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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76화 (176/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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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영혼(3)

“젠장! 역시 너로군.”

검야가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앞서 한차례 나를 의심을 했던 그였다. 그때 조명의 기지로 순간을 모면했었는데, 그때 제대로 확인했으면 상황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어째 예감이 더럽다 했지.”

“그랬으면 제대로 확인했어야지.”

“그게 다 술 때문이지.”

물론 지금의 그는 말짱한 상태였다. 나오기 전에 내력으로 주기를 다 배출한 것이다.

나를 향한 그의 눈매가 매서웠다. 이미 십이사의 사방에 널린 시체에서, 그리고 천소선을 통해 내가 얼마나 강한지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나 역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검야에게서 사악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술에 빠져 사는 모습에서 사기(邪氣) 대신 사연(事緣)이 느껴졌다.

“하나만 묻지.”

“뭔가?”

“왜 저들에게 포섭되었나? 당신 정도 실력이면 굳이 누군가에게 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러자 검야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어딘가에 매이는 것과 실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네. 자네 말대로라면 천하제일인이었던 천하진은 왜 무림맹주가 되었겠는가?”

“하긴, 그렇군.”

그의 말이 옳다. 실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였다. 그의 사연을 묻는 것도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악인과 손을 잡는다면 결국 끝이 나쁜 법이다.

스르륵.

검야의 품안에 있던 검이 천천히 뽑혀져 허공으로 떠올랐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이기어검술을 사용해서 단번에 승부를 보려 한다는 것을.

스르르륵.

내 수라명왕검 역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두 개의 검이 허공에 뜬 채 서로를 겨눴다.

그가 이기어검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살짝 의외였다. 내가 볼 때 그에게는 살짝 부담스러운 한 수이리라. 아마도 내가 대멸겁을 사용하는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신중하지 않으면 스스로 내상을 입게 될 어려운 한수.

반면 내게 있어 이기어검술은 추혼수라검술의 초식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정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한수란 뜻.

같은 이기어검술이더라도, 그의 것과 나의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쉬이이이이잉!

쉬이이이이익!

두 개의 검이 만들어 낸 주 줄기의 검선.

검들은 서로를 향해 빛처럼 날았지만,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은 하나의 검뿐이었다.

수라명왕검이 내게로 돌아와 다시 제 검집으로 들어갔다.

빗나간 검야의 검은 저 멀리 뒤쪽 쌓여있던 병장기를 뚫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후였다.

뻥 뚫린 그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가 힘없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자네는 왜 매여 있나? 이렇게나 강한데?”

아마도 자신의 조직과 맞서고 있으니, 나 역시 어딘가에 매여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가 그를 바라보며 담담히 대답했다.

“나는 풀고 있는 중이네. 매여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쿵.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내 시선이 닫혀 있는 문을 향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천소선 하나였다.

* * *

쏴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빗물 사이로 한 사내의 외침이 퍼져나갔다.

“이게 다 아버지 때문입니다!”

사내의 눈빛에는 원망이 가득했고, 그의 품에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안겨 있었다.

사내는 분명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요!”

다음 순간, 노인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휴우.”

노인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뒤따라 나오는 짜증 섞인 한 마디.

“빌어먹을!”

오랜만에 꾸는 악몽이었다. 근래 좀처럼 꾸지 않았는데, 하필 오늘처럼 중요한 날에 그날의 악몽을 꾼 것이다.

그때 뒤에서 사내가 정중히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사내는 바로 동굴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 눈썹이 없던 묘한 느낌의 사내였다.

“천란(天卵)에서 악몽을 꾸시다니요? 좀처럼 없던 일입니다.”

“괜찮다.”

노인이 반구체 모양의 알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내가 걱정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노인이 동굴 밖으로 나와 절벽에 섰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젖은 땀을 식혀주었다.

사내가 몇 발자국 뒤에 섰다. 그는 못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대법 때문에 신경을 쓰셔서 그런 듯합니다.”

