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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93화 (19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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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연(2)

공수찬과 함께 도착한 곳은 황강 저잣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학당이었다.

아마도 이곳의 글선생을 만나러 온 모양이다. 학당에서는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선생이 어딜 갔는지 열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또래를 가르치고 있었다.

십오 세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소녀였는데, 눈이 예쁜 데다가 눈빛까지 깊어서 보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목소리도 아주 맑았는데, 소녀의 낭랑한 목소리는 그냥 듣고만 있어도 좋았다.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처음에는 단지 목소리가 좋아서라고 생각했는데, 조곤조곤한 그녀의 가르침에는 나이답지 않은 깊이와 차분함이 있었다.

나와 공수찬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수업을 지켜보았다.

“아주 총명한 아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공수찬이 미소를 지었다. 왠지 모를 의미가 담긴 미소로 볼 때, 아마 저 소녀를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아마 우리가 만나야 할 선생의 딸인 모양이다.

수업이 끝났고 소녀는 아이들을 챙겨서 내보냈다.

“잠시 지켜보려고 하다가 수업이 끝날 때까지 보게 되었구려.”

내 말에 공수찬은 여전히 뜻 모를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소녀가 우리에게로 걸어왔다.

공수찬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선생, 오랜만에 뵙는군요.”

소녀를 대하는 공수찬의 태도는 지극히 공손했다.

공수찬이 만나러 온 사람이 그녀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소녀의 나이는 이제 열서너 살에 불과했던 것이다.

“해마다 보내준 선물은 잘 받았어요. 아이들과 함께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답니다.”

“별것 아닙니다만, 만족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대체 누구이기에 공손찬이 해마다 선물까지 보냈던 것일까?

그녀와 인사를 나눈 후 그녀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 과정에 드러난 놀라운 사실.

“여기 계신 분은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십니다.”

“공총관보다 나이가 많다고요?”

나는 깜짝 놀랐다.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나이가 들어도 몸이 늙지 않는 병을 앓고 있답니다. 지금 이 모습에서 성장을 멈췄지요.”

개인사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소녀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언젠가 그런 병이 있다는 소리를 얼핏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자,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그녀가 우리를 학당 뒤쪽에 마련되어 있는 거처로 안내했다.

다탁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자 그녀가 차를 내왔다. 사람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소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보자, 그녀의 행동에서 앞서는 느끼지 못했던 기품이 느껴졌다.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한데 두 분은 어떻게 인연이 되셨습니까?”

공수찬의 대답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이분은 바로 스승님의 누님이십니다.”

“뭐라고요? 종총관의 누님이시라고요?”

나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종총관과 혈육인 것도 놀라운데, 누나라니!

소녀가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종사희(宗司喜)라고 해요.”

“실례되는 물음이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올해 일흔여섯이에요.”

맙소사!

일흔여섯이라면 나보다 누님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공수찬도, 종사희도 내 놀람을 이해한다는 듯 잠시 내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이 모습으로 계속 사는 겁니까?”

“아뇨. 외모만 이럴 뿐, 제 수명은 보통 사람과 같아요.”

자신의 나이를 밝혔음에도 그녀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밝게 웃었다.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참으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젊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녀의 경우는 달랐다.

어차피 사는 것, 젊게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남들이 살아보는 정상적인 삶을 그녀는 살지 못했을 것이다.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강호를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이 병에 대해 알게 되면 모두가 선입견을 가지고 그녀를 대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에겐 천형과도 같은 병이었다.

이윽고 공수찬이 나를 이곳에 데려와 그녀를 소개해준 이유를 밝혔다.

“이번에 상단을 운영해 나가면서 중원의 상계를 다각도로 조사했습니다. 제 정보통과 삼안각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한데 그 과정에서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

“자금의 이동에서 수상한 점들을 발견했습니다. 막대한 자금들이 어느 순간 증발해 버리는 것이었지요. 보통의 경우,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갔다거나, 어딘가에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대충 추측이 됩니다. 하지만 제가 발견한 자금은 그냥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그 자금이 배후세력의 군자금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분명 도련님께서 하시는 일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모시고 온 것입니다. 여기 종어르신께서 중원 상계에 대해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가지신 분이니까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왜 공수찬이 이곳에 데려왔는지.

종사희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공선생께서 애써 제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고 계십니다만, 저는 그저 병에 걸린 여인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럴 리가 없겠지. 그랬다면 우리의 만남은 애초에 이뤄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나는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그녀다. 우린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

그녀가 어떤 사람일까? 이 순간의 만남에서 그녀에 대해 알 수 있을까? 그녀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일까?

공수찬이 그녀를 믿는 것과 별개로, 혹은 그녀가 종총관의 누이라는 사실과도 별개로, 나는 객관적으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느끼려고 애썼다. 모든 것은 내가 판단해야 한다. 그 결과도 내가 책임져야 했으니까.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선의를 읽었다. 결코 연기로는 만들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내가 비로소 본격적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한 치의 거짓이 없는 말임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나는 그녀에게 지금의 상황을 솔직히 밝혔다.

“무림맹과 무림맹주를 배후에서 조종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종사희는 놀라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반응에서 어쩌면 그녀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와 전대 총군사, 맹호단주, 그리고 여기 공총관이 힘을 합쳐 그들에게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대륙상단의 단주인 성왕보가 그들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대상연에 참가하기 위해 이곳에 온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대해야 상대도 진심으로 대할 것이다. 진실을 말해야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종사희가 잠시 나를 응시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나이답지 않게 의지가 강건하신 분이군요.”

그녀가 지닌 외모와 실체의 부조화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녀 역시 내게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이리라.

그녀가 질문을 던졌다.

“강호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성왕보입니까?”

“아니에요.”

