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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08화 (208/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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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의 신(5)

갈사량이 수장이 된 이후 삼안각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준 것은 단연 천망회였다. 적들과의 싸움이 깊어질수록 갈사량에 대한 천망회주 반서정의 마음도 깊어졌다. 갈사량 역시 이전보다는 더 부드럽게 반서정을 대했다.

두 사람의 마음이 더욱 잘 통하면서 천망회는 삼안각이 더욱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더구나 갈사량이 벽리단과 함께 상대하는 적이 상계를 암중으로 장악한 세력임을 알고 나서, 천망회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그야말로 강호의 대표적인 정보조직으로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다음으로 진과 수 역시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하나의 조직이 만들어질 때 으레 있을 법한 자리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온전히 자신의 일에만 집중했고, 그 결과 삼안각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어엿한 하나의 정보조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적혀 있는 놈들 싹 다 조사하게.”

갈사량이 진에게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빠르게 내용을 살펴본 진이 물었다.

“누굽니까?”

“비밀리에 키워진 조직이네.”

종이에 적혀 있는 내용은 벽리단이 죽였던 무인들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몇 명이며 어떤 무공을 쓰고, 어느 정도의 무공수위인지.

“상계의 조직에서 키워졌을 가능성이 높네.”

“알겠습니다. 조사해보겠습니다.”

“천망회에도 도움을 청하고.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초지급으로 알아 보게!”

“네, 알겠습니다.”

진이 밖으로 나가자 자리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던 백표가 입을 열었다.

“제가 주군을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까부터 온 그는 갈사량에게 이 부분에 대해 허락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군께서 원하지 않으시네.”

“그래도 전…… 걱정이 됩니다.”

“자네 마음은 이해하네. 하나 주군의 뜻이 완고하시니 이번만은 자네가 양보하게.”

“네.”

백표가 한숨을 내쉬며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어둠 속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걱정이 가득했다.

갈사량은 백표의 마음을 이해했다. 흑표대를 꾸리고 나서 기도가 날카로워졌지만, 원래 성격은 감상적인 면이 많은 그였다.

더구나 지금은 흑표대를 이끌고 있지만 원래 그의 임무는 맹주를 호위하던 맹호단주였다.

누군가를 지켜주기 위해 평생을 살아왔던 그가 이렇게 홀로 벽리단을 전쟁터에 보내놨으니, 얼마나 걱정 되고 마음이 쓰이겠는가?

갈사량이 옆으로 걸어가서 백표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더 힘든 일인 줄 아네. 하나 때론 기다릴 줄도 알아야겠지.”

“네, 군사님.”

“지금까지 그래왔듯 주군을 믿자고.”

두 사람은 저 멀리 어디선가 싸우고 있을 벽리단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원했다.

* * *

똑, 똑, 똑.

수라명왕검에서 한 방울씩 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선 채로 조용히 숨을 골랐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다음 적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적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있는 듯 없는, 없는 듯 있는. 나는 이 느낌을 주는 적이 어떤 부류인지 알 수 있었다.

살수.

상대는 살수이거나, 살수에게 무공을 익힌 자였다.

그는 주위에 은신한 채 오직 하나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내게는 행운이었다.

내 독문심법인 천무호심결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어떤 자세로도 운기가 가능했다.

나는 선 채로 재빨리 진기를 일주천하기 시작했다. 앞서 열 명의 고수와 싸우면서 내공소모가 컸던 것이다. 이럴 때 한차례의 일주천은 정말이지 행운이라 할 만했다.

물론 운기를 하면 온 신경을 예민하게 세우고 있을 때보다야 반응이 느리겠지만, 지금은 내공이 더 중요 했다.

설령 공격을 허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공을 확보하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진기의 일주천에 성공했을 때, 나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내가 선 채로 운기조식을 했었다는 것을.

주위를 살피듯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주 미세하게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어딘가에 놈은 있었다.

상대는 아주 조심스러웠고, 덕분에 나는 두 번째 운기까지 성공했다.

그렇게 세 번째 운기까지 성공하자 천마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 그 대상은 나를 노리고 있는 살수였다.

[멍청하군.]

[신중한 거지.]

