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203화 (2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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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3)

야시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길 좌우로 천막으로 지어진 상점부터 간이 가판대, 물건이 진열된 수레가 줄을 지었다.

상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서 몰려왔는지 수많은 손님들이 오가고 있었다.

성왕보는 알 수 있었다. 이곳의 상인들도, 혹은 손님들도 모두 고?하상계에 속한 이들이란 것을.

“야시는 자정에 시작해서 새벽 동틀 녘까지 열린다네.”

암흑대상이 야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 옛날 조직이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총 아홉 번의 야시장이 열렸다고 했는데, 그중 다섯 번이 첫날에 끝났고 사흘간 열렸던 적이 한 번, 닷새가 두 번, 그리고 칠 일간이 한 번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아홉 번 중 절반 이상이 첫날 목표한 적을 죽였다는 뜻이고, 싸움이 길어봐야 칠 일이 최대였다는 뜻이다.

이들 중에 수뇌부인 암흑십상이 섞여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모두들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는 자신의 진정한 재산을 감춘 채 작은 미곡상을 운영하는 주인일 것이고, 저들 중 또 어떤 사람은 거대 상단의 주인일 것이다. 혹은 그들 중 누군가는 이 거대한 조직의 열 명의 수뇌부 중 한 명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성왕보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인피면구를 쓴 채 야시를 열고 있는 저 모습이 진짜 그들의 얼굴일지도 모른다고. 평생을 진짜 신분을 속이고 살아가는 이들 일 테니까.

그 면구 아래에 누가 들어 있는지 는 오직 암흑대상만이 알 것이다.

“왜 우리가 전쟁을 벌일 때 개장이란 표현을 쓰고 야시장을 여는지 아는가? 우리 본분을 잊지 않기 위해 서네. 우린 어디까지나 상인들이란 것을.”

“하지만…… 결국 우리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자구책일 뿐이지. 아주 오랫동안 무림인들은 우리 상인들의 돈을 갈취해 왔네. 밤낮없이 노력해서 번 돈을 기생충 같은 놈들에게 다 빼앗겼지.”

그에 대한 분노는 성왕보 역시 평생을 느껴온 것이었다.

보호비 명목으로 뜯어가고, 지원금 명목으로 뜯어가고, 생일이면 생일이라 값비싼 선물을 해줘야 하고.

가장 화가 나는 것은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시 여긴다는 점이었다.

이런 것들이 성왕보가 궁극적으로 이 조직에 들어오게 된 이유기도 했다.

“조직은 명분과 정체성이 아주 중요하지. 우린 근본적으로 무를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네. 우린 금력으로 무력을 사서, 상대의 무력을 제압하지. 무공을 익힐 시간에 돈을 벌어 무공을 익힌 사람을 사는 사람들이란 말일세. 따라서 우리의 무력과 무림인들의 무력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았습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구경해볼까?”

우리가 북적대는 시장을 걸었다.

“저들은 모두 전투상단의 주인들이라네. 강력한 무인들을 고용하고 있는 상단들이지.”

첫 번째 멈춰선 수레에서 당과를 비롯해 여러 꼬치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당과 두 개만 줘보게.”

“감사합니다.”

주인 사내가 꿀이 잔뜩 발린 당과 꼬챙이를 두 개 내주었다.

암흑대상과 성왕보가 하나씩 나눠 먹었다.

‘‘얼마인가?”

“다섯 푼입니다.”

“여기 있네.”

암흑대상이 주인장에게 돈을 건넸다. 성왕보는 진짜 물건을 팔고 돈을 건네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각 상점마다 거느리고 있는 무인들이 다르다네. 조금 전의 그 당과 집에는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이뤄진 설화(雪花)라는 조직이 준비되어 있다네. 달콤한 당과와 잘 어울리지?”

“과연 그렇군요.”

“하지만 처음부터 여인들을 내보낼 순 없겠지? 더구나 그자는 미인계에 잘 걸릴 부류가 아닌 것 같으니.”

다음에는 옷을 파는 집이었다. 속옷은 물론이고 집에서 간편히 입는 옷부터, 다양한 무복들, 화려한 장삼까지. 여러 종류의 옷들을 팔고 있었다.

이번의 주인장은 여인이었다. 화려한 궁장차림의 여인은 굉장히 요염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좋은 옷이 많으니 천천히 골라보세요.”

이 옷 저 옷 살펴보더니 암흑대상이 한 옷을 골랐다.

