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39화 (139/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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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의 힘이다(1)

백석이 마당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과거의 주철룡이 그랬듯, 백석 역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이곳에 올 때면 자연스럽게 긴장이 된다.

마당을 쓰는 종복이 자신보다 강했고, 차를 가져오는 시비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이곳에 천소선이 있었다.

오늘 그는 뒷마당에서 참선하는 고승처럼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백석이 도착했음에도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백석은 숨소리를 죽인 채 한 옆에 서서 그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천소선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불러 놓고 이게 뭐하는 짓거리냐며 화가 날 법도 했건만, 백석은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냥 봐선 천소선은 피리를 잘 부는 명문가의 잘 생긴 후기지수쯤으로 보이지만, 그건 세상에서 가장 큰 착각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천소선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만만하지 않을뿐더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백석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반시진이 지나고, 한 시진이 지났다.

그때까지도 천소선은 석상처럼 그대로 있었다. 혹시 주화입마라도 당한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천소선이라면 절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젠장! 나를 벌주는 것인가?’

백석은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천소선이 눈을 뜬 것은 거의 두 시진이 지나서였다. 그때까지 백석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다음 순간, 천소선이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쭉 뻗었다.

슈우우우우웅!

그의 손끝에서 검기와도 같은 시퍼런 강기가 발출되었다. 손가락 끝에서 날아간 그것이 쭉 뻗어서 하늘로 날아갔다.

지켜보던 백석이 입이 쩍 벌어졌다. 강호인으로 살아오면서 여러 고수들의 지풍을 경험해 보았다. 한 줄기 지풍으로 상대의 심장을 꿰뚫는 고수들의 그것도 여러 번 보았다.

하지만 지금 천소선이 보여준 한 수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것이었다.

얼마나 멀리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것도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랐다. 과연 이 강호에 저 강기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많이 기다렸소? 오셨으면 기척이라도 하시지.”

“아닙니다. 방금 도착했습니다.”

“그러셨구려.”

백석이 어찌 두 시진 전에 온 것을 모르겠는가?

이것이 바로 천소선이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소?”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임연정은 무사히 도착해서 대법을 준비중입니다.”

“맹주 즉위식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겁니다.”

거기까진 자신 있게 보고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갈사량은?”

백석의 고개가 절로 조아려졌다.

“아직 배후의 고수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갈사량이 꽁꽁 숨겨둔 것이오? 아니면 백석께서 무능하신 것이오?”

백석이 침을 꿀꺽 삼키며 머리를 더욱 조아렸다. 한마디 말실수에 목숨이 날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놈에게 당한 우리 쪽 고수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쉽게 여길 자가 아닙니다.”

천소선의 눈빛이 차갑게 날아들었다.

“그래서 계속 어려워하자? 왜요, 차라리 갈사량을 데려와서 우리 쪽 군사로 삼지 그러시오.”

“죄송합니다.”

백석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못마땅한 눈빛이 날아들었지만 그것이 살기로 이어지진 않았다. 천소선도 상대가 백석이 상대하기에 만만치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시비 하나가 와서 기별했다.

“어르신께서 공자님을 찾으십니다.”

천소선이 그곳을 걸어 나가며 말했다.

“그대는 돌아가서 임연정의 일이나 잘 도우시오.”

“네. 혼신을 다하겠습니다.”

천소선이 그곳을 떠나자 비로소 백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흑석이 죽은 후,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때론 속 편히 먼저 간 흑석이 부러울 때가…… 아니, 부럽지 않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곳 개똥밭이 낫다.

* * *

나는 적막이 가득한 텅 빈 공간에 서 있었다.

그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없었다. 지극히 인위적인 공간.

이곳은 바로 진법으로 만든 공간이었다. 갈사량이 수련을 겸해 틈틈이 만들고 있는 것으로 흑암거해진(黑闇鋸骸陣)이라는 이름의 상급 진법이었다.

흑암거해진은 본단 근처에 새로 마련한 거처 앞마당에 설치하고 있었다.

즉위식 날짜가 정해지고 나자 갈사량은 한가해졌다.

물론 정의각은 여전히 바빴다. 하지만 대부분 수하 군사들의 일이지 총군사가 할 일은 없었다.

게다가 새로운 군사가 바뀔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도는 상황이었기에 더욱이 여유가 있었다.

진법은 거처 앞마당에 설치되었는데 진법이 발동된 상황에서 마당으로 발을 딛는 순간, 이 공간으로 들어오게 된다.

나는 이곳을 한 가지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무공수련을 했던 것이다.

주위 신경을 쓰지 않고 광활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공수련에 제격이었다.

물론 추혼수라검법은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초식만을 이용해서 수련했다.

흑암거해진법이 완성된 상태라면 추혼수라검법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무공이 강하면 강할수록 생문을 찾는데 더 도움은 되겠지만, 무력만으로 파훼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창 만들고 있는 과정이라 내부에서 너무 강력한 초식을 발휘하면 진법이 파훼될 수도 있었다.

한차례 수련을 마친 내가 걸음을 옮겼다.

특정한 자리에 도착한 후에 정해진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여섯 걸음, 좌로 두 걸음, 다시 앞으로 일곱 걸음, 우로 열두 걸음……

생로를 따라 걸어가자 어느 순간 눈앞의 전경이 확 바뀌었다.

이번에는 거대한 벽과 벽 사이 길에 서 있었다.

벽 사이 길을 걸으며 이번에는 양 옆의 벽돌을 순서에 맞게 두드렸다.

그렇게 얼마나 두드렸을까?

정해진 마지막 벽돌을 두드리는 순간, 양쪽에 드높았던 벽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번에는 사막의 모래사장이 나왔는데, 그곳에 한 사람이 허리를 숙인 채 무엇인가를 작업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갈사량이었다.

