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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25화 (22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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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3)

우린 승리와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승리의 기쁨이 가장 큰 사람은 단연 벽씨검문과 송가장의 무인들이었다.

상대적으로 정예들인 흑표대에 비해 벽씨검문과 송가장 무인들에게는 이번 싸움이 훨씬 더 위험천만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랬으니 당연히 그 승리의 기쁨도 컸다.

서중 같은 경험 많은 이들은 여러 실전을 경험했지만 젊은 검대원들 중에는 실전이 처음인 이들도 여럿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두고두고 이번 싸움을 새로 들어온 후배들에게 자랑삼아 말할 것이다.

아버지나 송우경 역시 적요와 혈검주라는 굉장한 고수들을 상대하는 경험을 얻었다. 두 사람의 인생에서도 그 정도 고수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덕분에 살았다."

"아닙니다, 아버지."

"네가 이기어검술을 사용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사실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스승님의 큰 가르침 덕분에 어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송우경이 끼어들며 말했다.

"어검술이 어찌 가르치는 사람의 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경지이겠느냐? 무엇보다 자네의 무재가 뛰어나기 때문이네."

송우경의 칭찬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일이라면 못난 자식이 운이 좋았다며 겸손하게 말했겠지만 이번은 달랐다.

"정말 자랑스럽구나."

"감사합니다."

무인으로서 아버지와 송우경의 감격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기어검술은 보통 일반적인 무인이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경지였으니까.

그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던 어머니가 내게 다가와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장하다, 우리 아들."

나는 말없이 어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렇게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면 벅찬 재회의 기쁨도 있었다. 백표가 정말 오랜만에 아내와 아들을 만난 것이다. 벽씨검문에 와서도 그는 가족과의 재회를 뒤로 미뤘다.

"아버지!"

명이는 아버지의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을 보며 낯설어했다. 하지만 백표가 두 팔을 벌리자 달려가서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부쩍 커버린 아들을 보며 백표가 감격했다.

저 앞에서 그의 아내인 정영이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백표의 마음이 울컥했다.

"여보."

언제나 이렇게 꿋꿋하게 뒤에서 자신을 지켜줬기에, 자신의 이상과 의지대로 마음껏 살아갈 수 있었다. 그녀에게 너무 고마웠다.

백표가 성큼성큼 걸어가서 그녀를 힘차게 안았다.

"고맙소."

정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들 역시 더 이상 무슨 말이 무슨 필요 있겠는가?

백표가 아내와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그는 서불패와 싸우면서 등 뒤에 지켜야 할 사람을 생각했다. 지켜야 할 마지막에,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백표는 나를 지켜주기 위해 가족과의 재회도 미뤘다. 그는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지만, 나는 백표와 그의 가족을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다.

더 강해져야 한다. 강한 사람만이 모두를 지켜낼 수 있을 테니까.

그때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돌아보니 송화린이 나란히 서서 내 손을 꼭 잡은 것이다.

"다행이다. 다들 무사해서."

"그래."

모두들 말을 아끼고 있었다. 때론 기쁨이 너무 크면 말이 필요 없는 법이니까.

***

"매혈상인이 당한 것 같습니다."

암흑이상의 보고에 암흑대상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당한 것 같다니?"

"그녀에게서 소식이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강호에서, 더구나 이렇게 큰 조직에서 누군가를 죽이러 나간 이들에게서 소식이 끊어졌다는 것은 대부분 한 가지를 의미했다. 전멸한 것이다.

"이번에 매혈상인이 자신의 수하들을 모두 소집했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단월과 적요, 혈루, 서불패에 이백의 혈검까지 데려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데도 당했다고?"

"네."

암흑대상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불신과 황당, 분노와 공포가 차례대로 드러났다.

"정말 악몽이 현실이 되었군."

이틀 만에 야시를 폐장시켰을 때, 어쩌면 예견된 일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매혈상인이라면 이번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암흑대상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활짝 열었지만, 가슴은 점점 더 답답해져 왔다.

"대체 우리가 누굴 상대하고 있는 것인가?"

"매혈상인의 보고에 따르면 산동 벽씨검문의 벽리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산동 촌구석 문파의 새파란 놈에게 그들이 다 당했다고?"

