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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의 신(4)
암흑대상은 암흑이상과 함께 야시장 간이주점에 앉아 술을 마시며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반드시 놈을 없앨 겁니다. ”
“그래야지.”
“자, 한잔하시지요.”
암흑이상이 술을 따라주었다.
“자고로 하나의 손이 열 개의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번째 암흑대상을 연임하고 있는 그였다. 그럴 리는 없지만 이번에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야시장이 폐장하게 된다면? 다음 암흑대상 선출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때 사내 하나가 뛰어오더니 어딘가로 뛰어갔다. 어제 두 사람이 당과를 사먹었던 바로 그 수레였다.
잠시 후 수레를 밝히던 등불이 꺼졌다.
암흑이상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빌어먹을 놈! 여인에게도 가차없군요.”
당과수레에서 여인들로 구성된 설화라는 조직을 내보냈던 것이다.
“미인계가 통하는 자 같았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거다.”
암흑대상이 들고 있던 술잔을 비웠다.
“오늘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구나.”
* * *
거대한 사내가 쿵쿵 땅을 울리며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누가 덩치가 크면 둔하다고 했는가? 사내는 자신의 몸무게를 속도로 바꾼 것만 같았다.
부우우웅!
내 머리통만 한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피했음에도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사내는 빨랐다. 빠를뿐더러 맷집도 엄청났다. 금강불괴(金剛不壞)라고 허풍을 쳐도 될 만큼 몸뚱이가 단단한 데다, 어깨와 손목, 허벅지와 정강이에 튼튼한 호위갑까지 차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상대의 목을 노리고 수라명왕검을 찔러 넣었다.
쉬이익!
깡!
사내가 팔목에 차고 있던 쇠로 만든 보호대로 검을 막았다.
싁! 쉬익!
연속해서 찔렀지만 이번에는 날렵하게 검을 피했다. 만약 이번에도 팔목으로 막았다면, 두 번째 공격에 손등을 찔렸을 것이다. 하지만 사내는 그것을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 몸을 피해버린 것이다.
검과 주먹이 서로의 목숨을 끊기 위해 빠르게 오갔다.
쉬쉬쉬쉭!
파파파팡!
그는 오직 주먹만을 사용했는데, 양팔을 두 자루의 짧은 검처럼 사용했다. 공격은 빠르고 강력했고, 방어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오직 주먹질 만으로 이런 대단한 신위를 발휘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예상하건대 선학비술로 상대하는 것이 더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내는 병장기를 든 상대에게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호인 대부분은 병장기를 사용하는 이들이었다. 권법을 사용하는 이는 열에 하나.
따라서 대부분의 권법은 병기를 가진 이를 상대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발전해올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사내만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이 특별한 권법을 좀 더 경험해 보기 위해서 더 오랫동안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뒤로 훌쩍 물러난 나는 검을 회수 했다. 내가 갑자기 검을 회수하자 사내가 깜짝 놀랐다.
“왜 방식을 바꾸지?”
“내공을 아껴야 할 것 같아서.”
사내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은 설마 네 권법이 조금 전의 검술보다 더 대단하다는 뜻인가?”
“직접 확인해 봐라.”
내가 곧장 그를 향해 쇄도했다.
주먹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날아드는 주먹을 휘감으며 회전했다.
우둑!
버티면 팔이 부러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는 그의 몸이 함께 돌았다.
퍼억!
내 손바닥이 그의 팔꿈치를 가격했다. 바로 갑옷과 갑옷 사이의 맨몸이 드러난 부분이었다.
우둑!
팔꿈치에 타격을 입었지만 사내의 다른 주먹이 내 얼굴을 노리며 날아 들었다.
부웅.
주먹이 빗나갔고, 다시 한 번 내 손바닥이 그의 팔꿈치를 가격했다.
퍼억! 우두둑!
“윽!”
사내의 입에서 짤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우람한 팔에 매달려서 팔꿈치를 노리다니? 너무나 생소한 싸움방식에 사내는 당황했다.
자연히 그의 동작이 커지기 시작했다.
후우웅! 후웅!
엄청난 주먹이 맹렬히 허공을 갈랐지만, 정작 자신의 몸에 매달린 목표는 맞추지 못했다.
퍼어억! 꽈드드득.
세 번째 손바닥 타격에 드디어 팔이 부러졌다.
사내의 한쪽 팔이 축 늘어졌다.
“으아아아아!"
그가 괴성을 질러대며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내공을 모두 쏟아내며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선학비술의 여러 초식들은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욱 큰 충격이 되돌아갔다.
다음으로 한쪽 다리가 부러졌고, 코뼈가 내려앉았다.
