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71화 (17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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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으로(1)

다음 날 아침 나는 갈사량과 함께 불루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갈사량은 길었던 수염과 머리를 깎고 적당한 분장까지 해서 평소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보였다.

“역시 차 맛이 좋소.”

내 말에 갈사량이 적극 동의했다.

“한 번 맛을 보면 자주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뿐인가?”

“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내가 힐끗 주방 앞에 있는 반서정을 쳐다보았다.

갈사량이 살짝 당황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겠습니다만, 오해십니다.”

“그런가?”

“네.”

아무리 단호하게 말해봤자, 속마음을 감추진 못했다.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반서정과의 문제는 쉽게 단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볼 때, 갈사량 역시 반서정에게 마음이 있었다. 어떻게든 두 사람을 연결시켜주면 좋

겠는데.

갈사량이 주위를 돌아보며 화제를 돌렸다.

“역시 천망회의 일처리는 치밀합니다.”

다루 내에는 손님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모두 천망회에 속한 이들이었다.

천망회는 현재 비상이 걸린 상태였고, 이곳은 일종의 작전지휘소가 되어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다루의 풍경 속에서 그 누가 천망회의 치밀한 작전이 진행 중임을 짐작할 수 있겠는가?

손님들이 왔다가 자리가 없어 돌아가고, 손님이 떠나고 새 손님이 오고. 이 모든 일들 속에서 정보가 보고되고 다시 하부로 내려갔다. 그 모든 일들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알고 봐도 언제 어떻게 정보와 명령이 오가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양정회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일은 철저히 천망회에 맡겨두었다.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언급을 해둔 상태였기에, 반서정은 최대한 조심해서 이번 일을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시시각각 들어오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덕분에 나와 갈사량은 천망회의 작전실에 앉아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반서정이 물주전자를 들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차 맛이 어떠신가요?”

“아주 좋소.”

“다행이네요.”

그녀가 빈 주전자 대신 가져온 주전자를 내려놓으며 보고했다.

“양정회의 호위를 맡은 이가 광월단주 주철룡과 철기단주 옥당추라고 합니다. 광월단과 철기단에서 정예들이 함께 움직였고요.”

광월단과 철기단이 움직였다는 말에 나와 갈사량이 깜짝 놀랐다.

“무림맹 조직을 임의로 움직이다니?”

갈사량이 짐짓 인상을 굳혔다. 원래라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주철룡을 용서해선 안 됩니다.”

광월단이라는 무림맹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을 이끌고 있던 그의 배신은 다른 모든 조직이 돌아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애초에 배신해선 안 될 이가 배신하면서 전체가 무너진 것이었다.

“나는 궁금하오. 주철룡은 대체 무엇 때문에 돌아선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돈과 권력, 치정 문제 중 하나겠지요.”

갈사량이 다소 박한 평가를 내렸다. 배신할 당시 주철룡에게서 죄책감이나 주저함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가족이 인질로 잡혔거나, 약점이 잡힌 것 같진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광월단과 철기단의 두 단주와 정예라면 어떤 조직보다 강력했다.

“거기에 또 다른 고수들도 있었습니다만, 누군지는 확인할 수 없었어요.”

“혹시 그들 중에 노인도 있었소?”

“노고수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천소선에 대해서도 물어봤지만, 그렇게 특출난 외모를 지닌 사내는 없었다는 것으로 봐서 그 역시 없었던 모양이다.

보고를 마친 반서정이 빈 주전자를 들고 다시 일어났다.

주방으로 걸어가던 그녀가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갈군사님은 지금 모습이 더 멋있어요. 훨씬 젊어 보이고요. 앞으로도 이렇게 다니세요.”

순간 갈사량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갈사량이 조금만 더 젊었어도 놀릴 거리겠지만, 지금은 어서 두 사람을 연결시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배후세력의 수장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갈사량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오히려 그 사실이 더 신경 쓰이오.”

그가 주철룡과 옥당추에게만 이번 일을 맡겼을 리는 없었다. 노인과 천소선이 없었다면, 또 다른 강력한 고수가 투입되었다는 뜻, 다시 말해 저들에게 또 다른 강력한 고수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이렇게 넘쳐나는 힘을 지닌 자들인데, 무슨 욕심을 또 부리고 있는 것인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양정회를 태운 마차가 무한으로 들어섰다는 보고를 받았다.

