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64화 (16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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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대법(1)

마철군이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림맹주가 되고 나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그였다. 만나야 하는 사람도 많았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오늘도 조금 전까지 한 시진에 걸친 회의를 끝마쳤다.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월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한데 요즘의 이 허전함은 대체 무엇일까?

“맹주님.”

돌아보니 총군사인 노선생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천하진이 죽은 후 무림맹의 세 번째 총군사인 그였다. 비록 전쟁은 나지 않았지만 무림맹 내부의 격변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였다.

“멸마단(滅魔團)에 지원하기 위해 중원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조직의 이름은 멸마단으로 정해졌다. 다른 여러 이름들이 후보에 올랐으나, 마교를 없앴다는 가장 직관적인 이름이 좋다는 노선생의 의견에 따라 멸마단으로 이름을 지은 것이다. 마교가 존재할 때면, 반드시

존재했던 무림맹 조직이기도 했다.

“놈들이 멸마단 내부에 사람을 심을 수도 있소.”

“그래서 입단 심사를 아주 엄격하게 할 작정입니다.”

“좋은 생각이시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저들이 굳이 사람을 심으려 한다면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몇이 대세를 바꿀 수는 없으리라.

멸마단은 자신이 무림맹을 장악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참, 그리고 마소협이 천도문주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맹주님께서 보낸 것으로 해서 축하사절을 보냈습니다.”

마철군은 못내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천도문주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바로 마령인이었다.

마양화와 마궁태가 서로 싸우다 죽어버리는 바람에 천도문은 자연스럽게 마령인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원래는 그들 모두 자격미달이었는데, 배후세력이 마령인에게 힘을 실어주는 바람에 이번 기회에 천도문주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눈엣가시 같은 놈이 힘을 쥐었습니다.”

마철군의 말에 노선생이 뜻밖의 견해를 내놓았다.

“오히려 잘된 측면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그는 호시탐탐 맹주님과 맹주 자리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도문주란 자리가 오히려 그를 제약하게 될 겁니다. 이제 그는 철저히 외부에 드러나게 되었으니까요.”

다시 말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외부에 드러난다는 뜻이었다. 그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공식적인 일이 되기 때문이다.

마령인에 대한 미움 때문에 마철군이 잠시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마철군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의 주위에 사람을 심으시오.”

“이미 그리해두었습니다.”

“잘 하셨소.”

마철군의 풀어진 얼굴에 이제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나중에 무림맹을 완벽하게 장악하면 그때 마령인을 없애버릴 생각이다. 아직은 노선생에게도 밝히지 않은 속마음이었다.

“그럼 오후 회합 때 다시 뵙겠습니다.”

노선생이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갔다.

혼자 남은 마철군이 다시 창가에 섰다. 오래전 아버지와 함께 맹주전을 찾아왔을 때, 천하진이 이곳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참으로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저 자리에 나도 서고 싶다.’

그때 비로소 무림맹주에 대한 첫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이 자리에 섰다.

‘한데 왜 이리 마음이 허전하지? 세상을 다 가졌는데?’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이 자리에 올려준 그 아름다운 신비 여인.

그날 자신의 침상을 찾은 이후 그녀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오지 않으니까 더 보고 싶었다.

그날 그녀가 말했다. 이젠 당신이 나를 찾아오라고.

‘대체 어디로 찾아오라는 것이지?’

* * *

“아이를 죽일 작정이오?”

천소선이 나를 응시하며 물었다. 혈도가 제압당한 상태에서도 그는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 남을 수 있는지를 아는 자였다.

“아이를 살릴 방법을 먼저 말해.”

“나중에 알게 될 거요.”

잠시 그를 바라보던 내가 고개를 내저으며 차갑게 말했다.

“거짓말이군. 나는 너 같은 자들이 말하는 나중은 믿지 않는다.”

악인이 말하는 나중은 ‘복수’밖에 없다.

내가 망설이지 않고 수라명왕검을 뽑았다.

“널 죽인 후에, 아이를 살릴 방법은 내가 찾겠다.”

검을 번쩍 드는 순간 천소선이 말했다.

“거짓이 아니오. 그 방법은 대법책자에 나와 있소.”

