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70화 (17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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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우리는(3)

“기분은 어떻소?”

노인의 물음에 아이가, 아니 이제는 정체가 밝혀진 천마 백천광이 대답했다.

“나쁘지 않네.”

“조금만 기다리시면 마지막 대법을 시행할 거요.”

처음 환생대법은 완벽하게 성공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부작용이 생겼다. 아이의 몸이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환생 자체는 성공시켰지만, 옮겨지는 영혼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계산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계속 이혼대법을 해야 했다. 다행히 더는 이혼대법을 하지 않아도 될 육체를 찾아냈다.

“해봐야 알겠지.”

평소보다 더 회의적인 반응에 노인이 물었다.

“그자가 신경 쓰이시오?”

“그자…… 보통 놈이 아니었네.”

“나도 그렇게 느꼈소. 하나 큰일에는 반드시 큰 난관과 대적이 등장하는 법이지요. 교주께서도 전생에 경험하지 않으셨소?”

백천광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랬지.”

천하진.

말 그대로 강호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온갖 기록들을 갈아치우더니 자신의 인생까지 쓸어버린 자였다. 사파와 마교에게는 재앙이었고 천재지변이었다.

마지막 그와의 싸움을 떠올리면, 아직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섭섭함과 슬픈 감정도 들었다. 이번에 더 강해져서 그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는데.”

“살아 있었다면 그렇게 되었겠지요.”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백천광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만큼 천하진은 강했다. 막연한 상상 속 승리조차 쉽사리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이제 그의 육체를 가지면 내 마공도 회복하게 될 것이네.”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오.”

백천광이 넌지시 떠보는 말을 던졌다.

“그땐 자네도 나를 감당할 수 없게 될 텐데?”

“무릇 무공이란 것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회복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나는 다를 것이네.”

“덕분에 이 늙은이의 눈이 개안하게 되겠군요.”

여전히 여유로운 노인을 보며 백천광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나를 묶어둘 복안이 있군.”

“그런 것 없소이다. 곧 새로운 대법전문가가 도착할 것이오. 그때까지만 참아주시오.”

노인이 화제를 돌렸다. 그는 결코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에 왜 자신을 환생시켰느냐는 질문에, 강호를 지배하기 위한 절대강자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처음에는 백천광은 그 말을 믿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되살려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몇 번의 이혼대법을 거치는 사이에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노인은 자신의 힘이 필요한 자가 아니었다. 혼자 힘으로도 충분히 이 강호를 차지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왜 나를 환생시킨 것이냐?’

여섯 번째 이혼대법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알아내지 못한 사실이었다.

* * *

백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처럼 평온한 휴식을 가졌다.

이 섬이 주는 안락함은 그 어떤 곳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임연정은 아들과의 시간에 푹 빠져 있었다. 하루 종일 붙어 있었다.

장근 역시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잠시도 쉬지 않고 붙어 다니는 것이 어떤 불안감 때문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헤어지면 어떻게 하지?

어린 아이조차 이런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두 사람이 헤어질 일은 없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더라도 장근은 안전하게 보호받게 될 것이다.

저 멀리 임연정이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좋아 보인다.”

돌아보니 송화린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게.”

내 옆에 선 송화린이 임연정과 장근이 웃으면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내 아이를 가진다는 것, 어떤 기분일까?”

“글쎄.”

그건 나도 말해줄 수 없는 물음이었다.

“아마도 굉장한 경험이겠지?”

“그럴 거야.”

내가 그녀를 돌아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 너도?”

혼인도 안 한 처녀에게 무슨 소리냐며 당황해 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난 자신 없어.”

그녀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만약 임소저와 같은 일을 겪었다면, 난 너무 걱정이 돼서 미쳐버렸을 거야.”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걱정은 걱정.

“하지만 현실은 걱정하는 것과는 다를 거야.”

“정말 그럴까?”

“당연히. 만약 네가 같은 일을 겪었다면, 너도 임소저처럼 훌륭하게 견뎌냈을 거야.”

“어떻게 확신하지?”

“그땐 송화린이 아니라 엄마일 테니까.”

“아!”

그녀가 짤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넌 정말…… 이상해.”

“뭐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나와 동갑이면서?”

“그야 너보다 성숙하니까.”

내가 싱긋 웃으며 답하자 그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애늙은이도 이런 애늙은이가 없을 거다.

그때 그녀 어깨 너머로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보였다.

“자식 걱정은 우리보다 먼저 해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무슨 말이야?”

송화린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광두와 수란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연인처럼 느껴졌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었는데, 뜻밖에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예감이 좋은데? 잘 되면 좋겠다.”

그녀의 말처럼 되면 좋겠지만, 내 예감은 그리 좋지 못했다.

광두는 여자에게 상처받은 상태였다.

과연 수란이 그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성격이 좀 강해 보이던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송화린이 말했다.

“남녀문제는 모르는 거야.”

* * *

갈사량이 기다렸던 소식을 가져왔다.

“천망회주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양정회의 행적을 파악했답니다.”

“언제쯤 무한에 도착하오?”

“육 일 후입니다.”

“놈들은 이미 한 번 대법전문가를 잃었소. 다시는 그를 잃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오.”

“그렇겠지요.”

굳이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더라도 갈사량이 천망회주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알아서 잘 조율할 것이다.

“저들의 수장은 주군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아마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이라서 온 신경이 곤두섰을 겁니다.”

