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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40화 (1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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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의 힘이다(2)

서찰을 다 읽은 임연정이 눈물을 닦았다.

서찰은 바로 일호가 조직에서 보내온 상자와 함께 전해준 그것이었다.

흘러내린 눈물에 앞섶이 다 젖어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서찰에 눈물이 묻어 찢어질까봐 조심했던 그녀였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서찰을 읽은 후 그제야 다시 고이 접어서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는 옷장을 열어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예전에 받았던 서찰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방금 막 읽었던 서찰을 그 가장자리에 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상자를 닫고 다시 옷장에 넣었다.

그때 밖에서 칠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요.”

칠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식사를 가져왔어요.”

쟁반에 밥과 몇 가지 정갈한 요리가 올려져 있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돌아서 나가려는 그녀에게 임연정이 말했다.

“함께 식사해요.”

“네?”

“혼자 먹기 싫어서 그래요.”

잠시 망설이던 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시 나가더니 자신의 쟁반을 가져왔다. 그런데 놓여 있는 찬의 개수가 달랐다. 임연정은 대여섯 개였는데, 칠호는 두 가지가 전부였다.

“왜 이렇게? 혹시 저 때문에?”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냥 이렇게 먹는 것이 편합니다.”

지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식성이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녀는 최대한 간단히 먹었다.

두 사람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밥을 한술 뜨려다가 칠호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건넸다.

“얼굴에 눈물자국이 남았네요. 닦으세요.”

“고마워요.”

임연정이 손수건을 받아서 눈가를 닦았다.

“아까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눈물을 좀 흘렸어요. 이건 제가 빨아서 돌려줄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주십시오.”

칠호가 빼앗듯 손수건을 가져갔다. 임연정이 순순히 돌려주었다. 저 성격에 손수건을 건네준 것도 한참 고민했을 터인데, 내 마음 편하자고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제 궁금해졌습니다.”

임연정은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짐작했지만 모른 척 물었다.

“뭐가요?”

“선배께서……”

“언니라고 부르라니까요.”

칠호가 못 들은 척 물었다.

“선배께서 무엇을 하려는지요. 마기 가득한 물건들로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겁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확실히는 몰라요.”

“모른다고요?”

“어떤 큰 대법을 치른다는 것만 알아요. 저는 대법의 일부분만 맡았죠. 몇 사람이 모여서 하는지도 알지 못해요. 아마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른 사람이 하겠죠.”

“그렇군요.”

“다만 엄청나고 위험한 대법인 것은 확실해요.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몇 달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어요.”

“감사해요. 솔직히 말해주셔서.”

“그런 의미에서 우리 또 그 사람 보러 갈까요? 벽군사 보고 싶지 않나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칠호가 깜짝 놀랐다.

“싫습니다.”

“왜요?”

“그냥 싫습니다.”

“나는 보고 싶은데.”

“그럼 혼자 다녀오십시오.”

짐짓 일어서려던 시늉을 하던 임연정이 웃으며 앉았다.

“의리가 있지, 그럴 수는 없죠.”

칠호가 잠시 고개를 들어 임연정을 쳐다보았다. 정말 우리 사이에 의리 같은 것이 있느냐는 물음이 그녀의 두 눈에 담겨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읽은 임연정이 단호히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었다.

칠호는 여전히 임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인지.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나쁜 의도는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 하긴, 나쁜 의도면 또 어떠랴. 어차피 잃을 것이라곤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

어쨌든 임연정과의 이런 시간은 아주 즐거웠다.

칠호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임연정이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소란을 떨었다.

“어? 웃었다! 방금 웃었어요!”

“안 웃었습니다.”

“웃으니까 예쁜데요?”

“안 웃었습니다. 저는 절대 웃지 않습니다.”

“왜요? 왜 절대 웃지 않죠?”

순간 칠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웃지 않는다는 말을 해본 적도, 왜냐는 질문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연정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청명한 하늘이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세상에 그런 인생이 어디 있어요? 웃어요. 세상이 엿 같을수록 더 웃는 거라고요. 웃어야 이기는 거라고요.”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임연정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요. 나가서 낮술 한잔해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성큼성큼 문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망설이며 쟁반을 내려다보는 칠호에게 임연정이 말했다.

“그거나 치우고 있을래요? 나랑 술 마시러 갈래요?”

* * *

흑암거해진은 점점 더 완성되었다.

아쉽지만 완벽하게 완성시킬 수는 없었다. 반드시 필요한 재료 중에 구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던 것이다.

공수찬을 통해 구해달라고 부탁해 두었지만 언제 구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우선은 먼저 구한 것들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진법의 완성도를 비유하자면 지금은 뼈대에 살이 제법 붙은 단계였다.

이 과정에서 내게 생각지 못한 수확이 있었다. 처음부터 쭉 제작단계를 지켜보다보니, 진법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깊어진 것이다. 단지 파훼법만 익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확실히 이해하

게 된 것이다.

“주군께선 정말 똑똑하십니다.”

갈사량의 감탄에 멋쩍게 웃었다.

“다 군사 덕분이오.”

“저야 제 일만 한 걸요.”

“그 어깨너머로 배운 덕분이지 않소?”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강호의 그 누구도 어깨너머로 그렇게 배울 수는 없으니까요.”

단지 귀문둔서를 외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생의 나의 경험과 지식들이 합쳐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군께서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갈사량이 나를 뚫어질 듯 응시했다.

그래, 갈사량이 내게서 특별한 것을 찾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주군을 보고 있으면 자꾸…… 전대 맹주님이 생각납니다.”

다시금 천하진을 언급해서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기뻐해야겠군요.”

“아닙니다. 절대 기뻐하실 일이 아닙니다. 저는 새 주군을 모시기로 맹세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그의 자책에 나는 드디어 한 가지 이야기를 해줄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갈군사, 나와 함께 갈 곳이 있소.”

