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77화 (177/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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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영혼(4)

쏴아아아아아.

눈앞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에 마음까지 씻겨나가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말했다.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돌아보니 노인 하나가 서 있었다.

“이제 나이 핑계를 대는 거요?”

노인은 바로 천마 백천광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는?

천마와 싸우던 그날, 그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머릿속에서 울리는 폭발음.

꽝.

아, 나는 대법이 이뤄지던 곳에 있었는데? 한데 왜 이곳에 있는 것이지?

과거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내 의식은 지금 말을 하고 있는 나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으니까. 옆에서 과거의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꿈이구나.

천마와 나는 그날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지 않나? 십 년만 젊었어도 자넨 한 주먹 거리도 안됐겠지.”

“내가 열 살만 더 나이가 많았어도 당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요.”

“대신 십 년이 지나면 자넨 정파 꼰대가 되어 버려서 멋대가리가 없겠지.”

“아직은 멋있다는 칭찬으로 듣겠소.”

원래는 이대로 나가서 싸웠다.

그리고 나는 내 마지막 초식인 대멸겁으로 그를 죽였다.

바로 이때 천마가 불쑥 말했다.

“대체 나를 왜 살린 것인가?”

과거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뭐라고? 나는 너를 살린 적이 없는데? 오히려 너를 죽인 사람은 바로 나잖아?

천마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살렸으니 책임을 지게.”

다음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그곳은 천마와 마지막으로 싸우던 그곳이 아니었다. 대법이 진행되었던 만병고의 지하 방도 아니었다.

그곳은 차가운 벽과 두꺼운 철문이 있는 뇌옥이었다. 방안의 구조나 모양이 낯설지 않은 것으로 볼 때, 무림맹의 지하뇌옥이었다.

쇠사슬에 팔과 다리가 묶여서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마혈은 제압당해 있었고, 단전 역시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이중으로 제압당해 있었다.

왜 뇌옥에 갇혀 있는 것일까?

빠르게 기억을 떠올렸다.

대법이 진행되던 방에서 폭발이 있었고, 아이와 양정회가 죽었다.

그리고…… 아, 하늘을 떠돌던 그것!

그게 대체 뭐였지? 그게 나를 덮치던 순간, 나도 정신을 잃었다.

짐작해 보건대 이후에 마철군이 먼저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아이의 몸에 있던 천마의 영혼은 어떻게 되었지? 아이의 죽음과 함께 소멸된 것일까?

바로 그때, 내 의문에 대답하듯 마음속에서 울림처럼 들려오는 하나의 물음.

[너는 누구냐?]

나는 깜짝 놀랐다. 마음에서 물어온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내 몸속에 또 다른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깨어나면서 그것도 함께 깨어난 모양이었다.

그 존재를 향해 내가 물었다. 묻고자 마음을 먹자, 마음속에서 내 말이 울려 퍼졌다.

[너는 누구냐?]

되돌아간 물음에 마음속 존재가 내게 말했다.

[너는 마철군이 아니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천마의 영혼이었다. 천마의 영혼이 내 몸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다 나를 덮친 그것이 바로 천마의 영혼이었던 것이다.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다음 순간, 천마가 놀라 소리쳤다.

[맙소사! 너는! 천하진이구나!]

아마도 그는 내 마음속을 읽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대체 어떻게!]

충격에 빠진 그에 반해 오히려 나는 담담했다. 앞서 이혼대법과 관련된 일들을 경험하면서 그가 천마인 것도 알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벽리단이란 청년의 몸에 들어오게 된 것이니까.

사실 나와 천마만큼 이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앞서 천마가 아이들의 몸에 깃들었을 때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그때는 아이면 아이, 천마면 천마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천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 내 정신력이 너무 강해서 그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그냥 깃든 모양이다. 아니면 대법이 엉망이 되어버리면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었고.

어쨌든 그가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네가 어떻게 살아 있지?]

천마가 놀라 물었다. 내가 그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보다 그는 더 놀란 상태였다.

내가 차분히 되물었다.

[너도 살아있지 않느냐?]

[어떻게 이런 일이?]