"놈도 그게 다가 아닌가보지요. 우린 어디 제 얼굴로 살고 있습니까?"

"정체를 숨긴 놈이다?"

"아니면 강호를 뒤집을 잠룡일수도 있고요."

문제는 벽리단만이 아니란 점이었다. 천소선과 천왕군은 사라진 상태였다. 두 사람 역시 결코 만만치 않는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게다가 무림맹주인 마철군이 호시탐탐 배후세력을 색출해서 제거하려고 노리고 있었다. 자신이 암흑대상의 자리에 오른 후, 최악의 위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암흑대상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암흑이상이 말했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암흑십상에게 가장 믿을 만한 고수들을 내놓으라고 하셔야 합니다."

암흑이상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이 제대로 끝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암흑대상의 자리에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차기 암흑대상은 고사하고 지금의 자리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젠장.'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오랫동안 암흑대상에 있었기에 새 암흑대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눈엣가시인 자신을 제거하려 들 것이다.

암흑이상이 다시 암흑대상을 설득했다.

"지하상계의 존망이 달린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죽고 나면 그딴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암흑이상은 암흑대상의 이러한 속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암흑대상의 자리에 연연하는지도.

그랬기에 말리고 싶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다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건 자신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암흑대상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

우린 산동을 떠나 호북으로 돌아왔다.

굳이 내 정체가 노출된 상황에서 벽씨검문에서의 수성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좀 더 유연하게 싸울 필요가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정영을 섬에 있는 안가로 보냈다.

아무도 모르는 곳이었기에 그곳에만 머무른다면 절대 안전한 곳이었다.

이번에 매혈상인만 해도 당장 우리 가족을 노리고 산동으로 쳐들어왔다. 내가 미리 알고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상황이 어찌 되었을지는 끔찍한 일이었다.

송화린에게 어머니의 안전을 부탁했다.

"어머니를 부탁해."

송화린은 순순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래, 내가 잘 모실게."

일전에 어머니와 함께 싸운 일로 두 사람은 아주 친해졌다. 물론 그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녀는 내 부탁을 거절하진 않았을 것이다.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이번에 우리가 상대하는 적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들인지, 또한 강호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사적인 감정을 앞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충분히 깨달은 그녀였다.

물론 마음에 걸리는 일도 있었다. 백련과 임연정이 그곳에 있었으니까. 거기에 어머니와 송화린까지. 그야말로 내 주위의 모든 여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이었다.

그들을 섬으로 보낸 후, 갈사량과 나는 새로운 작업에 돌입했다.

우선 무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새 안가를 마련했다. 이곳은 적들과 싸울 일종의 전략적 본거지였다.

침입하기는 어렵고 탈출하기는 쉬워야 했는데, 마침 지형적으로 딱 들어맞는 곳이 하나 있었다. 경영난으로 폐관한 무관이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당장 그곳을 사들였다. 우리들 슷자가 적으면 작은 장원을 하나 사면 되는데, 지금은 수용해야 할 인원이 너무 많았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고 많은 무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라면 무관이 제격이었다.

이번에도 갈사량의 지휘하에 무관 외부에 흑암거해진을 설치했다. 이번에 진법의 효과를 제대로 보았기에, 제삼 진법까지 완벽하게 설치할 작정이었다.

외부에 진법이 설치되는 동안, 내부에는 새로운 공사가 진행 되었다. 모든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공사에 필요한 돈은 아끼지 않았다. 자체인력을 투입했기에 외부에 소문은 나지 않았다.

진법 설치에 투입된 흑표대 무인들도, 내부 공사에 투입된 검대원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 지. 덕분에 작업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

나는 무관의 무관주가 사용했던 개인 연무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운기조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천기심환공을 만들어서 천마를 만나고 있었다.

그동안 내부를 재정비하고 안가를 꾸민다고 바빠서 천마와 제대로 된 대화 한마디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둘이 얼굴을 마주보게 된 것이다.

[이 천기심환공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군.]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매혈상인이란 년이 천기심환공 내부로 안 끌려왔으면 어쩌려고 그랬냐?]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았겠지.]

[속 편한 소리 잘도 하는군.]

[하하하. 어쨌든 성공했잖아?]

