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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69화 (169/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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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우리는(2)

섬에 반가운 이가 도착했다.

구리빛 근육질로 그간의 노력을 드러내며 백표가 온 것이다.

“주군을 뵙습니다.”

“그동안 고생했소.”

나는 그를 힘차게 안아주는 것으로 지난 노고를 치하했다.

“제가 보내드린 정보가 도움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아주 큰 도움이 되었소.”

소청대에 관한 빠른 정보가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낭패를 당할 뻔했다.

“이번에 흑표대를 키워내면서 느낀 바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비단 무공과 관련된 것들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는 맹호단이라는 무림맹의 틀 안에서 인간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흑표대는 달랐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사람을 뽑았고 훈련을 시켰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모여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얼마 전, 배후세력의 수장인 노인을 봤을 때 그는 무공뿐만 아니라 사람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런 경험들이 무수히 쌓였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칼이 더 무서운 법이다.

백표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갈사량이 객청으로 들어왔다.

“잘 지내셨는가?”

오랜만에 백표를 만난 갈사량이 크게 기뻐했다. 평소 잘 웃지 않는 그가 활짝 웃음을 지었다.

잘 안 어울릴 듯하면서도 서로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무림맹주의 최측근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보면 꼭 그래서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잘 맞고 잘 통하는 사람일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보이는군.”

“많이 타서 그럴 겁니다.”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달라진 것은 외모나 분위기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백표의 실력은 이전보다 강해져 있었고, 무공에 대해 바짝 날이 서 있었다.

딱 지금 이 시기에 내가 직접 한 수 가르침을 내리면 이 강호에 그를 상대할 수 있는 고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수하들은?”

“무한 인근에 분산해서 대기시켜두었습니다. 언제든 출동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말만 들어도 든든했다. 흑표대는 이제 다른 어떤 조직에도 뒤지지 않는 최정예 무력조직이 되어 있었다.

“그들의 충성심은?”

“확고합니다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요.”

갈사량과 나눴던 대화와 같은 맥락이었다.

역시 믿음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흑표대와 같은 조직도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뤄지는 곳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충성심은 물론이고 내부 결속도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현재 데리고 나온 서른셋 이외에도 계속 인원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도 맹호단 시절의 수하였던 양청은 새로 흑표대가 될 이들을 구하고 있었고, 명도는 뽑힌 이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돌아가면 수련도 백표가 직접 시킬 것이다.

“이번에 흑표대가 필요한 일이 있을 것이오.”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나는 백표에게 근래 있었던 사건들과 배후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천마를 환생시켰다는 대목에서 백표 역시 경악했다.

이번에는 갈사량에게 물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선 그들이 천마를 최종적으로 누구 몸에 심을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혹시 짐작 가는 사람이 있소?”

갈사량이 차분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네, 있습니다. 바로…….”

곧이어 놀라운 사람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무림맹주 마철군입니다.”

“마철군이라고요?”

백표가 놀란 표정으로 갈사량에게 되물었다.

“그렇네. 나는 놈들이 마철군에게 천마의 영혼을 넣을 것이라 생각하네.”

“실로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나도 처음에는 설마했지. 하지만 그렇게 여길 정황들이 있다네. 나는 저들이 왜 마봉기를 맹주 자리에 앉혔는지 항상 궁금했다네. 그냥 이용해 먹기 쉬워서? 그런 이유라면 마봉기보다 쉬운 자들이 수십 명은 될 것이네.”

내가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원로원에만 가도 맹주가 되고 싶은 늙은이들이 줄을 설 것이다.

이제 갈사량이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은 계획적으로 마봉기를 살해했습니다.”

나와 갈사량이 있던 자리에서 천소선이 그를 죽였다.

“아시다시피 애초에 의도된 살인이었지요. 저는 그 또한 궁금했습니다. 이렇게 죽일 것 같았으면 왜 마봉기를 맹주 자리에 앉혔을까? 하지만 이후에 아버지의 복수를 명분으로 마철군을 맹주 자리에 올리는 과정을 지켜보

며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애초에 그들이 필요한 것이 마철군이었다는 것을. 무림맹주인 마철군이.”