내가 침입하기 쉬운 곳에 묵기를 바랐다. 일대 싸움이 벌어져도 주위에서 알아차리기 어려운 외진 곳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리고 채 반시진이 지나지 않아 기다렸던 보고가 날아들었다.

“양정회를 태운 마차가 무림맹으로 들어갔습니다.”

“무림맹으로 들어갔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보고에 나와 갈사량이 깜짝 놀랐다.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알 수 있었다. 만약 마철군이 대법 대상이라면, 이 선택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왜 주철룡과 옥당추를 이용했는지 이제 알겠군.”

“양정회와 아이를 무림맹 내원 깊숙이 숨기고, 배후세력의 고수들까지 지킨다면 아이를 빼오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될 겁니다.”

무림맹 무인들과 배후세력까지. 이중, 삼중으로 보호받는 것이 될 것이다.

설령 나라고 해도 조용히 들어가서 아이를 빼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쉽지 않은 작전이 될 것 같습니다.”

갈사량은 나아가 한 가지를 더 추측해냈다.

“대법도 무림맹 내부에서 벌어질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놈들의 움직임은 우리의 허를 제대로 찔렀다.

“무림맹에서 대법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요?”

내 의문에 갈사량이 대답했다.

“짐작 가는 곳이 한 곳 있습니다. 맹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장소입니다. 외부에서 가장 침입하기 어려운 곳이면서 대법을 시행하기 가장 적합한 곳이 한 군데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오?”

“맹주전에 있는 마봉기의 비밀방입니다. 그가 여인들과 쾌락을 나눴던 곳이지요. 천맹주께서 비밀연무장으로 쓰시던 곳이기도 합니다.”

나야 당연히 그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듣고 보니 그곳일 것 같았다. 워낙 은밀한 곳이어서 대법을 펼치기에 적합했다.

갈사량이 깊어진 눈빛으로 창밖 저 멀리 무림맹 건물을 쳐다보았다.

“주군께서도 저곳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정의각에 새 총군사가 들어오던 그즈음, 그곳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내원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제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갈사량과 함께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갈사량이 나를 맹에 넣어줄 방법을 모색하는 동안, 나는 다른 일을 하나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광두야, 가자.”

“어디로요?”

“가보면 안다.”

“맙소사! 자고로 가보면 안다는 말을 듣고 따라가서 좋은 결과를 보지 못했다던데? 설마 적 수장을 죽이러 가면서 이렇게 놀러 가듯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시죠?”

“후후.”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웃지 마시고요!”

“가늘고 길게 살겠다는 네 의지를 아직까진 배신할 생각은 없다.”

“아직까지란 말이 여전히 의미심장하게 들리는군요.”

“다만 오늘 일이 네 인생을 바꿀 일이 될 수는 있을 거다.”

그 말에 광두의 표정이 진지해지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무슨 내용일지 알고 벌써 인사를 해?”

“설령 나쁜 일이라고 해도요. 살면서 이런 말 들어볼 기회 참 없잖아요? 자신의 인생을 바꿀 기회를 가져보는 것만 해도, 감사드려야죠.”

이번에는 내가 광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배울 점이 없다고? 천만에 말씀이시다.

나이가 들면 저런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저런 말들이 시시하게 여겨지니까. 인생을 바꾸니, 어쩌니 그런 말들이 그저 듣기 좋은 말로 치장된 것들이 대부분임을 알게 되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한편으로 사람을 틀에 박히게 만든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싫어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때는 자신의 인생이 바뀌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럴 수 있는 나를 그러지 않게끔 자극을 줘서.

고맙다, 광두야.

* * *

광두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태성상단의 무한지단이었다. 바로 공수찬을 만나러 온 것이다.

“잘 지내셨소?”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공총관이 돈을 많이 벌어주시는 바람에 내가 걱정이 없지 않소?”

“하하,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광두와 공수찬도 서로 인사를 나눴다.

“잘 지내셨습니까?”

광두의 씩씩한 인사에 공수찬이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밝으셔서 좋습니다.”

