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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43화 (24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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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부탁(2)

감숙으로 날아가는 내내 천마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도 조용히 경신술에만 집중했다.

쉬이이이익.

빠르게 날아가면서 마신영풍보가 오 성으로 성장했다. 마신결은 팔 성에 올랐지만, 마신영풍보는 사 성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성취가 오르자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먼 거리를 가야 했기에 나는 마신비행만 펼쳤다. 마신지로를 섞어서 사용하면 순간적으로는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겠지만, 내공소모가 더 심하기 때문에 결국은 더 느릴 수밖에 없었다.

대신 언젠가 마신영풍보가 대성을 이루면 마신지로로만 가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보았는데, 그때가 되면 마신비행 역시 비약적으로 속도가 빨라질 것이기에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지금 마신비행만 해도 엄청난 속도였다. 아마 예상하건대 칠 성까지는 빠르게 성장하고 이후 성장이 더뎌질 것 같았다.

쉴 새 없이 날다가 내공이 바닥나면 내려와서 운기하고, 다시 날아서 이동하고. 나는 정말이지 밥도 먹지 않고 날아갔다.

그렇게 몇 차례 진기를 채우는 것을 반복한 후에 이윽고 감숙성에 도착했다.

[아들이 있는 곳이 감숙 어디지?]

[서화(西和).]

[알았다.]

다시 서화를 향해 빠르게 비행했다.

만약 마신비행이 아니라면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은 나도 몰랐다.

당연히 천마는 내가 얼마나 서둘러 오려 했는지 잘 알았다.

[고맙다.]

[고맙긴. 한몸살이 하는 사이에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지.]

[한몸살이? 하하.]

내내 말이 없던 천마가 기분 좋다는 듯 웃었다.

[내 가족만 가족이냐? 당신 가족도 가족이지. 왜 이런 이야기를 이제야 해?]

[할 여유가 없었지.]

[그래도.]

사실 천마의 부탁이 아들을 만나는 일일 줄은 정말 몰랐다.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 정확히 천마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마신결을 전수해 준 그 큰 대가로 얻는 부탁이었다. 그것만 봐도 천마가 얼마나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들 나이가 어떻게 되지?]

[쉰이 넘었지.]

하긴 천마가 내 손에 죽은 지도 삼십여 년이 넘었으니까.

[손주가 있을 수도 있겠군.]

[아마도.]

자식이 있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손자란 상상이 안 가는 존재다.

우린 서화에 도착했다.

[여기 정말 많이 변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때가 언제인데?]

천마가 기억을 떠올려 아들이 일하던 곳으로 갔다. 그곳은 바로 이곳에서 가장 큰 표국인 서화표국이었다.

[마지막으로 왔을 때 아들이 여기에 표사로 들어갔지.]

[따로 안 도와줬나?]

[안 도와줬다.]

[왜?]

[내가 작은 도움이라도 주는 순간, 나와 인연이 엮일 테니까.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 이해했다. 적어도 이 아이만은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란 것이다. 만약 아이를 위한답시고 혈천신교로 데려왔으면 후계자 싸움에 휩쓸려 죽었을 것이다.

[당신 닮았으면 잘 살고 있을 거다.]

표국의 문을 두드렸다.

[아들 이름이 뭐지?]

[성원. 백성원(伯星原).]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그가 나를 아래위로 슥 훑어보더니 퉁명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소?”

인상도 별로였고 말투와 태도는 더 별로인 사내였다. 이런 놈이 손님을 맞는 것을 볼 때, 이 표국의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혹시 이 표국에 백성원이란 분이 계십니까?”

나는 그 순간 사내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분명 못마땅함을 드러내는 표정이었다.

“백표두는 왜 찾아오셨소?”

백표두.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해서 표두 자리까지 올라간 모양이다.

[오! 대견하다.]

내 말에 천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느낀 불쾌함을 어찌 그가 모르겠는가? 오히려 아들 일이니 나보다 훨씬 크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백표두를 뵙고 싶습니다.”

“어떤 사이시오?”

천마가 말했다.

[일단 이 새끼부터 죽이고 들어가자.]

[다음 생에 내 아들을 찾으러 갈 때는 그렇게 해다오.]

내가 좋은 어조로 사내에게 말했다.

“백표두님을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 멀리서 왔습니다. 가서 전해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누구냐고?”

“직접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내의 얼굴에 못마땅함이 스쳤다.

“백표두는 여기 없네.”

“그럼 어디에 있습니까?”

“집으로 찾아가 보게.”

“집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사내는 대답을 해주지 않고 문을 닫아 버렸다.

