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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될 것인가?(4)
송화린의 가슴에 내 손바닥이 닿았다. 물컹한 감촉에 온몸이 짜릿해져왔다.
송화린이 내 손목을 잡았다.
“여기선 싫어.”
그 말이 나를 더욱 흥분시켰다. 송화린은 작정을 하고 있었다. 꾸준히 쌓아왔던 나에 대한 애정이 오늘 폭발한 것이다.
그래, 누군가 올 수 있는 이곳 연무장에서 이래선 안 되지.
그녀를 꼭 안은 채 천기심환공을 발휘했다.
스스스스슷.
일전에 매혈상인을 천기심환공으로 끌어들였다. 그때는 매혈상인이 극악의 사공을 익혔기에 무공의 상성을 이용해서 그녀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송화린은 사공을 익히지 않았다. 다시 말해 보통 사람을 끌어들이는 첫 번째 시도였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자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 시선을 뒤따랐다.
“여긴?”
그녀가 깜짝 놀랐다.
우린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녀를 천기심환공의 세상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똑같은 장소를 하면 그녀가 헷갈려 할까봐, 연무장에서 조금 떨어진 잔디밭을 기준점으로 삼아서 천기심환공의 세상을 만든 것이다.
그것도 그 잔디밭의 크기를 어마어마하게 크게 만들었다.
이 시도가 성공한 것은 그녀와 몸을 밀착하고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성공을 비는 마음이 간절했으며, 마신결을 전수받은 후 내 무공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놀란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오직 우리만 있는 곳이야.”
그 말에 그녀가 흠칫 놀랐다.
내가 다시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송화린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다시 혀를 찾아 나섰다.
그녀가 내뱉은 나직한 탄성에 나는 더욱 흥분했다. 입술이 떨어졌다가 다시 붙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시작했지만 지금은 내 감정이 폭주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간절함이었다.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전생에 여러 여자를 만났지만 단 한 번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내가 상의를 벗어 잔디 위에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그녀를 눕혔다. 그녀는 긴장하고 있었다. 두 눈을 살짝 내리깐 채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옷을 벗겨내는 내 손이 떨렸다. 산동을 넘어 천하제일미라 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그녀였다.
옷 안에 감춰져 있던 아름다운 육체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
나도 모르게 나직한 탄성을 내뱉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무공을 익히는 사람이 이렇게 고와도 될까 싶을 만큼 새하얀 피부는 투명하고 맑았다.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탄력 있는 허벅지와 매끈한 다리는 그야말로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흔히 육체보다 정신의 고귀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순간 나는 말할 수 있다.
육체적인 매혹이 그 어떤 것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다고. 그녀의 몸은 마음이 통하는 정서적 일치감만큼이나 큰 흥분과 기쁨을 주었다.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녀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그녀의 떨림이 전해져왔다.
그녀가 들릴 듯 말 듯 나직하게 속삭였다.
“사랑해.”
“나도.”
그렇게 우린 하나가 되었다.
* * *
꿈만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우린 들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불어온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기분 탓일까? 그녀는 한결 더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우린 옷을 다시 입었지만, 조금 전까지 격렬하게 사랑을 나눈 것이 부끄러운지 그녀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때때로 사랑은 뜻밖의 상황을 연출하곤 한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그녀와 이렇게 사랑을 나누게 될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나는 안다. 강호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다 얼마나 죽어갔는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 적에게 그 사랑은 가장 큰 약점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또 안다.
그럼에도 그 사랑은 그 모든 것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 무공 너무 신기하다.”
그녀는 앞서 나눈 사랑에 대해선 말하지 못했다. 나도 그녀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마공이야.”
“마공이라고?”
그녀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에게 천마의 존재를 말해주지는 않았다. 만약 누군가 내 몸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앞서 나와 잠자리를 한 것을 너무 부끄러워할 것이다.
나는 천마를 믿는다. 적어도 내가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스스로 잠이 들었을 것이다. 천마도 남자가 아니냐고? 호기심이 있지 않느냐고? 물론 있겠지. 하지만 동시에…… 친구이기도 하니까. 나는 그를 믿는다.
“네 무공이 경지에 이르면 정사마의 구분이 무의미해질 거야.”
“내게 그런 날이 올까?”
“언젠가는 올 거야. 네가 마지막까지 무공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였지만 나는 느꼈다. 나를 향한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음을. 그녀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녀를 향한 깊어진 내 마음만큼이나 눈빛도 달라졌을 테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나가자.”
“그래.”
그녀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머리카락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그녀가 물었다.
“적들 강하지?”
“강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으면 안 돼. 죽는다, 이런 말 재수 없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쉬쉬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을 더 불안하게 해. 그러니까 그냥 말할게. 죽지 마. 절대 죽지 마. 날 두고 죽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언젠가 난 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 * *
아쉬운 이별을 한 나는 섬을 떠나 갈사량과 백표가 있는 안가로 돌아왔다.
내가 무사한 것에 안도하며 갈사량이 물었다.
“천왕군을 만나보셨습니까?”
“만나보았네.”
“놈에 대한 소감이 어땠습니까?”
“정말 대단한 자더군. 나와 싸운다면 승률은 반반.”
특히 갈사량에게는 정확히 말해주어야 한다. 군사의 작전은 언제나 명확한 사실에 근거해서 세워져야 했으니까.
반반이란 말에 백표가 오히려 놀랐다.
“맹주님의 성취가 크신 것은 느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에 운이 좋았네.”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백표의 안도하자 갈사량이 말했다.
“만약 맹주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들을 상대하는 작전 자체가 무의미했을 겁니다.”
그랬을 것이다. 그 무지막지한 놈을 상대로 어떤 작전이 통하겠는가?
이어서 갈사량이 한 가지 의문을 내놓았다.
