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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50화 (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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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드리울 때(2)

암흑대상이 나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감탄했다.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 보니 정말 놀랍소. 이렇게 젊은 사람에게 우리가 그렇게나 쩔쩔 매고 있었다니?”

“제 능력 때문이 아니라 돕는 사람이 많아서입니다.”

“그것 역시 능력이겠지요.”

암흑대상은 정중했고 나 역시 그에 상응했다.

“자,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고맙소.”

손님을 맞는 일상적인 모습이었지만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나는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무공이 강한 것과 싸움에서 이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상대는 내 무공이 자신보다 훨씬 위에 있는 것을 알고도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왔다. 차라리 수백 명의 고수들을 이끌고 온 것보다 더 위험했다.

백표 역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암흑대상과 함께 온 흑검의 무공이 만만치 않았으니, 절로 긴장이 될 것이다.

천마가 말했다.

[지하상계의 주인이 저놈이란 말이지? 평범해 보이는데?]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숨어있겠지. 당신도 잘 알잖아? 저런 놈들이 더 무섭다는 것.]

[됐고. 그거나 물어봐라. 재산이 얼마인지? 너보다 많은지 궁금하다.]

[그건 너무 채신없어 보이잖아?]

[돈 자랑 하고 싶어서 안달 났을지도 모르지.]

[하하.]

집 안으로 들어온 우린 객청에 마련된 원탁에 둘러앉았다.

“한잔하시겠소?”

내 물음에 암흑대상이 흔쾌히 대답했다.

“좋지요. 대신 술을 잘 마시지 못하니 독하지 않은 것으로 부탁하오.”

백표가 나가서 술을 가져왔다.

내가 암흑대상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있는 술이 이것뿐이라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소.”

“제게는 너무 독하군요.”

암흑대상이 술에 살짝 입술만 댄 후에 내려놓았다.

그는 적이 주는 술을 넙죽넙죽 마실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냥 거절하면 상대를 의심하는 것이 되니, 이렇게 부드럽게 거절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참, 그이는 어디에 있소? 아직 살아 있소?”

“살아 있소.”

“다행히 헛걸음은 하지 않겠군.”

암흑대상은 크게 기뻐하지도, 그렇다고 일부러 관심이 없는 척도 하지 않았다. 적절한 반응, 그는 감정조절을 잘하고 있었다.

“그를 볼 수 있겠소?”

“물론이오.”

백표가 암흑이상을 데려왔다. 그는 고문을 많이 당해서 살도 많이 빠지고 초췌해져 있었다.

“대상!”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잘 지냈나?”

암흑대상의 말에 그제야 암흑이상이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란 것을 깨달았다.

“날 구하러 와주신 거요?”

암흑대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함께 예쁜이들 보러 가야 하지 않겠나?”

놀람은 이내 감동이 되었다.

암흑이상이 털썩 주저앉았다. 암흑대상이 가서 그를 자리로 데려왔다.

“몰골이 말이 아니군.”

암흑대상이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암흑이상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자는 미친놈이오.”

내가 정말 미친놈처럼 싱긋 웃어주었다. 내 반응에 암흑이상이 인상을 굳혔다.

“저 미친놈을 때려잡을 몽둥이를 가져오셨소?”

그러자 암흑대상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보다시피 맨손으로 왔다네.”

“어쩌시려고요? 이제 우린 다 죽었소.”

암흑이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암흑이상의 표정은 이 방에 들어서기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암흑대상이 반드시 자신을 구해줄 것임을 확실히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럴 자신이 없었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테니까.

과연 어떤 패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

“얼마나 빼앗겼나?”

“다 빼앗겼소.”

암흑이상이 솔직히 말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재산이 많이 남았다고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였다.

암흑대상이 자신을 못 구하면 어차피 끝장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얼마나?”

“……구억 냥이오.”

“전 재산이 육억 냥이라고 하더니?”

“예전에 대상께서 가르쳐주지 않으셨소? 무림인들이 실력을 숨기듯, 우린 돈을 숨겨야 한다고.”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군.”

“내 돈 다시 찾아주실 수 있겠소?”

“쉽진 않겠지. 하나 내 노력해 보겠네.”

“꼭 부탁드리겠소. 되찾아주시는 돈의 삼 할을 드리겠소.”

암흑대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에 저런 대화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저들 장사꾼에게는 삶 전체가 거래로만 이뤄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흑이상이 나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흥! 대상께서 오셨으니 이제 너도 끝장이다.”

