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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인가?(4)
이들을 없애버릴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추혼수라검술의 마지막 초식, 대멸겁을 사용하는 것이다.
위험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하지만 그것을 사용했다간 저들 셋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죽게 된다. 말 그대로 나를 제외한 모두가 죽게 된다는 뜻이다.
설령 이들 셋만 죽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신중히 사용해야 할 방법이었다. 바로 임연정의 아들 때문이다.
아이는 대법을 시행하면 곧바로 죽고, 대법을 하지 않으면 며칠 내로 죽는다.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지닌 유일한 인물이 바로 천소선임을. 그가 이 대법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니까. 배후 세력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을 유일한 자이기도 했다.
일단은 그를 살려두어야 한다. 죽이는 것은 아이를 살려낼 방법을 알아낸 이후여야 한다. 물론 그도 방법을 모를 수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마음이 답답해졌다.
어쨌든 지금은 싸움에 집중해야 할 때다.
천소선은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나는 그가 마봉기를 죽였던 수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한 줄기 지풍으로 마봉기의 이마에 구멍을 냈다. 지풍이라 불리기에는 엄청나게 강력한 한 수였다. 너무 빠르고 강력해서 기습적으로 당했다면 나조차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이 싸움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지풍이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겠지만 강호인들 간의 싸움도 역시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쯤 되는 고수는 칼질이나 주먹질이 느려서 싸움에 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선택을 잘못해서 죽는 것이다.
이런 선택들이다. 천소선을 가장 먼저 죽이느냐? 아니면 이선을 먼저 죽이느냐? 이선을 죽여야 한다면 검선이냐, 권선이냐?
내 선택은 권선을 가장 먼저 죽이는 것이었다. 왜 그를 선택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댈 수는 없었다. 본능이었다. 수많은 싸움을 거쳐 온 내 본능이 이 싸움에서는 그를 먼저 죽이라고 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내 의도를 들켜선 안 된다.
쉬이익.
부우웅
검선과 권선이 좌우에서 나를 압박하며 날아들었다. 천소선은 가운데서 나를 압박하며 공격했다.
세 사람은 합격술을 연마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평생 합격술을 연마한 사람들처럼 공격해왔다. 바로 그들의 무공수준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일방적으로 밀린 것은 아니었다. 셋이 모였다고 세 배의 힘을 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검선의 검을 쳐낸 후, 날아드는 권선의 주먹에 검을 내질렀다.
꽝!
허공에서 폭음이 터졌다. 주먹에 깃든 강기가 내 검기와 충돌한 것이다.
쉭쉭쉭!
그 틈을 비집고 천소선의 검이 내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천소선은 검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의 주된 무공이 검술이 아님은 알 수 있었다.
평생 검술을 연마한 나였다. 내 눈을 속일 순 없었다. 그의 독문무공은 그때의 그 지풍이거나, 그와 관련된 무공일 것이다.
쉬이이잉!
그의 검을 피하며 빠르게 반격했다. 천소선이 뒤로 물러났고, 검선과 권선이 발작하듯 나를 공격해 왔다.
천소선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반드시 그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다시 우리 네 사람이 뒤엉켰다.
파파파파팡!
주먹이 파괴적으로 날아들었고.
쉭쉭쉭쉭쉭!
검선이 만들어 낸 공격이 허공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지켜보던 이들이 모두 입을 벌렸다. 일호쯤 되면 무공에 자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알 것이다. 이 싸움에 끼어들면 자신은 단지 십초지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만큼 우리들의 싸움은 굉장한 것이었다.
땅에서 싸우던 우린 번쩍 하는 순간 어느새 우린 허공에서 싸우고 있었고, 다시 담벼락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때마다 전혀 다른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때그때 마구잡이로 싸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나 나는 정확한 목적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내 목표는 권선이다.
그렇다면 의도를 감춰야 하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 의도를 드러냈다. 그래서 그를 노리는 것처럼 굴다가 다른 사람을 기습하려고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내 일차 목적이었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했다.
