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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3)
고문은 계속되었다.
나는 정말 무식하리만치 무정하고 비정하게 그를 대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암흑이상, 조직의 두 번째 위치에 오른 인물이다. 똑똑하고 야심이 있으며 무엇보다 독종이었다.
상대를 잘못 만났을 뿐, 평생 이런 일을 당할 인물이 아니었다.
온몸이 찢겨나가는 고통에 암흑이상이 몸부림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제발! 그만!”
한바탕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신이 왜 이러는지 알고 있소. 돈 때문이 아니라 다른 암흑십상의 행방을 알고 싶어서겠지?”
내가 순순히 인정했다.
“돈 때문이기도 하고, 그 이유 때문이기도 하오.”
“나는 다른 십상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오. 파산선고가 내려지면 다들 꽁꽁 숨어 버리는데 어찌 위치를 알겠소? 생각해 보시오? 대체 누가 누굴 믿을 수 있겠소? 내가 누군가를 믿는 놈처럼 보이오?”
“그럴 것 같진 않소.”
“잘 봤소. 나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요. 우린 서로를 절대 믿지 않소. 어디에 있는지 모를뿐더러, 설령 내가 이 꼴을 당했다는 것을 알아도 도와주러 오지 않을 거요!”
“하긴. 모르는 것을 말할 수는 없지.”
내가 한발 물러서며 누그러지는 기색을 보이자 암흑이상이 재빨리 말했다.
“그렇다면 굳이 고문을 할 필요는 없지 않소? 돈은 그때그때 내어주겠소. 고문을 당한 후에 내어놓는 재산만큼…… 끄아아아아!”
나는 더욱 강하게 혈도를 눌렀다.
그를 고문하는 첫 번째 목적은 돈을 뺏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다. 제정신으로 머리를 굴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암흑이상은 잘 버텼다. 나에 대한 복수심도 복수심이었지만, 암흑이상은 분명 조직에서 자신을 구해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다른 동료들은 믿지 않을지 몰라도 암흑대상은 믿고 있었다. 위기에 처한 자신을 반드시 구해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내가 이용하고 있는 것이 나를 향한 복수심과 암흑대상을 향한 믿음, 바로 이 두 가지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를 괴롭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고문에 몸이 쇠약해질까 봐 보약을 먹였고 내공으로 몸을 추슬러주었다.
물론 그는 내 성의에 저주를 퍼부었다.
“이 미친놈! 내 평생에 너 같은 지독한 놈은 본적이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저주와 욕설에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말을 파리가 왱왱거리는 것으로 받아들였으니까.
“난 당신에게 꼭 알아내고 싶은 것이 있어. 하지만 당신 가족을 찾으려고 하지 않지. 심지어 당신에게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도 못하지. 왜냐고? 애초에 그건 알 필요가 없는 내용이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당신과 나의 일이잖아? 한데 당신은 그 기본을 저버렸어. 상대의 가족들까지 모두 죽이려 했지. 지금 당신이 고통스럽다고 내뱉는 모든 비명이 내게 노랫소리로 들리는 이유야.”
지금까지 놈에게 회수한 돈이 이억 냥이 넘었다.
말이 이억 냥이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다.
이 엄청난 돈을 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을까?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없소! 이제 내놓을 돈이 없단 말이오!”
돈을 내뱉는 속도가 느려졌다.
돈이 떨어진 것이라고?
천만에. 이제 덩어리가 큰 것들이 남은 것이다. 차마 내놓을 수 없는 것들.
자, 이제 그것들을 다 토해 내라!
다시 그의 혈도를 지그시 눌렀다.
“으아아아아악!”
* * *
놈을 쥐어짜는 틈틈이 나는 무공수련에 매진했다.
주로 한 수련은 마신영풍보였다.
이미 팔 성에 도달한 마신결은 수련할 장소도 마땅치 않았고, 쉽게 성장할 단계도 아니었다.
대신 오 성에 불과한 마신영풍보는 아직 성장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안가 근처의 들판을 기준점으로 천기심환공을 발휘했다.
일부러 최대한 넓고 크게 만들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마신영풍보를 마음껏 수련했다.
마신결의 수련처럼 이곳이 깨어질 염려는 전혀 없었다. 나는 미친 듯이 그곳을 달리고 날면서 마신영풍보를 수련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치 마신결만큼이나 보법과 경공도 중요했다.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마신결은 최강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마신영풍보의 수련 역시 천마가 적극 도왔다.
저 멀리서 천마가 소리치고 있었다.
