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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19화 (119/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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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이 부활할 때(1)

하북을 벗어난 마차가 안휘에 들어섰다.

그곳에서 객잔에 든 첫 날, 잠자던 내가 눈을 떴다.

뭔지 모를 위기본능이 나를 깨운 것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침상 옆에 세워둔 검을 소리없이 뽑았다.

갈사량은 반대쪽 벽에 있는 침상에서 잠들어 있었다.

천천히 걸어가서 문에 귀를 대어보았다.

아무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살짝 문을 열었다. 복도 끝에 무인 둘이 서 있었다. 반대쪽에도 두 명의 무인도 아무 이상 없이 번을 서고 있었다.

문을 닫고는 창가로 걸어갔다. 휘장 사이로 살짝 밖을 쳐다보았다. 밖은 캄캄했다. 이곳 객잔이 저잣거리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위치한 객잔이라서 그렇다.

“왜 그러나?”

잠에서 깬 갈사량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쉿!”

내 시선이 다시 어둠속을 향했다.

어둠 속 저 멀리에 뭔가가 있었다. 예전에 노인이 숲에서 나를 불렀던 기운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그 보다 더 불쾌하고 위험스러웠다.

저 기운의 주인은 나를 느끼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일체의 기운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으니까.

잠시 후 기운이 사라졌다. 엄청난 고수가 우릴 주시하는 것은 확실했다.

그제야 내가 갈사량을 돌아보며 말했다.

“누군가 우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갈사량이 깜짝 놀랐다.

그는 내게 정말이냐고 묻지 않았다. 맹호단 무인들이 느끼지 못한 것을 어찌 알았느냐는 의구심도 가지지 않았다.

내 무공실력이 지난 번 천궁단 정예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그였다. 기본적으로 천궁단과 맹호단의 실력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으니, 당연히 내가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감시자가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

“네, 그렇겠지요.”

내가 다시 창밖을 쳐다보았다. 문제는 단지 감시자 정도의 기운이 아니란 것이었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갈사량에게 하지 않았다. 괜한 불안감을 안겨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오랫동안 나를 지켜와 준 본능이 함께 어둠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번 임무는 위험하다고.

* * *

그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광월단주 주철룡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언제나 이곳에 오면 경직된다. 무림맹의 가장 강력한 무력조직을 이끄는 자신이지만, 이곳에 오면 왠지 모르게 위축된다.

시비가 자신을 안내했다. 그녀의 사뿐한 발걸음을 볼 때면 분명 무공의 고수란 생각이 들었는데, 얼마만큼의 고수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자신보다 고수란 뜻이다.

저 젊은 시비가?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마당을 쓸고 있던 나이든 종복이 정중히 인사를 건네 왔다. 그의 무공수위도 알 수 없었다.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던 두 명의 무인도, 그를 지나 안쪽 복도에서 만난 시비도, 모두 자신보다 고수였다.

이러니 어찌 기가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단아하게 꾸며진 방에서 사내는 혼자 책을 보면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화원의 나무를 손질하고 있었고 그 전에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다.

언제나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위험한 일이 아닌 평범한 일들이었다. 그런데 그를 보면 언제나 위축되었다.

처음 그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부터 그랬다. 존재 자체가 두렵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주철룡은 이 사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가 처음 자신을 쳐다보았을 때, 주철룡은 막연히 예감했다. 자신은 상대를 거역할 수 없을 것이라고.

사내의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냥 봐선 아주 젊은데, 어떤 때보면 자신과 비슷한 또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얼굴은 정말 잘 생겼다. 자신이 지금까지 봐왔던 모든 사내들 중에서 가장 잘 생겼다. 남자인, 그것도 중년의 자신이 봐도 가슴이 설렐 정도였으니까.

피부는 백옥처럼 하얗고 말할 때마다 살짝 내보이는 치아는 희고 반듯했다. 그래서 어떨 때 보면 여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저 사내가 여인이라면 그녀는 정말 아름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셨습니까?”

“네.”

사내가 주철룡을 보며 정중히 인사했다. 낮은 목소리에 부드러움이 더해져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인 목소리였다.

기도는 전성기 시절의 맹주를 보는 것 같았다.

맹주와는 분명 다르지만, 그만큼 강할 것 같은.

더 놀라운 것은 이 사내가 이 조직의 수장이 아니란 점이었다.

사내가 말하는 ‘어르신’이란 존재가 있었다.

그는 대체 얼마나 강한 사람일까?

세상 사람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최종 수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조직에 포섭당했다는 사실을.

이 사내를 만나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네,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인이 차를 가져와서 주철룡의 앞에 내려놓았다.

