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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28화 (128/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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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과 낚시의 차이(1)

천룡서고를 지키는 무인들은 맹호단의 무인들이었다. 이곳은 오직 맹주만이 이용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갈사량이 발급한 출입허가서를 받은 그곳 책임자는 자세한 이유를 묻지 않고 곧장 나를 안으로 넣어주었다.

“들어가시지요.”

원래라면 출입허가서가 있더라도 왜 왔는지, 안에 들어가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등 한참동안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두말없이 입장이었다. 책임자뿐만 아니라 다른 무인들의 눈빛에서도 호의가 묻어났다.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맹호단 내부에 소문이 난 것이리라. 이번에 나와 갈사량이 맹호단주와 수하 무인들의 불필요한 희생을 막아주었다고.

“감사합니다.”

그들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천룡서고 안으로 들어섰다.

사마외도와의 전쟁이 끝나고 나는 이곳에 자주 왔었다. 심검지경에 이르기 위해 여러 책들을 읽었는데 이후 심검지경을 포기한 말년에는 거의 들르지 않았다.

천룡서고에 미안했다. 내가 필요할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다가, 필요 없다고 발걸음을 뚝 끊어버렸으니.

천천히 걸음을 옮겨 책장 사이를 걸었다.

정말 여러 분야의 다양한 책들이 있었다. 무공비급부터 전략서들까지. 맹주가 사용하는 곳인 만큼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들도 여럿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엄청난 무공비급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이번에 정의각 시험을 보면서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었다.

그때 확실히 느꼈었다. 다른 분야의 책읽기가 무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아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 나란 사람이 변하고, 내가 펼치는 무공도 변하게 되는 것을.

다음에 언제 기회가 되면 이곳의 책들을 차분히 읽어보고 싶었다. 예전 맹주 시절에는 무공에 관계된 책들만 읽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여러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

어쨌든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한 가지 책자를 읽기 위해서였다.

마공총람(魔功總覽)

전쟁이 끝나고 맹의 무공 학자들이 혈천신교의 마공을 항목별로 정리해둔 책자였다.

책장을 넘겨 경신법편을 찾아보았다. 바로 천소선이 보여줬던 경신술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 천소선은 눈빛이 하얗게 빛나더니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것이 정공의 무공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런 무공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래서 마공에서부터 찾아보려는 것이다.

간간이 아는 마공들이 보였다. 나와 싸웠던 마교 고수들의 마공들이었다.

그날의 싸움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어떤 수를 주고받았는지 하나하나 또렷하게 기억났다. 바둑기사들이 두었던 판을 그대로 복기(復棋)하는 것을 이해했다. 무인이 자신의 싸움을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리라.

전생에도 지난 싸움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확실히 느껴지는 바가 달랐다.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이것이었다.

그때 왜 이렇게 싸웠지?

지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 지금이라면 다르게 싸웠을 것 같은 것이다.

물론 그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 생각대로 싸웠다가 도리어 질 수도 있을 테고. 생각과 실전은 분명 다를 것이니까.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전생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공을 대하고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경신법을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천소선이 보여줬던 수법은 없었다.

다시 책장을 넘겼다. 이번에는 은신술과 현혹술에 관련한 마공을 살폈다.

순간적으로 몸을 숨기는 여러 방법들이 있었지만, 눈에서 하얀 빛이 나면서 사라지는 마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럼 마공이 아닌가?”

혈천신교총람을 책장에 꽂아둔 후, 이번에는 다른 책을 꺼냈다. 이번에는 사파의 무공을 모두 정리한 책자였다.

사공총람(邪功總覽)

사공을 살피다보니 이번에는 과거 싸웠던 사파의 고수들과의 싸움이 떠올랐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이라면 다르게 대처했을 것 같은 부분들이 많았다.

같은 무공에 같은 사람인데도 또 다른 싸움이 떠오르다니? 정말이지 무공의 세계는 끝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공도 자세히 살폈지만 그곳에도 천소선이 보여줬던 무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설마 정파 무공?”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되면 정공도 살펴봐야 했다.

다른 두 책에 비해 훨씬 더 두꺼운 책이었다.

정공총람(正功總覽)

다시 그곳에서 경신술과 관련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최근의 무공에는 없었다. 과거의 무공을 찾고 또 찾았다.

“찾았다!”

놀랍게도 전대의 무공에 천소선의 무공이 있었다.

백광무영신보(白光無影神步)

눈에서 하얀 광채를 내면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신술로 천소선이 보여준 것과 같았다.