“오셨습니까?”

갈사량이 허리를 펴며 내게 인사를 해왔다.

그는 이곳 내부에서 진법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상급 진법을 만들 때에는 외부에서 설치만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내부에서 만들어야 할 것도 있었던 것이다.

갈사량은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쪼개 진법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어떻게 사용해야지 하는 목적보다, 순수하게 진법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진법이 점차 완성되어 가는군요.”

“그냥 뼈대만 잡아둔 상태입니다. 아직 멀었지요.”

앞서 내가 지나왔던 공간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법이 완성되면 각 공간들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될 것이다. 미로가 될지, 폭우가 몰아치는 바다가 될지, 독충과 맹수들이 가득한 밀림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앞서 두 개의 거대한 벽은 그것이 가운데로 밀려와 사

이에 선 사람을 뭉개버릴지, 아니면 벽이 무너져 내릴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생문을 모르면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이 될 것이란 점이다.

“단지 방어를 위한 진법이 아닙니다. 적들을 유인해서 가둬버리면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겁니다.”

“너무 무리하진 마시오.”

“아닙니다. 그냥 소일거리로 하는 일입니다.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이렇게 몸을 움직이니 더 건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자, 이리로 오시지요. 제 발걸음을 따라 오십시오.”

나는 갈사량의 움직임을 정확히 따라 걸었다.

그러자 다시 주위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아름다운 꽃이 만개한 화원이 펼쳐졌다. 그 가운데 누각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는 처음 와 봤다. 근래 다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기왕이면 이곳에서 말씀 나누시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이 될지.”

“아마 모르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하하하.”

마철군이 새로운 총군사로 노선생을 뽑겠다고 통보를 해왔다. 모든 것은 예상대로였다. 배후 세력이 그 일을 막지 않는 것으로 볼 때, 무림맹에서 갈사량의 이용가치는 끝이 난 듯 보였다.

이젠 마철군을 이용해서 본격적인 음모를 꾸미려 할 것이다.

나는 혹시라도 갈사량을 암살하려 할까봐 바짝 긴장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갈사량은 태평했다.

“지금까지 저를 놔둔 것으로 볼 때, 즉위식 전까진 저를 건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즉위식 전에 총군사가 죽는다면 큰 일이 될 테니까요.”

“그래도 걱정이 되오.”

“아마도 놈들은 저를 죽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껏 갈사량을 죽이려다가 날려버린 고수들과 병력들은 엄청났다. 이젠 눈에 거슬린다고 무작정 저 놈 죽이란 명령을 내릴 순 없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 힘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란 생각이 든다. 무림맹을 동원해서 우릴 없애려 들면, 불필요한 희생을 낳게 될 테니까.

갈사량이 화원의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체 놈들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나는 다양한 욕심과 욕망을 경험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겪었지만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많지 않았다.

권력과 돈.

가장 많은 이유는 이 두 가지였고, 다른 이유는  치정과 복수였다.

이번에는 어떤 이유일까?

놈들은 무림맹주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힘을 지녔다. 게다가 놈들이 동원하는 조직을 보면 엄청난 자본력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권력도, 돈도 아니라면? 치정인가? 복수인가?

아니라면 더 큰 권력과 더 많은 돈일까?

* * *

천소선이 동굴로 걸어 들어갔다.

신묘한 기운이 가득한 그곳에는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을 종유석이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었고,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만들어낸 석순과 석주가 군데군데 솟아 있었다.

그야말로 유구한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그곳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얼굴은 물론이고 손등까지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이었는데 적어도 백 세는 된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노인이었다.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는 노인 앞에서 천소선조차 움츠러들었다.

“왔느냐?”

동굴이었기에 목소리가 울려 퍼져 더욱 신비한 느낌을 더해주었다.

“네, 할아버지.”

“가까이 오너라.”

“네.”

천소선이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이 천소선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가져다댔다. 마음까지 꿰뚫을 것 같은 눈빛으로 천소선을 응시하던 노인이 불쑥 말했다.

“문제가 생겼구나.”

“네.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일이 쉬우면 우리 말고 딴 놈들이 이 자리에 있었겠지.”

그만큼 자신들의 일이 어렵다는 말이었고, 동시에 스스로를 높이 여기는 말이기도 했다.

“큰일을 할 때는 여러 난관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하라고 했느냐?”

“너무 깊이 고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잘하려고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언젠가 천소선이 주철룡에게 했던 말이기도 했다.

노인이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구나. 한데 왜 화를 쌓고 있느냐?”

“제 직감과 다른 자가 있습니다.”

“없애버려라.”

노인의 말은 빨랐고 단호했다.

“의문이 드는 상대는 가차 없이 제거해라. 더 큰 힘으로 숨도 쉬지 말고 짓밟아버려라.”

잠시 사이를 두고 천소선이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노인은 곧장 대답이 나오지 않은 이유를 짐작했다.

“너무 단순한 해법이라 내키지 않느냐? 하지만 너는 알아야 한다. 이 간단한 해법을 실천하지 못해 수많은 야심가들이 실패했다. 어설픈 자존심을 부리고, 쓸데없이 머리를 굴리고. 그런 것들이 네 목숨을 앗아갈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진짜 강해지려면 단순해져야 한다. 어설픈 위험 따윈 즐기지 마라.”

노인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천소선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동굴 가운데 청옥으로 만들어진 침상이 있었고, 그 위에 벌거벗은 한 소년이 누워 있었다. 그는 잠이 들어 있었다.

소년을 내려다보는 노인의 눈빛에 감출 수 없는 격정이 가득했다.

“강호 역사상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을 앞두고서는 더욱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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