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48화 (148/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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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에서 눈물이 나면(4)

마철군은 그토록 바라던 맹주전의 태사의에 앉았다.

줄지어 걸어들어오는 무림맹 각 조직 수장들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드디어 내가 이 강호의 주인이다.’

아버지처럼 여인과의 쾌락에 빠져 흥청망청 강호를 다스리지 않을 것이다.

천하진보다 더 뛰어난 맹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배후세력을 몰아내야 한다.

각 조직들의 수장들이 태사의 좌우로 시립했다. 총군사가 서는 자리에는 새로 총군사가 된 노선생이 자리했다.

광월단주 주철룡이 앞으로 나서서 정중히 포권하며 모두를 대표해서 말했다.

“맹주가 되신 것 진심으로 감축드리옵니다. 앞으로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모두들 포권을 취하며 한목소리를 냈다.

마철군이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고맙소. 여러분들이 나를 믿고 지지해 주었기에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소. 앞으로 잘 부탁드리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수장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맹주전을 울려 퍼졌다.

“마교가 중원 곳곳에서 창궐하면서 강호정세가 매우 불안한 요즘이오. 해서 그대들에게 내 의지를 전하고자 하오.”

모두의 시선이 마철군에게 집중되었다.

마철군에게서 생각지 못한 말이 터져 나왔다.

“마교를 상대할 최정예 조직을 만들 생각이오.”

모두들 깜짝 놀라서 서로를 돌아보았다.

가장 놀란 사람은 단연 주철룡이었다.

“최정예 조직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말 그대로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중원의 고수들을 모아 최고의 조직을 만들 생각이오. 최고의 무인들만 모을 것이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할 생각이오.”

다시 말해 마교를 상대하는 독립된 조직을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맹주가 직접 만드는 조직이니 큰 힘이 실리는 조직이 될 것이다.

주철룡은 내심 크게 화가 났다.

‘건방진 놈! 우리와 의논도 없이 첫날부터 이런 발표를 한다 이 말이지?’

말이 마교를 상대할 조직이지, 맹주 자신만의 사조직을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새로 총군사가 된 노선생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주철룡은 알 수 있었다. 이 깜짝 발표는 미리 그와 논의되었음을. 애초에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일은 막대한 자금과 인력과 시간이 동원되는 일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마인들이 중원 곳곳에서 무고한 인명을 해치고 있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겠소?”

“기존의 맹의 무인들만으로도 충분히 놈들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시오? 하면 왜 지금까지 그들을 뿌리 뽑지 못한 것이오?”

“그건…….”

할 말이 많았지만 주철룡은 입을 닫았다. 어차피 마철군의 마음이 굳혀진 이상 이곳에서의 반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마철군이 노선생에게 말했다.

“곧장 마교를 상대할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는 것을 강호에 공표하시오.”

노선생이 큰 소리로 말했다.

“명을 받듭니다!”

맹주자리에 오른 첫날부터 마철군은 과감한 행보를 시작했다.

*  * *

마교를 상대할 최강의 조직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강호는 다시 한 번 열광했다.

무림맹에서 기존의 다른 어떤 조직보다 훨씬 나은 대우를 약속했다. 시작부터 월봉과 직위가 다른 조직이었다. 더구나 오직 맹주의 명령만 수행하는 특별조직이었다. 마교를 섬멸한 후에는 이 조직이 무림맹 제일 조직이 될

것이 자명했기에 강호인들의 가슴이 격동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소식을 들은 갈사량은 마철군의 속뜻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마철군이 자신만의 조직을 만들려는 것 같습니다. 현재 무림맹이 배후세력의 손에 넘어간 상태이니 말입니다.”

정확히는 주철룡을 비롯한 중요 조직의 수장들이 그들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수하 무인들은 무림맹주의 배후에 그런 자들이 있는 것조차 알지 못했으니까.

“마철군은 마봉기와는 달리 순순히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를 맹주 자리에 올린 것은 그를 확실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어서일 겁니다.”

“우리 역시 마철군을 잘 이용해야 할 것이오.”

“그렇습니다.”