“강북상단이나 황룡상단의 주인들입니까?”

그들은 성왕보와 더불어 강호삼대상단의 주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그들도 아니에요. 그들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지요.”

“그게 누굽니까?”

그녀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혹 지하상계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지하상계?

“혹 염왕채 같은 것들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공수찬 역시 알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다시 설명했다.

“흔히들 그렇게 생각하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지하상계는 다른 의미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무림맹의 배후에 누군가 있다고 하신 것처럼, 중원상계의 암중에도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상계까지 배후세력이 있다는 말에 놀람과 분노로 온몸의 털이 일제히 곤두섰다.

“그들이 누굽니까?”

“누군지는 저도 알지 못해요.”

“언제부터 등장한 자들입니까?”

설마 내가 맹주였던 시절에도 있었던 자였을까?

“그들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적어도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으니까요. 그들은 절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나는 잠시 멍한 상태였다. 설마 이런 존재들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녀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 중요한 언급이 있었다.

“오래전 천하진이 사파와 마교를 치고, 무림맹의 내분을 잠재우는 그 시기에도 그들은 존재했어요. 오히려 분열과 전쟁을 이용해서 막대한 이득을 얻었지요.”

빌어먹을! 그게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전쟁에는 온갖 종류의 전쟁물품들이 들어간다. 그것도 상상도 못 할 막대한 양이다.

갈사량은 공평하고 합법적으로 처리했겠지만, 그 이면에 놈들이 존재했었다면?

“그들이 몇 명인지도 모르겠군요.”

“아뇨. 수뇌부는 모두 열 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들은 절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셨지요? 한데 어떻게 아십니까?”

그러자 그녀가 만난 이후 처음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사이를 두고 그녀가 말했다.

“제 아우가 지하상계에 있었답니다. 정확히는 그 열 명의 사람들 중 한 사람을 주인으로 모셨지요.”

엄청난 비밀에 나는 경악했다. 다시 말해 종총관이 지하상계에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놀란 나를 보며 그녀가 말했다.

“제 병을 고치기 위해 그 아이는 미친 듯이 돈을 벌었지요. 그 결과 젊은 시절에 제법 많은 돈을 벌었지요. 하지만 그것으로는 제 병을 낫게 하기에 턱없이 모자랐어요.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일들을 하다가 그들과 인연이 닿았지요.”

그녀의 말은 더없이 차분했지만, 나는 그 말에 담긴 깊은 회한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동생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자책감은 그 어떤 위안으로도 풀 수 없는 것일 테니까.

“종총관께서는 어떻게 그곳에서 빠져나온 겁니까?”

“운이 좋았어요. 그곳을 빠져나오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밀유지란 명분하에 살인멸구당했지요. 하지만 그곳에도 간혹 좋은 사람이 있답니다.”

종총관에게 이런 과거가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깨어났을 때, 치료를 해준 이가 종총관이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종총관이 의술에도 해박했던 이유를. 그는 누이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의술까지 배웠던 것이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암흑대상이라 불리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녀가 결론을 내리듯 덧붙였다.

“중원의 상계는 암흑대상과 그 열 명의 수뇌부들이 장악하고 있어요.”

* * *

“동호상단에서 이번 일을 위해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대상연은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우선 대연회가 열리는 장소로는 동호상단의 본단 대객청에서 열리기로 했고…….”

성왕보는 수하의 보고를 흘려듣고 있었다.

그는 암흑대상과의 그날의 술자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날 자신은 그와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우리가 그자를 끌어들인 이유가 뭐였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섭니다.”

“그렇지. 하면 권력을 장악하려는 이유는 뭐였지?”

“이권을 얻기 위해서지요.”

“이권은 왜 얻으려는 것인가?”

“돈을 벌기 위해섭니다.”

“그래, 바로 그거지. 그 이유를 잊으면 안 된다네.”

성왕보는 알고 있었다. 암흑대상이 네 번이나 그 자리를 연임할 수 있었던 것도, 저 철저한 목적의식을 단 한 번도 잃지 않아서였다.

“그를 없애야겠네.”

“쉽지 않습니다. 천하진이 죽은 이상, 이제 그자가 천하제일인입니다.”

“그가 진정 천하제일이라면 상대에게 이렇게 고전하고 있지 않았겠지.”

“……!”

암흑대상이 말했다.

“이독제독. 상대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서 제거하세.”

“그럼 남은 독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돈으로 해독하세. 깨끗이 해독해서 그자 자리에 두면 되겠지.”

“돈으로는 포섭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놈은 갈사량을 수하로 끌어들인 자입니다. 저는 총군사였던 갈사량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결코 쉽게 누군가를 모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을 수하로 두었다면 결코 황금에 굴복하는 사내가 아니란 뜻이기도 합니다. 천가의 칼이 그에게 박히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요.”

반면 암흑대상은 여전히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포섭된다고 믿네. 포섭되지 않는다면 아마 포섭될 만큼 충분한 돈을 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

그가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비웠다. 성왕보는 내심 궁금했다. 저 똑똑한 사람이 이렇게 고집을 피우며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가? 내가 왜 그렇게 믿는지.”

눈빛만 봐도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저 똑똑한 암흑대상이 말이다.

“네, 솔직히 궁금합니다.”

암흑대상이 앞에 놓인 술잔을 비웠다.

“돈으로 누구라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진다면…… 우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라네.”

성왕보가 회상에서 벗어났다.

보고를 마친 수하는 말없이 뒤에 서 있었다.

성왕보가 그에게 물었다. 아니, 자신에게 묻는 말일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차마 ‘돈에 대한 열망을 빼고 나면’이란 말은 덧붙일 수 없었다.

그 대답은…… 이미 자신도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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