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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20화 (1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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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이 부활할 때(2)

갈사량은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광혈무통군이 어떤 자들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서너 명이면 모를까 그 숫자가 삼십여 명이나 되었다.

벽리단이 그냥 싸워서도 이기지 못할 텐데, 지켜야 할 자신까지 있었다.

‘이렇게 끝이구나.’

자신이 죽는 것은 겁나지 않았다. 하지만 천하진의 복수를 하지 못하고 죽는 것은 너무 안타까웠다.  복수를 마치고 앙천대소(仰天大笑)하며 강호를 떠나려고 했는데. 죽어도 혼자 멋있게 죽으려고 했는데.

“미안하네. 괜히 나 때문에 자네까지 죽게 만들었군.”

갈사량이 진심으로 미안해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전에 제가 드린 말씀 기억나십니까?”

“무슨 말이었지?”

“위험이 닥치면 저를 믿어달라는 말씀말입니다.”

“기억나네.”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갈사량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자네를 믿겠네.”

그래야지. 누구와 함께 있는데 그런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느냐? 삼십 명이 아니라 삼천 명이 있어도, 내 옆에선 그런 표정 지으면 안 되지.

어쨌든 이번 싸움의 주목적은 갈사량을 무사히 지키는 것에 있었다.

쉬이이익! 쉬익!

눈짓을 주고받던 사내 둘이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좌측의 공격을 피하며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검선을 그리며 수라명왕검이 상대의 목을 베었다. 검이 목뼈를 자르고 지나가던 바로 그 순간, 내 몸은 반대로 회전하고 있었다. 일차 목적을 이룬

검이 다시 반대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쉭!

앞서 목을 베었던 동작만큼이나 깔끔하게 반대쪽 사내의 목을 베었다. 두 개의 머리통이 연달아 떨어져서 바닥을 굴렀다.

내가 발로 바닥을 구르는 머리통을 멈췄다. 또 다른 머리통을 툭 쳐서 역시 한쪽으로 굴려서 멈춰 세웠다. 그 옆에 있는 돌을 발로 밀어서 다른 쪽으로 옮겼다.

갈사량은 물론이고 지켜보던 놈들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머리통이 돌 역할을 대신한다는 것을 그들은 결코 알지 못했다.

이번에는 품에서 비수를 꺼냈다.

쉭! 쉭! 쉭! 쉭! 쉭! 쉭!

푹! 푹! 팍! 팍! 팍! 팍!

비수가 날아간 것은 놈들에게가 아니었다. 갈사량 주위의 바닥에 날아가 꽂혔다. 갈사량도 놀라고 적들도 놀랐다.

머리통과, 돌과, 비수가 모두 정해진 위치에 자리 잡는 순간.

스스스스스.

안개가 끼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갈사량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아주 짧은 시간만 몸을 숨겨주는 진법입니다. 아직 서툴러서 채 반각도 유지되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 순간 내가 갈사량에게 날린 전음이었다.

이 진법은 바로 귀문둔서에서 배운 진법이었다. 급할 때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진법 하나를 제대로 기억해 두었는데, 지금 사용한 것이다.

실전에서는 처음으로 사용해 봤는데, 정말 신기했다. 하여튼 마교 놈들의 진법술은 정말 대단하다.

아직 서툰 실력에 발휘한 것이라 생각보다 빨리 해제될 수 있었기에 서둘러야 했다.

이 싸움에 우아함과 고상함은 필요 없다. 정확하고 빠르게 적들을 없애야 했다.

갈사량이 진법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또 멀리서 누군가 감시자가 있을 수도 있었기에 추혼수라검술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 집안의 독문무공인 백월검법을 사용했다. 이미 대성을 이룬데다 내가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백월검법으로도 충분했다.

정면에서 달려들던 사내의 공격을 피하며 가볍게 목을 베었다.

동료의 죽음에도 그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보통의 무인들이라면 그 모습에 질려 몸이 굳어버릴 정도였다.

그들은 심장을 찔려도 곧바로 죽지 않고 달려드는 존재들이다. 심장이 찔려도 놈들은 한참이 지나야 죽는다. 그들을 곧장 죽이는 방법은 머리통을 자르는 것뿐이었다.

앞서 달려든 동료가 죽자 그들이 사방에서 동시에 달려들었다.

내가 가장 먼저 상대한 사람은 전방의 사내였다. 날아든 공격보다 한 발 빠르게 정면의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쉭!

가볍게 목을 벤 후, 머리통이 날아간 그의 몸 뒤로 숨었다. 공격이 시체를 향해 날아들었다.