사내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걱정 마십시오. 검야와 십이사까지 나섰으니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그렇겠지.”

노인은 대법에 자신이 갈 수 없는 사실이 너무 답답했다.

그는 행동에 제약이 있었다. 아까 악몽을 꿨던 천란에서 멀리 떠나있을 수 있을 때가 있었고, 없을 때가 있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떠날 수 없었다.

만약 무리해서 떠났다가 제시간에 천란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죽게 되는 것이다.

“대업을 이루시려면 건강하셔야 합니다.”

“어디 대업이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더냐?”

“어르신이라면 반드시 이루실 겁니다.”

“나도 그러길 바란다만.”

노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정말 그래야 한다. 평생을 노력해온 숙원이었으니까.

너무 많은 것을 버리고 걸어온 길이었으니까.

* * *

나는 여전히 조심했다.

비록 그와의 실력이 한 단계 벌어졌지만, 여전히 천소선의 지풍은 위험한 것이었다. 특히 무방비나, 가까이서 날아드는 지풍은 나라고 해도 치명적이었다.

내가 온 신경을 다 끌어올리고 신중히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문과 일직선이 되지 않도록 걸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방심하지 않았다. 지풍이 벽을 뚫고 날아들 수도 있었으니까. 그나마 벽을 뚫고 나오는 공격은 피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적당한 거리에 섰을 때, 내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문 가장자리가 잘려나갔다.

다시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권풍이 일며 문이 뒤로 넘어갔다.

쿠웅.

이제 안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양정회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문이 부서졌음에도 대법에 열중하고 있었다. 주위의 상황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는데, 아마 천소선의 명령 때문일 것이다.

하긴 그렇지 않더라도,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앞서 서학사는 사술에 능했지만, 양정회는 일체의 무공도 익히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좌우로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안을 살폈다. 하지만 천소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숨어 있는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차라리 검이나 도를 쓰는 상대였다면 상대하기 편했을 텐데, 가까운 곳에서의 지풍은 정말 위협적이었다. 까닥했다간 한 수에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신중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저녁 전에 끝나는 대법이었다. 지금이 점심이니 금방 끝날 것 같진 않지만,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당장에 대법이 끝날 수도 있다. 대법이 끝날 무렵, 식사를 가져오라고 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도 생각보다 대법이 일찍 끝날 수도 있는 법이고.

내가 다시 검을 뽑았다.

쉬이익, 쉭익, 쉭!

검기가 문에서 조금 떨어진 왼쪽 벽을 네모나게 갈랐다.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꽝.

벽이 부서져 내리며 안쪽이 보였다. 여전히 천소선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반대쪽 벽을 향해 검기를 날리려고 했다.

바로 그때였다.

“그만하세요.”

놀랍게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하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분명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모습을 드러내라.”

내 말에 다시 안에서 여인이 말했다.

“알았어요. 그러니 공격하지 마세요.”

잘려지지 않은 쪽 벽 뒤에서 문으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외적인 미만 따졌을 때는 거의 송화린과 쌍벽을 이뤘다.

물론 두 사람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송화린이 청순하고 밝은 아름다움이라면, 이 여인의 분위기는 지극히 어두웠다.

“천소선은 어디에 있지?”

“그는 없어요.”

“없다고?”

“네. 이곳에는 양대협과 저만 있어요.”

“뒤로 물러나라.”

여인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뒷걸음질을 쳤다.

“양정회, 당신도 이리로 나오시오.”

양정회가 이쪽을 보며 말했다.

“그럴 수 없소.”

“나오시오!”

내 외침에 양정회가 하던 일을 멈추고 여인 옆으로 나란히 섰다.

“허튼짓하면 너희는 죽는다!”

제대로 경고를 한 후에 검을 겨눈 채 앞으로 걸어갔다.

이번 대법은 천소선 쪽에서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양정회가 죽기라도 하면 대법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다가서면서 모든 기감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두 사람 이외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정말 천소선이 방 안에 없는 것인가?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내가 갑자기 몸을 날렸다.

