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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결(1)
복건을 향해 경공으로 내달렸다.
말을 타고 달리는 것보다 경공으로 가는 것이 더 빨랐다. 달리다 쉬고, 또 달리고. 그러다 내공이 모두 소진되면 운기조식하고. 그리고 또 내달리고.
나는 엄청난 속도로 호북을 벗어나고 있었다. 천마의 말처럼 마신결을 전수받는 일이 몇 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리는 일이라면, 굳이 이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서둘렀다. 설령 몇 년이 걸린다해도, 그 몇 년에서 며칠은 뺄 수 있을 테니까. 나를 기다리는 이들을 위한 노력이었다.
[안 힘드냐?]
[힘들지. 한데 누가 정말 위급하고 바쁜 와중에 마신결을 알려준다고 해서. 그것도 멀고 먼 복건까지 가야 한다네?]
[망할 놈!]
[하하.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하루 푹 쉬어가려고 했다.]
이때가 호북을 벗어나 강서성에 들어섰을 때였고, 출발한 이후 처음으로 객잔에 들어섰다.
"어서 옵셔."
점소이가 나를 반겼다. 장사가 잘되는 곳이었는지 제법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객잔에는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식사를 주문했다. 점소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이것저것 많이 시켰다.
"혹시 일행이 있으십니까?"
"아니네. 나 혼자라네. 끼니를 걸렀더니 배가 고파서."
"아, 그러셨군요. 맛있게 준비해서 올리겠습니다."
내가 혼자서 여러 요리를 시키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옆자리에 있던 젊은 여인들이 나를 보며 웃었다.
그 모습 때문이었는지 천마가 불쑥 말했다.
[뭘 이리 많이 시키나?]
[왜? 내가 부끄러워?]
[체통 없어 보인다.]
[허허. 만날 나보고 틀에 갇혀 산다고 하더니, 당신도 마찬가지군.]
[이놈아, 비교할 것을 비교해야지.]
[다를 게 뭐 있나? 체통을 따진다는 것은 남의 눈치를 본다는 건데, 그게 틀이 아니면 뭔가?]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고!]
[그래, 다르다고 치고. 새벽부터 지금까지 한 끼도 제대로 못 먹고 달린 것을 아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나?]
[고수가 이 정도 배고픔은 참아야지.]
[몸이 젊어져서 그런지 배가 금방금방 고픈 것을 어쩌나. 오늘도 많이 참았다.]
[젠장! 부럽다.]
천마가 진심으로 부러워한다는 것을 느꼈다.
[당신도 몸이 갖고 싶지?]
[말이라고.]
잠시 후 천마가 말했다.
[왜 말 안 하냐?]
[무슨 말?]
[어차피 네 몸속에서 죽을 몸이니 새 몸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말라고. 밉살스럽게 한마디 하셔야지?]
잠시 후 내가 말했다.
[이미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아서.]
[흥!]
그렇게 식사를 다 마쳤을 때쯤, 점소이가 다가왔다.
"저기, 손님."
"무슨 일인가?"
점소이가 내 자리에 술을 한 병 내려놓았다.
"저기 계신 분들께서 보내신 겁니다."
돌아보니 아까 내가 여러 요리를 시키는 것을 보며 웃었던 옆 자리의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이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여협분들께서 가능하시면 합석해서 한잔하자고 하시네요."
단칼에 거절하려고 하던 그때 천마가 말했다.
[합석한다고 해.]
[뭐?]
[오랜만에 여자 분내 좀 맡아보자.]
[왜 한 삼십 년 뇌옥에 갇혔다 나온 사람처럼 굴어? 송소저 봤잖아?]
[그건 네 여자고.]
[색마여, 천마여?]
[말장난 그만하고 어서 가기나 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점소이에게 말했다.
"좋네. 같이 한잔하지."
점소이를 따라가서 그녀들의 자리에 합석했다.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천마가 많이 답답해하는 것 같아서였다. 문득 출발하기 전에 천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랑 놀러나 다니자. 경치 좋은 곳에서 미녀들과 술이나 마시자고!]
여인은 모두 세 명이었는데 인근 무림맹 지부의 여협들이었다. 나는 적당히 신분을 바꿔서 나를 소개했다.
"오라버니 너무 잘생겼어요."
"그냥 편하게 한잔해요."
"어디서 오셨어요?"
풋풋하고 귀엽고 청순한 여인들이었다.
[왼쪽 애가 괜찮네.]
왼쪽에 있는 여인은 평범한 얼굴이었는데 가슴이 크고 허벅지가 굵은, 그야말로 육덕진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오, 이런 취향이었어?]