[더 빨리! 더! 조금만 더 힘내!]
쏜살처럼 빠르게 그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야말로 내 모든 힘을 다 소모했기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웠다.
[헉헉헉.]
나는 숨을 헐떡이며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기심환공으로 만들어진 가짜 하늘이었지만, 보기에는 진짜와 똑같았다.
한옆에 피워둔 향을 보며 천마가 말했다.
[아까보다 시간이 단축되었다.]
[아!]
기분 좋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시간은 조금씩 단축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달리기’라는 경공수련에 있어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수련하고 있었다.
그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오 성이었던 마신영풍보는 육 성에 도달했고, 이제 칠 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천마의 도움이 컸다.
아무래도 혼자서 수련하는 것보다는 누군가 옆에서 지켜봐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었다.
천마가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놈에게서 돈은 얼마나 빼냈나?]
[이억 냥 정도?]
[엄청나군.]
놈은 거의 모든 재산을 쪼개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차명으로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흡수하는 것이 쉬웠다.
만약 그의 앞으로 되어 있었다면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 작업을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산이 차명으로, 혹은 아예 가상의 인물들이 지니고 있었다.
거래와 관련한 계약서들이 있었고, 정확한 암어와 서명까지 있었다. 그래서 서류작업만으로 그것들이 고스란히 우리 쪽으로 쉽게 넘겨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도 우리의 실체를 감추고 흡수했다. 역으로 우릴 추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천마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네게 진 것은 당연했다.]
[왜 갑자기 겸손해지셨을까?]
[네가 이자를 다루는 것을 보니까 인정해야 할 것 같아서.]
[그땐 이 정도까지 독하진 않았지.]
천마와 싸울 때만 해도 오래전의 일이었으니까. 이후 많은 경험과 깨달음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
만약 그때의 나였다면 암흑이상을 이렇게 집요하게 고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행동 자체가 왠지 놈과 같은 부류가 되는 것 같은 내키지 않는 찝찝함이 있었으니까. 벌써 죽여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악인을 상대했고, 다시 태어나서도 악인을 상대하고 있는 지금 현재의 생각은 다르다.
[더 독해야 한다.]
[이놈아, 차라리 네가 천마해라!]
[그럴까? 앞으로 나를 천마라 불러라!]
[미친놈!]
[아, 가봐야겠군. 놈을 고문할 시간이야. 오늘은 어떤 방법으로 괴롭혀줄까?]
[진짜 미친놈!]
[하하하.]
* * *
강도 높은 고문을 견디지 못한 암흑이상이 한 장소를 실토했다.
“내가 가진 마지막 재산이 보관된 곳이오.”
마지막 재산? 이런 개소리를 내가 믿을 줄 알았을까?
거짓말인 줄 알았지만 우선은 믿어주는 척했다.
“어디지?”
그 장소는 이곳 섬서에 있었다. 많은 재산들이 은닉된 곳이 이곳 섬서인 것으로 볼 때, 암흑이상의 기반은 섬서였다.
파산선고로 몸을 숨길 때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인 것이다.
“나와 둘이 다녀오지.”
그때 나는 보았다. 그의 얼굴에 스친 어떤 기대감과 희망을. 애써 그것을 표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나는 모른 척 그를 옆구리에 끼고 그곳으로 날아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변두리의 한 창고였다.
같은 모습으로 지어진 수십 채의 창고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주로 상인들이 빌려서 자신의 물건을 맡겨두는 곳이었다.
그가 창고 중에서 가장 구석에 있는 창고로 갔다.
주위에 은신하고 있는 고수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딴생각이 있는 것인지 암흑이상은 그들을 불러내지 않았다. 나 역시 그들의 기척을 알아차린 것을 모른 척했다.
겉은 보통의 창고와 같았다. 쇠로 만든 빗장을 열고 들어간 후부터가 달랐다. 또 하나의 문이 앞을 막았다.
암흑이상이 그 옆 벽에 붙은 주판모양의 기관을 조작했다.
나는 뒤쪽에 서 있었다.
그가 주판을 이리저리 조작하던 바로 그 순간!
쉭쉭쉭쉭쉭쉭쉭쉭쉭쉭쉭!
사방에서 나를 향해 강침이 날아들었다.
암흑이상이 왜 둘만 가자는 말에 기대감에 부풀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 빨라서 피할 수 없을 공격이었고, 결정적으로 보통의 강침이 아니었다. 치명적인 극독이 발렸고, 어지간한 호신강기는 그냥 찢어버릴 날카로움을 지닌 강침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내 호신강기는 ‘어지간한’에 속하지 않았다.
