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30화 (1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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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바다가 마르면(1)

갈사량은 새벽까지 귀문둔서를 읽었다.

대단한 책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대단한 내용이 담겨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진법 전반에 걸친 심오하고 해박한 내용을 읽고 있자니, 정말이지 온몸이 짜릿해오는 지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도 갈사량의 실용적인 성격이 반영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본 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 진법 하나를 집중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진법이라도 사용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용할 수 있는 진법을 하나씩 늘려가는 것, 갈사량은 그것이 가장 현명한 방식이라 판단했다. 오랜 세월 총군사를 하면서 몸에 베인 실용적인 사

고관이기도 했다.

“휴우.”

갈사량이 기지개를 켰다. 창밖으로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돌아보니 벽리단의 침상은 비어 있었다.

‘어딜 가신 거지?’

벽리단이 나가는 줄도 모르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들었던 것이다. 워낙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이라서 더욱 주위를 살피지 못하기도 했다.

갈사량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벽리단은 앞마당에 서서 저 멀리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잘 주무셨습니까?”

갈사량의 인사에 벽리단이 고개를 돌렸다.

“아주 잘 잤소.”

“괜히 저 때문에 주무시는데 방해가 되지 않으셨는지 걱정이 됩니다.”

“하하, 아니오. 아주 푹 잘 잤소.”

“다행입니다. 저는 일어나시는 줄도 몰랐습니다.”

벽리단이 갈사량을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피곤하지 않으시오?”

“괜찮습니다.”

벽리단이 품에서 작은 단약을 하나 건네주었다.

“몸의 피로를 없애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약이오. 자, 드시오.”

괜찮다고 했지만 벽리단이 다시 권했다. 결국 단약을 복용했다. 기분 탓인지,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약도 좋지만, 잘 먹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오.”

“명심하겠습니다.”

벽리단이 다시 하늘을 돌아보았다.

“한데 아까부터 어딜 그렇게 쳐다보고 계십니까?”

“저기 저 나무 보이시오?”

여러 개의 담장 너머 저 멀리 나무가 보였다.

“네, 보입니다.”

“저길 보고 있었소.”

“저긴 왜요?”

“나뭇가지 사이에서 누군가 숨어서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요. 긴가민가했는데 군사께서 나오시니 이제 확실해졌소.”

“확실해지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벽리단이 씩 웃는가 싶더니.

타앗.

그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정말 말 그대로 날았다. 한차례 담을 딛고 날아가더니, 저 멀리 다음 담을 밟고 도약했고, 또 다시 다음 담을 밟고 도약했다.

갈사량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번쩍 하는 순간에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벽리단이 순식간에 앞서 가리킨 나무에 도달했다.

나뭇가지 사이에서 무엇인가 벽리단을 향해 날아들었다.

쉭! 쉭!

빠르게 날아든 것은 두 자루의 비수였다.

벽리단이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몸을 틀자 두 자루의 암기가 각기 어깨와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암기를 날린 사람은 비살이었다.

파아아아악!

비살이 나뭇가지를 스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는 상상도 못했다.

벽리단이 날아온 곳은 너무나 멀어서 사실 나뭇가지에 숨을 필요도 없었다. 비살은 네 명의 살수 중에서 가장 시력이 좋았다. 그래서 이 먼 거리에서 갈사량을 감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새벽이 되어서도 독야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으로 자신이 투입된 것이다. 원래 살수들은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애초에 조를 이뤄서 활약하는 살수가 아닌 한, 함께 움직이면 오히려 능률이 떨어지기에 살수들은 언제나 혼자였다.

서로 경쟁하는 처지였기에 독야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독야가 얼마나 대단한 경신술과 암살실력을 지녔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당했다는 의미.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곳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한데 저 멀리 있던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온 것이다.

게다가 허공에서 자신의 암기까지 피했다. 땅에 발을 딛고서도 피하기 어려운 것을 허공에서 피하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암기를 피한 후에도 나무까지 날아왔고, 나뭇가지를 박차고 자신을 뒤쫓아 날아올랐다는 점이었다.

비살이 허공에서 암기를 뿌렸다. 자신을 향해 쇄도해 날아오는 상대를 향해서였다.

촤라라라라촤촤촤촥촥!

그가 가장 자신하는 한 수였다. 게다가 위에서 아래로 날리는 공격이었기에 절대 피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허공으로 날아올라 자신을 노출한 것도 그 자신감에서 기인한 것이었고.