천마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의 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내 천마가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왜 웃나?]

[나를 죽이더니 결국 이런 꼴을 당하는군. 이제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 영원히 나와 함께 있어야 한다.]

[과연 너를 죽이지 못할까?]

[뭐?]

[나는 너를 죽일 수 있다.]

[어떻게?]

나는 모든 것이 하나의 운명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마음에 떠오른 하나의 단어.

[심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곧이어 천마가 목청을 높였다.

[흥! 생전에 심검지경에 이른 자를 보지도 못했지만, 심검으로 마음속의 영혼까지 베었다는 말 역시 듣지 못했다.]

천마는 애써 부정했다. 하긴, 그의 말처럼 나 역시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을 뿐이다. 심검이라면 그를 벨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게다가 심검지경에 이르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줄 아느냐?]

[나도 잘 알고 있다. 얼마나 어려운지.]

[크크크, 너는 절대 무리다.]

[그럼 네가 도와주든지.]

[뭐?]

천마가 황당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린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미친 놈! 내가 왜 너를 돕는단 말인가?]

잠시 사이를 두고 내가 물었다.

[과연 남의 몸에 머무는 것이 행복할까?]

천마는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 철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선 사람은 바로 마철군이었다. 그는 팔과 가슴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얼굴에 상처가 있었다. 폭발에 휩쓸리긴 했지만,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그 뒤를 따라 광월단주 주철룡과 철기단주 옥당추가 뒤따라 들어왔다.

마철군이 내 앞에 서서 화난 얼굴로 말했다.

“너는 대체 누구냐?”

* * *

노인은 언덕에 서서 어둑해져오는 풍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대법이 끝났을 것이고 천소선이 돌아올 것이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일이 드디어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악몽을 꾼 탓일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런 날에는 항상 나쁜 일들이 벌어지곤 했는데. 그래서였을까? 다시 오래전 그날이 떠올랐다.

쏴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빗속에서 사내가 소리쳤다.

“대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무슨 말이냐?”

사내가 노려보며 말했다.

“이게 다 그 시험 부작용이지요?”

노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답하세요!”

“그래, 그렇다면?”

“빌어먹을! 젠장!”

“애비에게 그 무슨 돼먹지 못한 말버릇이냐?”

노인의 질책에 사내의 눈빛이 이글거리듯 타올랐다.

“아버지란 말, 그렇게 가볍게 쓰이는 말입니까?”

그 원망 가득한 눈빛을 떠올리며 노인이 회상에서 깨어났다.

노인이 내뱉는 한숨에 분노와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눈썹 없는 사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사내의 목소리에 노인은 가슴이 철렁했다. 사내는 단 한 번도 저런 급박한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돌아섰을 때, 사내가 한 여인을 안고 달려오고 있었다. 안긴 사람은 바로 그 신비여인이었다.

“소선아!”

고함치는 노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서, 천란으로!”

두 사람이 동굴 안으로 달려갔다. 사내가 재빨리 여인을 천란에 눕혔다. 옆에 장치를 누르자 그곳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액체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여인이 눈을 떴다.

“…… 할아버지.”

“소선아!”

“…… 대법은 실패했어요. 죄송해요.”

“괜찮다, 괜찮아! 그만 말하거라.”

스르륵.

천란의 뚜껑이 닫혔다. 사내가 다시금 장치를 조종하자 천란이 소리를 내며 가볍게 진동했다.

슈우우우우!

지켜보던 노인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살기보다 더욱 강렬한 기운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지금은 복수보다는 손자가 빨리 낫기를 기원해야 할 때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이곳을 봉쇄하게.”

“네, 알겠습니다.”

쿠르르릉.

동굴의 입구가 닫히기 시작했다.

밖에서 보니 이제 이곳에 동굴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 * *

“네 정체를 밝혀라.”

마철군이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냈다. 말하지 않으면 고문이라도 할 기세였다.

나는 아직 면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아마 고문을 당한다면 내가 면구를 썼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내가 벽리단이란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절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더구나 이런 상태에서는 더욱.

누구라고 대답해야 할까?

