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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23화 (12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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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소선(2)

여인의 몸에 올라탄 마봉기는 헉헉대며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여인과 방사를 치르면서도 아까의 천소선을 떠올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 어린놈이 뭐? 제깟 놈이 나를 맹주로 앉혔다고? 웃기고 있네. 네놈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강호를 종횡하던 이 몸이시다. 뒤에 다른 놈이 있는 줄 내가 모를 줄 알고? 건방진 새끼.”

욕을 하면 기분이 풀려야 하는데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통제권을 완전히 잃은 기분이다. 놈의 여유로운 표정을 떠올리면 더 화가 났다.

그를 화나게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이 분노를 아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당히 말했어야 했는데…… 솔직히 놈이 두려웠다.

“빌어먹을 년! 너도 나 무시하지?”

“아뇨, 아니에요! 존경합니다, 맹주님!”

여인이 사시나무처럼 두려움에 떨었다. 마봉기가 미쳐 날뛰기 시작하면 그날은 정말 고통스러운 날이 된다.

마봉기의 입에서 듣기 힘든 욕설이 계속 흘러나왔다. 한 번은 천소선을 향해서, 한 번은 여인을 향해서. 조금이라도 덜 듣고 싶은 마음에 여인은 신음을 크게 내었다.

어서 이 순간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그 방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 위에 편노가 서 있었다. 여전히 그는 가느다란 나뭇가지 끝에 서 있었는데, 마치 새가 앉은 것처럼 가지는 휘지 않았다.

창문을 가린 휘장 뒤로 방사를 치르는 마봉기와 여인의 그림자가 보였다.

“운이 좋은 놈이군. 그래도 여인과 마지막 밤은 보내고 죽게 되었으니.”

그가 몸을 날리려던 그때, 흠칫 놀라며 동작을 멈췄다.

편노의 시선이 천천히 한쪽을 향해 돌아갔다. 그가 두 눈을 부릅뜨며 깜짝 놀랐다.

조금 떨어진 나무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그 역시 나뭇가지 끝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까지 상대를 허용했다는 놀라움도 놀라움이었지만, 편노가 놀란 것은 청년의 나뭇가지도 자신의 것처럼 전혀

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전에 나 먼저 봅시다.”

청년이 자신을 따라오라고 힐끗 고갯짓을 한 후에 몸을 날렸다. 날렵한 몸놀림이 자신 못지않다는 것을 느끼며 편노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마봉기의 방을 잠시 쳐다봤다가, 이내 청년이 사라진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나는 표국에서 조금 떨어진 평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고 곧바로 편노가 내려섰다.

편노는 당연히 나를 따라왔다. 자신만큼이나 강한 고수가 암습을 알아차렸는데, 무시하고 마봉기를 죽이러 갈 수는 없는 일일 테니까.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정말이지 이대로 마봉기를 죽게 내버려두고 싶었다. 배후 인물들은 대체 놈을 죽여서 어떤 짓을 하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마봉기가 죽는 과정에서 맹호단 무인들이 희생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함께 따라온 갈사량의 입장도 있었다. 내막을 모르는 강호인들이 보기에는 보필하고 온 총군사가 맹주를 잃는 것이 되니까.

한 가지 더, 배후 놈들의 뜻대로 세상일이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고노도 네가 죽였느냐?”

편노의 첫마디였다. 나는 일전에 내 손에 죽은 노인이 고노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노인은 그를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눈앞의 노인도 그때 그 노인만큼이나 대단한 고수임은 확실했다.

“그렇소.”

나는 순순히 그 사실을 시인했다. 어차피 저 정도 되는 고수와 싸우면서 실력을 숨기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나도 하나만 물읍시다.”

“뭐냐?”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 왜 이 조직에 묶여 있는 거요?”

“너는 잘못 알고 있구나. 나는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이지.”

이 조직의 수장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체 어떤 자일까?

천소선과 같은 사내를 키워낸 것도 그렇고, 이런 고수의 충성을 끌어낸 것도 놀랍다.

“대체 그 충성의 대상이 누구요? 아까 봤던 그 천소선이란 젊은 사람은 아닐 테고.”

“궁금하냐?”

그의 반응에서 천소선이 아니란 것이 확실해졌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고 싶소. 소개해 줄 수 있소?”

“아서라. 그 분을 만나면 넌 죽는다.”

“왜 그렇소?”

“그 분은 너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오?”

“갑자기 옷을 찢고 툭 튀어나오는 송곳 같은 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 사람, 참 재미없는 사람이겠군.”

“너 같은 놈이 함부로 입을 놀릴 분이 아니다.”