[여자가 이래야지. 손에 잡히는 것도 좀 있고. 어린 것들이나 비쩍 마른 예쁜 얼굴 찾는 거지.]
[난 아직 어린가 보네.]
[넌 가운데 여인이지?]
[그래.]
물론 그녀가 예쁘다고 해봤자 송화린의 미모에는 비교할 수 없었다. 세 여인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예쁘다는 말이다.
[그럴 줄 알았어. 암튼 취향이 달라서 함께 놀러 다니긴 좋겠네.]
[그게 천마가 할 소리냐?]
[천마는 남자 아닌가? 너도 분내 맡으니까 좋지?]
[좋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녀들과 어떻게 잘해보겠다거나 하는 흑심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본 사이지만 우린 편하게 웃고 떠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셨다. 이게 요즘 젊은 애들인가 싶어 부러우면서도 동시에 즐거웠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정말 처음에 이 자리를 성립시켰던 그 말 그대로, 우린 즐겁게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이런 것이 요즘 젊은 애들이 말하는 쌈박한 관계인 것일까?
술을 몇 병 더 사서 객방으로 올라온 후, 천기심환공으로 천마를 만났다. 정작 오늘 앞서 술자리에 앉아 있고 싶었던 사람은 천마였다.
[볼수록 왼쪽 애가 좋던데.]
[나이 먹고 주책은!]
[너도 좋았잖아? 원래 바람둥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가 새 여자잖아? 처음 본 여자. 가운데 그 여자.]
[하하. 그만해!]
내가 어이없어서 웃고 말았다.
사실 난 천마가 왜 이렇게 감정이 고조되었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천마가 다시 환생한 것이 벌써 십여 년이 넘었는데, 그 세월을 아이들의 몸에 있다가 이젠 내 몸으로 들어와 있었다. 정신은 예전 그대로인데, 그 욕망을 전혀 배출하지 못하니 어찌 욕구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데 오랜만에 호북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 자연 마음이 들뜬 것이다. 괜히 그가 안쓰러워졌다.
[천기심환공이 더 대단하면 얼마나 좋아?]
내 말에 천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말이야?]
[아까 당신이 마음에 들어 하던 여자 데려오면 좋잖아? 직접 만나서 한잔하고, 마음에 든다고 고백도 하고.]
천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친놈! 고백하면 그 여자가 이런 늙은이를 좋아한대?]
[당신이 천마인 줄 알면 좋아할 수도 있지.]
[무서워서 기절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당신, 남자로서 꽤 멋있어.]
아, 이건 좀 과했나?
그가 안됐다는 마음이 지나쳐 너무 속 보이는 칭찬을 한 것이다.
과연 천마가 의심스럽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야? 이거 무슨 개수작이지?]
[아무 속셈 없다. 있는 그대로 말해준 것뿐이야. 자, 술이나 마셔.]
천마가 술을 마셨다. 빈 잔을 내려놓으며 천마가 말했다.
[하긴. 내가 소싯적에는 여자들이 줄줄 따르긴 했지.]
하하, 단순한 사람 같으니라고.
덕분에 술이 다 빌 때까지 천마의 과장된 연애담을 들어줘야 했지만, 오늘의 술자리는 여러모로 즐거운 자리였다.
***
아침부터 밤까지 미친 듯이 경공으로 달렸다.
굳이 이렇게까지 달려야 하는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달렸다. 대신 쉴 때는확실히 쉬었다. 며칠에 한 번 천기심환공에서 천마와 술을 마셨다.
덕분에 바쁜 와중에도 여행하는 기분을 종종 느꼈다. 분명 그것은 뜻이 맞는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의 기쁨이었다.
이윽고 목적지인 복건성 무이산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무이산에 아래에 있는 작은 차밭이었다. 차밭에 작은 초옥이 딸려 있었는데, 주인은 외출을 했는지 집이 비어 있었다.
[차밭으로 들어가. 저기 깃대들이 꽂힌 곳으로.]
천마가 안내에 따라 차밭으로 들어갔다.
[그 깃대를 뽑아서 오른쪽으로 십 보 떨어진 곳에 꽂아. 그렇지. 다시 저쪽 깃대를 뽑아서 뒤로 이십 걸음 가서 꽂아. 거기 말고, 조금 오른쪽에. 그렇지.]
차밭 가운데 세워진 몇 개의 깃대를 뽑아서 천마가 시키는 대로 꽂았다.
그러자 주위가 바뀌면서 기다란 오솔길이 생겨났다.
스스스스슷
[진법이구나.]
[진법에는 좀 익숙하잖아?]
[아주 익숙하지.]
[자, 들어가지.]
