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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한복판으로(5)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주위가 칠흑처럼 어두워지면서 내 주변이 바뀌었다.
나는 텅 빈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오직 세상에 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주위는 고요했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땅에 받을 딛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저 앞에서 빛이 반짝하더니 이내 하나의 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방에서 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머리 위와 발밑에도 생겨났다.
“아!”
별이 빛나는 밤하늘 가운데 서 있는 경험은 실로 경이롭고 신기했다. 수백, 수천 개의 별들이 밝아졌고, 나는 은하수 속에 서 있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피이잉.
내 눈앞으로 기다란 꼬리를 그리며 혜성이 떨어졌다.
[아! 정말 멋지다.]
내 감탄에 천마가 말했다.
[넋 놓지 마라. 아직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야지.]
우리는 안다.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때론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그때였다. 하나의 빛이 유난히 강한 빛이 나는가 싶더니.
파앗!
그것이 나를 향해 쏘아져 날아왔다.
정말 말 그대로 빛과 같은 속도였다.
촤아악.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주르륵. 빛이 스친 어깨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통증이 느껴졌다.
[맙소사! 설마 이 별빛과 싸우란 말인가?]
마치 천마에게 말한 내 마음속 대화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또 다른 빛 하나가 반짝이더니 나를 향해 쏘아졌다.
파앗!
이번에는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흘러내리는 피가 뜨거웠다. 진짜 피였고, 진짜 상처였다. 더 무서운 점은 이곳에선 호신강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빛이 심장을 관통하면 난 정말 죽게 된다는 것을. 이곳은 천기심환공의 세상이 아니었다. 목숨을 건 마신결의 진짜 시험이 치러지는 곳이다.
파앗!
세 번째 공격이 날아들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다치지 않고 피했다.
네 번째 공격 역시 부상 없이 피하는 데 성공했다. 앞선 두 번의 경험을 통해 빛의 공격에 적응한 것이다.
이것이 진짜 고수의 무서움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무공과 관련된 것이라면 순식간에 적응해 버린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공격도 피했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좀 더 손쉽게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내공 역시 최소한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천마가 기쁘게 소리쳤다.
[오! 잘한다!]
[후후, 이 정도는 보통이지.]
[오냐, 잘난 척 인정해주마.]
그때였다. 지금껏 하나씩 빛나던 별이 갑자기 두 개가 빛나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다음 순간.
팟! 파앗!
이번에는 두 개의 빛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피했지만, 둘 다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파악!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처음 당한 상처보다 컸다. 간이 철렁했다.
다급한 내 마음과는 달리 다시 두 개의 별이 빛났다.
필사적으로 피했다. 적중당하면 죽는다고 생각하니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집중하자! 집중하면 피할 수 있다!
또다시 이어진 공격을 피했다. 모든 정신을 집중하니까 어떻게 피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두 개의 빛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바닥에서도 올라왔고, 머리 위에서도 떨어졌다.
그렇게 두 개의 빛을 피하자 이번에는 세 개의 별들에서 빛이 났다.
“맙소사!”
세 개의 빛이 날아들었다. 두 개는 피했지만 나머지 하나는 피하지 못했다.
파아아악!
옆구리가 길게 잘려나갔다. 지금까지 입은 상처 중에서 가장 큰 상처였다.
이대로라면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세 번째까지 와서 무조건 죽는 시험이 기다리고 있을 리 없다. 분명 이 시험을 통과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순간 이번 시험의 성격이 떠올랐다.
틀을 깨는 것.
천마가 내게 해왔던 그 말이 이번 시험의 핵심이었다. 앞서의 시험도 마찬가지였다. 생각지 못한 선택을 했을 때, 나는 관문을 통과했다.
그때 또다시 세 개의 빛이 날아들었다.
두 개는 피했고, 정명으로 날아든 빛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수라명왕검으로 빛을 수직으로 잘라냈다.
쉬이이이익!
촤아아아악!
놀랍게도 빛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것은 두 갈래로 갈라져 나의 좌우로 날아갔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로서는 목숨을 건 시도였다. 만약 내 선택이 틀렸다면 치명상을 입었을 테니까.
