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17화 (117/304)

=======================================

오월동주(2)

상황이 급변했다.

맹주전에서 갈사량을 총군사로 삼는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다.

강호를 살아가다보면 예상치 못한 여러 일들을 겪기 마련이지만, 이번 일은 정말 예상에 없던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정의각 내부는 물론이고 무림맹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갈사량은 나를 따로 불렀다.

“감축 드립니다, 군사님.”

“고맙네. 정말 뜻밖의 일이었네.”

“마땅히 오르셔야할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너무 늦게 되찾으셨지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진심입니다.”

나를 향한 갈사량의 눈빛이 깊었다. 비록 한 마디 말에 불과하지만, 그것에 진심이 담겨 있다면 이것들이 모여서 깊은 유대감을 이루게 될 것을 믿는다.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무엇입니까?”

“내 책임군사가 되어주게.”

“네?”

그가 총군사가 된 것만큼이나 놀랄만한 제안이었다.

“제가 신입군사란 것을 잊으셨습니까?”

“나를 몇 번이나 구한 신입군사지.”

“너무 파격적인 인사입니다.”

“내가 군사가 된 것부터 파격적이라네.”

“다른 군사들이 반발할 겁니다.”

“아니. 반발하지 않을 것이네. 내 눈치를 본다고 아무도 나서지 못할 거네. 자넬 책임군사로 앉힐 수 있는 기회는 초반에 딱 한 번뿐이지.”

갈사량은 자신이 총군사로 돌아간 이후의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사마천이 총군사가 되면서 모두들 그를 따랐다. 몇몇이 그만두긴 했지만 대부분은 정의각에 남았다. 남아 있는 사람은 모두들 갈사량에게 빚을 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정의각을 떠나지 않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다들 각자의 삶이 있으니, 남고 떠나는 것으로 그들을 평가할 수는 없다.

문제는 사마천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누구하나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음으로는 미안해했지만, 나서서 갈사량을 도운 이는 없었다.

그렇기에 다시 갈사량이 돌아오면 그들은 간담이 서늘할 것이다. 혹시라도 복수의 불벼락이 떨어질까 두려운 마음도 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구도 나서서 갈사량의 인사에 대해 불만을 표하지는 못할 것이다.

“책임이란 말이 붙어서 대단한 자리 같지만 그렇지 않네. 나를 가장 옆에서 보좌하는 역할이네. 내 부탁을 들어주겠나?”

그는 할 수 있겠냐고 묻지 않고, 부탁을 들어달라고 하고 있다. 꼭 같이 하자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가 버리고 가도 따라붙어야 할 입장인데, 너무나도 고마운 제안이었다.

“네, 하겠습니다. 제가 혼신을 다해 군사님을 돕겠습니다.”

“좋아, 뒷일은 내게 맡기게.”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책임군사라, 내 인생에 정의각의 책임군사를 맡게 될 줄이야.

귀맹한 후 하루가 다르게 예측불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모든 일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다.

돌아서 나오려는데 갈사량이 말했다.

“고맙네.”

그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보다 더 활짝 웃으며 내가 말했다.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 * *

놀란 것은 칠호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조사하던 일반군사와 신입군사가 갑자기 총군사가 되고 책임군사가 되었다. 이제 함부로 그들을 조사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갈사량이 그녀를 불러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조사는 뒤로 미루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우선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

“맹주전에서 이미 알고 있지 않겠소?”

처음에 인사할 때 그녀는 맹주가 보냈다고 했다.

“네, 그렇지요. 그래도 절차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표 나지 않는 실수였다. 갈사량은 그녀를 보낸 사람이 마봉기가 아님을 눈치 챘다. 마봉기가 보냈다면 방금 전 상황에서 상부에 보고한다는 말을 꺼내진 않았을 테니까.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 또 봅시다.”

칠호는 고분고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상황이 급변하는 것이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고노의 죽음은 반드시 갈사량과 연관이 있다.’

오히려 새 확신의 계기가 된 것이다.

* * *

칠호가 잠시 우리에게 관심을 끊은 사이, 연락소를 통해 은밀히 진을 만났다.

진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있었던 여러 일들을 알려주었다.

우선 자신과 수가 조직하고 있는 삼안각의 소식부터 전했다.

“본 각은 계속 지부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정예화가 가장 중요하다. 머리 숫자보단 실력 좋은 무인들로 채워진 것이 더 유용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적어도 정보조직만큼은 덩치가 중요했다. 기본적으로 정보망이 거미줄처럼 쫙 깔려서, 중원 구석구석까지 정보가 오가고, 빠른 연락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지부 숫자는 백 이십 곳입니다.”