[저 새끼, 죽여 버리라니까!]

천마가 버럭했다.

[훅 불면 죽을 놈이다. 우선 알아보고. 나중에.]

사람에게 물어물어 백성원이 어디에 사는지를 알아냈다.

표국에서 십여 리 떨어진 곳에 집이 있었다. 나는 잠시 말없이 집 앞에 서 있었다.

낡은 초옥이었다.

분명 표두라고 했다. 지금까지 표국 일을 했고, 현재 표두라면 이런 집보다는 나은 형편일 텐데.

뭔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천마 역시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긴장과 걱정과 분노에 그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곧장 들어가지 않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저잣거리에 있는 주점으로 들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라 손님이 몇 없었다.

술과 안주를 시켰다. 그리고 두어 잔 술을 마신 후에 점소이를 불렀다.

“잠시 물어볼 말이 있네.”

“뭐든 말씀하십시오.”

“저기 아래쪽 마을에 사는 서화표국의 백표두 말이네.”

그러자 순간 점소이가 흠칫했다. 그 반응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뭔가 알고 있었고, 백성원과 관련해서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저는 그분에 대해 잘 모릅니다.”

돌아서려는 순간 내가 탁자 위에 다섯 냥을 올렸다.

점소이가 흠칫했다. 몇 마디 해주고 받는 대가치고는 엄청난 돈이었다. 어린놈을 돈으로 유혹하는 것이 미안하긴 했지만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점소이가 나직하고 빠르게 말했다.

“육 개월쯤 전에 백표두께서는 대표두를 뽑는 시험에서 크게 다치셨습니다.”

그러면서 돈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내가 손을 내밀어 그 손을 막으며 다시 물었다.

“비무상대는 누구였지?”

“이번에 새로 대표두가 되신 주표두이십니다.”

“이름은?”

“주양(周良)입니다.”

“한데 왜 쉬쉬하지? 왜 겁을 먹고 있나?”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벌써 말을 더듬고 떨고 있었다. 내가 점소이를 차갑게 응시하다가 탁자의 돈을 다시 회수하려 했다.

점소이가 빠르게 말했다.

“소문이 있었습니다. 주표두가 백표두를 이기기 위해 어떤 수작을 부렸다고. 원래 실력은 백표두가 더 뛰어났거든요. 다들 백표두가 대표두가 될 것이라 예상했고요.”

“백표두는 많이 다쳤나?”

“일 년째 누워 계십니다. 약값에 가세가 완전히 기울었고요. 정말 제가 아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내가 손을 치웠다. 점소이가 다섯 냥을 챙겨서 후다닥 사라졌다.

천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곧장 주점을 나와서 백성원의 집으로 갔다.

“계십니까?”

그러자 집안에서 갓난아기를 안은 여인이 나왔다.

“누구십니까?”

“백표두님을 찾아왔습니다.”

낯선 방문자에 여인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내 인상이 나쁘지 않는 것을 보며 긴장을 풀었다.

“아, 아버님을 찾아오셨군요.”

아버님이라면, 이 여인은 바로 며느리였다.

[당신 손자며느리다.]

천마는 울컥 감동을 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인은 어질고 현숙해 보였다.

[그럼 이 아기는 증손자겠네. 당신 얼굴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흐으음.]

천마가 목 메인 목소리를 냈다.

“어디에서 오신 누구시라 전해드릴까요?”

혹시나 해서 천마에게 물었다.

[댈 만한 이름이 있나?]

[없다.]

[알았다.]

여인에게 말했다.

“예전에 백표두님께 신세를 졌던 하광이란 사람입니다. 직접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광이란 이름은 천하진과 백천광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든 이름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네.”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에는 온갖 물건들이 가득했다. 살림을 줄이고 또 줄이면서 차마 버리지 못한 짐들이었다.

그 한옆 침상에 백성원이 누워있었다.

수척한 얼굴에 병마의 흔적까지 있으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당신과 닮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많이 닮았다.

[젠장!]

침상에 누워 있는 아들을 보니 천마는 젠장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다행히 아주 늦지 않게 도착한 듯하네.]

여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백성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일 년 전에 부상을 당하신 이후에 계속 약을 쓰고는 있지만 차도가 없으십니다.”

“제가 잠시 진맥을 봐도 되겠습니까? 의술을 조금 익혔습니다.”

“그래주시면 감사하지요.”

“감사합니다.”

내가 백성원의 손목을 잡아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과연 내상이 심하군.]

[고칠 수 있어?]

[있다. 한데 문제가 있군.]