권선을 노리다가 천소선을 기습했고, 검선의 도움에 막혀 실패했다. 이것은 의도된 실패였다.
그리고 곧이어 감행된 두 번째 시도.
쉭쉭쉭!
권선을 미친 듯이 몰아붙이며 공격하다가 벼락처럼 빠르게 몸을 돌려 검선을 공격했다.
하지만 앞서의 실패로 검선은 이미 내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쉭! 파악!
검선의 반격에 내 어깨에 피가 튀었다.
싸움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피가 보인 것이다.
부상을 당한 내가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권선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뒤에서 달려들었다.
이 싸움이 시작된 이후, 내가 기다려왔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비록 얕은 상처였지만 일부러 피까지 내보이면서 만든 기회였다.
몸을 빠르게 돌리며 권선의 주먹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지금까지 피하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그를 향해 쇄도한 것이다.
생각지 못한 대응에 권선이 깜짝 놀랐을 때는, 이미 내 팔이 그의 팔을 휘어 감고 있었다.
검만 사용하던 내가 이런 방식의 접근전을 펼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권선은 나의 한 수를 허용했다.
휘리릭.
그의 신형이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무관 친구와 장난을 치는 것과 같은 한 수. 설마 고수가 저런 수법에 다치겠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한 수. 하지만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던 선학비술의 진수가 깃든 한 수.
꽝!
권선이 바닥에 처박혔다.
내가 이 순간만을 노렸듯, 천소선 역시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그의 손가락에서 한 줄기 지풍이 발출되었다.
슁.
퍽.
내 뒤쪽 담에 구멍이 나 있었고, 다시 그 뒤쪽의 나무도 구멍이 나 있었다. 어디까지일지 모르겠지만 구멍은 일직선으로 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힌 상태였다.
콧등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풍이 뒤로 젖혀진 얼굴 앞으로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극적으로 피하지 못했다면 내 얼굴에는 구멍이 났을 것이다.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천소선이 지풍을 날리기 전에 먼저 몸을 피했다. 다시 말해 본능적으로 예감한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천소선의 지풍이 날아올 것이라고. 이런 느낌으로 피하지 않는다면 피하기도 쉽지
않은 공격이었다.
예감은 적중했고,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반면 바닥에 처박힌 권선은 목숨이 끊어진 후였다.
검선의 얼굴에 경악이 가득했다. 저 간단한 엎어치기 한방에 평생을 몸으로 수련해온 권선이 죽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은 것이다.
반면 천소선은 다른 의미에서 경악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공격이 반드시 적중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그것을 피해낸 것이다.
검선은 읽어내지 못했지만 천소선은 느끼고 있었으리라.
나의 진짜 첫 번째 목표가 권선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권선을 죽이는 그 순간, 나를 죽일 작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권선 같은 고수를 죽이는 순간에는 반드시 어떤 허점이 드러나게 될 테니까. 비록 실패에 그쳤지만 그의 선택은 아주 훌륭하고 적절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무서운 지풍에는 제약이 있었다.
막대한 내공이 들어간다거나, 혹은 한번 사용하면 다시 사용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거나. 어쨌든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만약 제한이 없다면 저 무서운 공격이 두 번만 연속되어도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승기를 잡았을 때, 몰아붙여야 한다.
내가 수라명왕검으로 검선을 겨눴다. 그 모습은 검선에게 굉장한 무례이자 도발이었다.
더구나 조금 전, 권선을 죽인 내가 아닌가?
검선이 그대로 검을 내지르며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멈추시오!”
천소선의 만류는 한발 늦었다. 앞서 공격이 실패한 것 때문에 잠시 판단이 늦은 것이다.
검선과 나는 먼저 허공에서 뒤엉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천소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머리에서 공격을 막을 순 없다. 천소선의 기습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본능이었다.
창창창창창창!
검선의 검과 수라명왕검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검선은 베지 않고 연속해서 찔러왔다. 그의 최종 한 수는 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찌르기 공격이었던 것이다.