“저 옷 어떤가?”

그가 가리킨 옷은 황색 무복이었다.

“옷을 고르시는 안목이 뛰어나시네요. 손님께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여인의 칭찬에 암흑대상이 껄껄 웃었다.

“나 말고 이 사람 사주려고 하네.”

옆에 있던 성왕보가 깜짝 놀랐다.

“제게 사주시는 겁니까?”

“전에 보니까 자네 이 색이 잘 어울리더군.”

암흑대상은 일전에 불시에 성왕보를 방문해서 직접 황금색 장삼을 입혀주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에 감사는. 잘 입게나.”

암흑대상은 앞서 대저와 대화할 때, 이번에 성왕보도 함께 제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태도는 너무 친근해서 그런 살심을 품었다는 사실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곳에는 어떤 무인들이 있습니까?”

“흑성검(黑星劍)이 이끄는 칠채보의단(七彩寶衣團)이 있다네. 아주 강력하지.”

흑성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한때 강북무림을 휩쓸던 고수였다.

“저들을 내보내실 생각이십니까?”

“강력하긴 한데, 숫자가 너무 많다네. 칠채보의단의 숫자가 무려 칠백이라네. 선공으로 내보내긴 무리가 있지.”

잠시 서서 주위를 둘러보던 암흑대상이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봉은 저기가 좋겠군.”

그가 향한 곳은 악기를 늘어놓고 팔고 있는 가판대였다.

“어떤가? 괜찮은 악기가 있나?”

그러자 아주 젊은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아주 훌륭한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네. 저걸로 하나 사지.”

암흑대상이 작은 비파를 하나 샀다.

“얼마 전에 귀여운 여인을 한 명 알게 되어서, 그녀에게 선물로 주면 좋을 것 같군.”

"아, 네.”

생각지 못한 말에 성왕보가 당황했다.

암흑대상 앞에만 서면 왜 이렇게 위축되는지. 단지 암흑대상이 이 조직의 수장에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있었는데, 때때로 보여주는 이런 의외성도 그중 하나였다.

암흑대상이 품에서 금화를 하나 꺼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돈이 아니었다. 그보다 좀 더 컸는데 앞면에는 장사를 뜻하는 상(商)자가, 뒷면에는 돈을 뜻하는 전(錢)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금화를 받자 주인장의 표정이 달라졌다.

“감사합니다. 저희 집 악기를 선택하신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울 겁니다.”

“기대하겠소.”

그곳에서 조금 떨어지자 성왕보가 물었다.

“저곳의 무인은 어떤 이들입니까?”

“삼악사(三樂士)라 불리는 이들이지.”

성왕보가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었다.

“아주 훌륭한 음악이 연주될 걸세. 아, 우린 저기 가서 한잔할까?”

길 건너편 천막주점에서 술을 팔고 있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장이 술과 안주를 내왔다.

성왕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곳에도 고수들이 있습니까?”

“물론이지. 이곳에 준비된 자들은 아주 강력하다네. 백 년 전 천하십대고수들을 본보기로 삼아 만든 십인의 절대고수들이지.”

“하면 아까 악기를 팔던 이에게 내어준 금화는 무엇입니까?”

“은덕전(恩德錢)이라는 것이네.”

“그게 무엇입니까?”

“저들은 내 수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하상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이들이 아닌가? 무작정 명령만 내릴 수는 없지. 해서 저들이 지닌 무인들을 사용할 때는 은덕전을 내린다네. 이후 은덕전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게 된다네. 자신이 이끄는 상단이나 조직에 어려움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 저 은덕전을 다시 내게로 돌려주면 내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준다네.”

“일종의 은혜를 갚는 돈이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성왕보는 자신은 이 조직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와 전쟁이 벌어지면 야시장이 열린다는 것만 알았을 뿐,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암흑대상은 이후에도 몇 군데 상점을 더 돌아서 은덕전을 건네주었다.

하나같이 무서운 고수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에게 만나자고 기별을 넣게. 그 자리에는 저들이 대신 나갈 것이네.”

“알겠습니다.”

성왕보는 내심 고민이 되었다. 과연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할지, 아니라면 이대로 암흑대상과 손을 잡아야 할지.

문득 이곳으로 걸어오면서 암흑대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는 것이 쉽지 않지?

그래,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섬의 안가 후원에 천기심환공을 발휘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천마와의 선학비술 수련을 위해서였다.

우린 정말이지 무공을 막 배운 더벅머리들처럼 신이 나 있었다.