따다다다다다다당!

날아간 수십 개의 암기가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일부러 연습을 한다 하더라도, 저렇게 완벽하게 암기를 튕겨낼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멋지군!’

상대의 검이 햇살에 반사되며 눈부시게 빛났다.

암기를 튕겨낸 검이 일직선으로 쭉 날아와 자신의 심장을 꿰뚫었다.

푸우욱!

비로소 검과 함께 날아온 상대의 얼굴을 보았다. 너무나도 젊은 얼굴이었다.

그제야 비살은 깨달았다. 이 젊은 고수는 저 멀리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이 하늘 위까지, 단 한순간도 쉬지 않았음을. 그야말로 한 동작으로 쭉 날아와 비수를 피하고, 암기를 튕겨낸 후, 자신의 심장에 검을 박

아 넣은 것이다.

‘그래, 이 정도 고수라면…….’

그렇게 비살은 후회 없이 죽었다.

* * *

갈사량은 마당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살수였소.”

“맙소사!”

살수가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여기서 그 살수가 보였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물론 더 놀라운 것은 산책이라도 하는 듯 훌쩍 날아가서 그를 해치우고 돌아왔다는 점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살수는 남겨둬선 안 되오.”

내가 단호히 말했다. 전생에서 수도 없이 살수를 겪으면서 터득한 생존의 지혜였다.

살수는 오직 상대를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를 죽였을 경우다. 지금 위협적이지 않다고 그냥 두었다가는 내가 생각지 못한 순간에 갈사량에게 살수를 가할

것이다. 천추의 한을 남기지 않으려면, 기회가 있을 때 없애버려야 한다.

“주군께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수시군요.”

“아마 그럴 것이오.”

일부러 갈사량이 있을 때 실력을 보였다. 그가 알고 있는 실력보다 더 위란 사실은 알려줘야 했으니까.

더불어 그에게 경고를 해주었다.

“조만간 진짜가 올 것이오. 마음의 준비를 하시오.”

갈사량이 의지 가득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네, 제 나름대로 준비를 하겠습니다.”

* * *

“독야와 비살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침울한 철결의 보고에 흑석은 놀라지 않았다. 마치 그녀는 이런 소식이 날아올지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이제 알겠느냐? 내가 왜 그리 신중해야 한다고 했는지.”

“네. 하지만…….”

철결이 뒷말을 삼켰다.

‘제가 가면 다릅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흑석이 표정에 ‘네가 가도 마찬가지다’란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철결도 크게 놀란 상태였다. 정말 독야와 비살이 실패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하룻

밤 사이에 연속해서.

“이제 어쩌실 겁니까?”

흑석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가로 걸어갔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무림맹 본단 인근 객잔의 객방이었다.

“갈사량을 확보한다.”

상대가 이렇게나 강하다면 방법을 바꿔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린 속고 있었다. 우리 사냥터인 줄 알았는데 놈의 어장이었다. 젠장! 이제 이 빌어먹을 낚시꾼 놈을 물가에서 멀리 끌어내야지.”

철결이 각오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충성심이 아니라 그것은 투쟁심이었다. 그는 강자를 보면 싸워야 하는 성격이었다. 강자를 꺾었을 때의 쾌감에 중독된 자였다. 한데 지금 계속 그 욕망이 제지당하고 있었다.

흑석이 그를 돌아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정말 그렇게 죽고 싶으냐? 차라리 내 손에 죽지 그러냐?”

“그럼 대체 어쩌시려고요?”

“북명대(北溟隊)를 요청해라.”

북명대란 말에 철결이 깜짝 놀랐다. 북쪽의 큰 바다란 뜻을 지닌 이 북명대는 조직의 정예였다. 강하기도 강할뿐더러 조직 내 정규 병력의 성격이 강했다. 다시 말해 전쟁이 터졌을 때, 사용될 병력이었던 것이다.

“진심이십니까?”

“그래.”

“허가가 안 떨어질 겁니다.”

“해달라고 해. 이쪽 상황을 이야기하면 허가해 줄 거야.”

“하지만…….”

“실패하면 내가 책임진다고 해.”

철결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다는 것을. 하긴, 연이은 실패로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그녀였다. 이번에 어떻게 하든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설령 허가가 난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습니다. 갈사량은 무림맹 내원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설마 북명대로 무림맹을 밀고 들어가려는 것은 아니시지요?”

