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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90화 (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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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비술(3)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가려면 네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아야지.]

내 말에 대번에 나를 향한 천마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설마 혈뢰천화공을 내놓으라고? 미친놈! 어림없다!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혈뢰심법은 너희 정파심법과 정반대의 원리로 운용된다고. 익혔다간 혈맥이 터져서 죽게 될 거다.]

[난 혈뢰천화공은 필요 없다.]

[뭐? 그럼 뭐를?]

그제야 천마가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천마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너 이 새끼?]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은 마신결이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더 말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누가 더 손해냐 아니냐의 부분이 아니었다.

마신결은 혈천신교에서 오직 교주에게만 일인전승되는 것이었으니까. 그것을 알려준다는 것은 존재의 근원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 것이다.

[대체 왜 자꾸 마신결을 알고 싶어 하지?]

[호기심이다.]

[헛소리!]

맞다.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내가 운이 좋아서 선학비동을 발견했다고 말했을 때 천마는 이렇게 말했다.

운 따위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운명이 나를 이끌어서 선학비술을 배우게 된 것이라고.

만약 그의 말처럼 이 모든 것이 운명의 이끌림이라면?

정파 무림맹주인 내가 천마의 무공을 배우게 되었다. 내 운명이 이렇게 이끌린다면?

마신결의 비밀을 푸는 것 또한 내 운명이지 않을까?

[이 자식아! 마신결은 어림없다.]

나 역시 쉽게 얻어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얻어낼 것이다.

* * *

“난 너희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약속했다.”

광두가 앞에 늘어선 사내들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그들을 바로 이번 태성상단 무인 모집에 뽑힌 인물들이었다.

보통 상단에 속한 무인조직은 상단 이름을 따서 짓곤 했다. 광두 역시 이번에 모집한 조직을 태성검대라 지었다.

“최고의 대우는 너희들이 최고의 무인이기 때문에 약속한 것이다.”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는 광두의 말에 박력이 실렸다. 그 누구도 눈앞의 광두를 무시하지 못했다.

송화린이 그러했듯, 벽리단이 전수해준 광두의 남해칠식은 수하들을 압도하는 무공이었다.

“우린 상단의 물건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가 있는 한 상단의 재산을 도적들에게 빼앗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알겠나?”

“네!”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그들은 백표와 함께 가려 뽑은 무인들이었다.

첫째도 인성, 둘째도 인성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첫째는 실력, 둘째가 인성이었다.

백표는 하나의 가르침을 주었다.

언제나 실력을 우선으로 뽑아야 한다고. 이 조직이 강호의 조직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어설픈 감정에 휩싸이는 순간, 결국 모두가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구제불능이라면 모를까, 우선 실력으로 뽑고 강력한 지도력이든, 혹은 인간적인 매력이든, 뭐든 사용해서 그를 변화시키라고 했다.

물론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광두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만큼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광두는 백표의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지금 편하자고 쉬운 선택을 하지 말자.

“중원상계에서 최고의 검대가 누구인지 확실히 보여주자!”

“네!”

우렁찬 대답에 광두는 가슴이 뿌듯했다. 자신이 변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는 사람과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상황에 처해보니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자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도련님.’

벽리단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여전히 벽씨검문의 마당이나 쓸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행복할 수 있지 않느냐고? 이렇게 강호인으로 살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 의구심에게 광두는 단호히 말할 수 있었다.

아니, 난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내일 당장 죽게 되더라도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변해갈 것이다.

‘도련님을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 * *

나는 철방 뒤쪽 공터에서 가부좌를 틀고 심법수련에 빠져 있었다.

천무호심결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언제나 발휘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집중해서 운기하면 더 나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두정을 도와 작업을 시작한 지 두 달 하고도 닷새가 지났다. 원래 석 달을 예상했던 작업은 오늘, 내일 완성을 예상하고 있었다.

두정은 열흘째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에 혼자서 작업 중이었다.

천마는 그날 이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삐쳐도 단단히 삐친 모양이다. 나 역시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덕분에 한 열흘 조용히 무공수련에 열중할 수 있었다.

