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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결 (6)
마신결은 하나의 무공만이 적힌 비급이 아니었다.
검술, 도법, 권법, 창법…… 여러 무공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하지만 각 무공별로 나눠둔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삼분지 이 정도까진 전체적인 마신결의 체계와 운용방식에 대해 자세히 서술되어 있었다.
이후 나머지 삼분지 일이 각각의 무공을 해설하면서 앞서의 가르침과 접합시켰다. 쉽게 말하자면 공통된 부분을 먼저 익히고 마지막에 무공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정말이지 합리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비급이었다.
내 시선이 다시 문 위에 적혀 있는 글귀를 향했다.
<그대가 가야 할 길을 정한 후, 이 앞에 서면 문이 열릴 것이다. >
가야 할 길을 정한다는 것은 바로 어떤 무공을 선택할 것이냐는 뜻일 것이다.
나는 검술을 골랐다. 내가 가장 깊이 익힌 무공은 검술과 권법이었다. 원래는 추혼수라검술만이 주력이었는데, 선학비술을 익히면서 두 가지가 되었다.
최근에 익힌 선학비술에 푹 빠졌지만, 그래도 검술을 선택했다. 검술이 주는 매력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문 앞에 서서 검술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가야 할 길을 정한다는 것이 단지 '난 검술을 익히겠다'는 마음만 먹는 일이 아닌 것이다.
앞서 마신영풍보와 마찬가지로 마신결에서 검술을 익힌 후에 저 문 앞에 서야 할 것이다.
다행히 이해가 어려운 말이나 구결은 없었다. 앞서 마신영풍보 주해에서 이미 마신결의 새로운 어휘들이나 무공체계의 다른 점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마신결이란 무공은 굉장히 심오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심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신결은 혈뢰심법을 바탕으로 펼칠 수 있었는데, 역시 같은 심법을 바탕으로 한 천마의 무공 혈뢰천화공과는 성격이나 능력이 전혀 달랐다. 훨씬 더 상위의 무공이란 뜻.
결코 혈뢰천화공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마신결 자체가 워낙 뛰어난 무공이라서 내 무공도, 천마의 무공도 애초에 비교대상이 되지 않을 뿐이었다.
마신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고 나서 책장을 덮으며 내가 말했다.
[정말 끝내준다.]
천마의 감상도 비슷했다.
[정말 어마어마하구나.]
그리고 우린 동시에 말했다.
[이걸 어떻게 배워?]
어려웠다. 정말 어려웠다. 이해를 못해서 못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이해는 하지만 그것을 펼칠 엄두조차 나지 않게끔 어려운 방식으로 운용되는 것이었다. 앞서 익혔던 마신영풍보와는 비교할 수 없게 어려웠다.
[나도 여기서 포기했지 싶다.]
어려움을 인정하는 천마의 말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내가 볼 때 당신은 일차 관문도 통과 못 했어.]
[나를 무시하지 마라! 그 정도는 통과할 수 있다.]
[당신이 그 방을 다 열어봤다고? 그래서 서재를 발견하고 또 거기서 주해집을 찾아냈다고?]
[……아니. 젠장! 일차에서 실패했을 거다. 미친! 그런 곳에 주해집이 있을 것이라고 대체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냔 말이다.]
정말 외부에 답이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나 역시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천마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넌 통과했잖아. 그러니 포기하지 마라.]
[어려운 것도 어려운 것이지만 더 큰 문제가 있어.]
[내공?]
[그래, 내공은 어떻게 해결하지?]
마신결에 나와 있었다. 본격적으로 마신결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팔 갑자의 내공이 필요하다고 했다.
[팔 갑자. 팔 갑자가 뉘 집 개 이름인가?]
[지금 내공이 얼마나 되지?]
[사 갑자.]
[딱 절반이네.]
이 사갑자의 내공을 만드는 데에도 상당한 노력과 운과 돈이 들었다. 한데 팔 갑자 내공이라니?
[너 돈 많잖아? 영약 사서 먹자.]
[영약? 알잖아? 이제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 지금부터 돈으로 사 갑자 내공을 늘리려면 수억 냥은 들어야 할 걸? 아니, 그것으로도 부족할지 모르지.]
[그만한 돈 없어?]
[나 방금 수억 냥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만큼 없냐고?]
