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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04화 (20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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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의 신(1)

성왕보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무한 외곽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다루였다. 평소 만나던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곳이었다. 물론 성왕보가 요구한 장소였다.

약속 장소를 백여 걸음 남겨두고, 나는 성왕보가 배신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바탕 먼지를 일으키며 불어온 바람에서 피냄새가 났다. 실제 피냄새가 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미세한 느낌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이곳이 싸움터가 될 것이란 예감, 적어도 싸움과 관련해서 그것은 빗나간적이 없었으니까.

놀라거나 배신감을 느끼진 않았다. 어차피 이 자리가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까.

건물마다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고, 몇몇 행인들이 오가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광경이었음에도 천마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함정인가?]

[그런 것 같군.]

[그놈 참 잔망스럽군.]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거지.]

나와 암흑대상 사이에 끼어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성왕보의 노력이 이번에도 있었다.

나중에 내가 살아남는다면 낯선 곳에 약속장소를 잡은 것으로 내게 위험신호를 보낸 거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를 더 이용할 생각이면 믿어주는 척하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제거하면 그만이다.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때 이남일녀의 세 사람이 길을 막아서며 등장했다.

가운데 사내는 퉁소를, 오른쪽 사내는 칠현금(七絃琴)을, 왼쪽 여인은 비파를 들고 있었다. 느껴지는 그들의 기도가 대단했다.

음공?

정말 오랜만에 상대해 보는 무공이었다. 그것도 세 사람이 함께 음공을 펼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합주(合奏)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검술의 합격술보다 어려워서 지금껏 쉽게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 중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한 곡 듣고 가시겠어요?”

“좋소.”

싫다고 그냥 보내 줄 리 없었으니 나는 내공을 끌어올려 그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띵.

비파에서 터져 나온 첫 음이 공기를 진동하며 내 내부까지 진동시켰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음공임을. 엄청난 내공을 지닌, 그야말로 쉽게 보기 힘든 음공의 고수들이었다.

천마 역시 다소 놀란 어조로 말했다.

[강호에 저 정도 음공고수가 있었나?]

[나는 본 적이, 아니 들은 적조차 없다.]

[대단하군. 저런 자들이 강호에 알려지지 않았다니.]

저들만큼이나 대단한 것이 암흑대상이었다.

사람을 부리는 일은 밥 해주는 여인네 하나 쓰는 것도 심력이 들어가는 일이다.

하물며 저런 고수들이 강호로 튀어 나가지 않게 관리해 왔다는 것은,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암흑대상이 얼마나 대단한 지도력을 지닌 것인지를 증명하는 일이었다.

자, 그럼 오랜만에 한 곡 들어볼까?

나는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 움직임을 시작으로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칠현금의 음색은 독특했으며 비파는 은은했고 퉁소는 더없이 청아했다. 세 소리가 아름답게 어울렸다.

만약 이 연주에 공격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연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이 튕겨지고 관에서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칼날이 날아와 내 몸안을 후벼 파는 듯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충격이 더욱 강하게 전해져 왔다. 하지만 아직까진 내 호신강기로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가서자 연주 소리가 커지며 더욱 빠르고 경쾌해졌다. 이제 더 강해진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살벌해졌고 위험해졌다.

칠현금 위를 수놓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띵띠이잉띵띵띵띠이이이이잉.

다음 순간, 칠현금에서 선율을 타고 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쏴아아아아아아악!

귀와 몸과 머릿속을 진동시키던 공격에서 직접적인 공격으로 바뀐 것이다.

훌쩍 몸을 뛰어서 강기를 피했다.

파파파파파파팍!

내가 서 있던 바닥에 할퀸 자국들이 깊게 생겨났다. 호신강기도 찢어 낼 것 같은 그런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비파와 퉁소도 칠현금을 보조하며 공격을 높였다.

퉁소의 낮은 소리가 내 청각을 파고들며 내력을 손상시키려 했고, 비파의 음률이 내 정신을 뒤흔들었다.

칠현금의 공격은 더욱 거칠어졌다.

강기가 끝없이 날아들었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강기를 연속해서 발출하는 공격은 처음 접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음공에서.

나는 마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날아드는 강기를 피했다.

점차 그들에게 다가갔고 연주는 극에 다다랐다.

촤랑촤아앙촤앙촤라라라라랑.

내 움직임은 거의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절대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공격에도 반드시 사각을 찾아내서 피했다.

극에 달했던 연주가 천천히 잦아들었다.

연주가 끝났을 때, 나는 그들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땀에 흠뻑 젖은 채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겁을 먹었거나 원망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우리 연주를 마지막까지 들어줘서 고맙소.”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내가 좀 더 일찍 자신을 죽일 수 있었지만, 일부러 마지막까지 연주를 들어주었음을. 그래서 그들은 여한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잘 들었소.”