마지막 순간 내 주먹이 그의 얼굴에 작렬했다.
퍼어어어억!
끊어진 연처럼 허공을 날아간 사내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는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마지막에 주먹을 사용해서 없앤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먹만을 사용했던 그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다.
천마 역시 사내의 무공에 호기심을 보였다.
[저자의 무공이 특이하군. 정공이 아닌 듯 보였는데?]
[정사지간의 무공 같았다.]
권법을 계승하는 정파 문파는 저런 호신갑을 입지 않을뿐더러, 반드시 발을 사용했다. 하지만 사내는 끝내 발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마 사파 계열의 무공이 정공과 섞이면서 변형되어 내려온 듯 보였다.
[싸울 때 오직 주먹만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던데.]
주먹만으로 난투를 벌이는 초식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천마 역시 동의했다.
[그렇더군.]
[선학비술에도 저런 초식이 하나쯤 있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하나 만들어.]
[내가 만들라고?]
[못 만들 것 있나?]
그렇긴 하다. 선학비술의 대성을 이뤘기에 이 무공에 대해선 알 만큼 알고 있었다. 초식 하나 정도는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저 앞으로 열 명의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술을 마시던 암흑대상의 시선이 다시 한 곳을 향했다.
저 멀리 상점 하나가 또다시 불빛이 꺼졌다.
“오랜만이군.”
“네?”
암흑대상의 말에 술상을 내려다보고 있던 암흑이상이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무기력한 기분을 느낀 적 말일세.”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우린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정체되어 있었지요. 이번이 내부를 재정비할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좋은 일이지.”
암흑대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여 물었다.
“다음은 어딘가?”
“우리가 술을 마시고 있는 이곳 주점입니다.”
암흑대상이 희망에 찬 눈빛을 반짝였다.
“그들이라면!”
* * *
내공을 아낄 수 있는 상대가 있고, 아낄 수 없는 상대가 있다.
열 명의 고수들.
정말이지 당대 십대고수들이라고 소개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는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무공 역시 다양했다. 검을 든 자들, 도를 든 자, 창을 든 자, 맨손인 자, 채찍을 든 자…… 그야말로 다양한 병기와 무공의 소유자들이었다.
그 열 명이 나를 합공해왔다. 내공을 조절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누굴 먼저 죽이느냐?
이번 싸움에 그것을 따지지 않았다.
모든 정신력을 끌어올렸다. 이제 나 스스로가 한 자루 칼이 되어야 할 때다.
최대한 빠르게, 가능하면 한 호흡으로, 놈들이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작전을 세우기 전에 끝장을 볼 작정이었다.
정면에 서 있는 사내를 향해 달려갔다.
살기를 감추지 않고 쇄도하니 정면의 사내는 맞상대하는 대신, 방어를 선택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것이 없었다면 모를까, 이미 그들은 내 실력을 알고 있었다.
정면 사내를 돕기 위해 좌측에서 강기가 날아들었다. 나는 그 강기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몸으로 받았다.
꽝.
우측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우측 사내가 검을 내질렀다.
마지막 순간 내 움직임이 달라졌다. 무기력하던 몸이 갑자기 생기가 도는 것처럼, 홱 몸을 비틀며 검을 날렸다.
쉬이이이잉!
촤아아악!
우측 사내의 목이 갈라졌다. 처음부터 그를 목표로 일부러 공격을 허용한 것이다. 흑룡신갑을 입고 있었기에 선택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자 이제 남은 자는, 아홉!
내게 또 다른 강기가 날아들었다.
퍼억!
한 번 더 강기에 휩쓸려 튕겨졌다. 그쪽에 있는 사람이 훌쩍 몸을 뒤로 날려 피했다. 한 번은 당해도 두 번은 안 당하겠다는 의지였는데, 내 목표는 그가 아니었다.
슁.
우측에 있던 사내의 심장에 비수가 박혔다. 애초에 내 목적은 그였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공격이었기에 그는 내 비수를 막지 못했다. 남은 자는 여덟!
주르륵 미끄러져 가는 내게 강기가 쏟아졌다. 속임수였다고 생각했는지 공격은 거칠고 신경질적이었다.
좋다, 그렇게 흥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바라는 바였다.
싸움은 언제나 침착해야 한다. 삶에서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지만, 생사를 다투는 싸움에서도 먼저 흥분하는 쪽이 지기 마련이다.
부우우웅.
뒤통수를 노리고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상대는 각법의 고수였다. 그 어떤 병장기보다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원래라면 고개를 숙여서 피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각법 사내 역시 언제나 그렇게 예상했을 터인데, 내 반응이 달랐다.