[당연히 없지.]
만약 있다고 해도 그렇게 큰돈을 들여서 내공을 늘려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부자만이 마신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뭐? 무슨 헛소리냐?]
다음 순간 내가 벌떡 일어났다.
[그래! 그럴 리가 없잖아?]
[갑자기 왜 이래?]
[어떻게든 이곳에서 내공을 늘릴 방법이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
[그래. 이곳 마신성에서. 이곳이 굉장한 곳이라는 것은 나도 인정해. 뿐만 아니라 마신영풍보나 마신결 역시 어마어마한 무공이란 것도. 이런 대단한 무공을 전수하느냐 마느냐의 시험이라면, 당연히 내공과 관련한 안배도 있지 않을까?]
[음, 어쩌면 그럴지도.]
천마도 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었다.
[그런데 여기 다 돌아봤잖아?]
내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렇지. 다 돌아봤지.]
완전히 샅샅이 뒤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봤을 때는 영약이 있을만한 곳은 없었다.
[어쨌든 나가자.]
적어도 분명한 한 가지는 이 방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란 것이다.
분명 답은 밖에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모든 건물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비밀금고나 창고가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건물 하나를 샅샅이 살펴본 후, 내가 수색을 중단했다. 그러자 천마가 물었다.
[왜 벌써 포기야? 너 이런 사람 아니잖아?]
[문득 이 방법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무슨 말이야?]
[첫 시험에서 방을 꼼꼼히 뒤져야만 주해집을 발견할 수 있었잖아?]
[그랬지.]
[한데 또 똑같은 방식으로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해뒀을까?]
[흐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곳 마신성도, 마신영풍보도, 마신결도 분명 뛰어남과는 별개의 어떤 품격과 격조가 있었다.
마신결의 시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공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분명 존재하지 않을까?
단순히 돈으로 영약을 산다거나, 방을 뒤져서 비밀방이나 금고를 찾는 방식이 아닌 다른 어떤 방법이.
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
맹주전에 긴장이 흘렀다.
날아든 소식은 비보였다. 정체모를 사내의 단 일 수에 멸마단 무인 삼십칠 명이 그 자리에서 죽었고, 천소선의 일 수에 멸마단주가 죽음을 당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마철군은 벌써 몇 번이나 이 말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적을 상대함에 있어 삼사십 명이 죽는 일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자들의 목격담을 들으니, 이번 일은 자신이 맹주가 된 이래 최대의 위기라 할 수 있었다.
좌우로 늘어선 중요조직의 수장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앞서 죽은 철기단주 주철룡을 따라 배후세력에 포섭 되었던 사내였다.
하지만 주철룡이 죽고 배후세력과 연락이 끊어지자 다시 마철군에게 돌아선 상태였다.
한데 그 배신의 인장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배후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전무후무한 엄청난 신위를 보이면서.
모두들 내심 두려운 마음으로 떨고 있었다.
그때 총군사인 노선생이 입을 열었다.
"놈이 직접 찾아오겠다는 암시를 했습니다. 그에 대한 대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무림맹에 비상을 걸고, 중원의 여러 고수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마철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외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노선생의 판단은 옳았다.
"좋소, 그렇게 하시오."
그때 흘러나온 침울한 한마디.
"과연 그 정도로 될까?"
모두의 시선이 말소리의 주인공을 향했다. 그는 바로 마철군의 아우이자 천도문주인 마령인이었다.
"다른 대책이 필요한 것 같은데?"
그의 말을 노선생이 받았다.
"예를 들자면?"
"항복한다거나?"
"거 무슨 무례한 말씀이시오!"
노선생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아무리 맹주님의 혈육이라고 해도 맹과 맹주님의 지엄하신 존엄을 해치는 발언은 용서할 수 없소이다!"
모두의 사기를 위해서 좀 더 강하게 발언했다.
마령인이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뭐 그냥 해본 말이니 흥분하지 마시고 흘려들으시오."
바로 그때였다.
꽈아앙!
맹주전 문이 박살나며 날아갔다.
마령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직이 말했다.
"흘려들으면 큰일 날지도……."
박살난 문으로 두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천왕군과 천소선이었다.
위풍당당 걸어 들어오는 그들 앞으로 맹호단 무인들이 막아섰다.
"멈춰라!"