그때 철방 쪽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초췌한 모습의 두정이었다.

“드디어 완성했소이다.”

그 피곤한 표정 속에 기쁨이 번져나갔다.

시작 전에 석 달을 예상했는데 이십오 일이나 단축한 것이다. 내가 온힘을 다해 도왔고, 두정이 최선을 다한 덕분이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자, 들어갑시다.”

그를 따라 작업장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 위에 두 개의 상자가 놓여 있었다.

“열어보시오.”

두정의 목소리가 떨렸다. 고된 일을 다 끝냈다는 만족감보다, 제대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그를 지배하고 있으리라.

그중 왼쪽에 있는 상자를 열었다. 안에 든 것은 평범해 보이는 한 쌍의 팔보호구였다. 그 흔한 문양 하나 없었다. 아무 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팔보호구.

내가 그것을 양팔에 찼다.

겉으로 봐선 낡아보였지만 재료는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최고급가죽이었다.

하지만 진짜 재료는 그 안에 있었다. 가죽 안에 만년한철이 압축되어서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이 보호구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튼튼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단순히 팔보호구를 만들기 위해 만년한철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사아악.

팔보호구에 꽂혀있던 것을 뽑았다. 그것은 바로 아주 얇게 만들어진 비수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만 같이 예리했다. 만년한철로 만든 강호에서 가장 강하고 날카로운 비수였다.

나는 그것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위이잉.

독특한 바람소리가 났다.

날의 예기도 예기지만 비수 전체의 균형감이 완벽했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비수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두정은 아버지보다 실력이 뛰어나기를 바라는 내 기대에 확실히 부응했다.

비수를 휘두르다가 다시 꽂았다. 이번에는 두 개의 비수를 꺼내 양손으로 휘두르다가 다시 꽂았다.

착착.

능숙한 내 솜씨에 비수가 순식간에 보호구 속으로 사라지듯 꽂혔다.

꽂혀 있는 비수의 숫자는 여섯, 보호구가 두 개니 모두 열두 개의 비수가 꽂혀 있었다.

비수도 만년한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자체로 팔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이중으로 보호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연속해서 비수를 꺼내 허공을 향해 날렸다.

쉭쉭쉭쉭쉭쉭쉭쉭쉭쉭쉭쉭!

열두 자루의 비수가 일렬로 벽에 꽂혔다. 단단한 벽이었는데 무에 칼 들어가듯 했다.

내 실력에 놀란 두정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언제 어떻게 비수가 뽑혀 벽에 박혔는지 보지 못했지만, 이내 자신이 만든 것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비수를 회수해 보호구에 다시 꽂은 후 이번에는 두 번째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한 벌의 장갑이 들어 있었다. 얇은 가죽으로 만든 장갑이었는데, 손바닥과 손등이 만년한철로 되어 있었다. 병장기를 손으로 부숴버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검기나 검강을 손바닥이나 손등으로 쳐낼 수도 있었다.

선학비술을 위한 권투갑(拳鬪鉀)이었다.

아주 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손의 움직임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정권의 끝에 날카롭게 만년한철로 만든 칼날들이 붙어 있었다. 상대방의 호신강기를 찢어발기기 위한 것이었다.

촤르르르륵.

권투갑의 손목부분에서 줄이 풀려나왔다. 그것은 원래 내가 손목에 감고 있었던 남해어옹의 낚시줄이었다. 권투갑에 감겨져 있다가 순식간에 풀려나올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우우우웅!

낚싯줄에 내공이 들어가자 가느다랗게 떨렸다. 이것으로 상대의 팔이나 목을 휘감으면 그대로 잘려나갈 것이다.

고수 간의 싸움에서 이런 것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필요하다.

나보다 약한 자들과의 싸움에서는 이 모든 것이 아무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박빙의 상대와 싸울 때는 큰 도움이 될 것들이었다. 내가 낚싯줄로 자신의 팔을 잘라내려고 할지 상상이나 하겠는가?

“고맙습니다. 정말 마음에 듭니다.”