예전에 광두와 함께 지낼 기회가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은 많이 친해졌고, 서로의 진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광두가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인사를 마친 후 공수찬이 지난 성과를 내게 보고했다. 매달 보고를 하겠다는 것을, 그러지 말라고 했다. 아무래도 보고를 하다보면 나와의 연관성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내가 공수찬을 전적으로 믿고 있는 이상, 필요할 때 이렇게 보고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태성상단은 이제 중원 곳곳에 지부를 만들었고, 달마다 큰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지난달 수입입니다.”

“지난해 수입이 아니고요?”

“하하, 네. 지난 달 수입입니다.”

액수를 확인한 광두가 나를 보며 감탄했다.

“우리 도련님 정말 부자시네요.”

“아까와는 나를 보는 눈빛이 좀 다르구나.”

“지금 어떤데요?”

“별처럼 빛나고 있다. 목소리도 높아지고 떨리고 있다.”

“선입견입니다! 제 충성심은 항상 이렇게 빛나고 있었습지요.”

지켜보던 공수찬이 광두를 보며 웃었다.

“자, 그 눈빛 더 빛나게 해드리지요.”

공수찬이 상단의 성과에 대해 자세히 말했다.

지난달에 팔만 냥이나 수입을 올린 상황이었다. 그 전달은 칠만 냥, 또 그 전달은 오만 사천 냥이었다. 달마다 수입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태성상단의 첫 수입이 삼천오백 냥이었으니,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게 다 저를 믿고 맡겨주신 덕분입니다.”

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돈을 다 날려도 그를 책망하거나 원망하지 않을 것임을.

이 절대적인 믿음이 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주었다.

“맞소. 공총관처럼 유능한 사람을 발굴한 내 덕분이지요. 하하하.”

“우리 태성상단을 중원제일의 상단으로 키워보고 싶습니다.”

이제 그에게 조심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뒤는 내게 맡기고 마음껏 꿈을 펼쳐보시오.”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결코 위험한 행보를 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철저히 분산해서 투자를 했고, 모든 수익을 상단에 재투자하지 않았다. 그는 내 주목적이 상단을 키우는 것이 아님을 잘 알았다.

수입의 반은 따로 저축해서 언제든 새 조직을 만들면 지원할 수 있게 대비했다. 그렇게 모아둔 돈이 벌써 칠십만 냥이 넘었다.

“이제 때가 된 듯하오. 상단 내부에 강력한 무력조직을 만들 생각이오.”

“오, 좋은 생각이십니다.”

어디까지나 태성상단은 나와는 별개의 조직이었다. 이곳 내부의 힘을 키워두면 적들의 허를 찌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조직을 이끌 인물로 생각해 두신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래도 상단에 속한 조직이니,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겠지요. 돈이라면 눈이 반짝이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사람으로.”

순간 광두가 깜짝 놀랐다.

“설마 저를 새 조직의 수장으로 삼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

“맙소사! 안 됩니다! 저는 그럴 만한 인물이 못 됩니다.”

“돼. 되고도 남아.”

“안 됩니다!”

내가 공수찬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넘치도록 충분합니다.”

“도련님! 총관님!”

광두가 당황했다. 광두가 가끔 경직될 때가 있다. 바로 지금도 그런 때였다.

“왜 이 일을 네게 맡기려는 것인지 아느냐?”

“왜입니까?”

“너를 가장 믿기 때문이다. 가장 믿는 사람에게 돈을 맡기는 거지.”

광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는 마당이나 쓸던 놈입니다.”

“이제 악당들을 쓸어버릴 때가 된 거지.”

“도련님!”

“광두야.”

“네.”

광두를 바라보는 내 눈빛이 진지해졌다.

“넌 할 수 있다. 내 돈을 네가 지켜다오.”

이윽고 광두의 표정도 차분해졌다. 그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와 함께 마차를 타고 가며, 처음으로 강호를 꿈꾸었던 그때부터, 어쩌면 이런 날이 올지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혼신을 다하겠습니다.”

“처음 시작은 백무인이 도와줄 거다.”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내가 고맙지. 그런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주어서.”

이것이 이번 생에서의 나의 정치이자 삶이다. 힘과 권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이끌고 가는 것.

사실 확신할 수는 없다. 이것으로 저들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인간은 결국 두려운 사람보다는 잘해주는 사람을 배신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수많은 권력자들이 공포로 지배해 온 것이고. 아마 배후세력의 노인이 다스리는 방식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 믿음이 그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결과는 이 싸움의 끝에서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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