오솔길을 따라 길을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자 뒤쪽의 오솔길이 사라졌다. 진법은 굉장히 정교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울창한 대숲이 나왔다. 본격적인 진법이 펼쳐졌음을 알 수 있었다.
[길을 잃게 하는 진법이군.]
[맞아. 공격을 하지 않지만, 대신 생문을 찾기가 몇 배는 더 어려운 진법이지. 그 어떤 진법전문가도 절대 생문을 찾을 수 없다. ]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를 생각하면 결코 허풍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 지금부터 내 말대로 걸어라.]
천마가 생문을 알려주었다. 그가 말해주는 대로 걸었다.
생문을 따라 걸어 가다보니 알 수 있었다. 이 진법이 얼마나 대단한 진법인지. 흑암거해진보다 더 상급의 진법이었다. 비수도 화염도, 해일도 일지 않았지만, 이 대숲을 걷는 것이 더 두려운 마음이 들었으니까.
너무나 평화롭고 조용한 곳이었지만,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고독감이 영혼을 잠식하고 있었다.
천마가 시키는 대로 걸으면서도 나는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서 생문을 기억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대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시 눈앞으로 두 번째 진법의 입구가 나왔다. 이번에도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있을 평범한 숲이었다.
[자, 이 시점에 네게 전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뭐지?]
[혈뢰심법.]
혈뢰심법은 당대 최강의 마공이자 천마의 독문무공인 혈뢰천화공을 익히기 위한 심법이었다.
[당신이 그러지 않았나? 혈뢰심법은 정파의 심법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운용된다고. 그래서 억지로 익혔다간 혈맥이 터져 버리거나 주화입마에 빠져버린다고.]
[그랬지.]
[여기서 나를 죽이려고?]
[죽이려고 했으면 이 멀리까지 올 필요 없지.]
마지막 말들은 우리의 농담이었다.
처음에 천마가 혈뢰심법에 대해 말했을 때, 나는 생각했었다.
미리 한계를 짓지 말자고.
맨 처음에 추혼수라검법과 선학비술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고. 정공심법을 익힌 사람이 마공심법을 익힐 수 없다는 것도 미리 한계를 짓는 일일 것이라고.
그 생각은 계속 발전해서 나중에는 선학비술을 패도적인 방식으로 바꿔서 발휘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이곳은 혈뢰심법을 익히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다.]
당연히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오면서 마신결은 오직 혈천신교의 천마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으니까. 그것을 전수받을 곳은 당연히 천마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리라.
[일단 구결부터 외워라.]
천마가 혈뢰심법을 전수해주기 시작했다. 정말 천마의 말처럼 운용되는 방식이 내 심법과 정반대였다. 부작용 없이 운기할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런 방법은 없었다.
[네가 알아서 연구하고 고민해라. 너 정도쯤 되면 알아낼 수 있을 거다.]
그래, 맞는 말이다. 나 정도라면 정반대의 원리라도 해낼 수 있어야겠지.
[심법을 전수해줘서 고맙다.]
[고맙긴.]
그가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또한 마신결을 전수해주고 부탁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독문심법을 내게 알려주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심법의 암기가 끝나자 본격적인 전수가 시작되었다.
나는 혈뢰심법에 대해 궁금한 모든 것을 천마에게 물었고, 천마는 마치 사부가 된 것처럼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내가 핵심을 파고들어 물을 때마다 천마는 깜짝깜짝 놀랐다.
비단 혈뢰심법만이 아니라 정사마의 심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곳에서 꼬박 하루 동안 천마와 혈뢰심법에 대해 이야 기를 나눴고, 다음 날 혈뢰심법을 운기하는 데 성공했다.
[과연! 넌 대단한 놈이다. 최소한 삼 일은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 천재지?]
[그건 모르겠고, 강호에서 제일 뻔뻔한 것은 확실하다.]
[하하하.]
다시 진법으로 들어갔다.
생문을 따라 걷다가 분기점이 되는 곳에서 혈뢰심법을 운기했다.
그러자 새로운 생문이 나왔고, 나는 새로운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렇게 몇 번의 분기점을 만났고, 그때마다 혈뢰심법으로 새로운 생문을 만들어 냈다. 천마는 혈뢰심법을 모르는데 이곳에 들어왔다면, 설령 나라 해도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나는 그의 장담을 믿었다.
그렇게 길을 외우는 것조차 어려운 이 복잡한 진법을 빠져나온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들판 때문이 아니었다.
그 뒤에 우뚝 솟은 거대한 성.
내 평생 보지 못한 정말 거대한 성이었다.
무림맹 본단보다도, 내가 상대했던 흑도십삼맹의 그 어떠한 성도, 심지어 혈천신교 본단보다도 규모가 큰 성이었다.
천마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신결을 전수받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