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26화 (126/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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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는 무겁지 않다(3)

우린 편한 마음으로 누각에 둘러앉았다.

정의각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많이 마실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오늘을 기념하는 술 한 잔은 하고 싶었다.

술맛이 좋았다. 비싼 술을 마신다고 술맛이 좋은 것이 아님을 요즘 자주 느끼고 있었다. 맹주 시절 마셨던 그 비싸고 귀한 술들보다, 요즘 마시는 술들이 훨씬 더 맛있었으니까.

이렇게 셋이서, 기분 좋게 술을 마신 적은 전생에도 없던 일이었다.

“주군이 되셨으니 말씀은 편하게 해주십시오. 맹으로 돌아가서는 어쩔 수 없겠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렇게 해주십시오.”

갈사량의 말에 백표도 같은 뜻을 밝혔다.

“네, 그렇게 하시지요. 이제 저도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내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실 말을 어떻게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가 중요하다.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나는 이번에 다시 새 삶을 살면서 다짐한 것이 있었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 것, 쓸데없는 권위주의나 형식주의에 빠지지 않을 것.

이들 두 사람 때문에 한 다짐이기도 했다. 전생에 그들과 좀 더 친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있었으니까.

“한데 이 장원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갈사량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장원은 내 명령을 받은 공수찬이 태성상단의 이름으로 사들인 것이다.

“무림맹 본단 인근에 장만해둔 비밀근거지들 중 하나요.”

거의 무인도나 다름없는 섬이었기에 아주 싼 값에 장원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이곳에 전략적 요충지를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본단과 거리가 적당하고, 이런 무인도에 그런 곳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할 테니까요.”

“군사께서 알아서 해주시오.”

섬이니 대규모 병력을 운용할 수는 없겠지만 갈사량이 알아서 잘 활용할 것이다.

“맡겨주십시오.”

나는 태성상단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삼안각이 전 중원에 지부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갈사량은 크게 놀랐다. 돈을 버는 것보다 중원 전역에 정보조직을 구축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지부를 백이십 곳이나 만들었다고요?”

“그렇소.”

“일은 누가 진행한 것입니까?”

“진과 수라고 믿을만한 세작들이 있소. 나중에 시간이 되면 소개시켜 드리겠소.”

삼안각이 자리를 잡은 것은 전적으로 진과 수 덕분이었다. 나중에 갈사량을 삼안각주로 삼고 진과 수를 삼안각의 요직에 앉힐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백표가 만들고 있는 흑표대와 산동에 있는 소검대까지 말해주었다. 숫자가 어떻게 되고, 무공수위는 어떤지. 그렇게 내가 환생한 후에 구축한 모든 것들을 그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갈사량이 진심으로 감동했다. 하나의 무림조직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재정, 정보, 무력에 고르게 투자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감격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자신을 설득하기 전에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세를 앞세워 자신을 설득하지 않고, 마음으로 자신을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

보통의 경우 이 정도의 힘을 지녔다면 그냥 찾아와서 자신을 포섭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의각에 들어오는 수고까지 하면서, 이후 목숨을 건 여정을 함께 하면서 자신을 끌어들이려 했다. 거기에 백표의 마음

까지 얻어낼 정도라면, 더 망설일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백표가 갈사량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수라명왕검은 공자님께 드렸습니다. 진작 연락을 해서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어쩐지. 어디서 본 듯한 검이었다고 했더니.”

손잡이에 천을 감은데다 워낙 빠르게 검술을 사용해서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설마 정의각에 들어온 군사가 수라명왕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던 탓이다.

“죄송합니다.”

“괜찮네. 애초에 마봉기 놈에게 주기 싫어서 빼돌렸던 것이었네. 이런 인연이 되려고 자네에게 검을 맡긴 모양이네.”

갈사량의 말에 백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한 가지 변명을 드리자면, 수라명왕검이 공자님을 처음 본 날, 스스로 울었습니다.”

“검이 울었다고?”

“네. 수라명왕검이 공자님을 선택했습니다.”

“오! 진정 그랬단 말이지?”

갈사량이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검이 무인을 선택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수라명왕검과 같은 보검이라면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랬다면 틀림없이 맹주님도 기뻐하고 계실 거네.”

그렇게 백표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 후에 갈사량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직 공자가 어떤 분이신지 다 알지 못합니다. 하나 한 가지 확신은 있습니다. 공자께선 분명 검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으십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고맙소.”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눴다. 나는 내가 환생한 것만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을 솔직히 말해주었다.

그들은 나를 주군으로 섬기지만, 나는 위아래 관계로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나의 친구다.

“참, 흑표대 훈련은 어떻게 되고 있소?”

“계속 수련중입니다.”

백표의 변화만 봐도 그들이 일취월장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백표는 완전히 기도가 달라져 있었다. 실력 또한 한 단계 올라섰음을 알 수 있었다.

일단은 그냥 백표에게 맡겨 둘 생각이다. 그가 스스로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올라갔을 때, 그때 그의 무공을 봐줄 생각이다. 무공으로는 어디 가서 절대 꿀리지 않을 무인으로 만들어줄 생각이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시간은 십 년도 더 줄 수 있소.”

“하하. 조금이면 됩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공자께서도 조심하십시오.”

흐뭇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갈사량이 잔을 높이 들었다.

