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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55화 (15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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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누구의 편인가?(1)

일호가 몰던 마차가 숲속의 장원에 도착했다.

무한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은 이들 조직의 또 다른 안가였다.

장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인이 임연정을 맞이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따라 오시지요.”

그가 임연정을 데리고 후원 쪽으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칠호가 일호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일호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법을 진행하는 쪽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네.”

“문제라 하시면?”

일호가 말없이 칠호를 바라보았다. 말할 수 없는 기밀이란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으로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대법을 맡기로 한 인물이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난리가 날 리 없을 테니까.

칠호는 날아갈 듯 기뻤지만 겉으로 전혀 표를 내지 않았다. 이럴 때는 무심한 자신의 성격이 도움이 된다.

“당분간 대기입니까?”

그녀의 물음에 일호가 객청을 바라보았다.

“자세한 결정은 저 안에서 나겠지.”

칠호는 알 수 있었다. 큰일이 벌어졌을 때, 일호도 자신과 마찬가지 위치에 있는 사람이란 것을.

하긴 더 높은 자들이 일(一)과 칠(七)의 차이를 얼마나 크게 생각할까? 그저 이용해 먹기 쉽게 소모품에 번호를 붙여둔 것에 불과할 텐데.

“우선은 지금까지처럼 임연정을 보호하면서 명령을 기다리도록.”

“네.”

대답은 여느 때와 같았지만 담긴 뜻은 전혀 달랐다.

칠호는 이제 이 조직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 * *

객청에서 임연정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천소선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임연정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가 직접 나선 것만 봐도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반갑소.”

임연정은 천소선을 알고 있었다. 황금대연 사건 때 다시 조직으로 돌아갔을 때, 그때 천소선을 만났다. 그때의 일도 오늘만큼이나 중대한 사건이었으니까.

“죽음을 부르는 여인이군.”

임연정은 그 말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당시 검제를 비롯해 모두가 죽은 일을 빗댄 말이었다.

“실무진에게 책임을 미루진 마시죠.”

그녀가 당당히 대답하자 천소선이 피식 웃었다.

“옳은 말씀이오.”

그때 또 다른 사내가 그곳으로 들어왔다.

그는 서학사를 도우려고 했던 또 다른 사내였다. 그는 서학사의 방에서 나왔을 때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은 바깥에 누워 있었고 건물이 불타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지만, 벽리단이 그를 일부러 살려줬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임연정만 살아남으면 그녀가 의심받을 것을 걱정한 벽리단의 의중을 알 리 없었다.

“정소(鄭消)요.”

“임연정이에요.”

두 사람이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서학사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 대법에서 자신의 역할만 하라는 뜻으로 철저히 두 사람을 도구화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인사를 마치자 천소선이 비로소 말했다.

“서학사가 죽었소.”

임연정과 정소가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의 놀람은 성격이 달랐다. 그럴 리 없다고 펄쩍 뛰는 정소와는 달리 임연정은 멍한 표정이었다.

‘정말 그가 해냈어.’

겉으로 봐선 오히려 그녀가 더 충격에 빠진 듯 보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그녀의 반응은 너무나 자연스러웠으니까.

“새로운 대법책임자가 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시오.”

정소가 버럭 화를 내며 물었다.

“대체 누구 소행입니까?”

숨겨진 실체를 모르는 그는 진심으로 서학사를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소.”

“반드시 잡아내서 찢어 죽여 버리십시오!”

“당연히 그래야지요.”

천소선이 임연정을 쳐다보았다. 그대는 무슨 할 말이 없느냐는 표정에 임연정이 담담히 물었다.

“새 대법책임자는 누구죠?”

“나중에 알게 될 거요.”

“부디 이번에는 생명줄이 긴 사람을 부르세요. 엄한 사람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지 마시고.”

“뒤끝이 있으시군요.”

“주위에서 자꾸 사람들이 죽어나가니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요.”

“이젠 그럴 일 없을 거요.”

천소선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만 방으로 돌아가서 쉬시오.”

임연정은 일부러 까칠하게 굴었다.

이번 일에는 자신이 개입되어 있었다. 천소선은 겉으론 표를 내지 않았지만 자신이나 정소를 의심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눈에 띄게 까칠하게 구는 것이 의심을 피하는 길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녀가 객청에서 나왔을 때, 칠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말없이 앞마당을 걸었다. 잘 꾸며진 화원을 거닐다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직한 대화를 시작했다.