반 시진 후, 나는 갈사량과 함께 인근에 있는 산 정상에 올라서 있었다. 꽤 높고 외진 곳이었지만, 내가 경공을 이용해서 그를 편하게 데리고 올라왔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갈사량은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보이는 것을 끝까지 다 보시오. 그 다음 이야기를 나눕시다. 절대 놀라지 마시오.”

“네.”

내가 수라명왕검을 뽑아들었다. 이제 갈사량과 내가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순간이 된 것이다.

휘이이이이잉!

수라명왕검에서 바람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바람소리를 듣는 순간 갈사량이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놀라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을지도 모른다.

내가 검을 내질렀다.

다음 순간, 정면에 있던 바위가 강기의 바람에 휩쓸려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후우우우우웅!

검이 강기의 회오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수없이 많은 강기의 회오리들이 절벽 주위의 허공에 생겨났다.

그것은 보는 사람을 압도했고,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야말로 천재지변으로 인한 세상의 종말을 보는 것만 같았다.

갈사량의 놀람은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이전에 그는 여러 차례 내 무공을 보았기에, 이 무서운 회오리들이 추혼수라검술의 초식임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놀람은 가공할 위력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내가 이 무공을 알고 있느냐 때문이었다.

이윽고 내가 검을 거두자 허공에서 휘몰아치던 강기의 회오리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다시 주변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곳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도 갈사량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갈사량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천 맹주님의 무공을 펼치는 것입니까?”

지금 이 순간, 정말 나는 갈사량에게는 내가 환생한 것을 고백하고 싶었다. 갈사량은 비밀을 지킬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 믿었으니까.

갈사량이 알게 되더라도 그것은 내가 알려줘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나 그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역시 하늘의 뜻이 있어야 가능할 일이겠지.

“나는 천 맹주님의 사제요. 우린 같은 스승을 두었소.”

내가 천하진의 사제란 말에 갈사량이 깜짝 놀랐다.

천하진의 제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스무 살 초반의 내 나이로 볼 때, 천하진이 내게 무공을 전수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는 즈음에는 이미 갈사량이나 백표가 그의 옆에 붙어 있었을 시기였다.

사마외도와 전쟁 중일 수도 있었고, 무림맹 내부의 권력자들과 싸우고 있을 때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비밀리에 산동까지 와서 무공을 전수해 줬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말이 될 것이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 이런저런 이유로 전수해 줬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한 번 전수해줬다고 이렇게 완벽하게 익힌다는 것도 불가능했고 지나가는 인연으로 독문무공을 전수해 줄 리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사형제라면? 사부가 천하진을 키운 후, 말년에 또 다른 제자를 키웠을 수도 있었으니까.

“사형은 나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나는 갈사량에게 사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전생의 내가 갈사량에게 해줬던 내용들을 그대로 해주었다.

사부가 추혼수라검술의 삼십사 대 계승자란 것을 시작으로 그가 어떤 사람이고, 또한 어떤 성격인지. 평생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오직 천하진만이 아는 이야기들이었기에 갈사량은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이야기를 다 듣자 갈사량이 여전히 격정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물었다.

“왜 진작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온전히 나란 사람의 능력으로만 그대를 얻고 싶어서였소.”

“아!”

“비록 대단한 무공을 전수받았지만 원래는 조용히 살려고 했소. 오히려 일부러 사고도 치고 망나니처럼 살았지요. 하지만 사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소. 이후 되어선 안 될 사람이 맹주가 되었고. 그래서 강호출도를 결심

했소.”

내가 환생한 후에 이 모든 조직을 키우기 시작했으니까 이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망나니였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도 설명이 되었다.

“수라명왕검이 운 이유도 내 무공이 사형의 무공과 같아서일 것이오.”

“아, 그렇군요.”

모든 것이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물론 갈사량은 너무나 똑똑한 사람이니 언젠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말을 믿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믿을 만한 이유가 너무나 많았으니까.

“늦게 말해서 미안하오.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소.”

내가 그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갈사량이 깜짝 놀라 내게 절을 했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말씀해 주셔서 저는 너무나 기쁩니다.”

내가 천하진과 사형제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갈사량은 크게 기뻐했다. 비로소 자신의 복수와 나의 복수가 하나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부복한 그를 일으켜 세웠다.

갈사량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추혼수라검술의 오초식을 다시 보게 되다니! 아, 이제 안심이 됩니다.”

나 역시 그를 보며 웃어주었다.

“지금까지는 불안했다는 말이구려.”

“솔직히 그랬지요. 그래서 진법수련도 더 열심히 한 것이고요. 이제 다 그만둬야겠습니다.”

“하하하.”

갈사량의 농담은 자주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크게 웃었다.

자신을 속였다고 기분이 많이 상해할까 걱정했었다. 다행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에 대한 신뢰와 정이 더 깊었다.

내가 천하진인 것을 밝히지 못해 미안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밝혀진다면 그는 기꺼이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처음에 내가 벽리단으로 태어났을 때, 나는 젊은 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 너무나 기뻤다.

하지만 이제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이 모든 인간관계들이다. 그 관계가 더 가까워짐을 느낄 때다.

천하제일인이 아니어도, 무림맹주가 아니어도.

나는 그때보다 더 행복하다.

갈사량이 기쁜 얼굴로 평소 잘 하지 않던 제안을 했다.

“저와 축하주 한잔하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어찌 한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시금 갈사량과 더 가까워졌고, 더구나 그가 먼저 축하주를 마시자고 제안했는데. 춤이라도 추면서 마시자고 해도 기꺼이 그럴 것이다.

산을 내려온 우린 기분 좋게 주점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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