“한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놈은 마철군을 압살할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스스로 맹주의 자리에 올라도 될 텐데, 여전히 마철군을 맹주의 자리에 두었습니다.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렇군.”
“그 목적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군사께서 수고해주게.”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이것 보십시오.”
갈사량이 하나의 종이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여러 목록과 숫자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성왕보가 대륙상단을 처분하고 우리에게 바친 돈입니다.”
내용을 확인한 내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나 많다니?”
그 액수가 이억 냥이 넘었다.
“대륙상단은 중원삼대상단 중 하나입니다. 사실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제대로 처분했다면 더 많은 돈을 얻었겠지만, 최대한 빨리 처분하게 했습니다.”
“잘하셨네.”
“그 과정에서 공총관이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제 우린 어마어마한 자금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공수찬이 벌이고 있는 상단 사업은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태성상단이 강호제일상단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굳이 공수찬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저들이 깊숙이 숨어 있으니, 우리 역시 나설 필요는 없었다.
“성왕보는 지금 어디에 있나?”
“암흑상계에서 벗어나 우리가 은밀한 곳에 데리고 있습니다. 성왕보의 말에 따르면 놈들은 파산선고란 것을 했다고 합니다.”
“파산선고?”
“네. 그들 모두가 모든 사업을 접고 깊숙이 숨어버렸습니다.”
“찾아내기 쉽진 않겠군.”
“네. 그래도 은밀히 사람을 움직여서 행적을 추적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드러난 적은 천왕군과 천소선이고, 숨은 적은 암흑대상이었다.
갈사량이 작전을 세우고 행적을 추적할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지금부터 난 무공수련에 들어가겠네. 급한 상황이 있으면 곧장 알려주시게.”
“알겠습니다.”
이번 싸움의 핵심은 천왕군을 죽일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다행히 내 마신결의 성취는 고작 삼 성.
앞으로 올라서야 할 단계가 많이 남은 것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난 천기심환공으로 안가의 연무장을 기준점으로 커다란 연무장을 만들어냈다.
천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그녀와 잤군.]
[훔쳐본 것은 아니지?]
[이 미친놈이! 나를 어떻게 보고.]
[믿어. 믿었으니까 잘 수 있었지.]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오히려 천마가 부끄러워했다. 나 역시 편히 할 이야기는 아니었는지라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천왕군이란 놈 봤지?]
[봤지.]
[어땠어?]
[굉장하더군. 한데 그놈, 대체 무슨 대법을 익힌 거지? 그 먼 곳에서 네 기척을 느끼다니. 게다가 순식간에 날아왔잖아.]
[거의 마신결에 버금가는 무공을 배웠거나, 혹은 그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대법이었겠지.]
[그런 무공이 있을 리는 없고. 뭔가 이상한 대법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겠지.]
[어쨌든 마신결의 성취를 더 올려야 해. 당신이 도와줘.]
[내가?]
[내 상대가 되어줘.]
[맙소사! 네놈 무공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그래도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이 당신이잖아?]
[젠장! 실컷 죽어보겠군.]
[고마워.]
* * *
그로부터 열흘 후.
꽝!
굉음과 함께 내가 바닥을 뒹굴었다. 천기심환공이 마신결의 무공을 버티질 못하고 파훼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다급히 소리쳤다.
[괜찮아? 이봐! 천광이! 괜찮냐고!]
[난 괜찮다.]
천마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함께 싸우던 천마에게 어떤 변고가 생겼을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죽었을까봐 걱정이라도 되었나?]
[그럴 리가.]
퉁명스러운 반응과는 달리 나는 걱정을 했다. 적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천마를 잃고 싶진 않았으니까.
삼 성이던 마신결의 성취는 이제 오 성에 이르렀다. 열흘 만에 두 단계 성취를 이뤄낸 것이다. 마신결 역시 칠 성 전까지는 빠르게 성장하는 일반적인 경우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난 열흘간 거의 잠도 자지 않은 채 피나는 노력을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천마의 도움이 컸다. 천마는 그사이 백 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 아무리 다시 살아나는 천기심환공의 세상에서 죽은 것이라지만, 죽는 기분은 정말 더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천마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내 무공수련을 자기 일처럼 도왔다.
그렇게 수련을 계속하던 중 오늘 문제가 생겼다.
오 성에 도달한 마신결의 위력을 천기심환공이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삼 성일 때와는 무공의 위력이 확실히 달라졌다.
마신검결의 일곱 초식.
제일초식 환검천폭.
제이초식 뇌검전격.
제삼초식 일벌검옥.
제사초식 진검무성.
제오초식 광속비검.
제육초식 마검혈우.
제칠초식 마신지검.
모든 초식이 빨라지고 강해졌다. 물론 대성을 이루지 못했기에 제칠초식은 아직 사용할 수 없었다.
대신 육초식까지는 표가 나게 달라졌다.
예를 들어 일초식 환검천폭의 경우에는 정면을 향해 겨눠진 수라명왕검 주위로 검기로 만들어진 검 여덟 자루가 생겨난다. 중심의 진짜 검을 기준으로 회전하면서 연속해서 검기 모양의 검이 날아가 폭발하는 무공이다.
이제 회전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다. 다시 말해 검기의 검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뜻. 뿐만 아니라 폭발의 위력도 강해졌다.
마신결의 무서운 점은 이렇게 강력해지는데 소모되는 내공의 양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점점 더 완벽하게 완성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서 수련을 하지?]
다른 초식은 그냥 현실에서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한다지만, 육초식 마검혈우는 함부로 수련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 천기심환공이 파훼된 것도 마검혈우를 버티지 못해서였다.
[한 군데 생각나는 곳이 있긴 한데.]
[어디지?]
그러자 천마의 입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물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