“정말 그가 해냈어요. 대법을 맡은 서학사를 죽였어요.”

임연정이 사실을 전하자 칠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벽리단이 이번 일을 해낼 것을 믿고 있었다.

물론 이 조직이 어떤 조직인지 안다. 많은 사람이 지키고 있었을 테고, 서학사 본인도 대단한 사술을 사용한다고 했다. 이렇게 빨리 해치울 수 없는 일이었다. 한데 그가 해냈다.

임연정이 근래 계속했던 질문을 반복했다.

“대체 벽군사는 어떤 사람이죠?”

“저 역시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답니다.”

“그런데도 조직을 배신했군요.”

어쩌면 그것이 벽리단이란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연정이 다시 말했다.

“배신이 아니라…… 제 길을 찾아간 것이라고 해야겠지만.”

괜히 배신이란 말을 사용했다는 생각에 칠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이다.

칠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근래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 이제 사람 사이의 감정교류에 대해 배우고 있는 그녀였다. 예전이라면 조금 전 임연정의 말에 담긴 배려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 저를 데려가면서 그가 약속한 것이 있어요.”

“뭐죠?”

“제게 새 인생을 찾아주겠다고 했죠. 그날 이후 저는 새 인생이란 말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지요. 새 인생이란 어떤 결과물이 아니란 것을요. 마지막 바느질에 완성되는 옷처럼, 오늘부터 새 인생

이다라고 할 수 없다는 거죠.”

임연정은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같은 사람인데 어찌 딱 정해서 새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는가?

칠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날 그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미 제 새 인생은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칠호는 평소보다 말을 많이 했으며 들떠 있었고, 평소답지 않은 감정이 실려 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이 배신이라 불리든, 제 길, 혹은 새 인생, 그게 어떻게 불려도 상관이 없어요.”

“부러워요, 동생이.”

“저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칠호는 마지막까지 솔직했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도 처음이었고, 그로인해 마음이 두근거렸다.

이 순간 임연정은 깨달았다.

그녀의 말처럼 새 인생이란 것이 어떤 결과물이 아니고 정해진 순간에 딱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면…… 어쩌면 자신의 인생 역시 새 길을 걷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고.

* * *

나는 멀리 장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나뭇가지 사이에서 그녀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개미처럼 작게 보였지만, 나는 두 사람이 그녀들임을 알 수 있었다.

서학사를 죽인 후, 나는 곧장 그녀들이 있던 장원으로 갔다.

서학사의 죽음이 혹시라도 임연정에게 악영향을  끼칠까봐 걱정해서였다. 다행히 그들은 그녀를 이곳으로 피신하게 했다.

다시 말해 아직 임연정이 그들에게 이용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짐작하건대 그들은 새로운 대법전문가를 부를 것이다.

적어도 그때까진 시간을 벌었다.

그사이 내가 할 일은 임연정의 아들을 구해내는 것이다.

나는 천망회주 반서정을 만나러 갔다. 그녀는 변함없이 정중한 태도로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잘 지내셨소?”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앉으셔서 차 한잔하시지요?”

“그럽시다.”

불루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언제나 평화로웠다.

그래서 이곳에 앉아있으면 이 강호가 얼마나 치열하고 지독한 곳인지를 잠시 잊게 된다. 어서 이 모든 일들이 다 지나고 평화로운 순간이 왔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때 나는 누구와 함께 있을까?

반서정이 손수 탄 차를 가지고 왔다.

마시기 전에 차향을 음미했다. 너무나 그윽해서 마시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맛이 어떠세요?”

“아주 좋소.”

언제나 차와 함께여서 그럴까? 반서정은 차분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부탁 하나만 합시다.”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조만간 이곳 무한으로 새로 대법전문가가 올 것이오.”

내 말에 반서정이 깜짝 놀랐다.

“그 말씀은 이미 서학사가 죽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그는 내가 제거했소.”

나를 향한 반서정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누구보다 강호에 대해 잘 아는 그녀였다. 지금 상황에서 서학사를 죽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새로 오는 진법전문가에 대해 알아내란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누군지, 언제 어디에 도착하는지.”

“알겠습니다.”

그녀는 순순히 내 부탁을 받아주었다.

“아주 위험한 일이 될 거요.”

“알고 있어요.”