그가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냈다. 배후 인물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당신도 재미없는 사람이군.”

“재미? 재미가 뭔데? 그게 밥 먹여주나? 그까짓 게 아무것도 아니란 것, 너도 나이 먹어보면 알게 될 거다.”

그 말에 내가 혼잣말처럼 나직이 말했다.

“나도 그랬지.”

재미? 패배자들의 노력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재미를 모르고 사는 삶이 어쩌면 더 아무 것도 아닌 삶일지도 모르지.”

“무슨 헛소리냐?”

“하긴, 당신과 나 사이에 이런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소?”

내가 천천히 검을 뽑아들자 편노도 채찍을 들었다.

* * *

“어딜 다녀왔나?”

방으로 들어서는데 침상에서 갈사량이 몸을 일으켰다. 조용히 들어온다고 했는데, 그를 깨운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잠이 안 와서 바람 좀 쐬고 왔습니다.”

“이럴 때는 무공을 익힌 자네가 조금 부럽군.”

“저는 군사님이 부럽습니다.”

“무슨 말인가?”

“돌아다니지 않으셔도 세상일을 잘 아시니까요.”

“과분한 말이네. 나도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네. 다만 다른 사람보다 더 깊이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그래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내 일이니까.”

“노력해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지요.”

“내게 무공이 그러하네.”

그러면서 갈사량이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아까 보았던 그 사내 어떻게 생각하나?”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무공은?”

“맹주님보다 더 고수였습니다.”

“자네보다는?”

“네? 그야 당연히…….”

나를 향한 갈사량의 눈빛은 더없이 진지했다. 갈사량은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내 무공이 마봉기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음을. 하긴 평생을 내 옆에서 수많은 고수를 봐온 그였으니까.

“저보다 하수는 아닙니다.”

“그 정도란 말이지?”

“네, 무공실력만 봐서는 충분히 배후조직의 수장이라 할 만합니다.”

“그렇군. 큰 도움이 되었네.”

“별말씀을.”

“그런데 자네?”

갈사량이 침상에서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나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이내 걱정스럽게 말했다.

“다쳤군?”

손으로 만져보니 목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긴 상처가 남아 있었다. 편노의 채찍 자국이었다. 그 노인은 지금껏 상대해 본 채찍을 쓰는 고수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대단했다.

이번 역시 제오초식으로 한 번에 끝장내려고 했다.

하지만 오초식을 사용하기 전에 그가 먼저 공격해왔다. 고노가 내손에 죽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첫수부터 최선을 다했고, 그런 그를 상대로 한 번 빗나가면 치명적인 반격을 당할 큰초식을 사용하기에는 부담

스러웠다.

대신 선학비술과 추혼수라검술을 합쳐서 그와 싸웠다.

채찍을 사용하는 초고수를 상대로 실전경험을 하는 것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연이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다.

“전에 싸우다 다쳤나 봅니다.”

내가 품에서 금창약을 꺼냈다.

“줘보게. 내가 발라 주지.”

갈사량이 금창약을 손가락에 찍어 내 상처에 발라주었다.

“산책이 거칠었나보군.”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니 갈사량이 담담히 말했다.

“내 눈썰미를 무시하지 말게.”

아까만 해도 상처가 없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뭐라 설명할까 망설이자 갈사량이 먼저 말했다.

“됐네. 굳이 다 설명할 필요 없네.”

그 말에 마음이 울컥했다. 내가 예전에 자주 그에게 하던 말이었다. 그는 총군사다 보니 내게 설명해야 할 것이 항상 많았다.

그럴 때면 내가 그에게 똑같이 말했다. 정말 똑같이 말했다.

“됐네. 굳이 다 설명할 필요 없네.”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다 되었네.”

“감사합니다.”

갈사량이 다시 자신의 침상으로 돌아갔다.

“주무십시오.”

사량이 이불을 덮으며 말했다.

“잘 자게. 자네 산책 때문에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군.”

잠시 그를 쳐다보던 내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달빛이 좋은 밤이었다.

그래, 오늘 밤은 걱정 말고 푹 자거라.

* * *

다음날 아침, 우린 다시 천소선을 만났다.

그는 잘 차려진 아침으로 우릴 맞았다.

“하하, 잘 주무셨습니까?”

“덕분에 잘 잤습니다.”

대답을 대신한 사람은 갈사량이었다.

여전히 마봉기는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어제의 충격에선 벗어난 듯 보였다.

나는 사내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이 순간 다시  확인했다. 그가 어제 편노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혀 표가 나지 않았다.