“물론 무림맹과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지.”

흑석의 시선이 다시 창밖을 향했다. 저 멀리 무림맹 건물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갈사량을 끌어낼 방법이 있지.”

* * *

그로부터 열흘 후 새벽, 한 대의 마차가 은밀히 무림맹을 나섰다.

마차는 바로 총군사가 타고 다니는 마차였다.

광월단주 주철룡이 긴급한 일이라며 외부에서 잠시 그를 보자는 연락을 취해온 것이다.

두두두두.

마차가 대로를 빠져나가 외진 곳에 접어들었을 때, 일단의 무리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막아선 사내들은 모두 적의무복을 입고 있었다.

마차의 좌측과 우측, 그리고 뒤쪽에서도 붉은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가 일백에 이르는데다가 무복의 색은 그야말로 붉어서 마치 사방에서 불이라도 나는 것만 같았다.

이들이 바로 북명대였다.

북명대의 대주 종훤(宗喧)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야말로 붉은 옷에 잘 어울리는 사내였는데, 차갑고 날카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북명대 무인들 역시 하나하나의 기도가 보통 무인들과 달랐다. 독기 서린 눈빛만 봐도 엄청난 훈련을 받은 무인들임을 알 수 있었다.

종훤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내려라.”

멀리서 나직이 말했는데, 소리는 마차가 있는 곳까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의 내공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마차에서는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종훤이 턱짓을 하자 몇 사람의 적의무인들이 마차로 몸을 날렸다.

조심스럽게 접근한 그들이 마차를 살폈다.

그들 중 한 사내가 소리쳤다.

“마차에 아무도 없습니다.”

종훤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쥐새끼 같은 놈! 미리 눈치를 챈 모양이군.”

허탕을 친 것에 짜증을 더 낼 법도 했건만, 그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마부는 죽이고 마차는 불태워버리도록.”

“네!”

그가 돌아서고 두 발짝 걸었을 때였다.

퍼어억! 퍼억! 퍽!

둔탁한 소리가 연속해서 들렸다.

종훤이 발걸음을 멈췄다. 뭔지 모를 위화감.

‘수하들이 마부를 죽였다면 검으로 베어 죽였을 텐데, 저 소리는 뭐지?’

종훤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눈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

마부석에서 적의무인 하나가 스르르 바닥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이미 그 아래 두 명의 무인이 쓰러져 있었다.

또 다른 적의인이 검을 내지르며 날아들었다.

쉭!

아슬아슬하게 검이 노렸던 마부의 얼굴을 빗나갔다.

반면 마부의 팔꿈치가 공격을 가한 적의인의 턱을 강타했다.

퍼억!

일격에 사내가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원래라면 이정도 타격이라면 벌떡 일어났어야 했는데, 쓰러진 사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목숨이 끊어진 것이다. 수하들의 실력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 펼쳐진 것

이다.

그제야 마부가 종훤을 보며 말했다.

“목표한 사람이 없으면 그냥 돌아가야지, 죄 없는 마부는 왜 죽이느냐?”

역시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또렷하게 사내에게 들렸다.

종훤이 깜짝 놀랐다.

“너로구나!”

설마 갈사량을 돕는 숨은 고수가 빈 마차를 몰고 온 마부일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과연 마차를 몰던 마부는 바로 벽리단이었다. 그는 마부들이 쓰는 방갓을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종훤이 살기를 흘리며 묘한 말을 던졌다.

“이런 수작을 부린다고 갈사량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 * *

같은 시각, 두 사람이 무림맹 내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바로 흑석과 철결이었다.

그들은 광월단주 주철룡의 의해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내원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맹주전을 제외한 내원 곳곳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 허가증을 가지고 있었다.

정의각 내 비상작전실 앞에 멈춰 섰다. 내원 깊숙한 곳에 있었기에 이곳에 따로 경계 무인은 없었다.

“예상하신 대로 갈사량은 마차에 타지 않았습니다.”

“그랬겠지. 그 똑똑한 놈이 함정일 줄 몰랐을 리 없지.”

아마 역으로 함정을 팠을 것이다. 놈은 이곳에 숨어 있고, 저쪽에 주력을 동원했으리라.

“몇 놈 없앴다고 우릴 바보로 알았겠지만, 난 그렇게 멍청이가 아니지. 가서 갈사량을 잡아와라.”

“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철결이 성큼성큼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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