알면서도 이렇게 흔쾌히 이번 일을 맡아준다는 것은 다시 한 번 나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괜찮겠소?”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본회는 보기보다 아주 강한 곳이랍니다.”

“믿음직하오.”

“감사해요.”

“그렇다고 해도 이번 일은 매우 위험하니 나와 긴밀히 연락을 취합시다.”

“네, 그러지요.”

더는 길게 말하지 않고 불루를 나왔다. 굳이 말로 나중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녀의 충성을 무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누군가 행동으로 보여줄 때는, 역시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 * *

아이가 깨어났을 때 노인이 말했다.

“문제가 생겼소.”

아이는 가만히 노인을 바라다가 불쑥 물었다.

“이제 보기만 해도 나인 줄 아는군.”

“어찌 모를 수 있겠소?”

아이가 침상에서 내려왔다. 아이의 눈에 깃든 노회함은 노인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두 사람을 비교하자면, 눈빛이나 말투에서 보이는 모습은 서로 쌍벽을 이뤘다. 다만 노인이 조금 더 예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예의는 충성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필요에 의한 예의였고, 그것은 아이에 깃든 인물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문제인가?”

“대법을 진행할 자가 죽었소.”

“멍청한!”

한마디 내뱉었지만 그렇다고 흥분하지 않았다. 처음 천소선에게 보고를 받았을 때의 노인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일을 망쳐서 미안하오.”

노인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대체 누구에게?”

“갈사량이라고 해둡시다.”

“갈사량? 그 건방진 놈에게?”

아이의 태도에서 갈사량에 대한 적의를 느낄 수 있었다.

“한데 갈사량이면 갈사량이지 해두자는 말은 무엇인가?”

“뒤에 다른 놈이 있는데, 어떤 놈인지를 알아내지 못했소.”

“갈사량을 포섭했을 정도면 제법이겠군.”

“아니라면 일이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겠지요.”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

“새 대법책임자가 와서 다시 준비를 할 때까지 아이의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소.”

근래 두통이 점점 심해져서 거의 한계상황까지 온 것이다.

“또다시 새 몸으로 갈아타야 한다? 내가 새로 태어난 이후, 벌써 여섯 번째군.”

아이가 한숨을 내쉬자 노인이 달래듯 말했다.

“사람을 환생시키는 일이 어찌 쉬웠겠소? 우린 하늘의 뜻을 거슬렀소.”

그러자 아이가 피식 웃었다.

“하늘의 뜻? 자넨 그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딴 것을 믿고 있나?”

“당신은 믿지 않소?”

“당연히.”

단호히 말하고 난 아이가 다시 말했다.

“만약 그딴 것이 있다고 치세. 그게 누구 편인 것 같나? 우리 편인가? 천만에! 그런데 내가 왜 믿어야 하지?”

“딱히 저쪽 편도 아닌 것 같아서요.”

“뭣이?”

“당신은 그에게 비참하게 죽었지만 나는 이 나이를 먹도록 멀쩡하게 살아 있지 않소? 만약 하늘의 뜻이 저쪽 편이기만 하다면, 온갖 악행을 저질러 온 나 역시 이미 죽었겠지요.”

“그래서 믿어보겠다? 재수 없는 너는 뒈졌지만, 나는 살아있으니까?”

아이의 말에 가시가 돋쳤다.

“오해하지 마시오. 내 말은 하늘은 아무 편도 아니란 뜻이었으니까.”

노인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자,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합시다. 어쨌든 잠시 몸을 옮겨야 할 것 같소. 아시다시피 원래 예정되었던 정식대법보다는 쉽게 할 수 있소.”

“젠장! 말은 쉽지! 그것을 한 번씩 할 때마다 나는 죽을 지경이라네.”

“이제 곧 영원히 정착할 몸을 차지하게 될 거요.”

“흥! 자네의 일처리가 이런 식이라면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를 일이지.”

노인은 아무 반박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상황을 망친 것은 자신 쪽이었으니까. 게다가 그에게 알려야 할 껄끄러운 일도 있었다.

“한 가지 알고 계셔야 할 일이 있소.”

“뭔가?”

“당장에 그 대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아이의 모친이오. 어차피 아이의 얼굴은 가린 채 진행될 예정이었기에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이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넨 정말 나쁜 사람이로군.”

대법을 끝마치면 아이는 죽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제 어미의 손에 의해 자식이 죽는 것이었다.

노인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당신을 다시 살렸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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