쉬이이이익.

한 줄기 검기로 세 사람을 동시에 베었다. 그들이 동시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천마가 짜증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너 이 자식, 비무 때 일부러 져준 거냐?]

조금 전, 내가 칠현금의 강기를 피하는 모습에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그치? 당신은 못 피했을 것 같지?]

[뭐? 웃기지 마! 당연히…… 아니 가까이 가기 전에 다 죽였지.]

[후후후.]

[피할 수 있었다고! 난 널 한 방에 죽인 사람이다!]

[그래, 져 준 것 아니다.]

그나저나 첫 번째부터 대단한 자들이 나섰다.

이제 시작이라는 듯 또 다른 한 사람이 앞을 막아섰다.

그는 머리를 깨끗이 빗고 잘 단장한 장년사내였다. 그가 귀를 틀어막고 있던 솜을 꺼낸 후, 세 시체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까진 나올 필요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더니.”

말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숨어서 내 싸움을 지켜봤음에도 저런 여유를 부린다는 것은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리라.

“큰소릴 칠 만하던데?”

“그랬나? 보다시피 난 제대로 못 들어서.”

“당신은 누군가?”

“육십만 냥."

“육십만 냥?"

“누군지가 뭐가 중요한가? 얼마 받느냐가 중요하겠지. 일 년에 육십만 냥 받는다. 저들은 삼십만 냥이었지.”

눈앞의 사내는 오직 돈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내임을 알 수 있었다. 원래 그런 사람인지, 혹은 암흑 대상이 이렇게 키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저 사람들은 각각 삼십만 냥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저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았던 것 같은데.”

순간 사내의 얼굴이 꿈틀했다. 그냥 던져본 말인데 내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초면에 아주 무례하군.”

“당신은 초면에 나를 죽이러 나오지 않았나?”

그에게 검을 겨누며 차분히 덧붙였다.

“누가 제값을 하는지 내가 알아봐 주지.

사내가 거칠게 도를 뽑아들었다.

“너,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사내가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쇄애애애애애액.

첫수부터 엄청난 도기를 뿜어내며 공격을 해왔다. 그의 몸값으로 육십 만 냥이 적당한 액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정말 보기 드문 고수였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나를 상대하면서 어설픈 초식을 날렸다간 제대로 공격다운 공격도 못 해보고 죽고 만다는 것을.

거친 도기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 다. 그냥 옆으로 피해선 부상을 당할 만큼 크게 휩쓸었기에, 빠르게 몸을 비틀어 세 걸음을 옆으로 피했다.

꽝! 파파파파팍!

내가 서 있던 곳이 박살이 났다.

동시에 사내가 나를 덮쳐왔다. 도기를 날린 후, 곧바로 나를 향해 쇄도해온 것이다. 내가 적을 상대할 때 곧잘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쇄애애애액.

날아든 도가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채앵!

수라명왕검과 허공에서 터져 나갈 듯 강하게 부딪쳤다. 허공에서 대치한 검과 도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내 도를 막다니! 정말 대단하군.”

과연 그는 이런 자부심을 가질 만한 실력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빈틈이 없었다.

문제는 그 실력만큼 정신력이 못 따라간다는 것이었고, 그것을 내게 간파당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존심이 너무 세서, 도발이 먹혔다.

"돈을 너무 쉽게 버는 것 아닌가?”

내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자 순간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음 순간, 꽉 다물고 있던 그의 빈틈이 한 칼 맞은 괴물의 비명처럼 입을 벌렸다.

쉬이익!

파앗!

사내의 손가락이 잘려 나가며 피가 튀었다. 검을 내리그으며 사내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것이다.

부상을 당했지만 먼저 역습을 한 것은 상대였다.

쇄애액! 쇄애애액!

위기를 느낀 그의 공격은 더없이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잘린 손가락에서 튀어 오른 핏방울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핏방울 중 하나가 터지며 그 자리로 한 자루의 검이 지나갔다.

쉬이이익.

푸욱.

수라명왕검이 이번에는 그의 오른쪽 가슴에 박혔다. 빠르게 몸을 비틀어 뒤로 뺐기에 상처는 깊지 않았다.

사내가 도를 휘두르며 물러났지만 내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리고 이 그림자는 본체보다 더 빨랐다.

어떻게든 만회하려는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한 수가 그의 어깨를 내리쳤다.

쉬이익. 서걱!

툭.

사내의 팔이 잘려나가며 바닥에 뚝 떨어졌다. 손은 여전히 도를 쥐고 있었다.

사내가 절망하던 그 순간, 한옆 건물에서 나를 향해 누군가 뛰어내렸다. 등에 봇짐을 짊어진 사내였다.