마지막 확인했을 때가 일흔 두 곳이었는데, 이제 백이십 곳이 넘은 것이다.

“지부 숫자는 더 늘리지 않고 이제부터는 내실을 다질 생각입니다.”

진과 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유능하게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돈이 모자라지 않았나?”

처음에 주었던 오만 냥을 시작으로 그들에게 최종적으로 준 돈은 이십만 냥. 엄청난 액수임은 확실했지만 인력을 모으고, 백이십 곳의 지부를 세우는데 모자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소방주의 도움이 컸습니다.”

“아, 그랬군.”

정여가 내게 알리지 않고 물심양면 도운 것이다.

“정방주에게 고맙다고 전해라. 그리고 당분간 내 주위에 머물면서 나를 도와야겠다.

“네, 알겠습니다.”

다른 소식도 전해 들었다. 백표는 여전히 무소식이라고 했다. 여전히 흑표대를 키우는데 전념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강호에 나왔을 때,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나의 가장 강력한 오른팔이 될 것이 틀림없다.

백표만큼이나 믿음직스러운 공수찬은 태성상단을 잘 키워나가고 있다고 했다.

진은 송화린이 첫 검기를 날린 소식까지 전해주었다. 광두 역시 무공 실력이 더 발전하고 있고, 소검대 역시 실전훈련을 열심히 쌓아나가고 있다고 했다.

모두들 잘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사람의 인생에 비유하자면,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성장기라 할 수 있었다. 클 수 있을 때, 많이 커야 한다.

* * *

갈사량은 순식간에 정의각을 장악했다.

어떻게 이런 강력한 정치력을 참고 살았을까? 모두들 깜짝 놀랄 정도였다.

정의각을 예전 자신이 이끌던 시절로 되돌렸다.

지난 일은 따지지 않았다. 모두를 이해한다고 했고, 오직 앞으로의 일만 따지겠다고 했다.

모두들 안도 반, 걱정 반이던 그 때 결정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집법당에서 조사를 받던 사마천이 뇌옥에 갇혔다는 소식이었다. 그 사이 마봉기는 한 번도 그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모두들 알 수 있었다. 이제 사마천은 끝장났음을.

모두들 갈사량을 새 총군사로 인정했다. 능력은 이미 지난 세월에서 충분히 보여줬으니까.

갈사량은 정의각 내에 사마천의 줄을 타고 들어온 이들을 모두 다 잘라냈다.

기존 정의각 군사들은 기뻐했다. 그들을 잘라내서 기쁘기도 했지만, 이제 진짜 예전 정의각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마천이 총군사가 되고 정의각의 권위가 많이 떨어졌었으니까.

나는 갈사량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했다.

물론 신입군사에서 책임군사가 된 내게 아무 눈총이 없을 리는 없었다. 대놓고 불평하진 못했지만 이번 인사를 두고 어찌 그 뒷말이 무성하지 않겠는가?

갈사량이 책임군사인 내게 한 가지 임무를 맡겼다. 일반 군사들을 이끌고 협력해서 완수하는 임무였다.

갈사량은 이번 일을 해결할 정확한 해법을 알고 있었다.

수하들에게 직접 능력을 보여줘라.

나는 갈사량의 기대에 훌륭하게 부합했다.

자료를 선택하고 모으는데 제대로 된 판단력을 발휘했고 행동과 실천 역시 망설임이 없었다. 눈이 좋았고 손이 빨랐다.

저 자료가 필요할까?

모두들 고민할 때, 나는 이미 그 자료와 더불어 필요한 다른 자료까지 가져오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회합에서 누구보다 똑똑하고 바른 식견으로 그들을 감탄하게 했고, 정확한 판단력으로 결론을 내렸다.

임무가 끝날 무렵에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나왔다. 갈사량과 일할 때만큼이나 낭비되는 시간이 없다고.

이번 임무로 나에 대한 불평은 깨끗이 사라졌다. 오히려 내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는 소문이 퍼졌다.

천재적? 사실 그 정도는 아니다.

나는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천재가 되어야, 이들 선배들의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상처 입은 자존심이 치유되었다.

똑똑한 사람들만 모여 있어 좀 다를 것 같아도, 결국 이곳도 사람들이 모인 곳임을 다시 느꼈다.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면서 갈사량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있었다.

역시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최고란 말까지 나왔다.

최종적으로 내가 얻은 수확은 갈사량의 신임이었다.

