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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42화 (14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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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의 힘이다(4)

“암궁(暗弓)까지 죽었습니다.”

백석의 보고에 천소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운남삼수와 암궁이라면 충분히 갈사량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병력에 비해 그들이 특출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조합 때문이었다.

운남삼수 정도의 고수가 앞장서서 싸우고, 숨어서 기회를 노리던 암궁이 완벽한 순간에 암살시를 날린다면 대체 누가 그 공격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한 사람을 암살하는 데 있어선 이보다 더 좋은 조합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임무는 실패했다. 모두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은 모두가 죽었다는 뜻.

놀라운 사실은 암궁마저 죽었다는 점이었다. 궁술만큼이나 대단한 신법을 지닌 그였다. 그 거리를 좁혀서 암궁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놈들이 시체까지 다 처리해 버려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갈사량에게 붙어 있는 자가 천하제일인이라도 된단 말인가?”

말을 해놓고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화가 나서 내뱉은 말이었는데,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은 것이다.

백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함부로 병력을 퍼붓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분명 그랬다.

하지만 천소선은 일전에 동굴에서 만났던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진짜 강해지려면 단순해져야 한다. 어설픈 위험 따윈 즐기지 마라.

무지막지한 힘으로 몰아붙여서 없애버리란 말을 했다. 조언처럼 해준 말이지만 그건 명령이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명령. 지금은 물러서야 할 때가 아니라 몰아붙여야 할 때다.

“그래, 어렵게 생각할 것 없지. 불을 끄는 데 꼭 우리 우물만 퍼내라는 법은 없으니까.”

천소선이 백석에게 말했다.

“마령인에게 연락해라.”

* * *

한 대의 마차가 숲길을 내달렸다.

마차에 탄 사람은 세 사람이었다. 바로 마령인과 마양화, 그리고 마궁태였다.

마양화와 마궁태는 사뭇 긴장한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마령인을 찾아갔고, 자신들이 살 방법을 알려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러자 마령인이 마차에 두 사람을 태워서 어디론가 출발한 것이다.

도움을 청하는 처지에 차마 꼬치꼬치 따지지 못했지만,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는 못했다.

결국 마궁태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냐?”

마양화가 함부로 자극하지 말라고 눈짓을 보냈지만 궁금하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마령인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는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세 번째 방법을 알려주러 가는 길이오.”

처음 두 사람이 찾아왔을 때, 마철군이 맹주가 되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천도문주가 되거나, 혹은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거나.

마궁태와 마양화가 서로를 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그 방법이 어떤 것이든 서로 힘을 합치자는 뜻이 담겨 있었다.

마령인의 입가에 가소로움이 스쳤다. 저 연합이 얼마나 쉽게 깨어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마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이윽고 멈춰 섰다.

세 사람이 마차에서 내리니 저 앞에 한 사내가 바위에 걸터앉아서 피리를 불고 있었다. 그는 바로 천소선이었다.

그의 잘생긴 외모에 마양화가 감탄성을 흘렸다.

“아.”

정말이지 이렇게 잘 생긴 사내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구슬픈 선율의 연주실력도 훌륭했다.

잠시 후 연주가 끝나자 마령인이 그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정중히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궁태와 마양화가 깜짝 놀랐다. 마령인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정중한 모습을 보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철군에게는 물론이고 아버지인 마봉기에게도 이렇게 정중히 굴지는 않았다.

그 모습만으로도 절로 천소선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마령인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세 번째 방법을 알려주실 분이지.”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두 사람은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누군가 자신들을 도울 사람이 이렇게 젊은 사람일 줄은 몰랐으니까.

마궁태와 마양화가 포권하며 인사했다.

“마양화예요.”

“마궁태요.”

천소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소선이오. 만나서 반갑소.”

인사를 마치자마자 마궁태가 물었다.

“담소나 나눌 사이는 아니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우리에게 살 방법을 알려주신다고요?”

“그럴 리가 있겠소?”

“뭐요?”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것도 있지 않겠소? 그럼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정말 살고 싶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 보는 상대에게 살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굴욕적인 일이었다.

천소선은 반드시 그 말을 듣겠다는 듯, 대답을 기다렸다.

두 사람이 마령인을 쳐다보았다. 마령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믿느냐 마느냐는 각자 판단해. 어차피 자기 목숨이니까.”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대답이 오히려 천소선에 대한 신뢰를 더욱 높였다.