비로소 두정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차 올랐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오, 정말 다행이오.”

지난 두 달 하고도 닷새간의 긴 여정이 비로소 성과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두정이 작은 상자를 하나 올렸다.

열어보니 앞서 팔보호대에 꽂혔던 비수가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남는 만년한철로 만든 예비용 비수입니다. 모두 서른 자루이니 혹 비수를 분실하시면 사용하십시오.”

“고맙습니다.”

나는 그 비수들 중에서 네 자루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이번 작업을 해주신 보답입니다.”

“괜찮소. 만년한철 작업을 해본 것만 해도 제겐 보답이 되고 남았소.”

“전 스물여섯 자루만 해도 충분합니다.”

사실 그것만 해도 평생 쓰고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만년한철로 만든 비수를 내가 회수하지 않을 리 없고, 설령 회수하지 못할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그런 일이 내게 몇 번이나 있겠는가?

그에게 억지로 비수를 건넸다.

“이것을 녹여 다른 것을 만들든, 그대로 사용하든 알아서 사용하십시오.”

네 자루의 비수에 든 만년한철만 해도 돈으로 따질 수 없었다. 그에게는 돈보다도 더 크고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다음에 또 부탁드리겠습니다.”

“언제든지 오시오.”

그와 작별을 고한 후 비수상자를 챙겨서 그곳을 나왔다.

천마가 불쑥 물었다. 한동안 삐쳤는지 말도 안 붙이다가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대체 그딴 것은 왜 만든 것이냐?]

[선학비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지.]

[이런 말 해주기 싫지만 지금 네 실력만 해도 충분하다.]

[과연 그럴까?]

[무슨 뜻이지?]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죽을지도, 그래서 이 몸으로 들어오게 될지도, 무림맹주를 조종하는 배후세력과 싸우게 될지도, 그리고 당신이 내 몸에 들어오게 될지 상상도 못 했지.]

천마는 묵묵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 역시 내 말에 정확히 부합되는 과거가 있을 것이다. 내 몸에 들어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이 일의 끝에서 누굴 만나게 될까?]

정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처럼 내가 상상도 못 할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내가 아꼈던 모든 사람을.

그때 천마가 말했다.

[최종 적은 나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천마가 다시 목청을 높였다.

[당연하지 않느냐? 나 천마다.]

잠시 사이를 두고 내가 말했다.

[그래, 당신이겠지.]

[이 자식아! 진심이 안 담겨 있잖아?]

[하하.]

어쩌면 그일지도 모른다. 과연 내가 심검지경에 이르게 될지, 또한 그것으로 천마를 벨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아니라면? 그보다 더 무섭고 엄청난 것이 기다리고 있다면?

천마가 넌지시 말했다.

[우리 화해하자.]

[싸우지도 않았는데?]

[그딴 소리 집어치우고 화해하자고.]

[그러지.]

[그런 의미에서 선학비술이나 알려다오. 자, 준비되었으니까 구결을 불러라.]

구렁이 담 넘듯 능청을 부렸지만, 난 구렁이 꼬리를 당겨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정말 안 가르쳐 줄 거냐?]

[그래. 괜히 쓸데없이 힘 빼지 마라. 정히 선학비술을 배우고 싶으면 내게 마신결을 알려줄 것인지 아닌지만 고민하면 된다.]

[집요한 놈! 마신결의 비밀은 역대 교주님들도 풀지 못한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한데 네가 왜 이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냐?]

[그럼 알려줘도 되겠네. 어차피 나도 못 풀 테니까.]

[이 자식이 정말.]

한참 동안 천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했다.

[이봐, 천광이.]

[이름 부르지 마라!]

[당신도 믿지? 이 모든 일들이 운명의 이끌림이란 것을.]

천마는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운명을 믿는 인물이었다. 그를 이해했다. 환생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어찌 운명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야. 내가 마신결을 얻고 싶어 하는 이유가. 이게 다 운명 같이 느껴져서.]

한참이 지나고 천마가 말했다.

[……그래서 알려주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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