푹! 푹! 푹!

그 시체를 방패삼아 밀어붙이며 몸을 날렸다.

쉬익! 푸우악!

이번에는 뒤쪽 사내의 목이 날아갔다. 방패를 바꿔 또 다른 사내를 향해 시체와 함께 쇄도했다.

사내가 좌측으로 몸을 피하는 순간, 내 검이 정확히 그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서걱!

애초에 그냥 막 시체를 밀어붙인 것이 아니었다. 그가 그쪽으로 피할 것을 예상한 쇄도였다.

좌측에서 날아드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위험을 감수한 만큼 얻는 대가는 컸다.

쉬이익! 서걱!

공격을 감행한 사내의 머리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내가 발로 걷어찼다.

동시에 그것과 함께 쇄도해 날아갔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방식에 그쪽에 서 있던 두 사내가 당황했다.

쉭! 쉬익!

내 검이 양쪽을 연속해서 갈랐고, 내가 바닥에 착지했을 때 두 사람의 목이 잘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남은 자들의 얼굴에서 공포가 느껴졌다. 원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들 대부분은 공포심을 느끼지 않았다.

지금의 이 감정은 동료가 죽어서 느끼는 공포가 아니었다.

그 죽이는 수법이 너무나 절묘해서, 신체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공포심이었다.

상대의 공포심은 곧 나의 승기였고,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빠르고 침착하게, 방심하지 않고 적을 상대했다.

수라명왕검이 허공에 날카로운 검선을 남길 때마다 시체가 하나씩 늘었다.

뒤쪽에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암기를 꺼냈다.

바로 그때 수라명왕검이 참고 있던 검기를 발출했다.

쉬이이이익!

한 줄기 검기가 그들을 휩쓸며 동시에 목을 잘랐다. 한 줄기 검기로 여러 명의 목을 정확히 잘라내는 일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최적의 움직임으로 놈들을 상대했다.

놈들의 움직임은 더 둔해졌다. 원래라면 피냄새에 광분해야 하는데, 그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문득 예전이 떠올랐다. 과거에 이들과 싸울 때는 지금보다 더 내공이 많았음에도 이런 반응이 아니었다.

그때는 추혼수라검술로 마구잡이로 쓸어버리는 싸움을 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갔어도 이렇게 겁을 내지 않았다.

내 실력이 늘은 것일까? 아니면 싸움 방식이 달라져서일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들은 나를 더 무서워하고 있었다.

쉬이이이익.

푸아아아악!

마지막 사내의 목이 떨어졌다.

검을 회수한 내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삼십 구의 목 없는 시체를 보니, 놈들이 이들을 부활시켰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갔다.

나니까 놀라지 않고 이들을 상대했지 일반 무인들은 상대하기 어려웠다. 숫자가 몇 구나 될지 모르겠지만 재앙과도 같은 것들이 생겨난 것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진법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쉽게 싸운 것 같았지만, 심력소모를 많이 했다. 언제 진법이 깨어질지 몰라 신경을 많이 쓴 탓이다.

선 채로 진기를 일주천하며 잠시 기다리자, 진법에 변화가 있었다.

스스스스.

안개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진법이 해제되었다.

처음의 그 모습 그대로 갈사량이 서 있었다. 그는 진법 안에서 내가 싸우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

“자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고수였군.”

“네, 그렇습니다.”

순순히 인정했다.

“저는 이미 가문의 독문무공인 백월검법의 대성을 이뤘습니다. 아마 제 나이에는 최초일 겁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왜 감췄나? 가문의 영광인 일인데.”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강호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힘을 감추어야 한다고요.”

“진법은 언제 배웠나?”

“급할 때 사용할 수 있을 기초만 배운 정도입니다. 그 공부 역시 강호에서 오래 살아남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갈사량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넨 군사가 되려고 정의각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군.”

“네. 맞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무인이었고, 앞으로도 무인일 겁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정의각에 들어온 이유는 배움의 일환이었습니다. 똑똑한 검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생각에서.”

갈사량이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크게 불쾌하거나 의심스러운 눈빛이 아니었다.

애초에 무공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앞서 여러 차례 그 앞에서 당당히 무공도 보여주었으니까. 다만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할 뿐이다.

오히려 갈사량은 기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떠나 결정적인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덕분에 살았네. 정말 고맙네.”

또 다시 그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자, 이제 출발하시지요.”

“그러세. 맹주님이 무사하실지 걱정이네.”

