바랄 뿐이다.

암흑대상이 풀 죽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우린 언제나 그래왔듯 이번 위기도 넘길 것이네. 황금의 힘을 믿게.”

“네.”

암흑이상이 순순히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암흑이상의 마음속에 불쑥 이런 불안함이 떠올랐다.

‘이제 그 황금, 저놈이 더 많지 않습니까?’

* * *

성왕보가 암흑대상과 다시 재회했을 때, 그는 평소와는 다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예전의 공손함이나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미움이나 저주의 감정도 없었다. 담담하고 차분했다.

“자네의 얼굴이 원래 이런 얼굴이었나?”

암흑대상의 말에 성왕보가 대답했다.

“자네는 상대의 본 얼굴을 볼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군.”

예전과는 말투부터 달라졌다.

이제 그들의 총관이 아닌 데다 나이가 더 많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암흑대상에게는 조금 낯선 느낌이었다. 게다가 말의 내용이 지극히 도발적이었으니, 절로 암흑대상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기고만장한 것을 보니 내 몰락에 기분이 좋은가보군.”

“그렇지 않네.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군.”

“왜지?”

“내가 그토록 오르고자 했던 자리가 고작 이런 초라한 자리였나 싶어서.”

순간 암흑대상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벽리단에게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한데 성왕보에게까지 무시당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것이다.

“더러운 배신자 놈에게 들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군.”

이 앙칼진 반응에 성왕보는 알 수 있었다. 암흑대상이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평소였다면 훨씬 여유롭게 반응했을 것이다.

“재산을 감출 생각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네. 내가 꼼꼼히 다 살펴볼 작정이니까.”

“흥! 마음대로 하시지.”

암흑대상이 돌아섰다.

‘저깟 놈 때문에!’

자신이 순간적으로 평정심을 잃었다는 사실에 그는 더욱 화가 났다. 원래라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피 같은 돈을 반이나 빼앗기는 것에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래도 이래선 안 될 일이었다. 그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침착하게 대처해왔으니까.

‘너 이 새끼는 내가 반드시 죽인다.’

그럼에도 끓어오르는 살의만은 끝내 감추지 못했다.

* * *

암흑대상의 재산이 속속 내게 흡수되었다.

사업체 전체가 넘어오기도 했고, 팔아서 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의 재산은 대략 십사억 냥.

개인이 지닌 재산으로는 그야말로 역대급 재산이었다.

물론 이제 그는 그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의 재산 반인 칠억 냥이 내게로 넘어오면서 내가 그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암흑이상에게서 구억 냥, 암흑대상에게 칠억 냥, 공수찬이 운영하며 불렸던 기존의 내 재산이 일억 냥.

모두 더해 이제 내 재산은 십칠억 냥이 되었다.

그야말로 못 할 것이 없었다. 망하고 싶어도 망할 수 없는 돈이었다.

흥청거리고 써도 망할 수 없는 돈을 공수찬이라는 걸출한 인재가 관리했으니, 그야말로 나는 자금의 압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게다가 나머지 여덟 명의 암흑십상에게서 절반의 재산을 얻어낸다면, 그 액수가 얼마가 될지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무림맹보다 훨씬 큰 조직을 지금 당장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나는 그러지 않았다. 겉으로 표가 나는 일을 할 때가 아니었기에, 나는 지금까지처럼 내실을 다지며 조용히 움직였다.

계속되어온 흑표대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은 이제 흑표대를 삼백 명으로 이뤄진 대규모 조직으로 탄생시켰다. 단일 규모의 조직으로 당대 강호에서 가장 강한 조직이 된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더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지급했고, 강호의 어떤 조직보다 많은 월봉을 주었다.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들도록 했다.

백표가 혼신을 다해 키운 정예조직답게 기강 역시 엄격했다.

결정적으로 백표의 실력과 인품이 그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야말로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가 수장이었으니, 흑표대 무인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그 위에 내가 있었다.

이곳에 따라오지 않은 기존의 다른 조직들 역시 다 챙겼다.

삼안각을 비롯한 다른 조직에 대한 지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광두의 태성검대와 관휘의 소검대, 그리고 벽씨검문의 검대와 송가장까지 확실히 챙겼다.

내 탁월한 조직운영과 아낌없는 지원에 다들 기뻐했는데 특히 송우경의 기쁨이 컸다. 예비 사위의 무력이 막강한 것이야 이미 알았지만 재력까지 엄청났으니, 송화린을 끔찍이 생각하는 그의 기쁨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조직들의 내실을 다지며 힘을 키웠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섬서의 한 모처에서 회합이 열렸다.

장원으로 하나둘씩 모여드는 사람들은 지하상계의 암흑십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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