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47화 (147/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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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에서 눈물이 나면(3)

갈사량이 남긴 마지막 말이 결정적이었다.

“그럼 내 뜻은 알아들은 것으로 알고 물러가겠소. 나중에 밖에서 봅시다.”

마궁태가 듣기에는 갈사량과 마양화가 작당한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진법까지 발동되어서 이곳에 갇혀버린 것이다.

마궁태가 무서운 눈빛으로 마양화를 노려보았다. 마궁태는 알고 있었다. 본래 마양화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데 뛰어난 사람이었고 절대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심하고 견제하는 마음속에서 시작된 관계였으니 진정한 동맹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동생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미안하지만…… 내 말을 믿어다오. 나는 그냥 갈사량의 말을 들어보려고 나온 거다.”

하지만 이미 마궁태의 마음은 차갑게 식은 후였다.

“좋소. 믿겠소. 어서 우릴 나가게 해주시오.”

“나가는 방법을 모른다니까!”

마궁태가 코웃음을 쳤다. 떠나기 전에 갈사량이 분명히 말했다. 나중에 밖에서 보자고. 그런데 나가는 방법을 모른다고?

치가 떨리던 배신감이 결국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나를 죽이려고 시간을 끌고 있군.’

애초에 자신을 죽이려고 이 만남의 시간과 장소를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 틀림없었다.

마궁태가 무정십객과 신비창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 수하놈들을 기습해서 모두 없애고, 저년은 내 앞에 꿇려야 한다. 나가는 길을 알고 있을 테니까.

상대의 기도가 바뀌는 것을 느끼고 이번에는 독안검이 마양화에게 전음을 보냈다.

-놈들이 우릴 공격하려 하고 있소. 우리가 선제공격을 해야 할 것 같소.

마양화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함정이었어. 애초에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한 함정.’

하지만 마궁태를 설득할 시간도, 자신도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위기감이 양쪽 진영 모두를 휘감고 있었다.

상대의 기도가 급박해지는 것을 느끼며 독안검이 재촉했다.

-어서 명령을 내려주시오. 선제공격을 당하면 우리 모두 죽게 될 거요.

결국 마양화는 내려서는 안 될 명령을 내렸다.

-다 없애버려!

* * *

반 시진 후, 진법이 사라졌을 때 그곳에는 시체만이 가득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마궁태였다.

선제공격을 한 것은 마양화 쪽이었지만 싸움은 대등하게 펼쳐졌다. 결국 양쪽 고수들은 처절하게 싸우다 동귀어진(同歸於盡)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마궁태는 마양화를 고문했고, 그녀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결했다.

“이 새끼! 너도 저년과 같은 편이지?”

흥분한 마궁태가 나와 갈사량을 향해 달려들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쉬이익.

빠르게 검을 그어 그의 목을 뎅강 잘라버렸다.

모든 집중력을 다해 덤벼도 이길 수 없는 나인데, 반쯤 미쳐버린 상태에서 달려들었으니 나의 일초지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목을 잘라낼 때에도 추혼수라검술의 초식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검술을 사용했다.

이제 이곳에 살아남은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후 무림맹에서 와서 이들의 사인을 조사하면 서로 싸우다 죽은 것이 될 것이다.

나와 갈사량은 돌멩이와 나뭇조각 등, 진법의 흔적을 모두 없앤 후 그곳을 떠났다.

* * *

“빌어먹을! 멍청한 것들 같으니라고!”

마양화와 마궁태가 싸우다 자멸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마령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아무리 욕심 많고 한심한 것들이라지만, 적을 앞에 두고 어찌 지들끼리 싸우다 뒈져버린단 말인가?

혹시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가 몇 번이나 확인해 봤지만 검시관의 의견은 일치했다. 그들은 서로 싸우다가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더구나 마양화는 결정적 사인이 자결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마지막에 죄책감에 자결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있었다.

‘그 욕심 많은 년이 그럴 리가 없지!’

어쨌든 그들의 죽음은 취임식 이후에 발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갈사량의 함정에 빠진 것이든, 혹은 멍청한 것들이 한심한 짓거리를 하다 죽은 것이든, 어쨌든 이번 일은 완벽하게 실패한 것이다.