“자, 한잔하시지요.”

세 개의 잔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우린 늦게까지 강호와, 무림맹, 그리고 앞으로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정말이지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 * *

백표는 다시 흑표대 수련을 위해 하남 평정산으로 돌아갔고 갈사량과 나는 무림맹으로 돌아왔다.

일단 우리는 무림맹에 남아 있기로 했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지금은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갈사량의 안전이었다. 놈들은  갈사량을 죽이지 않고 총군사의 자리에 남겨 두었다. 무엇인가 숨은 의도가 있다는 뜻, 만약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죽이려 들 것이다.

“당분간은 언제나 나와 함께 움직여 주시오.”

“알겠습니다.”

둘만 있을 때는 내가 주군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면 나는 책임군사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며칠이 지나고 두 번째 사건이 터졌다.

마인들이 산서 고평임가를 습격해서 몰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번에도 마철군이 가장 빨리 움직였다.

산서를 빠져나가는 마인들을 모조리 격살시킨 것이다.

마교에 대한 소문이 중원 전역에 퍼져 나갔다. 이제 마교의 부활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과거 혈천마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때 마철군의 활약은 그야말로 영웅의 등장을 알리는 나팔소리와 같았다.

사람들이 모이면 마교 이야기를 했고, 마철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마철군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아마도 배후세력이 사람을 풀어 소문을 부추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철군과 관련한 소문은 전 중원을 강타했다.

갈사량이 한 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이대로라면 놈들에게 계속 끌려 다니게 될 겁니다. 놈들을 뒤흔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말이오?”

“마철군이 후계자가 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나는 대번에 갈사량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후계자를 끌어들이자는 말이군요.”

“네, 맞습니다.”

내가 일전에 있었던 마령인과의 일을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가 배후세력과 연결이 되어 있고, 그 때문에 마철군에게 죽을 뻔했던 일까지.

내막을 알게 된 갈사량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다른 후계자들도 포섭되었을 수 있겠군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 방법은 선택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적을 끌어들일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이들을 상대하는 사람이 나와 갈사량이 아니었다면, 거대한 무력감을 느꼈으리라. 감히 상대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포섭된 이들은 압도적 무력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엄청난 자본력에, 무력에, 게다가 계략까지 꾸밀 줄 아는 자였다.

게다가 놈은 인간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것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자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이를 악무는 성격이다.

반드시 이놈들을 다 없애버릴 것이다. 이대로 두면 나중에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릴 놈들이다.

“일단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럽시다!”

내가 웃으며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 모습에 갈사량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웃으십니까?”

“왜 내가 갈군사를 그토록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는지 아시오?”

“무엇 때문입니까?”

“이제 더는 고민 안 해도 되니까요. 갈군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 않소? 하하하.”

갈사량이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자신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기분 좋은 미소가 뒤따랐다.

* * *

여인이 어둠 속에서 말했다.

“사흘 후 상주(商州) 화수장(華秀莊)이 기습을 받을 거예요. 일을 저지른 마인들은 남쪽인 산양(山陽)을 통해 달아날 예정입니다. 가서 처리하도록 하세요.”

전할 말을 마친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석처럼 침상에 걸터앉아 그 말을 듣던 마철군이 그녀를 불렀다.

“잠깐!”

“왜 그러시죠?”

“멈추시오! 더 이상 살육은 내가 용서하지 않겠소!”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다 응징하셨잖아요?”

“뭐요?”

앞서 마교를 상대로 했던 두 번의 응징 역시 모두 이 여인이 알려줘서 이뤄낸 것이었다. 마인들의 움직임을 미리 알려줬던 것이다.

“잘하고 있어요. 모든 강호인들이 마문주를 칭찬하고 있어요. 당신은 천하진 이후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어요.”

“닥치시오!”

마철군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달려가서 마인들을 죽였다.

하지만 그 마음보다 더 깊숙한 곳에 이런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라도 해야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가책이 덜어질 것 같아서였다.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유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처럼 자신은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고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맹주가 되는 것도 헛된 말은 아님을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나요?”

정곡을 찔리자 마철군이 버럭 화를 냈다.

“닥치라고 했소!”

“공격을 당하는 것은 사흘 후에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지금 출발하면 그들을 구할 수 있겠네요. 가서 구하세요. 대신 사람들에게 설명해야겠죠. 어떻게 공격을 미리 알았는지. 앞서 일들까지 모두 설명해야겠지

요. 아마 진상을 알고 나면 사람들은 많이 실망할 거예요.”

“닥치라고 했다!”

“다 가질 순 없어요. 권력을 쥐려면 대가를 지불해야지요. 좋은 사람도 되고, 권력자도 되고. 그건 이기적인 욕심이죠.”

“그만!”

더는 참지 못하고 마철군이 달려가서 그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어둠 속에서 잠깐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헉!”

마철군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오며 행동을 멈췄다.

달빛이 서린 여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빠져들 것 같은 매혹적인 입술이 열렸다.

“괜찮아요, 당신의 마음 이해해요.”

마철군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인의 눈동자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여인이 손을 내밀어 마철군의 뺨을 만져주었다. 그녀의 몸에서, 손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당신은 역대 맹주들 중 가장 훌륭한 맹주가 될 거예요.”

여인의 눈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앞에 서 있던 여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너무나 향기롭고 좋은 냄새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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