주철룡이 사내에게 물었다.

“바둑을 좋아하십니까?”

바둑돌을 내리는 모습만 봐선 바둑의 명인처럼 보였는데 되돌아온 말은 의외였다.

“아닙니다. 어르신께서 원체 좋아하셔서 배워보려고 하는데. 아무리 둬도 이것이 왜 재미있는지 알 수 없군요. 대체 어디에 인생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고. 하하하.”

그럼에도 그는 외모나 분위기가 참으로 바둑이 잘 어울렸다.

“어르신은 하도 바둑을 좋아하셔서 백석과 흑석이라 불리는 수하를 따로 두고 계십니다.”

“아, 그러시군요.”

두 사람을 편하게 언급하는 것을 볼 때, 이 사내는 백석과 흑석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확실했다.

주철룡은 이 사내가 이 조직의 이인자라 생각하고 있었다.

“마봉기가 출맹했지요?”

“네.”

“이제 곧 새 맹주가 필요할 겁니다.”

순간 주철룡이 깜짝 놀랐다. 마봉기가 죽는다는 뜻이었다.

“마철군이 적당해 보이는군요. 그로 준비하세요.”

그가 통보하듯 말했다.

“마철군은!”

너무 큰소리로 말해서 주철룡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아직 맹주는 시기상조입니다. 중원은 물론이고 무림맹 내에서도 반대하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마봉기를 맹주로 세울 때도 문제가 많았다. 그것을 자신이 가진 모든 권력과 힘을 발휘해서 결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마철군은 그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시기상조다?”

“뿐만 아니라 마봉기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을 겁니다.”

“고분고분하지 않을 거다?”

두 번이나 자신의 말을 따라하자, 주철룡은 알 수 있었다. 사내가 화가 났음을.

과연 사내가 고개를 들어 주철룡을 쳐다보았다. 특별한 기도나 살기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었지만 주철룡은 마음까지 얼어붙었다.

사내가 나른하게 말했다.

“우리가 왜 실수하는지 아십니까? 너무 잘하려고 해서입니다. 그냥 힘을 빼세요. 그대가 하고자 하는 일에도, 그대의 삶 자체에도. 그럼 모든 일이 잘 풀릴 겁니다.”

사내의 시선이 다시 바둑판을 향했다.

그냥 닥치고 시키는 대로 잠자코 하라고, 그 말을 좋게 돌려서 해 준 것이다.

당분간은 그래야할 것이다. 사내의 경고는 일차밖에 없음을,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주철룡이 고개를 숙였다.

“차기맹주는 마철군이 될 겁니다.”

* * *

우리는 무사히 절강성에 도착했다.

남현표국과 한나절 거리의 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때, 그 곳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앞장섰던 맹호단주 임중태가 수신호로 수하들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마차가 멈춰 섰고, 무인들이 검을 뽑아들며 사방을 경계했다.

나는 갈사량과 함께 마차에 있었는데 최대한 기감을 끌어올리며 주위를 살폈다. 과연 음산한 기운과 함께 짙은 혈향이 전해져왔다.

잠시 그렇게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정찰을 나갔던 무인이 돌아와서 다급히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차가 마을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마을은 참혹했다. 곳곳에 시체가 널려 있었고, 집은 곳곳이 불타버린 후였다.

갈사량과 나는 마차에서 내려 다른 무인들과 함께 혹시라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었다. 온몸이 갈가리 찢겨 난자당해 죽은 시체들이 대부분이었다. 노인도 죽었고 아이들도 죽였다. 여인들은 벌거벗겨진 채 죽어 있었다. 몸에 남은 상처가 살아 있을 때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

지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미친 새끼들!”

나는 오랫동안 전쟁터를 돌았지만 이렇게 마을주민을 잔혹하게 몰살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갈사량 역시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임중태가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일단 우린 마을을 통과한다. 이곳을 빠져나간 후 무림맹 지단에 연락해서 시체를 수습하고 흉수를 조사하게 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었지만 마봉기가 타고 있는 마차의 휘장은 열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짜증스러운 그의 말이 들려왔다.

“어서 가세.”

사방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던 것이다.

모두들 인상을 굳혔다. 마봉기가 훌륭한 맹주가 아닌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몰살을 당했는데 한 번 나와 보지도 않는 것은 너무한 처사였다.

“출발한다!”

임중태가 명령을 내리던 그때, 저 앞에서 시체를 살피던 무인이 소리쳤다.

“여기 생존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곳으로 달려갔다.

중년사내 하나가 숨이 붙어 있었다. 그에게 내력을 주입하며 치료하려 했지만, 너무 상처가 커서 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체 누구 짓이오?”