백표가 나를 쳐다보았다.

“군사의 말을 믿으십니까?”

그는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백표의 불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림맹주 마철군에게 천마의 영혼을 집어넣는다?

다시 말해 천마가 무림맹주가 되는 그야말로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으니까.

“믿네.”

내 본능도 같았다. 그 밖의 숨겨진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마철군을 이용하려는 것만큼은 나 역시 동의했다.

백표의 얼굴이 굳어졌다.

“미친놈들이군요.”

“그래, 아주 제대로 미친놈들이네.”

갈사량에 이어 내가 말했다.

“그만큼 위험한 놈들이기도 하지. 저들을 상대할 때 절대 긴장을 늦춰선 안 되네.”

갈사량과 백표가 동시에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 * *

“당신은?”

마철군이 깜짝 놀랐다. 방으로 들어왔을 때, 자신의 침소 동경 앞에 신비여인이 화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는 최고군.”

“재밌잖아요?”

여인이 잠시 멈췄던 화장을 계속했다.

마철군이 침상에 걸터앉았다. 그녀를 보는 순간 기뻤다. 너무 기뻐서 왜 이제 왔느냐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마철군이 짐짓 퉁명스럽게 말했다.

“무림맹주의 침소가 이렇게 허술하다니. 맹호단 놈들 다 잘라야겠군.”

“그러지 마세요. 어차피 당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농담처럼 오가는 말이었지만, 정말 그녀가 드나드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마철군 자신조차 그녀의 경신술을 따라가지 못했으니까.

“피곤해 보이네요.”

동경에 비친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 한 마디 걱정에 마철군의 마음이 울컥했다. 과도한 업무에 한껏 쌓였던 피로가 삽시간에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당신이야말로 피곤해 보이는군.”

그러자 여인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힘든 일이 있었어요.”

“무슨 일이오?”

동경 속에서 그녀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가 슬픈 표정을 짓자, 미소를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매혹적으로 보였다.

‘젠장!’

미인계임을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인을 보기 전까지는 온갖 생각이 다 든다. 냉정하게 판단해서 여인을 이용해야지 하다가도, 여인을 보는 순간 이성이 마비되며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들 뿐이다.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들고 싶다.’

마철군이 그녀에게 말했다. 해서는 안 될 말임을 알았지만 자신의 욕망을 감출 수 없었다.

“보고 싶었소.”

마철군과는 달리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철저히 감추고 있었다.

동경 속에서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저도요.”

* * *

그날 오후 나는 백표와 마주서 있었다.

이곳은 장원에 딸린 작은 연무장이었다. 이제 백표를 위해 미뤄뒀던 일을 할 때가 된 것이다.

그와 비무를 하려는 것이다. 그를 한 단계 끌어올려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이번에 이선을 상대하면서 권선을 선학비술로 죽였다. 언제나처럼 죽였지만 느낌이 달랐다. 워낙 고수들을 상대했기에 그 승리가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이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단계가 대성에 이르기 직전이라는 것을. 운이 좋다면 백표와의 비무에서 나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나를 진짜 적이라 여기고 최선을 다하게.”

“네, 알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백표는 내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근래 무공이 높아져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간, 내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

물론 몇 수 겨뤄보면 그 생각이 헛된 노파심인지 알게 되겠지.

백표가 사용하는 검술은 풍아검술이었다. 시원한 바람소리가 인상적인 풍아검술은 빠르고 탄탄했다.

나는 그를 선학비술로 상대했다.

쉬이이익!

검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첫수는 내 반응을 살피는 응수타진의 한 수.

하지만 나는 첫 수부터 봐주지 않았다.

날아든 검을 가볍게 피한 후, 그의 가슴에 일격을 가했다.