내가 이 선택을 한 것은 한 가지 생각이 들어서였다.
빛은 벨 수 없다는 것, 그 또한 선입견이 아닐까?
왠지 피해야 할 공격을 정면으로 베어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무시무시한 공격의 해법이었던 것이다.
이제 네 개의 별에서 빛이 났다.
당연히 날아든 공격은 네 개의 빛줄기였다.
하지만 수라명왕검으로 빛을 벨 수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빛은 더 이상 빠르게 날아드는 검기 그 이상의 위협이 아니었다.
두 개는 피했고, 두 개의 빛은 베었다. 이번에도 잘려진 네 가닥의 검기가 내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마치 한계를 시험하듯 날아든 빛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날아드는 빛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지만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과연 나는 이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럴 만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 자신감이 공격을 막아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홉 개의 빛을 막아냈을 때, 드디어 공격방식의 변화가 있었다.
주위의 별들이 일제히 빛났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저 많은 별빛의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죽음을 떠올렸겠지만 나는 담담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이 시험을 믿었다. 앞서도 여러 번 경험했지만 이 시험은 무자비한 듯 보였지만 분명 격조가 있었다.
저 빛이 한꺼번에 날아드는 무식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
과연 내 예상대로였다.
환하게 빛나던 빛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이 하나의 사람 형상을 만들었다.
별빛이 모여 만들어진 그것은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 모양을 한 빛 덩어리, 광인(光人)이었다.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이것이 이 방 시험의 마지막 관문임을.
천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보통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래 보이네.]
[자신 있어?]
[어떻게든 해봐야지.]
이곳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나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그곳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광인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앞서 날아들던 빛처럼 빠른 움직임이었다.
퍼어억!
양팔을 교차해 막으며 놈이 날린 일장을 막아냈다.
묵직한 한 방을 느끼며 이 싸움이 절대 쉽지 않음을 실감했다.
번쩍하는 순간 광인이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날아드는 속도도, 주먹이 날아드는 속도도 그야말로 빛과 같았다.
쉬이이이익!
촤아아아악!
수라명왕검이 한발 먼저 놈을 베었다. 분명 내 검이 놈의 목을 베었지만, 주먹은 계속 날아들었다.
퍼억!
한 방을 허용한 내가 뒤로 나가 떨어졌다.
반면 놈의 잘려나간 곳에서 빛무리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갈라졌던 곳이 합쳐졌다.
광인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신처럼 보였다. 놈의 속도와 위력이라면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다급히 천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뭐라도 말을 해봐!]
[네 몸에서 달아나고 싶다.]
[그게 지금 내게 할 말이야?]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나?]
[당신이야말로 빛을 상대한 진정한 어둠이었잖아?]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농담이 나오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광인의 손에서 빛의 검이 길게 뻗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저 검에는 수라명왕검도 못 버틸 것 같았다.
[물이라도 확 부어. 아니면 보자기라도 덮어씌우든지. 그럼 저 빛이 꺼지겠지.]
[맙소사! 그걸 조언이라고 하는 거야?]
다음 순간 내가 흠칫했다.
[어?]
[왜?]
[당신 말이 맞아.]
[무슨 말이야?]
[빛의 상극은 어둠이고, 마신결을 익힌 우리야말로 어둠이잖아?]
[뭐? 알기 쉽게 설명해봐.]
[왜 여기서 싸우고 있나? 안 그래도 불리한데? 내 싸움터에서 싸워야지.]
내가 마신검 제육초식 마검혈우를 발휘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며 검기의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어둠 속에서 내리는 마신결의 검기.
그것은 보통의 검기가 아니었다.
푹푹푹푹푹푹푹푹!
쏟아지는 검기의 비가 광인을 꿰뚫었다. 광인이 휘청거렸다. 이 무지막지한 공격에도 광인은 죽지 않았다.
검기가 광인의 몸을 꿰뚫을 때마다 빛무리가 흘러나왔다. 원래는 그것이 놈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서 합쳐졌는데, 이곳 어둠 속에는 달랐다. 어둠이 아귀처럼, 흘러나온 빛을 흡수하며 잡아먹었던 것이다.