편노가 실패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의아해하고, 안타까워하고, 화를 낼 법도 했는데. 그는 정말 그 일과는 무관한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저 표정과 말이 연기라는 것을 알고 보는데도 구분할 수 없었다.

저자 역시 일체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훈련을 받은 것일까?

하지만 그런 부류는 아니 것 같았다. 억압된 훈련을 받은 사람치고는 자유롭고 밝은 면을 너무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자일까?

“자, 앉으시지요.”

“그럽시다.”

여전히 오늘도 그는 혼자였다.

마봉기는 나와 맹호단 무인들을 입구쪽으로 멀리 물렸다. 임중태는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마봉기는 강하게 명령을 내렸다.

나는 갈사량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었다.

나와 맹호단 무인들이 문 쪽으로 물러났다. 나는 최대한 그들과 가까운 쪽에 서서 귀를 쫑긋 세웠다. 남다른 청각이었기에 그들의 대화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제 탁자에는 마봉기와 천소선, 그리고 갈사량 세 사람만 자리했다.

천소선이 젓가락을 들며 식사를 권했다.

“어서 드시지요. 숙수가 실력이 좋아서 맛이 좋습니다.”

하지만 마봉기는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나는 네가 수장이란 사실을 믿지 않는다.”

여전히 무례한 그의 태도에 천소선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법이지요.”

훈계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마봉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갈사량이 그에게 참으라고 눈짓을 보냈다.

마봉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 그렇다고 치고. 한 가지만 묻지.”

“물으십시오.”

“왜 나를 맹주로 만든 것이냐? 분명 어떤 의도가 있겠지?”

“그럼요. 확실한 의도가 있지요.”

“그게 무엇이지?”

마봉기뿐만 아니라 나와 갈사량까지 궁금해 하는 내용이었다.

흘러나온 대답은 정말 뜻밖이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요.”

“뭐?”

등을 돌리고 있던 내가 그쪽으로 돌아섰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위험하다!

바로 그 순간!

슁.

퍽!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무엇인가 꿰뚫리는 소리가 났다.

천소선의 손가락이 마봉기를 향하고 있었다.

그 가늘고 하얀 손가락 끝에 마봉기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마봉기가 말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뒤로 쿵 하고 넘어갔다.

“맹주님!”

한 발 늦게 임중태가 달려들었다. 나도 몸을 날려 달려갔다.

나는 갈사량에게, 임중태는 마봉기에게 달려갔다. 더 빨리 쇄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천소선이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한 것이다. 갈사량이나 다른 사람을 죽일 의사가 없음이 명백했다.

퍽!

과연 천소선의 한 수에 달려든 임중태가 나가 떨어졌지만, 다치지 않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소선이 임중태에게 경고했다.

“이미 맹주는 죽었다. 당신은 다음 맹주를 지켜야지. 그게 당신 일이지 않나?”

“이런 미친놈! 놈을 제압해라!”

임중태와 수하 무인들이 달려들려던 그때, 갈사량이 소리쳤다.

“멈추게! 저 자의 말이 맞네. 이미 맹주님은 돌아가셨네. 공연히 자네들까지 희생당할 필요 없네.”

실력 차이가 너무 컸다. 손가락질 한 번에 마봉기가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죽었다.

갈사량은 알 수 있었다. 굳이 그런 기습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천소선은 얼마든지 마봉기를 죽일 수 있었다는 것을.

임중태도, 맹호단 무인들도 모두들 알고 있었다. 복수는커녕 자신들 모두가 몰살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그때, 내가 소리쳤다.

“지금부터는 총군사님을 지켜주십시오! 정의각의 정식 요구입니다.”

그제야 임중태가 결정을 내렸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총군사님을 지켜드려라!”

맹호단 무인들이 갈사량을 둘러쌌다. 무인 두 사람이 마봉기의 시체를 뒤쪽으로 끌어당겼다.

천소선이 요리를 한 점 씹어 삼킨 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갑게 말했다.

“돌아가서 너희 정파 놈들에게 전해라. 본교의 복수는 지금부터라고.”

그의 눈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말 그대로 보는 앞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맹주님!”

임중태가 다시 한 번 마봉기를 살폈지만 그는 이미 싸늘히 식어버린 후였다.

정말이지 생각도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갈사량을 돌아보며 나직이 말했다.

“분명 어떤 목적이 있는 짓입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마봉기를 맹주로 삼은 것은 마교에 의해 희생당하는 역할로 삼으려는 것이었음을. 그들의 준비가 이제 끝난 것이다.

대체 왜?

갈사량이 내 마음을 대변하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이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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