그와 관련된 설명은 짤막한 한 줄이 다였다.

괴도(怪盜) 천보명(千保明)의 독문신법.

괴도 천보명?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별호로 볼 때 그는 도둑인 듯 보였다.

천소선과 도둑.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어쨌든 놈들에 관한 실마리를 처음으로 찾아내는 순간이었다.

* * *

“괴도 천보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소?”

다행히 갈사량은 그에 관해 기억하고 있었다.

“네,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백 년 전에 천보명이란 도둑이 등장해 강호를 일대 혼란에 빠뜨렸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괴도란 이름대로 그는 정말 괴이한 자였습니다.”

“어떤 점이 괴이했소?”

“부자들의 물건을 훔치는 자가 아니라 강호인들의 물건만을 훔쳤다고 합니다.”

“강호인들의 물건만요?”

“네. 그렇습니다.”

“무공이나 병장기를 훔친 것이오?”

“그랬다면 괴도란 이름이 붙지 않았겠지요. 그는 귀한 것을 훔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검을 지닌 고수에게서 옷이나 푼돈 따위를 훔쳤다고 합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자로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는 무공이 고강한 자였소?”

“아닙니다. 그가 활약하다 사라지기까지 무공을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하나의 신묘한 보법을 사용해서 강호인들이 끝내 그를 잡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것이 바로 백광무영신보일 것이다.

“한데 괴도에 대해서는 왜 물으시는 겁니까?”

“그날 천소선이 사용했던 무공이 바로 천보명의 신법이었소.”

“네?”

갈사량이 깜짝 놀라는 것처럼 참으로 예상 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과 괴도가 관련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우연히 괴도의 무공을 익힌 것인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소. 일단 천보명의 이후 행적에 대해 알아봐 주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난 잠시 나가보겠소.”

다시 바쁘게 나가려 하자 갈사량이 물었다.

“어딜 그리 바삐 가십니까?”

내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냥이 될지, 낚시가 될지 모르겠소.”

“미끼는 있습니까?”

내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갈사량이 흠칫 놀랐다.

“맙소사! 바로 저로군요.”

* * *

흑석은 저 멀리 무림맹이 보이는 언덕에 서 있었다.

후덕한 몸매에 좋아 보였던 인상은 여전히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강호에 뛰어들고, 특히 이 조직에 들어온 이래, 이렇게 궁지에 몰려본 적이 있었던가?

광혈무통군과 마번을 잃었고, 편노까지 죽었다. 천소선이 굳이 백의 불계승이니 뭐니 하면서 자신을 협박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위기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천소선이 갈사량과 관련된 배후나 고수를 알아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까지 실패하면…….

그때 뒤쪽으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석과 마찬가지로 흑의무복을 입은 사내가 한 여인을 데려온 것이다. 강제로 끌려온 여인은 바로 칠호였다.

흑석이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내가 누군지 아나?”

“모릅니다.”

“그런데도 겁을 내지 않는구나.”

과연 칠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있었다.

우선 자신을 데려온 흑의인의 무공은 자신보다 훨씬 강했다.

그는 철결(鐵結)이라 불리는 고수로, 흑석의 집행자 역할을 하는 이였다. 흑석이 가장 믿는 수하로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 그를 보냈다.

하지만 칠호는 단지 철결이 자신보다 더 강해서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칠호는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악착같이 그 일을 이겨내고 극복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이럴 때면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냥 이대로 다 끝나버렸으면.

그녀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삶에서 희망을 찾고 있었다.

희망과 절망은 언제나 함께 다니는 것일까?

희망을 찾으면 찾을수록 그녀가 발견하는 것은 절망이었다.

“무엇 때문에 저를 데려온 것인지요?”

흑석과 철결을 오늘 처음 보았지만, 한눈에 자신의 조직임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조직 사람들은 뭔가 공통적인 느낌이 있다. 어딘지 모르게 경직된, 마치 유적 어딘가 덩그러니 서 있는 석상을 보는 기분이 든다.

“왜 데려온 것 같나?”

순간 칠호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저런 말은 정말이지 의미 없는 물음이자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모르겠습니다.”

“갈사량을 조사했지?”

“네.”

“놈에게서 무엇을 알아냈나?”

그제야 칠호는 자신이 끌려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 직속상관에게만 보고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같은 식구끼리 융통성을 발휘하지?”

“안 됩니다.”

칠호의 거절에 흑석이 돌아섰다. 말로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죽일 듯한 살기를 내뿜으며 칠호에게 다가가서는 거칠게 멱살을 움켜쥐었다.