쉬익! 푹!

팔이 잘린 사내의 가슴을 재빨리 한 번 찌른 후, 내 검이 허공을 향해 내질러졌다.

쉬이이익!

검기가 허공을 갈랐다. 보통의 경우 내 앞까지 떨어졌을 때, 사내를 베었겠지만 뭔가 느낌이 좋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꽈아앙!

사내가 허공에서 폭발했다. 정확히는 사내의 봇짐이었다. 그 안에 진천뢰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폭발에 휩쓸려 내가 주르륵 뒤로 밀렸다. 봇짐 사내는 산산조각 나서 흩어졌고 앞서 팔이 잘린 사내는 반대쪽으로 나뒹굴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천천히 그에게 걸어갔다.

사내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육십만 냥은 저자도 받아야겠는데? 저 정도 용기라면 받을 만하지 않을까?”

죽어가던 그가 나를 올려다보며 힘겹게 말했다.

"……넌 얼마짜리지?”

그 말을 끝으로 사내가 숨을 거뒀다. 마지막까지 돈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있었다.

사내에게는 비감이, 암흑대상에게는 분노가 치미는 순간이었다.

그때 사방 건물의 옥상에서 봇짐을 진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가 수십여 명이었다.

내가 이미 죽은 사내를 바라보며 재빨리 말했다.

“조금 전에 한 말은 취소다. 육십 만 냥씩이나 주기에는 너무 숫자가 많군.”

사내들이 동시에 나를 향해 뛰어내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살조였다.

타앗.

내 신형이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마치 쏘아진 폭죽처럼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몇몇 사내는 내 움직임을 보았지만 뒤따르던 대부분 사내들은 내가 어디로 사라진지 알지 못할 정도로 빠른 비상이었다.

뒤늦게 일제히 허공을 향해 몸을 날렸지만 속도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내공을 계속 일으켜 끝없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날아오른 내가 아래를 향해 두 번 연속 검을 내질렀다.

쏴아아아아아아!

허공에서 아래로 검기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사초식 탈혼겁을 연속해서 두 번 발출한 것이다. 분열하기 시작한 한 줄기 검기를 따라 또 다른 검기가 그 뒤를 따랐다.

분열되어 흩어진 검기가 정확히 사내들에게 적중했다.

첫 폭발을 시작으로 그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꽝! 과앙! 꽈아앙! 꽝! 꽝!

어마어마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호신강기를 끌어올리며 발밑에서 불어오는 폭발의 기세를 타고 더욱 높이 날아올랐다.

이렇게 높이까지 날아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사람이 오를 수 없는 높은 곳까지 올라왔기 때문일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좋구나.]

[정말 좋구나.]

내 감탄에 천마가 동조했다. 나뿐만 아니라 천마도 비슷한 해방감을 느낀 모양이다. 어쩌면 훨씬 더 큰 자유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것들 정말 안 되겠다. 당신하고 싸울 때도 이런 자살조는 없었는데.]

[박살 내버려!]

버텨보려면 한참 더 허공에 떠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려면 내공소모가 너무 심했다.

난 그대로 아래로 몸을 내던졌다. 허공을 유영하며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천마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와! 죽인다! 더! 더 빨리!]

[이 늙은이야, 그러다 죽어!]

[가자! 이 겁쟁이 늙은이야!]

[정파 꼰대에 바람둥이에 겁쟁이에, 앞으로 또 뭐라고 부를 셈이냐?]

[다 네게 달렸지. 으하하! 신난다!]

우린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저 멀리 지면이 보였다.

[이제 슬슬 속도 줄여!]

[난 겁쟁이가 아니야.]

[뭐? 이 미친놈이! 속도 줄이라고!]

[싫다! 난 겁쟁이가 아니다! 살 만큼 살았으니 우리!]

[안 돼! 제발! 이렇게 죽는 건 아니야!]

마지막 순간 허공에서 몇 바퀴 몸을 회전한 후, 가볍게 바닥에 내려섰다.

겉으로 봐선 너무나 가벼운 동작처럼 보이겠지만,  내 무공의 정수가 들어간 신법이었다. 장담해도 좋을 한 수다. 그 누구도 저 높은 곳에서 이렇게 가볍게 내려설 수 없다고. 천마까지 간 떨어지게 했으니까.

[이제 누가 겁쟁이인지 잘 알겠지?]

[어휴,  이 미친놈! 모르는 놈이 보면 네가 천마인 줄 알겠다.]

[하하하.]

사방에 연기와 매캐한 화약 터진 냄새가 코를 찔렀고 주위는 초토화 되다시피 황폐해져 있었다.

그때 자욱한 연기 사이로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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