내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정신을 차린 그곳에서 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적인지 아군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일 것이고.

그때 내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생각.

대체 어떻게 마철군은 대법의 대상자가 된 것일까?

혹시?

의구심이 드는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살면서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그 절세미녀가.

“그녀가…….”

그녀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마철군의 표정이 꿈틀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역시 그녀와 관계가 있구나!

“그녀라니?”

“당신을 만병고로 이끌었던 그녀 말이오.”

마철군이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잠시 나가있게.”

주철룡과 옥당추가 서로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네,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갔다.

마철군이 차가워진 눈빛으로 물었다.

“너는 누구냐?”

“나는 그녀를 모시는 사람이오.”

“그녀가 나를 죽이려 했다.”

“당신은 지금 크게 오해하고 있소.”

“오해?”

“그녀는 당신을 좋아하고 있소. 당신을 구하려고 했지.”

“누구로부터 말이냐?”

“배후세력이 당신을 대법의 재료로 사용하려 했소.”

일부러 재료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어떻게든 놈의 마음을 뒤흔들어야 했다.

“대법? 무슨 대법 말이냐?”

“당신에게 다른 영혼을 집어넣어서 이 강호를 지배하려고 했소.”

“뭐?”

마철군은 정말 깜짝 놀랐다.

“무슨 헛소리냐?”

“내 말은 사실이오. 대법 전문가를 데려와서 당신이 있던 그 방을 보여주면 알게 되겠지.”

폭발이 있었지만 방안의 남은 기물들만 해도 이혼대법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내 말은 신빙성을 얻게 될 것이다.

“애초에 당신 아버지를, 그리고 당신을 맹주로 삼은 이유기도 하지.”

그 역시 한번쯤 의구심을 가졌을 내용이었고, 진실이기도 한 내용이었다.

그가 혼란스러워할 때, 나는 계속 몰아붙였다.

“처음에는 저들의 명령을 받았소. 하지만 그녀는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소. 그래서 나와 그녀는 당신을 구하러 간 것이고.”

과연 이런 말이 통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철군이 복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을 물었다.

“그녀는 대체 어디에 있나?”

“나도 모르오. 알다시피 폭발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였으니까. 놈들에게 잡혀갔을 수도 있고, 탈출했을 수도 있겠지요.”

“어떻게 찾을 수 있지?”

“그녀의 행방에 대한 답은 당신이 가지고 있소.”

“뭐?”

나는 그를 가만히 응시하며 말했다.

“잘 생각해보시오. 어떻게 해야 그녀를 찾을 수 있을지.”

내 말을 듣는 순간, 마철군은 뭔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해서는 안 될 사랑에 빠져들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그는 어리석은 자는 아니었다.

“만약 한 마디라도 거짓말이 있으면 넌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것이다.”

마철군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을 세게 닫으며 뇌옥을 나갔다.

일단 한숨을 돌렸다. 그는 정말 그곳에서 대법이 진행되었는지부터 확인할 것이다. 아무리 빨라도 이삼 일은 걸릴 일이다.

천마가 내게 말했다.

[아주 가증스럽게 거짓말을 하는군. 너, 원래 이런 자였나?]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거짓말쟁이 무림맹주라니? 하긴, 정파 놈들이 다 그렇지.]

천마는 나를 놀려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내가 그 장난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무림맹주? 나는 이제 맹주가 아니라네. 네가 천마가 아니듯이 말이지. 맹주는 아까 그자였네.]

[그깟 애송이가 무슨 맹주인가?]

[이 봐, 천광이.]

갑자기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천마가 깜짝 놀랐다. 그의 이름은 백천광이다.

[건방진 놈!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너나 나나 살만큼 살다 죽었지.]

[흥! 웃기지 마라! 난 엄연히 이렇게 살아 있다!]

[네가 그랬지? 십 년 후에 우리가 만난다면 나는 정파 꼰대가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나나?]

[그런데?]

[인정해야 할 때 인정하지 않는 것도 꼰대들의 특징이라네.]

[빌어먹을!]

내 말에 화가 났는지 천마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더는 천마와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우선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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