나는 그와 함께 마을을 뒤져 말을 두 마리 구해서 빠르게 마을을 빠져나갔다.

* * *

다행히 마봉기와 일행들은 무사했다.

십여 리 쯤 떨어진 곳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리 늦었나? 찾으러 갈 뻔 했다네.”

“공격을 받았습니다.”

“공격을?”

“마인들이 우릴 공격했습니다.”

마인이란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네. 그 과정에서 우릴 지켜주던 무인들이 죽었습니다.”

마봉기가 안도하며 말했다.

“그대로 돌파한 것이 다행이었군.”

자신의 마차가 돌파한 일을 의미했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은 옳았다. 당연히 맹주의 마차는 돌파했어야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가 해야 할 말은 죽은 두 무인에 대한 한 마디 애도의 말이었다.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나선 이들이 아니던가?

마봉기가 임중태에게 명령했다.

“맹에 도움을 청하게.”

“네, 긴급전서를 날리겠습니다.”

맹호단 무인이 전서응을 날렸다. 긴급 상황에 날리는 것이었기에 정말 잘 훈련되어 있었지만, 과연 저 전서응이 무사히 소식을 전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봉기가 갈사량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 공격이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과 관련이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배후인물의 함정인지, 아니면 이 지역에 마교가 출현한 것인지.

“만약 있다면?”

“우린 큰 곤경에 빠진 것이 되겠지요. 아니라면 당장 가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겁니다. 결정은 맹주님이 내리십시오.”

잠시 고민하던 마봉기가 갈사량에게 물었다.

“자네 생각은?”

“애초에 이번 만남이 놈들의 함정이라면 이미 돌아갈 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혹시라도 그들의 짓이 아닐 가능성을 고려해서 약속한 장소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가야할 길은 하루고, 돌아가

야 할 길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사오 일 이상은 걸립니다.”

갈사량은 이번 일이 그들의 함정일 것이라 여겼다. 한데 이렇게 이야기 한 것은, 왠지 그곳에 가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흐음.”

마봉기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는 오직 자신의 목숨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마교의 출몰이 이 강호에 미치는 영향 따윈 그의 머릿속에 없는 것이다.

“자네 뜻을 따르도록 하지.”

* * *

흑의장삼을 입은 중년여인이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후덕한 얼굴과 몸매를 지녔다. 행주와 앞치마를 입으면 영락없이 부엌일에 어울릴 것 같은 외모였다.

그녀의 장삼은 아무런 장식도 없고, 그림도 그려지지 않은 흑색이었다. 그 아래 무복도 다 검은 색이었다. 신발도 검었고, 허리에 찬 철원반(鐵圓盤)도 검었다.

그녀는 바로 신비조직의 흑석이었다.

넓은 방에 있던 사내 백석과 더불어 조직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다.

수하 하나가 들어와서 부복했다. 그 역시 검은 무복을 입고 있었다.

“마봉기가 예정대로 그곳을 지났습니다.”

“갈사량을 죽였나?”

애초에 목표가 갈사량이었던 것이다. 첫 마차를 보내고 두 번째 마차를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뇨, 실패했습니다.”

“실패했다고?”

“광혈무통군이 모두 죽었습니다.”

여인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그녀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다시 물었다.

“마봉기가 다시 돌아온 것이냐?”

“동원된 자들이 모두 죽어버리는 바람에 내막을 알 수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판단됩니다.”

달리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따로 감시자를 안 뒀나?”

“설마 그들이 몰살당하리라곤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자신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으니까.

“마봉기답지 않은 행동이군.”

“한 가지 짚이는 일이 있습니다.”

“뭐지?”

“갈사량 때문에 고노가 죽었다는 추측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추측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마봉기가 갈사량을 구했다?”

“네.”

과연 근래 갈사량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내고 있었다.

“그나저나 무통이를 삼십이나 잃었다? 아깝군.”

광혈무통군 하나를 만들려면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 정확히는 광혈무통의 상태로 만드는 대법에 드는 돈이었다. 그 비싼 재료도 재료지만, 일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대업을 위한 희생이라 여겨야겠지.”

다른 일이라면 큰 문제가 될 희생이겠지만, 이번 일은 대업이라 할 만한 큰일이었다.

“그래서 놈들은?”

“계속 남현표국을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계획대로 되긴 했군.”

“그렇습니다.”

“다음 단계 시행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수하사내가 재빨리 그곳에서 사라졌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이 옷은 마지막 단추까지 끼워서 입을 옷이 아니었으니까.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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