“책자에 나와 있다고?”

천소선이 임연정에게 빠르게 말했다.

“내가 준 대법책자를 가져오시오.”

임연정이 곧바로 대법이 적힌 책자를 가져왔다.

“어디에 있나?”

“맨 뒤에 있소.”

임연정이 책장을 넘겨 끝부분을 살폈다. 뒷부분을 읽어가던 그녀가 기쁜 얼굴로 소리쳤다.

“아, 있어요!”

이내 그녀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방법은 나와 있지 않아요. 그냥 대법시전자를 부작용으로부터 살려낼 방법이 있다고만 적혀 있어요.”

내가 천소선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 방법을 알고 있다?”

“그렇소. 이제 당신이 결정하시오!”

우린 주도권을 주고받고 있었고, 내가 아이의 목숨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는 한, 놈에게서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놈의 기세를 한 풀 꺾이게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그를 보며 말했다.

“여기 시체부터 치우도록.”

생각지도 못한 말에 천소선이 깜짝 놀랐다.

“뭐? 설마 나보고 치우란 말이오?”

“네 수하들이니, 네가 치워야지.”

그는 정말 이런 상항에서 시체처리나 하라는 것이 진심이냐는 감정을 담아 나를 노려보았다.

그때 일호가 나섰다.

“제가 치우겠습니다.”

나는 그것까진 말리지 않았다. 앞서 천소선에게 치우라고 한 것은 그의 기세를 꺾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려던 것이지, 그를 화나게 할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일호가 나서서 마당에 있던 이선과 백석의 시체를 묻었다.

그곳을 깨끗이 치운 다음, 모두를 법당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안에서 잠이 들어 있던 정소 역시 깨워서 마혈을 제압했다. 자다 깬 그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내게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처음부터 이 대법 시간은 열두 시진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미 대법은 시작했어야 했다. 대법을 마쳤는데도 천소선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누군가 이곳으로 찾아올 수도 있었다. 대법 중간에 누군가 확인하러 올 수도 있는 일이고.

나는 임연정의 옆으로 걸어갔다.

“아이는 괜찮소?”

그러자 무뚝뚝하게 임연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우린 같은 편임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또 다른 아이에게로 걸어갔다.

잠시 아이를 내려다보다 천소선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이의 이름은 뭔가?”

“이름이…… 젠장. 들었는데 생각이 나지 않소.”

그토록 중요한 영혼이 깃들 몸인데, 이름조차 모르다니? 그것은 이 아이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단지 영혼을 담을 빈 그릇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런 불쾌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악인을 상대할 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지극히 소모적인 일에 불과하다.

화를 내면 무엇 하겠는가? 상대는 반성하지도, 변하지도 않을 텐데. 오히려 상대의 감정이 흐트러진 것을 보며 내심 기뻐하거나 그 분노조차 이용해 먹으려 들 것이다.

그들에 대한 고민은 어떤 죗값을 받게 할 것이냐 정도면 충분하다. 벽리단으로 다시 살아가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단 하나, 악인을 대하는 마음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내가 일호를 쳐다보자 천소선이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안 되오. 두 아이 모두 죽게 되오.”

그래, 적어도 이 부분은 사실일 것이다. 소청대의 존재의미를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다른 방법이 있더라도 천소선은 이 부분만큼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내가 아이에게 깃든 다른 영혼을 없애려 왔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반드시 아이에게 영혼을 옮겨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의 목숨을 내세워 그 영혼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만약 일호에게 옮겼다가는 그냥 일호를 베어버리면 그만이니까.

내 시선이 천소선과 얽혔다. 이제 내 본능에 따라 결정을 내릴 때다. 부디 이번도 나를 배신하지 말아 주기를.

이윽고 내가 결론을 내렸다.

“좋아. 원래 하려던 대로 대법을 진행하라.”

임연정이 나를 쳐다보았다. 하면 자식이 죽는다는 것을 그녀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전음을 보냈다.

-그를 믿나요?

내가 답했다.

-믿지 않소.

-그래요, 그 대답이 나오길 기대했어요.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천소선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아직 명령을 받아야 할 상대는 천소선이었으니까.

천소선이 그녀에게 짤막하게 명령을 내렸다.

