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72화 (17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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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으로(2)

“그 아이는 무사한가요?”

아이가 다른 아이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는 바로 천마의 영혼이 들어간 정호였다. 앞서 벽리단이 천소선에게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 이미 들었던 이름이었음에도 천소선은 이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무사하단다.”

천소선의 대답에 정호가 활짝 웃었다.

“다행이네요.”

정호는 장근을 돕기 위해 이곳에 와서 대법을 치른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자신의 머릿속에 새로운 영혼이 들어온 것을 알지 못했다.

세 번 중 한 번은 정호로, 나머지 두 번은 천마로 깨어났다.

기분 좋게 웃던 아이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아! 머리가 아파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소선과 노인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노인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자, 천소선이 곧장 아이의 수혈을 눌렀다.

천소선이 다시 잠든 아이를 침상에 눕혔다.

예상보다 빠르게 두통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전의 이혼대법만 해도 몇 달이 지나고 나서 두통이 발생했었는데, 이젠 곧바로 첫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두통이 심해지는 정도도 훨씬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아마 그렇겠지.”

“다행히 양정회가 무사히 맹에 도착했으니, 곧 대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마철군은?”

“놈을 대법으로 이끄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과연 이번 대법의 대상자는 마철군이었다.

천소선의 자신 있는 대답에, 그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빛이 조금 깊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양정회는?”

“맹에 잘 숨겨두었습니다.”

“놈은 반드시 우리 일을 방해하려 들 거다.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놈의 실력을 알아차린 이상, 더는 방심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현재 검야(劍爺)가 함께 있고, 십이사(十二蛇)가 오고 있는 중입니다.”

“좋아.”

노인이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

“왜 그러느냐?”

“대체 그자는 누구일까요? 무명이란 이름처럼 존재가 없는 자처럼 보입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놈일 수도 있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날 놈은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다.”

천소선이 깜짝 놀랐다. 노인은 벽리단이 썼던 면구가 최상급임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했던 것이다.

“맙소사! 면구를 착용하고 있었군요. 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놈은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천소선은 그가 주위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으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혹시 황금충(黃金蟲)들이 보낸 자일까요?”

천소선이 말한 황금충이란 얼마 전에 노인을 찾아왔던 성왕보와 그 배후에 있는 자들을 의미했다. 천소선과 노인은 그들을 황금충이라 불렀는데, 이 조직의 돈줄을 쥐고 있는 자들이었다.

노인과 천소선은 그들의 돈으로 이 조직을 완성시켰고, 지금까지 이끌어 왔다.

“그들은 아니다.”

“그렇게 단정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황금충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무엇입니까?”

“돈이 되느냐 마느냐다. 오직 그 하나의 논리로 사는 자들이지.”

천소선은 아직 그들을 직접 대면한 적은 없었다. 유일하게 만났던 사람은 그들을 대표하는 성왕보였다.

“나와 손을 잡은 것도 내가 돈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한데 그날 놈은 아이를 구하려고 했다. 만약 놈들이 보낸 자라면, 천마가 깃든 아이를 베어버렸을 것이다. 아이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자들이 아니니까.”

천소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말을 듣고 나니 확실히 그날의 상대는 돈이나 밝히는 자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소선아.”

“네, 할아버지.”

“그렇다고 놈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황금충들은 아주 위험한 자들이다. 우리가 돈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어떻게든 폐기처분하려 들 것이다.”

“만약 그딴 식으로 나오면 제가 씨를 말려버릴 겁니다.”

“싸우면 우리가 이길 것 같지? 우리가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아닙니까?”

“돈의 힘을 우습게 보지 마라. 돈이면 귀신도 부리는 법이다. 놈들은 돈의 위력이 어떤지 제대로 알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자들이다. 돈으로 고수를 잡는 자들이지.”

노인의 말은 단호했다. 할아버지가 이 정도로 말한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위험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노인이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대법은 언제쯤 가능하겠느냐?”

“열흘쯤 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흘 후, 대법을 시행한다.”

“네?”

천소선이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일정이었다.

“사흘 후는 어렵습니다.”

“사흘 후다.”

노인은 더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눈빛이었다.

천소선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이번 일을 얼마나 중요시 여기는지, 그리고 적의 기량을 얼마나 높이 사고 있는지.

사흘 후라면 그야말로 기습대법이라 할 수 있었다. 놈들이 방해를 하려고 해도, 이렇게 빨리 대법이 진행되리라곤 예상치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놈들의 허를 찌르는 한 수였다.

이미 기본적인 대법 준비는 마련되어 있었다. 사흘 동안 밤을 새서 준비를 하면, 얼추 시간을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천소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흘 후에 대법을 개시하겠습니다.”

* * *

나는 광두를 백표와 만나게 해주었다.

백표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을뿐더러, 나와 관련해서 일화가 있었기에 광두는 그와의 재회를 무척이나 기뻐했다.

앞서 소검대를 만들고 키우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고, 거기에 백표의 조언과 도움이 더해진다면 광두는 자신만의 새 조직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일부러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후, 나는 섬으로 돌아와서 무공수련을 했다.

추혼수라검술과 선학비술. 각각 대성을 모두 이루었다. 무공을 창시한 사람이 생각한 가장 완벽한 형태로 초식을 펼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가 끝은 아니다.

만약 무공을 창시한 이보다 더 높은 무의를 깨닫고, 기존 무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면?

바로 이때부터 무공은 대성부터 시작이란 말이 적용되는 것이다.

물론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추혼수라검술이나 선학비술 모두 극상승의 무공이었다. 사실 이 무공의 대성을 이룬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내 목적은 이 두 무공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한데 문제가 있었다.