물론 천왕군과 천소선은 멈추지 않았다.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그들을 향해 맹호단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날리며 공격했다.
천왕군이 한차례 손을 휘저었다.
그 순간 검을 내지르던 맹호단 무인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자신들을 붙잡은 것만 같았다. 그 힘이 해서는 안 될 일까지 해버렸다.
퍽! 퍼어억! 퍼억! 퍽! 퍽! 퍼엉!
맹호단 무인들의 몸이 터져나가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머리의 요혈이 터진 사람도 있었고, 목이나 심장의 혈도가 터져버린 사람도 있었다.
이십여 고수들이 동시에 쓰러졌다. 맹호단주 임중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대단한 고수가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당한 것이다.
그 끔찍한 모습에 모두들 경악했다. 동시에 너무 거짓말 같은 일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대체 무슨 수법을 어떻게 썼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천왕군이 다시 태사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멈추시오."
백호단주가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그 말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
퍼어억!
천왕군이 다시 손을 휘젓자 그의 두 눈이 터지면서 피를 뿜어냈다. 그는 너무나 참혹한 모습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천왕군이 태사의 앞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그때까지도 마철군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죽음의 공포가 자신을 짓눌렀다.
천왕군이 물었다.
“그 자리가 네 자리라고 생각하는가?"
마철군의 눈동자가 떨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때 저 아래에서 노선생이 고개를 내저었다. 고집을 부리지 말라는 신호였다.
"아닙니다."
마철군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래로 내려왔다.
천왕군이 태사의에 앉았다. 천소선이 그를 보필하듯 옆에 나란히 섰다.
천왕군은 일을 미루지 않았다. 안가를 나온 후, 기존의 수하들을 단속한 후, 속전속결로 무림맹을 장악한 것이다.
굳이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고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의 무공이 너무 강했다.
대청에 있던 각 조직의 수장들이 무릎을 꿇었다.
"새 맹주님을 뵙습니다!"
마철군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무리 이런 상황이라도, 이렇게 빨리 배신하다니. 그것도 버젓이 자신의 눈앞에서.
마령인은 가장 먼저 무릎을 꿇었고, 마지막으로 노선생도 무릎을 꿇었다. 노선생이 눈짓으로 어서 꿇으라고 마철군에게 신호를 보냈다.
"새 맹주님을 뵙습니다."
더는 망설이지 않고 마철군이 무릎을 꿇었다.
불과 일다경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 맹주전에서 벌어진 것이다.
천왕군이 나른하게 말했다.
"새 맹주에게는 새 수하들이 필요한 것 아닌가?"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기에 엎드린 자들이 덜덜 떨었다. 그 모습을 즐기며 천왕군이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
이차 시험을 시작한지 열흘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내공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자포자기로 술에 의지하거나 무기력하게 있지는 않았다.
때때로 어떤 문제의 해답은 그와 전혀 관계없는 활동을 하다가 문득 찾아낼 때가 많았으니까.
내가 한 일은 바로 마신영풍보를 익히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이 무공 자체에 푹 빠져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더 빨리 움직였고, 더 높이 날았다.
쉬이이익.
지금도 나는 마신부운을 이용해서 최대한 높은 곳까지 올라 가고 있었다.
태어나 이렇게까지 높은 곳에 올라와 본 적이 없었다. 마신부운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높은 곳까지 올라오니까 마음이 탁 트이는 것만 같았다.
다시 지상으로 떨어지려던 바로 그때였다.
"앗!"
뭔가가 내 눈에 띄었다.
마신성의 여러 건물들이 마귀의 얼굴형상으로 만들어졌음은 처음 마신비행을 하면서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신부운으로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와보니 한 가지 사실을 더 알 수 있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도 있었다는 사실을. 구불구불 널리 둘러진 성벽이 어깨와 팔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쭉 뻗은 허리 옆 단전이 있는 부분에 뭔가가 있음을. 동떨어진 건물인지 아니라면 어떤 표시인지 이곳에서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마신부운으로 이렇게까지 높은 곳에 올라오지 않았다면 결코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왜 마신영풍보를 일차 시험에 내놓았는지. 바로 마신영풍보 그 자체가 이차 시험을 풀 수 있는 해법이자 열쇠였던 것이다.
하늘에서 몸을 되돌린 나는 단전이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