수라명왕검이 찔러오는 검을 튕겨냈다.
공수를 주고받는 검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굳이 검기나 검강을 사용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검의 움직임이 이토록 빠른데, 굳이 다른 무엇인가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이번에도 내겐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그를 이끌고 점점 천소선과 멀어지느냐, 아니라면 점점 가까워지느냐? 얼핏 생각하면 그와 멀어지는 것이 그의 두 번째 지풍을 피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되겠지만, 나는 반대로 가까워지는 쪽을 선택했다.
그와 멀어질수록 그의 의도를 느끼지 못할 테니까. 차라리 가장 가까이에서 그의 기도를 느끼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한바탕 신기에 가까운 검술이 이어졌고, 승패가 갈렸다. 적어도 검을 든 일대일 싸움에서 검선이 나를 이길 수는 없었다.
푸우우욱!
내 검이 검선의 심장을 갈랐을 때, 두 번째 지풍이 날아들었다.
슁!
퍽.
검선의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저 멀리 뒤쪽 담에 또 하나의 구멍이 생겼다. 담장 너머 나무에도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검선의 시체 뒤에 몸을 틀은 채 서 있었다. 지풍에 구멍이 뚫린 방향과 반대쪽이었다.
본능적으로 피한 방향이 옳았다. 운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간발의 선택이었다. 나는 그것이 내 본능이라 믿었다.
털썩.
검선의 신형이 바닥에 떨어졌다.
천소선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처음 이 싸움이 시작될 때만 해도 이런 결과를 낳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그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태어나서 단 한번이라도 목숨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 만약 없었다면 이 생소한 느낌이 굉장히 싫을 것이다.
“대체 당신은 누구요?”
“이 상황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그렇지. 처음부터 그렇게 물었어야지.”
내가 법당을 쳐다보았다.
“저 안에 있는 아이들.”
“아이들?”
생각지 못한 말에 천소선이 의외의 눈빛을 발했다.
“아이들을 데려가겠다.”
“당신은 저 아이와 무슨 관계요?”
“그건 알 것 없고.”
“불가!”
아마도 천소선은 아이의 몸에 깃든 영혼을 노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경쟁 세력인 내가 고작 아이 하나 구하려고 자신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는 생각지 못할 테니까.
“그럼 너를 죽인 후에 데려가면 되겠지.”
내 말에 천소선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시간을 주면 한 번 더 지풍을 사용할 것이다. 그 전에 놈을 제압해야 한다.
물론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우선 제압한 후에 다음 일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내가 그를 향해 몸을 날리던 순간. 그의 두 눈에서 하얀빛이 나오는가 싶더니.
번쩍.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예전에 이 신묘한 경신술 역시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사라지는 순간, 나는 곧장 법당으로 몸을 날렸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려던 바로 그때.
쉬이이익!
허공에서 갑자기 검이 튀어나오며 나를 찔러왔다.
예상치 못했다면 절대 막을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완벽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가 이번 대법을 포기할 리는 없었으니까.
따당.
그의 검을 튕겨낸 후, 검이 튀어나왔던 허공에 일장을 날렸다.
퍽!
천소선이 모습을 드러내며 붕 날아갔다.
“커억.”
몸을 일으킨 그가 피를 토해냈다. 가볍게 때렸기에 딱 그만큼의 가벼운 내상만 입었다.
뒤따라 쇄도한 내가 그의 마혈을 제압했다.
탁탁.
내가 직접 풀어주지 않으면 절대 풀 수 없는 강력한 점혈법으로 마혈을 제압했고, 혹시 하는 마음에 단전까지 한 번 더 제압했다.
그가 절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강한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모르니 이 팔을 잘라버리면 지풍을 사용하지 못하겠지.”
“안 돼!”
그가 애원했다.
내 검이 허공에서 잠시 멈췄다.
너무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붙여서 그를 절망의 늪에 질식시켜선 안 된다. 한발만 빠지게 해서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이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