“역시 자네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 * *

갈사량이 정의각을 장악하자, 마봉기가 그를 불러들였다.

“정의각이 갈군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는 소식 들었네. 역시 최고의 총군사답네.”

갈사량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이든 마봉기는 마지막 순간 자신을 제거하려 할 것이다. 굳이 자신을 감출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여줄 것은 겸손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갈사량의 그러한 판단은 옳았다.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무엇입니까?”

“나를 맹주로 추대한 세력이 있네.”

마봉기가 배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세력’이란 표현을 썼다. 이미 첫마디에서 그들에 대한 강한 적대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압박하고 있네.”

처음 들었다는 듯 갈사량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총군사다운 차분함을 되찾았다.

“아는 바를 다 말씀해주십시오.”

“아는 바라고 할 것 없네. 나를 맹주로 추대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얼마 후에 내가 맹주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네.”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 마봉기가 진실을 말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자신을 속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광월단주가 왜 나를 지지했는지 몰랐다네. 심지어 그가 나를 진심으로 맹주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여긴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한데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네. 광월단주 뒤에 누군가 있고, 그놈들은

나를 허수아비 맹주로 앉혀 두고 뭔가를 꾸미고 있네.”

갈사량은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중간에 나서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았다.

일단 지금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마봉기의 표정 하나하나, 미세한 말버릇까지 자세히 관찰했다. 그가 무엇을 밝히고 무엇을 감추는지.

“지금껏 정체를 감추고 있다가, 드디어 만나자는 의사를 밝혀왔네.”

마봉기가 화난 얼굴로 덧붙여 말했다.

“건방진 놈이 나보고 오라고 했네.”

잠시 숙고하던 갈사량이 차분히 말했다.

“가겠다고 하십시오.”

반드시 이번 만남을 성사시켜야 한다. 배후의 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그것도 자신이 총군사의 자리에 있을 때.

“정말 놈이 오란 곳으로 가잔 말인가?”

“네, 가야합니다.”

“함정을 파놓았다면?”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놈들이 맹주님의 목숨을 노렸다면 이곳 맹주전도 안전한 곳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마봉기는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주철룡을 비롯해 여러 조직이 놈들에게 포섭당한 상황이었다. 맹주전이라고 절대 안전하다고 할 수 없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만나자는 곳도 놈들의 본거지는 아닐 겁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누군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마봉기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결정을 망설였다.

갈사량이 설득을 이어나갔다.

“잘 아시겠지만 강호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적은 강한 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적입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다시 놈을 만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윽고 마봉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만나겠네.”

갈사량이 짐짓 비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제가 직접 모시고 가겠습니다.”

* * *

그날 밤, 갈사량이 나를 불렀다.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그는 나를 만난 이후 가장 진지하고 심각했다.

“말하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

“하십시오.”

“자네가 그랬지? 위험이 클수록 얻는 것도 클 것이라고.”

“네, 그랬습니다.”

“그 위험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위험이라면?”

나는 잠시 대답을 아꼈다.

“대답에 앞서 저도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하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까진 말씀해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제 목숨이 걸리는 일이 올바른 일입니까?”

명분도 없이 그를 따른다면, 오히려 갈사량은 나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강호를 위하고, 강호인들을 위한 일이라네. 이번 일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꼭 해야 할 일이네.”

말이 끝나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기꺼이 제 목숨도 걸겠습니다. 그리고 그 위험에서 군사님을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자네!”

지금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신뢰였다. 그는 내게서 신뢰를 기대 했고, 동시에 자신을 믿으라는 신뢰감을 주기도 했다.

“맹주님을 모시고 가야할 곳이 있네. 자네와 나, 그리고 최소한의 인원만이 움직일 것이네.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해주겠네.”

“출발시간과 목적지는 어딥니까?”

“출발은 모레 새벽, 목적지는 절강성 남현표국이네.”

“알겠습니다.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아무 내색 없이 걸어 나왔지만 그곳은 내가 알고 있는 곳이다.

남현표국.

앞서 임연정의 연구재료를 보내온 표국이자, 앞서 대륙상단의 단주인 성왕보가 밀어줘서 단시일에 중견표국이 된 그곳이었다. 놈들의 배후가 운영하는 바로 그곳이었다. 과연 이번 일의 배후가 보내온 소식이 확

실했다.

마봉기가 직접 간다는 것은 저쪽에서도 수장이나 수장급이 나온다는 의미.

과연 진짜 놈들의 수장이 나올 것인가?

대체 그는 누구일까?

2