적의 적은 동지임을 잊지 않고 최대한 그들과 마철군의 갈등을 유지시켜야 한다.

“이제 이후 행보를 결정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혹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신지요?”

“나야 언제나 갈군사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지 않소?”

“하하하.”

갈사량이 기분 좋게 웃었다.

“이번에는 제 뜻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

저 좋은 머리로 어찌 생각이 없겠는가? 어디까지나 이번 일은 내 뜻을 따르겠다는 말이었다.

“군사께서는 섬의 장원에 새로 흑암거해진을 설치하시고 그곳에 은신하시오. 또한 정식으로 삼안각주의 자리에 올라 삼안각을 제이의 정의각으로 만들어주시오.”

“명을 받듭니다.”

갈사량이 정중히 대답했다.

“조만간 진과 수를 불러 소개해주겠소. 그들이 큰 도움이 될 거요.”

저들은 이제 앞서 보여준 힘 때문에라도 함부로 갈사량을 치지 못할 것이다. 갈사량은 이제 제거대상이 아니라 막강한 적이 되었다.

섬은 찾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흑암거해진까지 완성되면 더욱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그 진법을 쉽게 뚫을 수 없을 테니까.

“위급 시에 빠르게 몸을 감출 수 있는 진법수련도 잊지 마시오.”

“네. 매일 연습하고 있습니다.”

“좋소.”

“주군께서는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나는 나대로 생각해 둔 일이 있었다.

“임연정은 이번에 어떤 중요한 임무를 띠고 온 것이 확실하오. 나는 이곳에 머물면서 그녀를 통해 저들의 목적을 알아내겠소.”

“좋은 생각이십니다.”

물론 칠호와의 관계가 마음에 걸렸지만 사적인 일로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다음 날, 나는 정의각으로 갔다.

갈사량은 떠났지만 나는 정의각에 남았다. 이곳에 미련이 있어서 남은 것은 아니었다.

갈사량과의 관계 때문이다.

내 능력 때문에 나를 이용했지만, 갈사량이 떠나고 나서는 우린 아무 상관이 없는 사이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믿든 말든, 되도록 정확한 정보는 주지 않는 것이 유리했으니까.

정의각에 남은 또 다른 이유는 임연정에게 접근하려면, 여전히 정의각 군사가 가장 좋은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책임군사에서 일반군사로 강등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너무나 파격적인 인사였으니까.

“벽군사!”

“네!”

“이것 좀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새 대표군사가 일거리를 맡기며 내 눈치를 살폈다. 만약 조금이라도 고까운 기색을 보이면 가차 없이 내치려는 속셈임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신입군사처럼 씩씩하고 밝은 모습으로 내려진 임무를 수행했다.

나에 대한 경계심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날 오후, 나는 송화린과 수란, 그리고 광두와 함께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아니 이 조합으로는 처음 마시는 술이었다.

“하하,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입니다.”

광두의 말에 수란이 눈을 흘겼다.

“우리 아가씨가 너무 착하셔서 넘어가 주신 거지요.”

“우리 도련님을 어떻게 보고 그러시는 겁니까?”

“바람둥이!”

“인정합니다!”

빠른 인정에 수란마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광두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덕분에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광무인은 참 밝으신 것 같아요.”

송화린의 칭찬에 광두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강호제일 긍정의 화신이죠.”

“밝게 산다는 것, 좋은 것 같아요.”

송화린이 진심으로 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아니라 누구라도 광두와 함께 있으면 그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다.

광두라고 어찌 고민이 없겠는가?

하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려고 한다.

송화린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넌 정말 복 많은 사람이야.

내가 인정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었다.

전생에도 내가 복이 많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러했다. 너무 바빠서, 너무 피곤해서, 혹은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테니.

그 기쁨을 만끽하는 것을 다음으로 미뤘다. 다음에 또 보면 되지, 다음에 또 하면 되지, 다음에……

내가 점소이를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술 한 병 더 주시오!”

* * *

임연정과 칠호가 허름하고 낡은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너무 좁아서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도 없는 곳이었다.

