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29화 (129/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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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과 낚시의 차이(2)

칠호와 나는 주점에서 술을 사서 근처 들판으로 나갔다. 기왕 마시는 것 갑갑한 곳에서 마시지 말자는 그녀의 말에, 밖으로 나온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술을 마시니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 나는 약간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를 통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녀는 무슨 의도일까? 단지 만두를 사줬다고 술을 산다? 그럴 리가? 그렇다면 내게서 어떤 정보를 캐내려는 것일까?

그렇게 의심하기에는 지금 내 옆에서 바람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칠호에게서 어떤 의도를 엿보긴 어려웠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짙어진 외로움이다.

그녀를 적들에게서 빼내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설픈 감정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남녀 간의 감정에 휩싸여 일을 망쳐버리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으니까.

우린 같은 곳에 앉아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만, 아마 다른 것을 보고 있으리라.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그녀였다.

“비상작전실로 가셨다고요?”

“네. 잘 아시겠지만 이번에 마교의 부활로 맹이 비상사태입니다.”

“바쁘시겠네요.”

“눈코 뜰 새 없습니다.”

“한데 이렇게 술 마실 시간은 있으시네요?”

“저도 사람인데 가끔 농땡이도 쳐야죠.”

그녀가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살짝 미소 짓는 것이 느껴졌다.

마교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왔지만 이내 화제에서 사라졌다. 나도, 그녀도 알고 있었으니까. 진짜 마교가 부활한 것이 아님을.

우린 각자 알아서 술을 마셨다. 굳이 권하지도 않았고 건배를 하지도 않았다. 그냥 편하게 마셨다.

첫 술병이 비었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내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 아님을.

몇 잔의 술을 홀로 마시던 그녀가 불쑥 물었다.

“군사 일 만족하세요?”

뜻밖의 물음이었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네, 요즘에는요.”

“요즘에?”

“예전에는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 여겼는데, 지나고 보니까 아니더군요.”

이 말에 담긴 진정한 뜻을 그녀는 알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극복했죠?”

“네?”

“정신없이 살았다면서요?”

나는 잠시 대답을 아꼈다.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키 큰 풀들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요.”

“그렇군요.”

이후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굳이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전생을 통해 ‘삶의 격조’란 것이 존재함을 알았다.

그것은 돈이나 권력, 무공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

가난해도 격조가 있는 사람이 있고, 무공이 약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격조라고 하니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 같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지금 그녀를 이용할 생각도, 그렇다고 그녀를 동정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금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함께 술을 마셔줄 사람이다. 위로나 충고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함께 있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참을 수 있는 것, 상대를 배려해서 나를 다스릴 수 있는 것, 나는 그것이 바로 격조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엄밀히 따지면 그녀는 적인데, 적에게 그 무슨 사치스러운 감정이냐고 묻는다 해도, 적어도 오늘은 이 격조를 지켜내고 싶다.

바람을 안주 삼아 한 잔 두 잔 마시다보니 사가지고 온 술병이 다 비었다.

“술을 조금 더 사올 것을 그랬습니다.”

내가 아쉬움을 표하자 그녀가 말했다.

“더 사오면 되죠.”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다.

“제가 가서 사오겠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마치 정의각 건물 앞에서 길을 잘못 걸어갔을 때처럼 허둥대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또 뵐 수 있기를.”

저 멀리 걸어가던 그녀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돌아서지 않은 채 말했다.

“조심하세요.”

“무엇을 말입니까?”

“그냥…… 뭐든지요.”

그녀의 가녀린 등이 조만간 닥쳐올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조사관님도 조심하십시오.”

다시 그녀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곳에서 멀어져갔다.

하늘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외로이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을 올려다 보다 나는 그녀와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갈사량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아. 문제는 갈사량의 배후다.”

흑석은 갈사량의 배후를 알아내려 하고 있었다.

“이번에 천공자가 갈사량을 죽이지 않은 것도, 배후를 찾기 위해서일 거야. 분명 대단한 고수가 있어.”

“요 근래 새로 책임군사가 된 자가 있습니다. 신입군사인데 단번에 책임군사가 된 자입니다. 그자가 의심스럽습니다.”

“그자는 아니다. 만약 그자가 편노를 죽일 정도의 고수였다면 천공자가 알아보았을 것이다.”