결국 먼저 대답한 사람은 마양화였다.

“살고 싶어요.”

마궁태가 뒤이어 말했다.

“살고 싶소.”

천소선이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갈사량을 죽이면 내가 책임지고 그대들을 살려주겠소. 마철군이 맹주가 되더라도 결코 그대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오. 그대들은 지금처럼 계속 권세를 누리며 살아갈 것이오.”

마양화와 마궁태가 다시 마령인을 돌아보았다. 저 말을 믿어도 되느냐는 간절함에 마령인이 대답했다.

“아까 말했잖아? 알아서 판단하라고. 다만 한 가지만 알려주지. 여기 이분이 아버지를 맹주로 만드셨지.”

마양화와 마궁태가 깜짝 놀랐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니 누군가 강력한 사람이 아버지를 도왔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한데 이 사람이라니?

분위기로 볼 때 거짓말은 아니었다.

마양화와 마궁태가 몇 마디 전음을 주고받은 후 결정을 내렸다.

“좋아요. 갈사량은 우리가 죽이죠.”

마양화가 천소선에게 말했다면 마궁태는 마령인을 보며 말했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는 너부터 죽일 것이다.”

마령인은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천소선이 그들에게 말했다.

“맹주 즉위식을 위해 여러 고수들이 모여들 것이오. 그때 그대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하시오. 분명히 경고하지만 갈사량 주위에는 정말 대단한 고수가 있소. 쉽게 여겼다간 그대들까지 죽게 될 거요.”

잠시 후 마양화와 마궁태가 떠난 그곳에 천소선과 마령인만 남았다.

“비록 한심한 것들이지만, 저들이 가진 힘은 여전히 대단하오.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반드시 갈사량을 죽일 것이오.”

마령인의 확신에 반해 천소선은 부정적이었다.

“반대로 저들이 죽을 수도 있지.”

“뭐 그럴 수도 있고.”

“역시 비정하군.”

“후계싸움 바닥이 다 그런 것 아니겠소?”

마령인에게서 앞서 보였던 정중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천소선 역시 앞서 와는 다른 태도로 그를 대하고 있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라네. 저들 다음은 자네일 수도 있는데. 불안하지 않나?”

“길가다 마차에서 튄 돌에 맞아 뒈질 수도 있고, 고드름이 떨어져 죽을 수도 있는 게 인생 아니겠소?”

가만히 마령인을 응시하던 천소선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저렇게 웃을 때면 마령인은 같은 남자가 봐도 그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질투가 날 정도였으니까.

천소선이 웃음기를 거두며 질책하듯 말했다.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나?”

“무슨 말이오?”

“왜 독단으로 마철군을 죽이려 했냐는 말이네? 그것도 외부인까지 끌어들여서?”

“뻔히 눈을 뜨고 내 자리를 빼앗길 수는 없었으니까. 당신이 나를 끌어들일 때 약속하지 않았소? 최고의 자리는 내게 주겠다고.”

“자네의 이 부족한 인내심만큼이나, 자넨 아직 맹주가 될 자질도 부족해.”

“부족한 부분은 당신이 메워줘야지.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당신에게 충성하겠소?”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마령인은 천소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천지분간 못 해서가 아니었다. 마령인은 느낄 수 있었다. 상대는 아부가 통하는 유형이 아니었다. 오히려 비굴한 상대를 경멸했다.

할 말 하고, 대신 해야 할 일은 철저히 해내고. 그렇게 당당하게 구는 것이 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인력으로 메울 수 없는 것도 있지.”

“그건 메우는 쪽의 능력부족이고. 내가 그 정도는 아니니까.”

“자네의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가?”

천소선이 다시 웃었다.

마령인이 지닌 악함이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이놈의 악은 어설프지 않았다.

“저 둘을 바쳤으니 내게도 알려주셔야지.”

마령인이 원하는 것은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맹주가 될 수 있는 네 번째 방법을.”

천소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렇지. 언제나 네 번째 방법도 있는 법이지.”

한편 그곳을 떠나던 마령화와 마궁태는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령인이를 믿느냐?”

“미쳤소?”

마양화의 물음에 마궁태가 목청을 높였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천소선이란 그자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궁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에겐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권위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조심해야 할 거요. 마령인 놈이 얽혀 있으니.”