바닥에는 더러운 구정물이 가득했고 담장 너머에서는 개가 시끄럽게 짖어댔다.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골목길 끝에 한 사내가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두 사람을 어디론가 안내했다. 복잡한 골목길을 여기저기 돌아서 도착한 곳은 온갖 더러운 낙서가 가득한 다 무너져가는 건물이었다.

복도 끝 방 앞에서 사내가 임연정에게 말했다.

“혼자 들어가시오.”

칠호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나중에 봐.”

임연정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식경쯤 지나자 임연정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이렇게 어두운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건물 밖으로 다시 나왔을 때, 칠호가 물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여전히 임연정은 생각에 잠겨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선배!”

일전에 언니라고 불렀던 호칭이 다시 선배로 바뀌었다. 그녀의 경직된 모습을 보자, 칠호 역시 마음이 경직되었던 것이다.

“뭐?”

임연정이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칠호를 돌아보았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칠호의 물음에 임연정의 얼굴에 참았던 공포가 떠올랐다.

그녀가 침울하게 말했다.

“……난 죽게 될 거야.”

장원으로 돌아온 후에 임연정은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혔다.

때가 되어 밥을 가져다줬지만 그녀는 먹지 않고 그대로 내놓았다.

이젠 아예 문까지 잠군 상태였다.

또다시 손도 대지 않은 쟁반을 들고 돌아서려던 칠호가 이번에는 그냥 떠나지 않았다.

쿵쿵쿵.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칠호가 계속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얼마나 두드렸을까?

열릴 때까지 두드리니 결국 문이 열렸다. 초췌하고 창백한 얼굴의 임연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임연정이 말없이 돌아섰다.

칠호가 그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임연정이 털썩 주저앉은 탁자에는 서찰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그 서찰은 그녀가 곱게 옷장 속에 보관했던 그것들이었다.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알 것 없어요.”

“이렇게 냉정한 분이 제 남자 문제에는 그렇게 참견한 겁니까?”

임연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칠호가 다시 말했다.

“죽는다고 하셨죠? 아시다시피 저는 선배를 지켜주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럼 제게도 알려주셔야죠. 저까지 영문도 모르게 죽게 하실 겁니까?”

마지막 말이 통했다.

임연정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이리 앉아요.”

“네.”

칠호가 임연정을 마주보며 앉았다.

“방에서 이번에 대법책임자로 온 자를 만났어요.”

“그런데요?”

“나도 아는 사람이었어요. 이 바닥에서 아주 유명한 서학사(西學師)란 자로 대법 실력만큼은 최고라 할 만한 사람이죠. 그가 나선 이상 이번 대법이 무엇이든 반드시 성공할 거예요.”

서학사란 말이 나왔을 때, 임연정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떨렸다.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와 함께 작업한 사람 중에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에요.”

이제야 칠호는 알 수 있었다.

“악질이군요.”

“그 이상이죠. 무공 역시 엄청나게 강하고.”

임연정 역시 무공의 고수였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보다 훨씬 강했다. 서학사는 자신의 기술을 누군가 배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일이 끝나면 자신의 것을 배웠든, 배우지 않았든 함께 한 사람은 모두 죽여 버렸다.

다 죽어서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이 강호에 영원한 비밀은 존재하지 않는 법, 임연정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던 것이다.

“……난 아직 죽어선 안 되는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처음 보는 약한 모습이었다. 그 약한 모습에는 어떤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칠호는 느낄 수 있었다. 임연정은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무엇인가가 있었다.

칠호의 눈에 서찰이 들어왔다.

아마 이 서찰을 쓴 사람일 것이다. 그게 누굴까?

그때 문득 칠호의 마음속에 그녀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기억하기에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구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한 일들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수련했고, 살기 위해서 명령을 수행했다. 거역하면 죽어야 했으니까.

한데 지금 누군가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치 벽리단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을 때의 갑작스러움과 비슷했다.

“언니.”

그녀의 호칭이 다시 언니가 되었다.

“동생.”

그녀를 향한 임연정의 목소리가 떨렸다.

칠호가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살려드릴게요.”

그 말을 듣자 임연정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요, 칠호는 그다음 말은 하지 않았다.

살려주고 싶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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