“제가 직접 나서서 알아보겠습니다.”

철결의 말에 흑석이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저를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너를 믿지 못했으면 애초에 넌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겠지.”

“하면 무엇 때문입니까? 혹시 제가 당하기라도 할까 걱정하시는 겁니까?”

“놈은 뭐든 먹어치우는 괴물이야.”

결국 걱정한다는 뜻이었다.

철결이 자존심이 상했음을 숨기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괴물을 잡는 사냥꾼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냥꾼도 잡아먹는 괴물이라면?”

“그런 괴물은 본적이 없습니다.”

“새로 태어났을 수도 있지.”

흑석은 철결을 믿었다. 앞서 희생된 이들보다 확실히 더 강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맡겨서 해결이 안 된 일이 없었으니까.

‘한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그녀가 불안해할수록 상대를 잡겠다는 철결의 의지는 강해졌다.

“배후를 알아낼 방법은 간단합니다. 갈사량에게 위해를 가하면 놈들이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아직 갈사량을 죽여선 안 된다.”

갈사량을 죽이라는 명령은 내려오지 않았다. 조직에서는 갈사량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네. 물론입니다. 굳이 죽일 필요 없이 죽이려는 시늉만 해도 뭔가 튀어 나올 겁니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대신 독야(獨夜)를 보내고 비살(秘殺)을 준비시켜라.”

독야와 비살은 살수들이었다. 조직 내에서 가장 유명한 네 명의 살수들 중 두 명이었는데, 다른 두 명은 바로 앞서 칠호와 작전을 펼쳤던 괴망량과 취랑이었다.

괴망량과 취랑은 주로 백석의 명령을 받고, 독야와 비살은 흑석의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철결이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감히 흑석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번 결정은 그만큼 자신을 아껴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 * *

갈사량과 나는 비상작전실 옆에 마련된 작은 방에 함께 지냈다.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는 한시도 갈사량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낮에 주철룡이 찾아와서 마철군을 맹주로 삼자고 다시 압박을 해왔습니다.”

“뭐라 하셨습니까?”

“한 번 더 생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조만간에 마봉기의 죽음을 강호에 공표하겠다고 하더군요.”

마치 정해진 일정이 있는 것처럼 놈들은 계획을 실천에 옮겨가고 있었다.

“마철군이 맹주가 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강호의 정세나 여론으로 볼 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그만큼 마철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놈들이 서두르는 이유도 그 인기가 사그라지기 전에 그를 맹주로 만들 작정인 것이다.

“참, 그리고 이것 보십시오.”

내가 그에게 한 권의 책자를 건넸다. 바로 생사루에서 가져온 진법책 귀문둔서였다. 나는 이미 내용을 모두 외웠지만 태우지 않고 남겨두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자, 받으시오.”

“이것은!”

갈사량이 깜짝 놀랐다.

“지난번 검향림의 생사루 꼭대기에서 발견한 것이오. 그곳 벽에 비밀공간이 있었소.”

“아, 이것이 비밀공간에 숨겨져 있었군요!”

갈사량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 싸움에서 승리하고 생사루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던 일을.

“일전에 저를 구해준 진법도 이것에서 익히신 거군요?”

“그렇소.”

“한데 이 귀한 것을 왜 제게 주시는 겁니까?”

“내겐 아무짝에 소용없는 물건이오. 하지만 갈군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되겠지요.”

갈사량이 전문적인 진법연구가는 아니었지만, 진법과 기관에 해박한 지식이 있었다. 그가 이 귀문둔서를 익힌다면 굉장한 진법술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이 책은 그가 익히고 보관하고 있

는 것이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귀문둔서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쉽게 내어줄 물건이 아니었다. 값으로는 당연히 따질 수 없고, 이 한 권의 책자가 강호에 피바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음을 갈사량은 누구보다 잘 알았

다.

갈사량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저를 이렇게 귀하게 여겨주시니 정말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지금 죽으면 안 되오. 그대는 여한이 없을지 몰라도 나는 큰 한이 남을 거요.”

“하하하.”

내 농담에 갈사량이 크게 웃었다.

“잘 익혀서 우리의 대업에 큰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좋소.”

갈사량이 책자를 잘 갈무리했다.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나도 기분이 좋았다.