[아무리 그렇다고 이렇게 내공을 막 채워주다니. 이놈아, 그만 재고 어서 공격해! 시간 끌면 너만 손해다!]

[당신 대체 누구 편이야? 살수라니까 괜히 마음이 가나?]

[살수는 나도 싫어해.]

[싫어하시는 분이 그렇게나 살수들을 보내셨나?]

[그야 수하들이 결정하는 거지.]

물론 그렇긴 하지만, 최종적으로 허가를 내린 사람은 자신이었다. 예전이라면 그만큼 널 죽이고 싶었다고 버럭 했을 텐데, 왠지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살수지만 상당한 고수다.]

[이미 들켜버린 놈이 뭐가 고수냐?]

[그야 상대가 나니까 그런 것이고.]

내가 상대의 기척을 느낀 직후 놈은 사라졌다. 이후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대단한 은신술의 고수란 뜻이다.

이 정도 실력자라면, 내가 알아차렸다는 것도 느꼈을 것이다.

뛰어난 살수들일수록 인내심이 강하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한 달도, 두 달도 기다리는 것이 살수다.

물론 이번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 이외에도 나를 죽일 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이 싸움에 있어 그에게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인내심이라는 살수의 가장 큰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는 싸움, 그것이 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이러고 있으니 정말 옛날 생각나네. 당신이 보낸 살수를 정말 지긋지긋하게 겪었지.]

[그때 살수들은 대단한 놈들이 많았는데.]

[지난 일이라 기억이 왜곡된 것은 아니고? 요즘이나 그때나, 살수가 살수지.]

[아냐. 확실히 요즘 애들이 근성이 없어.]

[나보고 정파 꼰대라더니? 그런 말하면 마교 꼰대 소리 듣는다.]

[하라고 해! 망할 요즘 놈들! 멍청한 요즘 놈들!]

[하하하.]

천마에게 요즘 애들 취급을 당한 이 살수는 결코 멍청하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천마와 대화를 나누고, 그중에서 웃음을 터뜨리던 바로 지금 이 순간 공격을 해왔으니까. 천마와 대화를 나눈 이후 내가 가장 마음을 풀고 방심한 순간이었다. 그 만큼 실력이 뛰어나고, 감이 좋다는 뜻이기도 했다.

쉭!

내 목을 노리고 비수가 날아들었다.

아주 작고 날카로운 비수였는데, 어찌나 빠르고 위협적인지 옆에서 갑자기 팟하고 비수가 생겨나서 확 찔러오는 그런 기분이었다.

쉬이이익!

서걱!

너무 빨라서 절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비수는 내 목 옆에 멈춰 있었다.

어느새 뽑혀 나온 수라명왕검도 허공에 멈춰 있었다.

수라명왕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비수를 내지른 살수의 피였다.

살수의 공격을 느끼는 순간, 벼락 처럼 빠르게 그를 벤 것이다.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복면 사내의 눈동자가 생기를 잃었다. 이내 그가 앞으로 쿵 쓰러지더니 바닥에 피웅덩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방심이 아니라 방심 할아비라 해도, 살수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 살수에게 죽기에는 너무나 많은 살수들을 겪었으니까.

다시 저 멀리서 수십 명이 넘는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지 않고 차륜전(車輪戰)을 벌이는 이유는, 막무가내 합공이 훨씬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함께 공격하는 합격술을 익히지 않으면, 오히려 동료가 방해가 돼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상대가 압도적으로 강할 때는 이렇게 연속해서 계속 공격해서 상대의 힘을 빼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이봐, 천광이.]

[왜?]

[내 무공실력이 더 높아진 것 확실한가?]

[확실해. 한데 왜 묻나?]

[대멸겁을 한번 써볼까 해서.]

[대멸겁? 그게 뭔데? 헛! 설마 너?]

[그래, 당신에게 썼던 마지막 초식 이름이야.]

[그 망할 것을 여기서 쓰겠다고?]

[어차피 다 죽여야 한다면, 차라리 그게 낫지 않겠나?]

[그렇긴 하겠지만. 전에도 말했지만 네 무공은 완전하지 않아서 위험해!]