“대법을 시작하시오.”

“네.”

임연정과 정소가 본격적으로 대법을 시작했다.

과연 놈에게 아이를 살릴 방법이 있을까? 설령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이를 살리는데 필요한 물건은?”

“없소.”

그렇다는 말은 자신의 무공이나 기술로 아이를 살린다는 뜻인데? 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천소선에게 경고했다.

“아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알고 있소.”

“그럼 됐다.”

놈은 분명 자신이 살아날 방법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제 목숨에 대한 애착이 강한 놈이었으니까.

나는 품에서 작은 깃발을 하나 꺼내서 문 앞에 꽂아 두었다.

그러자 잠시 후 그곳으로 진이 도착했다. 문을 살짝 열고 진과 전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가장 뛰어난 수하들을 풀어서 이곳 주위를 완벽하게 감시하고, 접근하는 이가 있으면 먼저 연락하도록. 그리고 자넨 이 주위에 대기하고 있다가 대법이 끝날 시간에 나를 찾아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진을 보낸 후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대법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여러 개의 향이 동시에 피어올랐고 기괴한 장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소선은 한옆에 얌전히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가 나를 믿고 있냐고? 천만에. 내가 그를 믿지 않는 것처럼, 그도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 똑똑한 놈이니, 분명 어떤 복안이 있을 것이다.

과연 그가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 * *

“어르신, 어르신.”

아련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노인이 눈을 떴다.

앞서 눈썹이 없는 사내의 모습이 시야에 보였다.

“그만 일어나십시오.”

“내가 얼마나 잤지?”

“여섯 시진입니다.”

“한 번도 깨지 않고 여섯 시진이나?”

“네.”

푹 잔 것을 기뻐할 법도 했건만 노인의 표정은 오히려 어두워졌다. 나이 들면서 잠이 없어졌다. 한두 시진만 자도 더 잠이 오지 않았다. 한데 근래에 들면서 잠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그게 어떤 징조가 아닌지, 노인은 걱정

이 되었다.

노인이 몸을 일으켰다. 잠을 많이 자서인지 처음에 이곳에 누웠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가뿐했다.

“밖에 성회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나?”

“한 시진쯤 되었습니다.”

한 시진이나 기다렸다는 것은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뜻.

노인이 알 모양의 침상에서 나와 바깥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사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처럼 바깥에 너무 오래 계시면 안 됩니다.”

“알겠네.”

노인이 동굴 밖으로 나왔다.

동굴을 나오자 단신의 백발노인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그가 바로 앞서 사내가 말한 성회주였는데, 그가 바로 중원상인연합회의 회주이자 대륙상단의 단주인 성왕보였다. 일전에 황금대연을 주최한 노인이 바로 그였다.

노인이 나오자 성왕보가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돈과 권력이라 믿고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아닌가?”

성왕보가 노인에게 돌아섰다.

“아뇨, 여전히 그러합니다. 대신 한 가지가 더 늘었지요.”

“그게 뭔가?”

“젊음입니다.”

젊음이란 말에 노인이 피식 웃었다. 그래, 나이가 들어봐야만 안다. 젊음이 돈과 권력보다 앞선 순위에 있다는 것을.

“돈이 없는 시절에는 젊음을 다 바쳐서 돈을 벌려고 하지요. 하지만 늙으면 평생을 번 돈을 다 바쳐서라도 빈털터리였던 그때의 젊음을 사려고 하지요. 요즘 가끔 이 인생의 모순에 대해 생각해 본답니다. 하하, 오랜만에 뵙

습니다, 어르신.”

짧은 회한과 함께 성왕보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잘 지내셨나? 성회주.”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노인이 성왕보의 옆으로 걸어가서 나란히 섰다. 그곳에서 저 멀리 경치를 바라보았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여긴 아주 좋습니다.”

“자주 놀러 오게나. 아니, 아예 나랑 이곳에서 지내는 것은 어떤가?”

“돈 버는 일도 중독 아닙니까? 저는 이곳에서 하루도 못 살 겁니다.”

“하하.”

두 사람이 잠시 자연이 주는 멋진 풍광에 빠져들었다.

이윽고 노인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들이 자넬 보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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