둘 모두 패도를 기반에 두었다. 물론 천마의 선학비술이 훨씬 더 과격했다.

[비무 한판하자.]

[좋다.]

천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금쯤 한번 붙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린 맨손으로 마주 섰다.

그 어느 싸움보다 긴장되었다. 선학비술을 상대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천마가 거칠게 공격해왔다. 지금까지 내가 적들에게 날렸던 주먹질보다 배는 더 과격했고 거칠었다. 아예 딴 무공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굳이 이렇게까지 패도적으로 초식을 운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선학비술로 맞상대하면 그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마공에 기반을 둔 무공이고, 천마라고 하지만, 나보다 무공을 익힌 시간이 훨씬 짧았으니까.

대신에 한 가지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한번 끝까지 막아만 보자!

그가 어디까지 거칠어지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나는 오직 수비에만 치중했다.

천마의 공격이 더욱 빨라지고 거칠어졌다.

파파팡!

천마에게 일격을 허용했다. 싸움에 집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선학 비술에 극강의 패도가 실리자 수비만으로 막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선학비술로 막아내려 노력했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쳤다.

휘리리리릭.

내 몸이 허공을 붕 날았다. 내가 자주 쓰던 엎어 치는 바로 그 초식에 걸린 것이다.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천마의 광폭한 선학비술은 오직 수비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온몸에 엄청난 압박감이 밀려들었다. 이 힘을 거부하면 더욱 큰 충격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 이런 느낌으로 당하는구나.

적들이 지금까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꽝.

바닥에 충격을 받는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천기심환공이 깨어지면서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호신강기에도 불구하고 그 한 수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처음으로 천기심환공이 깨어진 순간이었다.

[대단하군.]

[후후, 그걸 이제 알았냐?]

[당신 말고. 선학비술 말이야.]

[그래, 부끄럽겠지. 이해한다.]

내게 처음으로 이긴 것이니 기분 좀 내게 해줄까? 우쭐대는 천마의 자랑을 들으면서 선학비술에 대해 생각했다.

과연 천마의 조부는 왜 이렇게 부드러운 선학비술로 완성한 것일까? 패도적인 선학비술이 훨씬 더 위력적인데?

[당신 생각은 어때? 선학비술이 마신결의 비밀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었다. 무공을 창시한 그의 할아버지도 못 풀었는데, 자신이 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그와는 달리 나는 이 모든 과정들 이 마신결을 푸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 * *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갈사량이 안가에 도착했다.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물론이오.”

그와 함께 후원을 거닐었다.

나는 갈사량에게 성왕보와 관련한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천소선이 성왕보를 죽이기 위해 주철룡을 보냈고, 내 손에 주철룡이 죽었다는 사실까지.

“이제 무림맹에 한바탕 변화의 바람이 불 겁니다.”

“그렇겠지요.”

주철룡은 이번 배신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가 돌아서는 바람에 다른 조직의 수장들도 연이어 돌아섰다. 이번에는 반대의 경우가 될 수 있었다.

“마철군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겁니다. 광월단주를 자기 사람으로 앉히면 멸마단과 함께 가장 강한 두 세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 것이니까요.”

현재로선 마철군의 힘이 커지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천소선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소?”

“은밀히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 어딘가 깊숙한 곳으로 숨어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성왕보를 죽이려 한 이유는 단지 복수나 도주를 위해서가 아닌 것 같소.”

이 부분은 내가 갈사량보다 더 정확히 느낄 수밖에 없다. 노인이나 천소선을 직접 겪었으니까.

“다른 의도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까 임부인과 대화를 나눠본 결과, 놈들이 어떤 대법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소.”

“만약 그렇다면 위험천만한 대법이겠군요.”

“그렇겠지요.”

“알겠습니다. 대법 재료가 될 만한 물건들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놈들의 행방을 알아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오. 그리고 성왕보는 암흑대상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요. 그 역시 잘 이용해야 하오.”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갈사량의 수하가 와서 뭔가를 전하고 돌아갔다.

"그자 양반은 못 되는군요.”

“성왕보요?”

“네, 은밀히 주군을 만나자고 연락을 취해왔습니다.”

그에게 꿈을 이루게 해주겠다고 말을 전한 후 첫 연락이었다. 분명 암흑대상과 관련한 중대한 일일 것이다. 혹은 함정이거나.

“그가 어떤 꿈을 꾸는지 이번에 확실히 알 수 있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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