갈사량을 죽였어야만 천소선에게 맹주가 될 수 있는 네 번째 방법에 대해 들을 수 있었을 터인데.

“젠장!”

더 화가 나는 것은 이 일의 결과가 마철군에게는 아주 잘된 일이란 점이었다. 어차피 마철군은 두 사람을 제거하려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고민스럽고 까다로운 일을 자신의 손으로 대신 해준 셈이 되었다. 내일 있을 맹주 취임식에 기념선물을 준 것이다.

마령인은 결국 한 가지 방법만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내가 직접 나서야겠군.”

그때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안 되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어느새 천소선이 방에 들어와 있었다.

“대체 어떻게?”

마령인은 천소선이 방에 들어오는 그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당분간 갈사량에게서 손을 뗀다.”

천소선이 명령을 내리듯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이번 일은 놈의 작품이네.”

“확실하오?”

“확실하네.”

만약 그렇다면 작품이란 말을 써도 될 것이다. 이 짧은 시간에 마양화와 마궁태를 서로 싸우다 자멸하게 만들었으니까.

“정말 급이 다른 자로군.”

“그래, 천하일통을 이룬 총군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있지. 천하진이란 큰 그늘에 가려 우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잊고 있었던 것이지.”

“젠장! 그렇다면 결국 나는 네 번째 방법을 듣지 못하게 되겠군.”

“들을 수도 있지.”

“실패했는데도?”

“실패야 누구나 하는 것이지 않나?”

마령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소선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에 갈사량에게 급이 다르다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 그 말은 천소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도 젊고, 자신도 젊다. 심계에 있어선 자신도 날고 긴다고 자부했지만, 천소선을 보면 왠지 모르게 위축되었다. 마령인은 그것이 급의 차이라 여겼다.

“자네가 실수를 저질렀는데도 왜 내가 자넬 살리려고 애쓰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내가 이용가치가 있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자넨 그 정도까진 아니라네.”

“그렇다고 굳이 그렇게 말해서 사기를 죽일 필요는 없을 텐데.”

“하하. 불쾌했다면 미안하네.”

마령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유나 말해 보시오.”

“나중에 알려주지.”

“젠장! 말을 꺼냈으면 알려줘야지! 그거 더러운 버릇이라고!”

천소선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게. 큰일을 하려는 사람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네.”

천소선의 눈에서 하얀빛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그곳에서 사라졌다.

꽝! 꽝!

마령인이 탁자를 연속해서 내리쳤다. 박살난 탁자가 바닥에 흩어져 내렸다.

“개새끼, 너는 여유롭고 신비로워서 좋겠다.”

* * *

칠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꿈을 꾼 것이다. 마지막 말은 아직도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리 아가씨는 벽공자와 약혼한 사이예요.”

평소 꿈을 거의 꾸지 않는 그녀였는데, 오랜만에 꾸는 꿈이었다.

“휴.”

칠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근래 마음이 복잡했는데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어.’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날 흘렸던 눈물이었다.

물론 태어나서 처음 흘린 눈물은 아니었다. 훈련을 받으며 숱하게 눈물을 흘렸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숨어서도 울었고, 정말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도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날의 눈물은 달랐다.

이전에 흘렸던 눈물처럼 고통스러워서도, 슬퍼서도, 혹은 외로워서도 아니었다.

아무 감정의 변화가 없었는데 갑자기 흘러내린 눈물이었고, 눈물을 보고 있는데 기분이 좋았다. 벽리단 앞에서 흘린 눈물이어서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눈물 그 자체는 분명 좋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내가 다른 이유로도 울 수 있구나. 나쁜 일에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 밖에서 임연정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나요?”

“네.”

임연정이 안으로 들어왔다.

“괜찮아요?”

“네?”

“악몽을 꾸는 것 같았는데.”

비명이라도 지른 것일까? 자신의 소리가 옆방까지 들렸던 모양이었다.

“아뇨, 괜찮아요.”

“무슨 일 있어요?”

“아뇨.”