갈사량이 내게 물었다.

“한데 우린 그냥 이렇게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내가 대답 대신 되물었다.

“혹시 군사께선 사냥과 낚시의 차이에 대해서 아시오?”

“저는 둘 다 즐기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만.”

“차이는 간단합니다. 사냥은 내가 가서 잡는 것이고, 낚시는 물고기가 내게로 오는 것이지요.”

“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갈사량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아주 명료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들은 사냥을 하고 있고, 우린 낚시를 하고 있지요.”

* * *

독야는 새처럼 어둠을 갈랐다.

그의 신묘한 경신술은 달이 뜨지 않은 야심한 어둠과 어울리면서, 그를 무림맹 내원의 정의각 지붕 위에 내려놓았다.

독야가 지붕 위를 뛰었다. 하지만 마치 솜 위를 걷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마치 움직임에서 소리를 지워버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가 지붕 끝에서 아래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지붕에 발을 걸치고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렸다.

창문으로 방안의 광경이 보였다.

오늘의 목표인 갈사량이 등을 돌린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반대쪽 침상에 한 사내가 누워서 자고 있었다. 아마도 근래 한방을 쓰고 있다는 책임군사 벽리단일 것이다.

자신의 임무는 간단했다.

갈사량을 처치하는 척하면서 그를 지키는 자를 찾아내란 명령이었다. 죽이기가 여의치 않으면 상대의 정체만 확인하고 빠져도 좋다는 명령이었다. 경공술이라면 자신 있는 그에게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같은 임

무였다.

독야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거꾸로 매달린 그의 몸이 마치 보이지 않는 줄이 당기는 것처럼 가볍게 원래대로 섰다. 그 어떤 미세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비살이 아니라 자신을 보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암살수법이 최고라 할 수는 없었지만 몸을 움직이는 경신법만큼은 조직 내 네 명의 중요 살수들 중에서도 자신이 으뜸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이름이 말해주듯 특히 밤에 강했다.

그가 기감을 끌어올려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말해 갈사량은 무방비 상태였다.

‘상부에서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갈사량을 죽이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좀 더 소란을 피워야 튀어나올 것인가?’

다시 독야가 아까처럼 몸을 거꾸로 매달렸다.

여전히 갈사량은 책을 보고 있었고…… 침상에는 사내가…… 없었다!

‘헉!’

독야가 빠르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급한 움직임이었지만 작은 기척조차 나지 않았다.

쉬익.

본능적인 위기감으로 독야가 벼락처럼 빠르게 돌아섰다.

핏.

독야의 손가락에서 작은 바늘이 날았다. 그의 독문암기 중 하나인 절명침(絶命針)이었다.

돌아서고 절명침을 날리는 것이 한 동작으로 이루어졌기에 절명침은 정확히 뒤쪽에 서 있던 상대의 가슴에 적중했다.

‘됐다!’

적중하는 순간 절명하는 침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쓰러지지 않았다. 자신을 보며 씩 웃는 상대는 바로 침상에서 자고 있던 책임군사 벽리단이었다.

다음 순간!

벽리단의 양손이 그의 양 볼을 빠르게 스쳤다.

푸와와악!

꽈드드득!

독야의 얼굴이 빠르게 뒤로 한 바퀴 돌며 제자리로 왔다. 비틀린 목 안의 뼈는 이미 박살난 상태였다.

너무나 빠르게 목이 돌았기에 독야는 자신이 죽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벽리단의 손 역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선학비술 중에서도 최상의 수법이 사용된 것이다.

덜렁거리는 머리통을 앞세우며 쓰러지는 독야의 시체를 벽리단이 가볍게 안아들었다.

* * *

나는 시체를 처리한 후, 나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 없이 방으로 돌아왔다.

귀문둔서에 빠져든 갈사량은 내가 방을 나간 것도, 머리 위 지붕 위에서 살수가 죽은 것도 알지 못했다.

내 움직임은 앞서의 살수만큼이나 은밀했고 갈사량은 책 속에 푹 빠져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용히 침상에 다시 누웠다. 굳이 피라미의 등장을 알려서 그의 공부를 방해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이 귀한 미끼에 어울리는 대어(大魚)를 기다리며 다시 눈을 감았다.

낚시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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