어린아이가 또래에게 터졌다가 큰형이 왔을 때의 기고만장함이었다.

내가 그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신 대상의 돈도 다 뺏을 거다. 그 재산은 누가 찾아줄까?”

“흥!”

암흑이상이 어림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지만 얼굴에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막지는 못했다.

한편 백표와 흑검은 서로를 의식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정말이지 거의 비슷한 실력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호위를 해왔기에 비슷한 기질을 지녔다.

아마 서로 싸워보고 싶을 것이다. 특히 엊그제 한 단계 무공상승을 이룬 백표는 더욱 손이 근질거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자, 재회의 기쁨은 이쯤하고. 이제 조용히 일 이야기 좀 합시다.”

내 말에 백표가 먼저 암흑이상을 데리고 나갔고, 흑검이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둘만 남자 암흑대상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밝혔다.

“이곳에 오는 데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네.”

“솔직히 놀랐소. 당신이 이렇게 대책 없이 올 줄은 몰랐으니까. 그래서 아직도 의심하고 있소. 혹시 당신이 가짜가 아닐까 하고.”

“나도 내가 가짜였으면 좋겠네. 그럼 난 이 무서운 자리에 없는 것일 테니까.”

내가 피식 웃었다. 그는 가짜가 아니다. 그에게는 가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진짜만의 기운이 있다.

“당신을 고문해서 재산을 뺏을 수도 있소. 아니, 그렇게 할 생각이오.”

“자넨 그러지 않을 것이네. 아니, 못 할 것이네.”

“왜 그렇게 장담하시오? 난 이미 아까 그 사람을 고문했소. 당신이라고 못 할 것 없지.”

“물론 자네가 한계가 없는 사람이란 것 잘 알고 있네.”

“한데?”

“나도 한계가 없는 사람이거든.”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보였던 부드러움과 여유가 사라지자 차갑고 냉정한 분위기가 흘렀다.

암흑이상도 자신의 본얼굴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바로 이 같은 얼굴이었다.

이 얼굴이 이들의 진짜 얼굴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호의 모든 부자들이 다 이런 얼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 지하상계의 수뇌부들은 모두 이런 얼굴들을 지녔으리라. 우연히 이런 열 명이 모인 것이 아니라, 이런 얼굴의 사람들만 남은 것이리라. 차갑고 냉혹한 이들이 아니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사실 내게도 꽤나 강한 이들이 많이 있다네. 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사람들이지.”

“당신을 위해서요? 아니면 당신 돈을 위해서요?”

“무슨 차이가 있나?”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왜 데려오지 않았소?”

잠시 대답을 아끼던 그가 말했다.

“그들을 이곳에서 다 죽이기 아까웠거든. 그들 하나하나가 다 돈이니까.”

“솔직하시군.”

“돈과 관련해서는 그렇지.”

“어쨌든 나를 너무 과대평가해주시는 것 같소.”

“아니. 자네를 직접 보니 정말 제대로 평가했다고 생각하네. 아니, 오히려 과소평가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라네.”

그와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우리의 기세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반드시 이겨야 할 싸움이다.

“자네보다 더 강한 고수를 데려와서 멋지게 밟아버리고 아까 그 사람을 구해가면 정말 좋았겠지만 솔직히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은 없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네.”

암흑대상의 눈빛이 더없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입에서 생각지 못한 지명이 흘러나왔다.

“수하들을 모두 산동으로 보냈다네. 자네의 고향이지. 물론 알고 있네. 자네 일가나 송가장 일가는 그곳을 떠난 상태라는 것.”

그런데 왜 산동을 언급하는 것일까?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그들이 산동 사람들을 모두 죽일 것이네. 적어도 한 사람이 천 명씩은 죽일 것이네. 그냥 무작위로 다 죽이라고 했네. 무공을 익혔든, 익히지 않았든. 내가 죽으면 모르긴 해도 적어도 수만 명은 죽게 될 거네. 독을 쓰든, 진천뢰를 쓰든, 등 뒤에서 찌르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했지. 그들 중에는 자네와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관계된 이들이 있을 것이네. 자네 부모의 친구들도 있을 테고, 아는 얼굴들도 있겠지. 다 죽을 거네.”

내 피가 차갑게 식었다. 상대가 이런 방법을 선택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그런 분노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생각지 못한 역습에 반격을 해야 하니까.

뜻밖에 내가 차분하자 그가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놀라지 않는군.”