“그래.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분열한다는 것은 놈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꼴이지.”

“그렇소.”

“우린 절대 힘을 합쳐야 한다. 절대 우리끼린 뒤통수를 쳐선 안 된다.”

마양화의 의심을 마궁태가 그대로 되돌려 주었다.

“물론이오. 누님이나 제대로 하시오. 만에 하나라도 약속을 어기면 그 누구도 그냥 두지 않겠소. 내 성질 잘 알 거요.”

그렇게 약속까지 한 후에 두 사람은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고수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무림맹의 모두가 바빴던 나날들이 지나고, 즉위식이 있는 달이 되었다.

중원 곳곳에서 새 맹주의 즉위식을 보기 위해 군웅들이 모여들었다. 이전에는 명문만 참석할 수 있도록 초대장을 발부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모든 강호인들이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를 위해 엄청나게 큰 장소가 필요했고, 무림맹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즉위식이 거행되도록 결정되었다.

마교는 조용했다. 마치 그사이에 사고는 치지 않겠다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와 갈사량은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갈사량은 진법에 몰두했고, 나 역시 어깨너머로 진법을 배우며 무공수련에 몰두했다.

나는 진법 내부가 아닌 곳에서는 단 한 순간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 천하진에 대해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덕분에 지난날의 나를 추억하기도 했고, 반성하기도 했다.

어쨌든 즉위식이 끝나고 새로운 노선생이 새 정의각주가 되면 우리는 무림맹을 떠날 것이다.

* * *

즉위식 날을 가장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마철군이었다.

그는 며칠째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맹주가 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내가 무림맹주라니?’

강호인이라면 한 번쯤 꿈꾸었을, 오직 꿈으로만 존재하는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맹주만 되면?’

자신을 조종하려 든 자들을 모두 없앨 것이다. 자신은 아버지와 다르다.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잠이 오지 않아 간단히 한잔만 마셔야지 했는데, 벌써 한 병이 다 비어가고 있었다.

내일도 여러 바쁜 일정들이 아침부터 즐비했다. 어서 자야 했는데, 통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한옆에서 누가 말했다.

“이제 이 강호의 주인이 되겠군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방안에 여인이 서 있었다. 앞서 자신에게 마교의 움직임을 알려줬던 그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당신! 대체 어떻게!”

그녀는 그야말로 귀신처럼 자신의 방을 드나들었다.

이 행동이 보여주는 핵심은 이것이었다.

너를 언제든 죽일 수 있다.

정말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그 분노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묻히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화를 내기보다는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앞섰다.

“당신 이름이 뭐요?”

그러자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이름이 중요한가요?”

“그럼 뭐가 중요하오? 당신이 언제든 내 방에 들어와서 나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

“그렇죠, 그런 것들이 중요하죠. 맹주가 될 사람이 한낱 여자 이름 따위를 중요하게 생각해선 안 되겠죠.”

마철군이 코웃음을 쳤다. ‘한낱’이란 말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상대였으니까.

솔직히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무림맹주.

자신이 꿈은 천하진과 같은 맹주가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 강하고 이름만 떠올려도 존경심과 두려움이 드는 철혈의 맹주,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한데 이제 막 그 자리에 자신이 오르려고 하는데, 이렇게 자신을 조종하려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설마 천하진도 이렇게 조종했소?”

이미 아버지는 그들에게 조종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자 여인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땠을 것 같나요?”

“내가 먼저 물었소.”

“천하진은 쉽게 조종당하지 않는 사내였어요.”

마철군이 버럭 소리쳤다.

“나도 그렇소!”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원래라면 이 정도 도발에 감정이 흔들리지 않았다.

긴장하고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여인이 너무 아름다워서였을까? 자신도 모르게 발끈한 것이다.

“알고 있어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마철군은 내심 움찔했지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대범해 보이고 싶어서였다.

그녀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새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은 정말 아름다웠다. 자신의 뺨으로 올 것 같았던 그 손으로 술병을 들어 빈 잔을 채웠다.

“강호의 주인이 된 것 축하해요.”

건배를 위해 잔을 내미는 그녀의 작고 예쁜 입에서 너무나 듣고 싶은 말이 흘러나왔다.

“전에도 말했잖아요? 당신은 천하진보다 더 훌륭한 맹주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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