뒤로 몸을 눕히며 공격을 피했다. 내 얼굴 위로 지나가는 다리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퍽!
사내의 몸이 휘청하며 균형을 잃었을 때, 사내 쪽으로 회전해 들어가며 몸을 날렸다.
빠아악!
내 무릎이 정확히 사내의 턱을 날렸다. 튕겨져 날아가는 사내를 방패 삼아 함께 날았다.
동료를 방패로 삼아 쇄도하자 정면에 있던 사내가 위쪽으로 튀어 올랐다. 그에게는 안된 일이었지만, 내가 예상한 움직임이었다.
쉭쉭! 푹푹!
수라명왕검이 그의 단전을 연속해서 찔렀다. 방패로 삼았던 사내와 배를 찔린 사내가 동시에 바닥을 뒹굴었다.
이제 여섯.
내 공격은 단 한 호흡도 끊어지지 않았다.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내 검이 벼락처럼 빠르게 연속해서 허공을 내질렀다.
촤라라라라라락!
피이이이이이익!
검이 공기를 가르며 만들어 낸 서로 다른 두 개의 파공음.
저 멀리 좌우에 서 있던 사내 둘이 동시에 터져 나갔다.
왼쪽 사내의 몸통이 기울어진 열십 자 모양으로 잘려 나갔고 오른쪽 사내의 가슴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상처에서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제일초식 찰나인과 이초식 진명인이 연속해서 사용한 것이다.
이제 남은 적은 넷. 정말 거의 한 호흡 만에 절반 이상을 죽인 것이다.
그들의 동요가 느껴졌다. 나는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도, 죽음의 각오를 다질 시간도 주지 않았다. 공포가 번져 나가는 이 순간이 적을 죽이기에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내질러진 창 너머로 필사적인 상대의 두 눈이 보인다.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앞서 상대했던 그 창술의 고수보다 강하지는 못했다. 반면 나는 그 때보다 더 팔팔했다.
빡!
첫 주먹이 사내의 얼굴에 박혔다. 뒤로 튕겨지는 사내를 뒤쫓아 들어 가면서 연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퍽! 퍽! 퍽!
단단한 사내의 몸이 찰흙처럼 움푹, 움푹 밀려 들어갔다.
뒤에서 날아드는 살기에 몸을 비틀어 피했다.
촤아아악!
내게 얻어맞던 사내의 몸이 강기에 찢겨 흩어졌다.
나를 죽이려던 공격이 사내에게 적중한 것이다.
하지만 강기를 날린 사람은 동료를 죽였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었다. 주먹이 연이어 적중했을 때, 이미 그는 숨을 거둔 후였으니까.
이제 셋!
채찍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나를 공격했다. 뱀처럼 꿈틀대며 나를 쫓아 왔지만, 나를 물지는 못했다.
도를 사용하는 사내의 필사적인 공격을 피해 파고든 내가 상대를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사내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지더니, 이내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졌다. 한번 무너진 둑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제 둘!
그 순간 욕설이 터져 나왔다.
나를 향해 모든 내공을 다 실어서 검을 내지르는 사내는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으니, 뒤쪽에서 채찍을 휘두르는 사내의 욕설일 것이다.
허공에서 두 자루의 검이 스쳤다. 검의 길이도 비슷했고 팔의 길이도 비슷했지만, 오직 하나의 검만이 상대의 얼굴에 박혔다.
돌아섰을 때, 살아 있는 뱀처럼 허공을 누비던 채찍은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사내는 자신의 채찍으로 목이라도 매고 싶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냐?”
“이 상황에 그것을 안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나?”
수라명왕검을 늘어뜨린 채 천천히 마지막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하나.
* * *
술을 마시고 있던 간이주점의 불이 꺼졌다.
상인이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은덕전을 반으로 나눠서 내밀었다.
암흑대상이 은덕전을 받아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는 나중으로 미룰 걸 그랬군.”
“죄송합니다. 야시 끝에 다른 주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술은 그곳에서 드시지요.”
“일이 이렇게 되어서 유감이네.”
암흑대상과 암흑이상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 야시 곳곳에 제법 불 꺼진 곳들이 보였다.
"이제 고작 둘째 날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암흑이상의 위로에 암흑대상이 발 걸음을 멈췄다.
“상점이 몇 개가 닫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네. 연달아 장사를 공칠 수도 있는 법이니까. 문제는…… 문을 닫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네.”
“아!"
암흑대상이 어둠처럼 깊어진 눈빛으로 야시를 둘러보며 말했다.
“빨라도 너무 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