후두두두둑.
바닥에 떨어지는 강침을 보며 암흑이상이 경악한 표정으로 다급히 말했다.
“미안하오! 오랜만에 와서 실수로 숫자를 잘못 입력했소! 정말이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 정교한 기관은 협박을 당해 강제로 문을 여는 상황에 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주판 바로 앞에 선 사람을 제외하고 뒤쪽 모두를 제거해 버리는 공격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히 대답했다.
“그럴 수 있지.”
아마 내 이런 반응에 더욱 질렸을 것이다.
암흑이상이 다시 주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철컹.
이번에는 제대로 문이 열렸다.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암흑이상은 나를 죽이려는 시도를 끝내 포기하지 못했다.
둘만 왔을 이 기회를 놓치면 탈출은 영영 할 수 없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쉬이잉! 쉬이잉!
내가 걸어가던 벽 양옆에서 칼날들이 튀어나왔다. 역시 아까의 그 강침처럼 너무나 강력하고 빠른 공격이었다.
정확히 밟아야 할 곳을 밟지 않으면 튀어나오는 공격이었다. 암흑이상이 말해주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밟는 곳을 정확히 밟으며 따라오라고.
깡! 까앙! 깡! 깡!
날아든 검날이 모두 부러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어느새 내 손에 수라명왕검이 들려 있었다. 그 빠른 공격을 순식간에 검을 휘둘러서 막아낸 것이다.
당황한 암흑이상이 소리쳤다.
“미안하오! 내가 걷는 곳을 따라 걸어야 하오. 언제나 이곳은 나 혼자만 왔기 때문에 미처 그 생각을 못 했소.”
변명치곤 궁색했지만 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럴 수도 있지. 자, 갑시다.”
“이해해줘서 고맙소.”
하지만 암흑이상의 표정에는 실망만이 가득했다. 분명 이 기관을 만든 사람에게 이렇게 들었을 것이다. 그 어떤 고수라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어쩌면 몇 번쯤은 진짜 고수들을 데려와서 시험해 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지막 문은 손바닥을 대서 정해진 심법으로 내력을 주입해야 열리는 문으로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열 수 없었다.
이윽고 창고 문이 열렸다. 안에 든 것을 보자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굉장하군.”
그곳에는 그가 모아온 온갖 보물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림과 조각품, 보석까지.
그야말로 값비싼 보물들의 향연이었다.
나는 하나하나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맹주를 지냈던 나였으니 기본적으로 강호의 기물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만 냥 단위의 물건은 아예 없었다. 최소 몇십만 냥짜리부터 대부분이 수백만 냥에 달하는 것들이었다.
이곳에 있는 물건들은 보통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정말이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보물들이었다.
혹시나 몰라 다른 창고 건물도 살폈다.
하지만 다른 곳은 일반적인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웃한 두세 곳의 창고를 확인했을 때, 암흑이상이 말했다.
“시간낭비 마시오. 내 소장품들은 아까 거기에만 보관되어 있으니까.”
“알고 있소.”
기관장치도 없는 곳에 보물을 보관해 두진 않았을 테니까.
“한데 왜?”
다른 곳을 살피느냐고? 다른 창고를 열었는데 뭔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그것이 뭔지 몰라 또 다른 창고를 열어봤고, 또 다른 창고를 열었다.
똑같은 창고였지만 안에 든 물건은 다 각기 달랐다.
다섯 번째 창고를 열었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위화감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내가 처음의 그 보물이 보관된 창고로 돌아왔다.
“다른 곳보다 이곳의 천장이 낮군.”
모든 것이 똑같았는데, 천장의 높이가 달랐던 것이다. 보통의 일반적인 창고들처럼 천장이 높이 지어진 창고였기에, 이 정도의 높이 차이는 관찰력이 아주 좋지 않으면 알아내기 힘들었다.
암흑이상이 흠칫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를 아래에 두고 천천히 허공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 모습에 암흑이상이 깜짝 놀랐다.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내가 천장을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살폈다.
과연 천장의 한가운데에 비밀 문이 있었다. 보통 비밀장치나 문은 구석에 있을 것이란 상식을 깬 위치였다.
값진 보물들 위의 생각지 못한 문. 그 허허실실의 비밀문이 열렸다.
철컥.
천장 위에 작은 공간이 있었다.
“빌어먹을! 거긴 안 돼!”
암흑이상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