퍼억!

내 주먹에 가슴을 적중당한 백표가 뒤로 주르륵 밀렸다.

백표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간단히 가슴을 내준 것도 놀라웠고,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내상을 입지 않아서였다.

잠시 멍한 그를 보며 내가 꾸짖듯 말했다.

“정신 차리고 최선을 다하시오.”

“네.”

백표의 눈빛이 달라졌다. 동시에 움직임 또한 바뀌었다. 훨씬 빠르고 강력해졌다.

물론 그가 어떤 마음, 어떤 초식을 펼치느냐는 어차피 상관없었다. 내가 만들어낸 싸움으로 그를 끌어들일 작정이었으니까.

쉭! 쉬이익!

그의 검이 나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아직도 그의 검에는 주저함이 있었다. 내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나는 옆구리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것으로 그 주저함을 응징했다.

퍽!

그가 끅소리를 내며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맞을 때는 끝장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뼈가 부러지지도 않았고 내상을 입지도 않았다. 며칠 몸이 쑤질 정도의 타박상만 입은 것이다.

나를 향한 백표의 얼굴에 놀람이 가득했다. 자신을 죽이는 것보다 다치지 않고 무력화시키는 것이 몇 배는 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놀람은 자신이 모든 힘을 다해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없을 것이란 올바른 상황판단으로 이어졌다.

백표가 이를 악물었다.

이제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나 역시 정신을 집중했다. 최선을 다하는 백표의 공격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오십 수, 칠십 수…… 그렇게 백여 수가 넘었을 때, 나와 백표는 생사혈전을 나누는 적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의도한 바였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가 당하게끔 몰아붙인 것이다.

풍아검술의 진수가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이미 백표는 풍아검술의 대성을 이룬 상태였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상태.

내가 ‘거의’란 말을 붙인 이유는 대성을 이룬다고 모든 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바다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면 끝일 것이다.

하지만 저 먼 바다로 흘러가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여정은 그때부터인 것이다.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후우, 후우, 후우.”

한바탕 비무가 끝났을 때, 그곳에는 백표의 거친 숨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렇게 미친 듯 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심지어 과거 사파와 마교와의 싸움에서도 이렇게 격렬하게 싸운 적이 없었을 것이다. 실전보다 더 실전 같았던 비무였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는 자신이 무슨 초식을 언제 어떻게 썼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비무를 차분히 되돌아볼 시간을 주어야 할 때다.

대신 나는 그에게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가르치는 방법은 상대에 따라 여러 방식이 있는 법, 백표의 경우는 ‘네가 알아서 스스로’였다.

“이따 밤에 다시 하세.”

밤에 다시 백표와 마주섰다.

이번에는 연무장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호숫가에 마주섰다.

“이번에는 마음껏 내공을 사용해서 공격하게.”

“네, 알겠습니다.”

첫 비무에 이 말을 했다면 그는 정말 망설였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비무에서 그는 내 실력을 확인했다. 내가 강한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백표의 검에서 검기가 날았고, 검강이 뿜어져 나왔다.

무인으로 살면서 자신이 지닌 모든 절기를 쏟아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진정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자신을 가르쳐줄 선의를 가진 상대와의 비무라면 기연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백표는 싸움에 빠져들었고, 강력한 내공을 담아 가지고 있던 모든 절기를 쏟아냈다.

“헉헉헉헉.”

비무를 마쳤을 때, 백표는 완전히 지쳐 쓰러졌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이 모든 힘을 다 쏟아부은 것이다.

그럼에도 내 옷깃 하나 건들지 못했다. 대신 그의 온몸은 시커먼 멍으로 덮여 있었다.

“내일 아침에 연무장에서 보세.”

“네.”

그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주군.”

나는 첫 비무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단 한 마디의 말도 해주지 않았다. 해답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는 그런 단계에 와 있었으니까.

나는 며칠 내로 백표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것이다.

그때 부디 나도 함께 올라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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