사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천마도 천마지만, 그 노인이 더 문제였다.

“굳이 천마를 환생시키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소. 그만큼 강했소.”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 목적이 앞으로의 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이후 일에 대해선 생각해 보셨소?”

“네. 저들의 전력이 우리보다 강한 이상, 아직 전면에 드러나서 싸울 때는 아닙니다.”

“옳은 말씀이오.”

“제가 드릴 제안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대로 산동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저들은 공자님의 정체를 모릅니다. 벽씨검문의 후계자로 살아가는 겁니다. 저들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산동에서부터 키우는 겁니다.”

“그럼 갈군사께서는요?”

“저는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약간의 분장만 하면 아무도 저를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갈사량이 내가 걱정하는 바를 짚었다.

“매정한 말이지만 천마의 혼이 깃든 아이는 더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이에게 집착하면 놈들은 오히려 아이를 이용하려 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더 위험해지겠지요.”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오.”

“그 아이의 생명은 그 아이의 운명에 맡기시지요.”

그날 노인에게 부탁했다. 대법을 하더라도 아이는 살려주라고. 살릴 수 있으면서 안 살리면 너무 쓰레기 같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이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그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천마!”

“네, 맞습니다. 그를 방치했다가는 엄청나게 강해질 겁니다. 또한 제 예상대로 마철군에게 대법을 사용한다면, 천마가 무림맹주가 되는 겁니다.”

게다가 마철군 역시 죽게 될 것이다. 마지막 대법이니 대법에 성공하는 순간, 마철군의 영혼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대법 성공이 곧 마철군의 죽음을 뜻했다.

“두 번째 방법은 무엇이오?”

“대법 전에 아이를 빼내오는 겁니다. 그리고 탈혼대법(奪魂大法)을 사용해서 아이의 몸에서 천마의 영혼을 강제로 빼내는 겁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소?”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있습니다. 제가 부탁하면 반드시 도와줄 겁니다.”

“아이의 행방은 어떻게 알아낼 생각이시오?”

“우린 양정회가 놈들의 대법전문가란 사실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놈을 추적하면 아이의 행방도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방법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무엇이오?”

“우선 아이를 빼내 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 될 겁니다.”

그럴 것이다. 이번에는 노인이 직접 와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이를 무사히 빼낸다 하더라도 탈혼대법의 준비과정이나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큰돈을 써도 되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렇다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마지막 문제는 탈혼대법이 굉장히 위험한 대법이란 점입니다. 그 과정이나 결과에 여러 변수가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듯 갈사량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된 것이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아주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마치 내가 상대해야 하는 적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상대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내가 결정을 내렸다.

“두 번째 방법을 택하겠소.”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천마를 그냥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천마를 처리하고 난 다음에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하겠소. 그때 산동으로 돌아가서 힘을 기릅시다.”

갈사량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명을 받듭니다.”

* * *

다시 백표와 비무를 했다.

지난 비무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만나자마자 비무를 시작했다.

오늘은 처음부터 백표가 최선을 다해 덤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첫날처럼 백표를 몰아붙였다. 전날의 비무에도 불구하고 백표는 오늘 더 힘들게 싸웠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비무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닷새째 되던 날, 비무가 끝난 후 내가 백표에게 물었다.

“어떤가?”

닷새 전 비무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백표가 고개를 들었다.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그럼 됐네.”

백표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깨닫고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뭔가 실력이 상승한 것 같았는데,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와의 짧은 대화에서 자신의 실력에 변화가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오늘 비무에서 백표의 실력이 상승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계까지 밀어붙인 연속된 비무 덕분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다음 단계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 단계로 향하는 작은 길이 열린 것뿐이다.

그곳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는 백표에게 달렸다. 물론 백표라면 그 길을 잘 통과할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군.”

백표가 그 자리에서 큰절을 올렸다. 나는 그대로 두었다. 절 한 번쯤은 받아도 될 만한 가르침이었으니까.

이번 배움을 잘 갈무리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제 무림맹 원로원의 노고수들을 상대해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백표가 물러나자 갈사량이 등장했다.

“성과가 있었군요.”

“워낙 뛰어난 무인이지 않소?”

“그래서 더 어려운 일 아닙니까? 그 뛰어난 실력을 며칠 만에 더 끌어올려 주시다니요?”

“사실 성과는 내가 있었소.”

“네? 주군께서요?”

내가 환하게 웃었다. 선학비술이 대성에 이른 것이다. 사실 내 선학비술은 비무를 시작하고 사흘째 되던 날 대성에 도달했다.

딱히 다른 방식으로 싸운 것도, 어떤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대신 나 역시 굉장히 어려운 싸움이었다. 백표쯤 되는 실력자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면서도 서로 다치지 않는 싸움이 되어야 했으니까.

사흘째 되던 날 비무를 마쳤을 때,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선학비술이 대성에 도달했음을.

이제 선학비술은 더욱 정교해졌으며 강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제 완성된 두 무공, 추혼수라검술과 선학비술을 함께 사용하면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무공의 조화에 대해 생각해 보고 연구해 볼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부디 그 길에서 심검으로 향하는 길을 찾길 바랄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부디 작은 이정표라도 찾아내기를.

“감축 드립니다, 주군.”

“고맙소.”

진심 어린 축하를 해준 후에, 갈사량이 때가 되었다는 결연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양정회가 내일 무한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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