그날 이야기를 임연정에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심정을 말하고 위로를 받고 싶었으니까. 눈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고.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만큼이나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신에게 너무나 낯선 일이었으니까.

아무 말도 듣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다 들은 사람처럼 임연정이 그녀에게 말했다.

“후회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마세요.”

돌아서는 그녀에게 칠호가 불쑥 물었다.

“언니는…….”

언니란 말에 임연정이 활짝 웃었다. 굳게 닫힌 거대한 철문 아래 아주 작은 쪽문 하나가 삐거덕 소리를 내며 아주 조금 열리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속이지 않았나요?”

앞서 자신에게 말해준 내용이 마치 임연정이 경험했던 일 같아서였다.

“속이지 않았어요. 내 감정을 따랐죠.”

“그 결정 후회하지 않나요?”

“아뇨, 후회해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임연정이 말했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내 선택을 후회하는 것을…… 그 후회를 후회하지 않아요.”

칠호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아요.”

* * *

나는 송화린을 비롯한 모두와 함께 맹주취임식에 참석했다.

수란이 나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노려보았지만, 나는 못 본 척했다. 송화린을 끔찍이 생각하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 정말 많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 처음 봐.”

송화린의 말처럼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들었다. 우린 굳이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 나란히 섰다.

상대적으로 적을 뿐 이곳에도 사람들은 많았다. 그들은 다들 흥분된 상태였다.

“마대협이 맹주가 되면 마교놈들을 모조리 없애버리실 거네.”

“당연히 그렇겠지.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할 테니까.”

“망할 놈의 마교 놈들! 이번 기회에 씨를 말려 버려야 해!”

“드디어 시작이네!”

펑! 퍼엉! 펑!

하늘에 폭죽이 터졌다. 사방에서 함성과 함께 작은 폭죽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광두가 저 멀리 단상을 보며 말했다.

“무림맹주가 되면 기분 좋겠지요?”

“좋겠지.”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다. 무림맹주란 자리는 신경 써야 할 것도, 해야 할 일도 너무 많다. 물론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저만큼 좋은 자리도 없겠지만.

마철군이 어떤 맹주가 되려고 하느냐에 따라 그의 기분은 달라질 것이다.

이번에는 송화린이 내게 물었다.

“맹주가 되고 싶은 야망은 없어?”

“있어.”

“뭐?”

그녀가 깜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광두와 수란까지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왜들 그렇게 놀라? 강호인이라면 당연히 꿈꿀 수 있는 자리잖아?”

광두가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요…… 도련님이 그 말씀을 하니까 정말 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송화린 역시 비슷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모른 척 저 멀리 연단을 바라보았다.

무림맹주라.

다시 맹주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만약 놈들을 없애기 위해 무림맹의 힘까지 필요하다면? 뭐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마철군의 취임연설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갈사량이 서 있는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갈사량이 저 앞에 서 있는 송화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산동제일미라고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 아름다우시군요.”

“예쁘긴 하지요.”

“두 분이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잘 어울린다고 하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잠시 송화린과 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배후세력으로 화제가 돌아갔다.

“놈들이 우리의 경고를 받아들였을까요?”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오.”

그들의 죽음에 우리가 개입한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제 적어도 경솔하게 우릴 죽이려 들지는 않을 것이오.”

전생에 내가 악인을 상대한 방식은 이것이었다.

더 큰 힘으로 박살내 버린다.

악인들을 교화하고 설득해서 진심으로 감회하게 만든다?

이상론에 불과하다.

내가 본 대부분의 악인들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열 명 중에 한 명쯤 개과천선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머지 아홉이 저지를 악행의 부작용을 생각하면, 그 하나의 개과천선은 무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그것이 내가 철혈의 맹주, 징벌의 맹주라 불린 이유다.

악인들을 상대할 때, 역으로 당하는 것은 어설프게 다뤄서다. 어설프게 강해서다.

내 예전 무공을 다 회복한 지금, 나는 그들을 악인으로 다룰 것이다. 아주 제대로.

“우리 눈에 눈물이 나면, 저들의 눈에선 피눈물이 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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