놈이 비속을 뚫고 휘청거리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의 걸음을 막는 검기의 비는 계속 쏟아졌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푹푹푹푹푹푹푹푹푹푹푹!
계속 검기가 적중하자 몸에서 빠져나가는 빛무리가 많아졌고, 점점 놈의 크기는 작아졌다.
십 갑자의 모든 내공을 다 쏟아부었다. 이 싸움을 마지막이라고 여겼다. 아니, 다음 싸움이 있더라도 그것은 나중 문제였다.
적어도 광인과의 싸움에서 내 선택은 정확했다.
내공이 모두 소진되기 전에 놈이 소멸된 것이다.
퍼엉!
마지막 남아 있던 빛이 터지더니 사방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순간, 마검혈우가 끝나면서 세상이 밝아졌다.
나는 앞서 별무리가 있던 허공이 아니라, 세 번째 방에 서 있었다.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저 앞으로 앞서 만났던 신비스러운 노인이 서 있었던 것이다.
“축하하네.”
“그 말씀은?”
“자넨 이제 마신결의 진정한 전수자라네. 조금 전의 시험은 자네가 마신결의 주인 될 자격이 있는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시험이었네.”
드디어 마신결의 시험이 모두 끝난 것이다.
내가 정중히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자, 이리로 와서 축하주 한 잔 마시게.”
노인과 함께 탁자에 마주앉았다. 노인이 미리 준비한 술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그와 건배하며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이 한 잔의 술에 지난 고생이 모두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노인은 이제 때가 되었다는 듯, 차분히 물었다.
“자넨 하늘이 존재한다고 믿나?”
예전이라면 이 대답에 ‘아니오’라고 대답했을지 모르겠다. 혹은 ‘모르겠다’이거나.
“네.”
이것이 지금의 내 대답이었다.
노인이 싱긋 웃었다.
“나도 믿는다네. 내가 믿는 그 하늘은 선의 편도, 악의 편도 아니라네. 언제나 강호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움직이지.”
분명 나와 관련된 말이었기에 나는 묵묵히 노인의 말을 경청했다.
“강호에 평화가 오래 지속되면 그 평화를 깨뜨릴 악이 등장하게 되지. 그래서 세상을 어지럽힐 악인이 등장하면 또다시 그를 제지할 영웅이 등장하는 것이 그 이치라네.”
“저는 악인입니까, 영웅입니까?”
“어느 쪽이라 생각하나?”
“적어도 악인은 아니겠지요?”
그러자 노인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 누군가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사후에서나 가능한 일이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나였다. 내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강호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으니까.
이제는 내가 물었다.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대답 대신 노인이 물었다.
“다시 태어나 보니 어떤가?”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비록 천마와 함께 노인을 만났다 하더라도, 내 정체를 밝힐만한 이야기를 꺼낸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천마가 일러바쳤을 리도 없고.
“어떻게 아셨습니까?”
노인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혹시 어르신께서 하신 일입니까?”
맙소사! 대체 내가 지금 무엇을 묻고 있는 것인가? 그런 일이 어찌 가능한 일이라고? 만약 그렇다면 이 노인은 대체 누구일까?
내가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언젠가 다 알게 된다는 듯, 노인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자네에게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네.”
“무엇입니까?”
“전해져오는 마신결의 전설을 알고 있는가?”
“네. 마신결의 비밀을 풀면 능히 고금제일의 마공을 익히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마신이 될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넨 이제 고금제일의 마공을 익혔네.”
인간의 무공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신결의 검술을 익힌 것이다.
이후에 대성을 이루어서 마지막 칠초식을 익히는 것은 이제 나의 노력에 달린 것이다.
“마신결은 익혔고 이제 마신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만이 남았군요.”
“그렇지.”
“마신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말 그대로 신이 된다는 뜻이라네.”
“인간세상에서 살 수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살 수는 있다네. 하지만 자네는 늙지 않은 채 불멸의 삶을 살게 되겠지.”
“……불멸의 삶.”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게 어떤 것인지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주위의 모두가 죽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것. 대체 이 광오한 대화를 누가 온전히 믿을 수 있을까?
“마신이 되는 것은 순전히 자네의 선택에 달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