사내가 힘겹게 말했다.

“마…… 교.”

그 말을 남기고 사내가 숨을 거뒀다.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교가 부활을 꿈꾸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천궁단이 작전을 나가고, 일련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교가 직접 살육을 벌인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제야 마봉기기의 마차문이 열리며 그가 마차에서 내렸다. 열린 마차 문 뒤로 벌거벗은 여인이 옷으로 몸을 가린 모습이 보였다.

마봉기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마교의 짓이라고?”

“네.”

마봉기가 갈사량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런데도 가야 하오? 위험하지 않겠소?”

갈사량이 차분히 말했다.

“가야 합니다.”

마봉기가 갈사량을 잠시 쳐다보다가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문을 신경질적으로 닫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빨리 출발하자.”

마차가 다시 출발했다.

“우리도 타세.”

“네.”

갈사량과 나도 마차에 올라탔다.

불길한 마음이 강해졌다. 음모의 한 가운데로 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 * *

두 번째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곳 입구에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맹주님이 오셨다!”

“무림맹주님이 오셨다!”

놀랍게도 마봉기의 행차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임중태가 빠르게 소리쳤다.

“그냥 통과 해!”

마차가 더욱 속도를 높였다.

마봉기가 탄 마차가 빠르게 빠져나가자 사람들이 몸을 던져서 우리가 탄 마차 앞을 막았다.

맹주의 마차였다면 모를까, 차마 그들을 치고 갈 수는 없었기에 무인이 마차를 세웠다.

마차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갈사량과 내가 마차에서 내렸다.

“마교가 부활했습니다!”

“제발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도와주세요!”

그들이 모여들며 간청했다. 옆 마을이 몰살당한 것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갈사량이 그들에게 물었다.

“맹주님께서 오신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알았소?”

그러자 그를 붙잡고 애원하던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글쎄, 어떻게 알았을까?”

어느새 노인의 눈빛은 사악해져 있었다.

쇄애애액!

노인의 손이 갈사량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탁.

그의 손이 갈사량의 목 앞에서 멈췄다.

내가 노인의 손목을 잡은 것이다. 그대로 있었다면 갈사량의 목을 꿰뚫었을 공격이었다.

번쩍! 푸아악!!

내가 검을 휘둘러 노인의 팔을 잘라버렸다.

눈앞에서 팔이 잘렸는데 노인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불길한 느낌이 온몸을 엄습했다.

퍼억!

노인을 사정없이 걷어차며 검을 휘둘렀다.

뒤로 날아간 노인이 사람들과 함께 뒹굴었고, 주위에 있던 놈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마차에 타십시오!”

갈사량을 마차로 밀어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사이 마부석의 무인과 말은 난도질을 당한 후였다. 원래라면 그렇게 쉽게 당할 실력이 아니었는데, 적을 베었는데도 다시 달려드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말이 쓰러지며 마차가 기울어졌다.

적들의 숫자는 삼십여 명. 문제는 숫자가 아니었다.

앞서 팔이 잘린 노인이 다시 앞으로 다가선 것이다. 무림인이라면 혈도를 눌러 출혈을 멈추고 다시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환하게 웃는 노인의 표정은 비정상적이었다.

앞서 검에 베인 자들도 다시 일어났다. 역시 아픈 표정이 아니었다.

쉬이이익!

왼쪽의 사내가 검을 내지르며 공격해왔다. 놈의 공격을 피하며 팔을 부러뜨렸다.

꽈드드득.

놈의 팔이 직각으로 꺾이며 뼈가 튀어나왔다. 그때 나는 보았다. 놈이 나를 보며 씩 웃는 것을.

이놈들!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수라명왕검이 빠르게 허공을 갈라 사내의 목을 베었다.

서걱!

바닥을 구르는 머리통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남은 놈들 역시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야말로 광기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나는 오래 전에 이런 자들을 상대해 본 적이 있다.

그 이름이 갈사량의 입에서 절망스럽게 흘러나왔다.

“광혈무통군(狂血無痛軍)!”

혈천마교의 정예병들이었다.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피를 보면 더욱 난폭해지는 무적의 마인들이었다.

그들 때문에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 모른다. 내가 목숨을 걸고 싸워서 몰살시키지 않았다면 우린 그들 때문에 전쟁에 졌을 수도 있다.

배후 놈들이 광혈무통군을 부활시킨 것이다. 불회마령단을 연구한 것처럼, 어디선가 광혈무통군을 만드는 법을 연구했고, 성공한 것이다.

이들이 등장한 이상 이제 누구라도 믿을 것이다.

진짜 마교가 부활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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