워낙 상승의 무공이라 두 개의 무공을 합쳐야 할 상황이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았다.

굳이 검을 사용하다가, 선학비술로 바꿀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학비술로 충분히 죽일 수 있는데, 굳이 검을 뽑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경지가 너무 높아서다.

물론 의식해서 무공을 바꿔서 사용하면 될 일이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의도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진정한 조화란 그런 의도 없이 자연스럽게 두 무공이 합쳐져야 한다.

극한의 상황, 혹은 극강의 적을 만났을 때나 가능하려나? 가령 그 배후세력의 수장 노인쯤 되어야 하는 적을 만났을 때.

하지만 문득 드는 또 다른 문제점.

그런 강적을 만나서 싸우는데 두 무공의 조화를 생각할 여유가 있을까? 그런 위험천만한 시도를 할 수 있겠는가? 대멸겁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데.

조화.

대체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한참을 고민해도 답을 찾을 순 없었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고민하는 일부터 시작이라고.

* * *

수련을 마치고 거처로 돌아오는데 송화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 말이 있어.”

그녀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곧바로 말을 하지 못했다.

“저기 가서 얘기할까?”

무슨 용무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 시간도 줄 겸 천천히 마당에 있는 정자에 올랐다. 이곳은 바로 이곳 장원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그녀가 올라와서 내 옆에 나란히 섰다. 그녀는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그녀가 말했다.

“나도 너와 정식으로 함께하고 싶어.”

“뭐?”

내가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한번 말을 꺼내기가 어렵지 이후는 어렵지 않다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그녀가 다시 말했다.

“네가 하려는 일을 함께 하고 싶다고. 네 조직에 나도 속하고 싶다고.”

혼인하자는 말이 아니었다. 배후세력과의 싸움을 함께 하겠다는 말이었다.

내가 그녀를 만난 이래 가장 진지하게 물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

“알아.”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야.”

“알고 있어.”

“송가장에 피해가 갈 수도 있어.”

여기서 말하는 피해가 어떤 것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알아.”

그녀가 얼마나 큰 결심을 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답이었다.

“함께 싸우고 싶어.”

사실 두려운 일일 것이다. 자신의 목숨만 달린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를 향한 그녀의 얼굴에서 단호한 결심을 읽었다.

“좋아.”

“정말?”

“그래, 앞으로 함께하자.”

순간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정말이지? 정말? 아! 기분 좋다.”

“죽을 수도 있는 데 기분이 좋아?”

“응, 좋아.”

나는 그녀와 나란히 앉아서 내 조직과 적들의 조직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주었다. 아마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운 조직이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강한 적과 싸우고 있었던 거야?”

그녀가 감탄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도 마음 바꿔도 돼.”

“오히려 더 기분 좋은데?”

“왜?”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시한 적이었으면 표도 안 날 것 아니야.”

“하하하.”

그녀의 농담에 내가 크게 웃었다.

웃음을 그친 후 내가 진지하게 말했다.

“첫 번째 명령을 내릴게.”

송화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더없이 진지했다.

“간단한 명령이야.”

“뭔데?”

“송가장을 장악해. 그래서 언제든 송가장의 도움이 필요할 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줘.”

그녀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간단이란 말뜻을 알고는 있지?”

“당연히.”

그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해나가야 할 일이 어떤 일인지를. 송가장을 장악하는 일 정도는, 간단한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음으로는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산동을 우리 손에 집어넣어야 해. 네가 선두에서 그 일을 맡아줘.”

“맙소사!”

그녀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일을 할 때, 모두들 그 의문에서 시작하겠지. 그래서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하고. 내가 볼 때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내 말에 힘입은 그녀가 의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당장 돌아가서 시작할게.”

“고마워.”

“고맙다는 말은 나중에 해줘. 내가 내 일을 마쳤을 때.”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바뀌어 있는 거다. 변화란 바로 그런 거다.

그때 갈사량이 저만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그에게 걸어가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림맹 내원에 들어갈 방법을 찾았습니다.”

* * *

다음 날, 나는 무림맹 본단의 내원에 들어와 있었다.

“갈군사의 당부 잘 들었네. 앞으로 편하게 지내도록 하게.”

천궁단주 종천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갈사량은 무림맹 내부로 들어가는 방법으로 천궁단을 이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종천락은 우리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예전에 생사루로 가는 임무에서 나와 갈사량은 여러 번 그와 천궁단 정예 무인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이후 그는 우리 쪽 사람이 되었다. 정식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니 거의란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한동안만 신세 지겠습니다.”

나는 새로운 인피면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내가 이쪽 조직의 수장이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내 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굳이 지금 그에게 나를 알릴 필요성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갈사량은 내가 아주 중요한 사람이니까, 당분간 내 일에 적극 협조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자넬 본단의 특별사범으로 초대했으니 당분간 맹주전을 제외하곤 내원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조치해 두었네.”

“감사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인사를 마치고 내원을 돌아다녔다. 이곳이야 내 손바닥처럼 훤한 곳이다.

그날그날 경계가 바뀌는 곳도 있고, 항상 일정한 곳도 있다. 바뀐다 해도 장소가 몇 군데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적어도 나는 알고 있었다.

내원 여기저기를 살피던 바로 그때, 한 중년인과 마주쳤다.

그는 가슴에 한 자루의 검을 품고 있었다. 보통 검을 허리에나 등에 차는 것과는 달리 특이한 모습이었다.

사내의 기세는 가슴에 품은 검만큼이나 잘 갈무리가 되어 있었는데, 보통 고수가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가 빠르게 내 아래위를 훑듯이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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