“남이 죽는 일에 동요하는 사람이었다면, 난 당신 앞에 있지 않았을 거요.”

“남?”

“그럼 남이지 가족이겠소? 난 큰일에는 큰 희생이 따른다고 믿는 사람이오.”

“그래서 그들이 다 죽어도 상관없다?”

앞서 그가 돈 때문이냐, 충성심 때문이냐라는 대답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되물었다.

“상관있어야 하오?”

그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동요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를 죽이겠다?”

“아니오.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소.”

휙휙.

연속해서 지풍이 날아가서 그의 단전과 마혈을 제압했다.

“아까 그자에게 했던 것처럼 내공과 혈도를 제압해서 자결하지 못하게 할 거요. 다음으로 당신을 고문해서 산동에 있는 수하들을 돌아오게 할 거요.”

암흑대상이 단호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게 가능하겠느냐?”

“그야 알 수 없겠지. 당신이 고문을 얼마나 잘 견뎌내느냐에 달려 있으니까. 손톱과 발톱을 빼고, 그 자리에 바늘을 찔러 넣었을 때 당신이 버텨내느냐의 문제니까.”

암흑대상이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신이 끝까지 버텨도 상관없소.”

“상관없다고?”

“아까도 말했듯이 당신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데 어찌 피를 묻히지 않고 싸울 수 있겠소? 산동인들의 희생으로 당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 희생은 가치가 있겠지.”

“허풍 떨지 마라! 넌 그럴 위인이 못 된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지? 내가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죽이는 것인데? 내가 굳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있소?”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기에 그의 안면근육이 꿈틀댔다.

이 기세싸움에서 지는 순간 상대에게 끌려가게 된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내가 이렇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놈이 나에 대해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거기에 암흑이상을 고문해서 돈을 뺏은 것이 큰 위력을 발휘했다.

“산동 일과는 별개로 나는 당신 재산을 모두 빼앗을 거요. 아, 절대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요. 고문이란 것이 불굴의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의 일이지. 그 고문이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그러다 일 년이 되면 모두가 무너지게 되어 있소.”

내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재산을 다 빼앗은 후에도 당신을 고문할 거요. 물론 당신 따위에 매달릴 생각은 없으니 고문기술자를 쓰겠지. 보약을 먹여가며 평생 고통을 줄 거요. 제발 죽여 달라고 빌어도 죽이지 않을 거요. 산동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 당신이 평생 고통 받으며 그 대가를 치러야겠지.”

적어도 그는 내 협박에 겁을 먹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상치 않은 대응이었기에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내가 나가지 못하면 내 수하들이 네 부모를 죽일 때까지 평생 살수를 고용할 거다.”

“그래서 내가 지켜드리지 못하면 개입한 살수조직을 섬멸하는 것으로 두 분께 사죄드려야겠지. 부모님도 이해해 주실 거요.”

“네 정혼자는?”

“세상에 여자는 많소.”

“너, 정말 미친놈이군.”

“산동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는 당신에 비하겠소? 잠시 기다리시오. 우선 당신이 데려온 자부터 처리하고 와서 이야기합시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는 확신했다.

그가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내가 그 수많은 산동인들의 죽음에 괴로워할 것이란 확신이 있어야만, 그 역시 버텨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 이 무정한 행동이 허풍이 아니라 진심이라면?

이 의심이 드는 한 그는 자신의 인생을 걸고 모험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악인이다.

지하상계의 대상이니 어쩌니 좋게 포장을 한다 하더라도, 본질은 선량한 이들의 돈을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해온 황금충이다. 자기를 희생하는 부류는 절대 아닐 것이다. 확실하지 않은 것에 자기를 걸기에는 벌어둔 돈이 너무 많다.

과연 내가 문을 열려는 그 순간 암흑대상이 소리쳤다.

“잠깐!”

내가 돌아서자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산동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세. 그렇게 명령을 내리겠네.”

“차라리 실행하시지? 어차피 당신은 평생 고통에 빠져 살아야 하는데? 혼자 당하기 억울하지 않소? 다 죽여 버리시오!”

나를 지그시 노려보던 그가 준비해온 두 번째 패를 꺼내들었다.

“자넨 나를 붙잡아 둘 수 없네.”

“이유는?”

“나를 건드리면 천왕군이 날개를 달 테니까.”

내가 다시 돌아와서 자리에 앉았다.

“이건 좀 흥미롭군.”

이렇게 우리의 두 번째 기세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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