아직도 매혈상인이 동귀어진하던 순간이 생생하다. 그때 천마는 비명을 내질렀는데 아마 지금 생각하면 꽤나 겸연쩍고 부끄러울 것이다.

[이건 확실히 알아둬야 해. 상대가 사술을 사용하는 자였기에 천기심환공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거다.]

[천기심환공이 마공이기 때문이지?]

[그렇지.]

마공과 사공의 상성 때문이었다. 근본적으로 사공이 마공에 비해 약세인데, 매혈상인이 사용한 무공은 그야말로 사술의 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극에 다다른 사술이었다. 반면 이쪽은 마공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천마의 마공. 그 상성이 제대로 작용한 것이다.

[앞으로 조심해서 사용하지.]

[당연히! 네 목숨만 걸린 것이 아니야.]

[그럼, 내 가족들부터 수하들까지…….]

[말고! 나 말이다. 내 목숨도 함께란 말이다!]

[하하.]

당연히 그런 뜻으로 한 말인지 알고 있었다. 그냥 오랜만에 보니 놀려먹고 싶었을 뿐이다. 이런 면에서 천마는 내 장난을 아주 잘 받아주었으니까.

[술이나 한잔하자.]

[이미 준비해뒀지. 우리 술 좋아하시는 천마님을 위해서.]

내가 한옆에 준비해뒀던 술병을 가져왔다.

술을 보며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천마가 눈을 흘겼다.

[가만 보면 너 나를 상당히 무시해. 나를 대할 때 천마가 아니라…… 뭐랄까?]

[친구처럼 대한다고?]

[그래. 바로 그거야. 이 자식아, 내가 네 친구냐?]

[좋잖아? 친구처럼 지내면.]

[미친! 친구 아니라고!]

천마가 버럭 소릴 내질렀지만 그라고 뭐 그리 싫겠는가? 나 역시 속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이렇게 좋은데.

[마신결을 전수해주면 나를 더 무시하겠지?]

[전수해줄 생각은 있고?]

[해주기로 했잖아. 천마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다행이군.]

그때 천마의 입에서 깜짝 놀랄 말이 흘러나왔다.

[네게 마신결을 전수해주겠다.]

그의 눈빛과 표정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정말 해주려는 것이다. 언젠가 전수해주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지금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내 예상보다 빠른 결정이다.

[왜 그런 결심을 한 거지?]

[이번에 보니까 너 너무 약해빠져서 안 되겠더라.]

내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하긴, 당신의 입에서 비명까지 터지게 했으니.

[가자.]

[가자고? 어딜?]

[마신결을 전수받으러.]

나는 알 수 있었다. 마신결은 단지 구결로 전수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어딘가 특정 장소를 가야만 전수받을 수 있는 모양이다.

[얼마나 걸리지?]

[알 수 없다. 금방 끝날 수도 있고, 몇 달, 혹은 몇 년, 아니면 평생이 걸릴 수도 있고.]

사실 지금 떠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곳 호북에 새롭게 안가를 꾸미는 중이고, 매혈상인을 잃은 배후 세력이 또다시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를 상황이었다.

[왜? 싫어?]

[그럴 리가? 가자.]

오늘이 안 되면 내일도 안 될 것이다. 뭐든 기회가 왔을 때, 붙잡으려고 달려들어야 한다. 미루면 끝이 없다.

나는 느낀다. 마신결이 나와 운명적으로 닿아 있음을. 천마에게 처음 마신결에 대해 들었을 때부터 느꼈던 감정이었다.

[대신 흑암거해진의 일차 진법이 만들어지면 가자. 그 정도는 기다려주겠지?]

[그러지.]

그렇게 미로진이 완성된 그날, 나는 뒷일을 갈사량과 백표에게 맡기고 무관을 나섰다.

[이봐,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고 떠나! 우리 나이에 무슨 강호의 평화야? 그냥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나랑 놀러나 다니자. 경치 좋은 곳에서 미녀들과 술이나 마시자고!]

과연 그런 날이 올까? 나조차도 궁금한 미래다.

자, 어쨌든 지금은 마신결을 익히러 가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 목적지가 어디지?]

그러자 천마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복건성(福建省), 무이산(武夷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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