[무슨 문제?]

[중독당한 상태다.]

[중독? 독에 당했단 말인가?]

생각지 못한 상황에 천마는 크게 놀랐다.

[독을 치료하지 않고, 다른 약을 쓴 것 같은데? 그래서 계속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고. 완전 돌팔인데?]

내 말에 천마가 차갑게 대답했다.

[돌팔이가 아닐 수도 있지.]

중독당했다면 독을 푼 자가 있을 것이다. 백성원이 죽기를 바라서 의원을 매수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여인이 말했다.

“아버님이 깨시면 오셨다고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따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집에서 나온 나는 곧장 허공을 날아올라 마신비행으로 어딘가로 날아갔다.

[어딜 가?]

[치료약 사러.]

[의원을 가야지.]

[이 마을 의원은 믿을 수가 없어. 그리고 굳이 의원을 갈 필요는 없어.]

내가 도착한 곳은 감숙성에서 가장 큰 도시인 난주(蘭州)였다.

그 길로 곧장 감숙 흑시의 난주지단에 갔다.

가장 좋은 내상약과 해약을 구입했다. 거기에 허약해진 몸을 회복시킬 수 있는 약까지. 마지막으로 내공을 늘릴 수 있는 만년하수오를 한 뿌리 구입했다.

[영초는 사지 마라.]

[내 선물이다.]

[안다. 그래도 사지 마라.]

[당신과의 인연이 아니라 나와의 인연이다.]

[사지 말래도.]

[그래, 알았다.]

단지 인연의 문제만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내공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무공실력이 늘어난다는 뜻. 어설프게 강해지면 오히려 위험을 불러온다는 것을 나나, 천마는 잘 알고 있었다.

만년하수오를 제외한 약을 산 후에 곧장 백성원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필요 없소! 그만 돌아가시오!”

백성원의 집을 찾아온 사람은 바로 앞서 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릴 맞았던 그 사내였다.

“참으로 박하게 구는군. 젊은 사람이 이렇게 고지식해서 어쩌려고 이러나? 이 돈 받아서 약값이라도 보태게.”

젊은 사내는 바로 백성원의 아들이었다. 백성원과 닮았고, 오히려 천마와 똑 닮아 있었다.

[당신 손자다.]

[으으으음.]

다시 천마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감격에 목이 메는 것이다. 계속 천마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감격하자 나까지 마음이 울컥했다.

방문한 사내가 돌아서려다 슬그머니 물었다.

“오늘 누가 찾아오지 않았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저자가 이곳에 방문한 목적은 저 몇 푼의 돈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내 정체가 궁금했던 것이다. 이 한 가지 사실만 봐도, 백성원이 중독된 일이 저 사내, 혹은 저 사내의 배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이로 볼 때 적어도 저 사내가 새로 대표두가 된 주양은 아닐 테니까.

“누가 찾아오든 말든 그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오?”

“그야 걱정이 돼서 그러지.”

“어쨌든 그만 돌아가 주시오.”

“알았네.”

나는 허공에 떠서 사내가 돌아가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집에서 여인이 나왔다.

사내가 여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까 온 사람이 누구였소?”

“예전에 아버님에게 신세진 사람이라고 했어요.”

“아무나 집안에 들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죄송해요. 아무리 봐도 나쁜 사람 같진 않았어요.”

사내가 자신이 고함을 지른 것이 미안했는지,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부인이 착하셔서 세상을 몰라서 그렇소. 대부분 악인들은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오.”

“네, 명심할게요.”

“들어갑시다.”

“네. 오늘도 일하신다고 많이 힘드셨죠?”

“아니오. 난 괜찮소.”

두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당신 아들이 아들은 잘 키웠네. 며느리도 잘 봤고.]

[그래 보이지?]

[부럽다.]

[후후.]

천마는 진심으로 뿌듯해하고 있었다.

[아들놈 상태가 어땠지? 지금 당장 치료를 해야 하나?]

[지금 당장 어떻게 될 상태는 아니었다. 그리고 진맥할 때 내 내공을 조금 불어넣어서 몸을 좀 추슬러두었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거다.]

[그럼 내막부터 알아보자. 갑자기 병상에서 일어나면 이 일을 저지른 놈들이 살인멸구를 하려 들 수도 있었으니까.]

[좋은 생각이다.]

어떤 내막인지 몰라도, 만약 이 모든 일이 누군가의 음모로 이뤄진 결과라면? 그자에게 미리 애도의 말을 전해야겠다.

불행하게도 상대를 정말 잘못 골랐다.

천마가 아니라도, 내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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