[그래서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 정말 불완전한 무공인지 아닌지. 왠지 지금 시도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물러나란다고 물러날 적들이 아니었다. 어차피 다 죽여야 한다면, 대멸겁을 한번 써보고 싶었다.

여전히 나는 추혼수라검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널 보고 답답한 정파 꼰대라고 한 말은 취소해야겠어. 정말 과감하군. 앞으로 학살자로 불러주지.]

[상관없어.]

[진심인가?]

[이런 것 저런 것 다 따져서 강호를 어떻게 지키겠나? 당신과 싸울 때, 내가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었지.]

[그게 뭐지?]

[이것저것 따져선 결코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것. 이봐, 천광이. 우리가 그 전쟁에서 서로 몇 명을 죽였는지 아나? 이제 와서 학살이니 뭐니 하는 것은 웃긴 일이지.]

천마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야 정파인들을 많이 죽인 것을 자랑으로 삼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달라지고 있었으니까.

[그걸 쓰면 내공은?]

[모두 소진되겠지.]

[그래도 괜찮나? 남은 놈은 어떻게 하려고?]

내가 어둠 속에서 모여드는 적들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아마 남는 놈은 없을 거다.]

* * *

암흑대상과 암흑이상은 차를 파는 수레 앞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길거리 찻집이긴 하지만, 차 맛은 아주 좋았다.

“오늘은 절대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겁니다.”

차를 홀짝이던 암흑이상의 장담에도 암흑대상은 고개를 한번 끄덕였을 뿐이다.

암흑이상은 그가 오늘 싸움 역시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죽이지 못하더라도, 놈에게 내상이라도 입힌다면 다음 싸움에선 반드시 제거할 수 있겠지요.”

“부상을 당하면 놈은 나오지 않을 거네. 어딘가에 꽁꽁 숨어버리겠지.”

“비겁하게 숨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자는 대의명분에 휘둘리는 부류가 아니라네.”

암흑이상은 첫날 함정임이 밝혀졌음에도 오늘 상대가 나온 이유가 협의와 대의를 지키려는 정파인 특유의 명분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등의 쓸모도 없는 그 대의명분 말이다.

“네? 그런 놈이라면 오늘은 왜 나온 것입니까?”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깜짝 놀라는 암흑이상을 보며 암흑대상이 덧붙여 말했다.

“혹은 달아날 자신이 있거나.”

바로 그때 연락을 취하는 수하가 야시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앞서 소식을 전할 때보다 발걸음은 더욱 바빴고, 얼굴은 더욱 굳어 있었다. 암흑대상과 암흑이상의 시선이 저 멀리 상점을 향하는 수하를 향했다. 또 하나의 불이 또 꺼지려나 싶어 한숨을 내쉬는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사내가 다른 상점에 연이어 들른 것이다.

곧이어 주위에 있던 네 개의 상점 불이 동시에 꺼졌다.

암흑이상의 입이 쩍 벌어졌다.

“맙소사! 한꺼번에 전부 당한 겁니까?”

“그런 것 같군.”

암흑이상은 경악했지만 오히려 암흑대상은 담담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자군. 상상조차도 못 할 정도로.”

암흑대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야시의 모든 시선이 암흑대상을 향했다.

“이 시간부로 야시는 폐장한다.”

모두들 놀라서 바라보았다. 단 이틀 만의 폐장이었다.

암흑이상이 모두의 마음을 담아 물었다.

“대상? 진심이십니까?”

“그렇다네.”

암흑이상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렇게 폐장하면 다음 대상 선출에 악영향을 미칠 겁니다.”

“지금 폐장하지 않으면 우린 모든 상점을 다 잃을 것이네.”

암흑이상이 더는 말리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암흑대상의 단호한 표정에서 이미 결론을 내렸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네 개의 상점이 동시에 불이 꺼진 것은 자신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지엄한 명을 받듭니다.”

암흑이상의 고개를 숙이며 명령을 받자, 그곳의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야시의 등불이 줄줄이 꺼지고 그곳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요?”

암흑대상이 어둠에 묻힌 야시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물었다.

“매혈상인 도착했나?”

그러자 어둠 속에서 상큼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이미 와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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