“내가 지금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나?”

두툼한 손이 칠호의 목을 짓눌렀다.

숨이 막혀왔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칠호는 마음속으로 이대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칠호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허무함이 흑석을 자극했다.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려던 바로 그때였다.

“그만하시기를!”

누군가 다급히 그곳에 도착했다. 등장한 사람은 일호였다. 급하게 달려왔는지 그는 땀에 젖어 있었다. 일호쯤 되는 고수가 땀을 흘렸다면 그가 얼마나 빨리 달려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두말없이 가져온 것을 막아선 철결에게 내주었다.

“여기 그때 받은 칠호의 보고서입니다.”

철결이 그것을 받아서 흑석에게 건넸다. 흑석이 살기를 거두고 보고서를 읽었다. 앞서 흑미랑과 고노의 죽음은 분명 갈사량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였다.

“이것뿐인가?”

“네, 그것뿐입니다.”

“젠장!”

갈사량만 지목되었을 뿐, 자신이 원하는 내용은 없었던 것이다. 흑석은 자신의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더 이상 다른 내용이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흑석이 칠호를 돌아보며 다시 물었다.

“그딴 태도는 수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알았나?”

“네.”

“상부에 보고하려면 해.”

일호에게 그 말을 남기고 훌쩍 몸을 날렸다. 그녀를 따라 철결도 그곳에서 사라졌다.

이제 그곳에는 일호와 칠호만이 남았다.

“죽고 싶었나?”

“아닙니다.”

“한데 왜 그래?”

“규정을 위반한 것은 저쪽입니다.”

“언제 저들이 규정을 지켜가며 싸웠나? 조심해. 흑석은 지금 궁지에 몰렸어. 절박하기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칠호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흑석이란 이름을 오늘 처음 듣는데, 그런데도 그녀에게 죽을 뻔 했다. 이것이 자신이 속한 조직이고, 자신의 처지였다.

“한데 저 자료를 저렇게 건네줘도 되는 겁니까?”

“저깟 것이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있다는 것은 일호도 알고 칠호도 알았다. 그냥 넘어가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문제가 생기면 중죄로 처리될 것이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칠호가 고개를 숙였다.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던 일호가 몸을 돌렸다.

“감사는 무슨.”

살아난 기념으로 한잔 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일호는 언제나처럼 다시 삼키고 말았다.

“안 가?”

“먼저 가십시오. 만나고 갈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일호는 묻지 않았다.

“조심하도록.”

“네.”

일호가 훌쩍 몸을 날려 그 자리를 떠났다.

* * *

“벽군사는 지금 비상작전실에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 가셔도 만나지 못할 겁니다.”

예전 집무실을 지키고 있던 군사의 말에 칠호가 알았다는 말을 건넨 후 빠르게 돌아섰다.

돌아가기 전에 그를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의 인연이라고 해봤자 정말 별 게 없었다. 그를 생각하면 만두가 떠오른다. 고작 만두 몇 개인데…… 한 번 얼굴이나 보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 근래 자꾸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마정수와 관련한 첫 임무에서 만났던 갈표라는 사내가 그랬고, 황금대연 임무에서 만났던 무명대협이란 자도 그러했다.

이 신입군사 역시 그러했다.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감정이라곤 일체 가지지 못하게 키워진 자신인데…… 변종인 것일까?

분명한 한 가지는 기억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외로움은 더욱 깊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정의각 건물을 나오는데 누군가 마주쳤다.

“어? 당신은?”

건물로 들어서던 사람은 벽리단이었다.

“여긴 어쩐 일입니까? 아직 임무가 남으셨습니까?”

벽리단의 물음에 그녀가 대답했다.

“아, 네.”

“그러시군요. 그럼 이만.”

벽리단이 스쳐 지나가던 그때, 칠호가 불쑥 말했다.

“밥 먹었어요? 전에…… 그쪽에서 만두를 사준 일도 있고.”

발걸음을 멈춘 벽리단이 잠시 그녀를 응시하더니 생각지 못한 말을 꺼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술 한잔합시다.”

이번에는 칠호가 벽리단을 응시했다. 이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제가 사죠.”

칠호가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걸어가는데 벽리단이 따라오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니 벽리단이 반대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가는 길은 저쪽입니다.”

“아.”

벽리단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녀가 그 뒤를 따랐다. 왠지 허둥댄 것처럼 보인 것이 부끄러웠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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