성큼 방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천천히 가다가 빠르게 속도를 바꾸며 상대의 허를 찌른 움직임이었다. 그런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안에는 두 사람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곳곳에 장치들이 있어 방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문은 없었다.

“나는 내 일을 하겠소!”

양정회가 다시 대법을 시작했다. 나는 그것까진 말리지 않았다.

여인에게 검을 겨눈 채 조심스럽게 방안을 살폈다. 천장부터 벽까지 꼼꼼히 살폈지만, 그곳에는 어떤 비밀통로도 없었다.

내가 여인을 응시하며 차갑게 물었다.

“천소선은 어디에 있지?”

“그는 이곳을 떠났어요.”

“언제?”

“제가 도착하기 전이에요.”

나 역시 흑시에 다녀왔기 때문에 이곳을 계속 감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사이 천소선이 나가고 이 여인이 들어왔을 수 있었다.

한데 이 중요한 대법에서 자리를 비웠다고? 정말이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여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지?”

“저는 양학사님을 돕기 위해 왔어요.”

내가 양정회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인가?”

“그렇소.”

그가 이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다시 여인에게 물었다.

“왜 처음부터 합류하지 않았지?”

“제가 필요할 때만 오라고 하셨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여인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너무 침착해서 오히려 수상할 정도였다.

“양정회. 이쪽으로 돌아서도록.”

“바쁘다는데 대체 왜 그러시오?”

양정회가 돌아섰을 때, 내가 기습적으로 물었다.

“이 여인의 이름이 뭐지?”

순간 양정회가 대답을 못 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는 순간.

슁.

내 심장을 향해 한줄기 지풍이 날아들었다. 바로 여인이 날린 것이다.

내가 본능적으로 호신강기를 끌어올리며 몸을 틀었다.

팔에 착용한 호완사를 스치며 방향이 틀린 지풍이 이번에는 가슴을 스치며 지나갔다.

푸아아아악!

가슴이 뜨끔하며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피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어도 가슴이 완전히 뜯겨나갈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팔목의 호완사와 가슴에 차고 있던 흑랑대주의 호심갑이 지풍을 막아주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내 검이 그녀의 심장을 향해 허공을 갈랐다.

쉬이익.

동시에 그녀의 눈빛이 하얗게 빛났다.

파아아악!

허공에 피가 튀었다.

하지만 검에 베이는 동시에 그녀가 그곳에서 사라졌다.

죽었다면 다시 몸을 드러냈을 텐데,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큰일 났소!”

양정회가 다급히 소리쳤다.

치이이이익!

앞서 그녀가 날린 지풍이 대법에 이용되고 있던 장치에 구멍을 냈고, 그곳에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양정회가 달려가서 장치를 손보려고 했다. 하지만 연결된 장치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안 돼!”

양정회가 외치는 순간.

꽝!

장치가 폭발했다. 생각보다 엄청난 위력의 폭발이었다.

양정회가 뒤로 튕겨져 날아갔고, 나는 고개를 숙이며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후우우웅!

나 역시 뒤로 주르륵 밀렸다.

아이와 마철군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내가 아이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아이는 숨을 거둔 후였다. 양정회 역시 마찬가지로 숨을 거둔 후였다.

“젠장!”

아이의 죽음을 슬퍼할 순간도 없이, 희뿌연 무엇인가가 괴이한 바람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는 것이 보였다.

키이이이잉.

그것이 한 바퀴 허공을 돌더니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안 돼!”

그것이 나를 덮치는 순간, 갑자기 주위가 바뀌었다.

정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위가 어두워졌고 발밑이 허전해지며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늪에 빠진 것처럼 아주 천천히, 허우적거리며 빠져들었다.

저 멀리 수면이 멀어지고 있었다. 수면 밖에 방의 전경이 그대로 보였다. 쓰러져 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허우적대며 다시 올라가려고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수면이 점이 될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을 때.

파앗!

다음 순간, 세상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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